소설리스트

〈 84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10) (84/111)



〈 84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10)

가려진 복도 너머에서 그가 몸을 내미는 모습은, 거꾸로  너머의 누군가에게는 이쪽이 습격자처럼 보일 터였다.

“어이.”

한 걸음 내디디고 로드리가 입을 여니,  놀란 쪽은 상대편이었다.

엉성한 자세로 소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는,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가운 차림의 남성. 너저분한머리와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은 말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구부정한 어깨와 조금 앞으로 축 처진 목은, 온종일 책상에 앉아 지내는 사람 특유의 자세였다. 거기에 마치 우유병 바닥처럼 두꺼운 안경을 쓴 채로, 그는 볼썽사나운 비명을 질렀다.

“오, 오지 마! 구원군 녀석이냐?! 오면 쏜다!!”
“알았다.”
“오지 말라니까!!”

소총을 마구 휘저어대던 사내는 제풀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제대로  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쏘아 올린 눈먼 총알은 로드리가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맞은편 벽으로 향했다.

형편없이 빗나간 도탄은 몇 번 더 튕기고, 힘없이 코넬리아와 마틴 뒤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로드리는 소녀와 마틴의 앞을 막는 위치 그대로.  자리에 서 있는 채 말했다.

“오지 말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도 쏘았군. 어째서지?”
“몰라,그런 거! 그냥 쐈다고오!”

말투는 침착해도 로드리는 양손은 고개 앞으로 들어서 권투 자세를 취했다.

“형씨. 진정하시고. 이름과 소속이 어떻게 되지.”
“웃기지 마, 내가 그걸 왜 가, 가르쳐 줘야 하는데?”
“그건 그렇군.”

그 말에 맞장구를 친 로드리는 곧바로 사내에게 빠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상체만 보면 그 흔들거림은 뛰는 자세가 아니다. 그 반대로, 하체는 발뒤꿈치부터 싣는 체중을 그대로 발가락 끝으로 흘려내며 힘차게 지면을 밀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상반신과 하반신의 언밸런스한 움직임. 근접 전투에 능숙한 격투가가 아니라면  경험이 없을 풋워크에 사내는 잠깐 혼란스러웠고.

그 잠시의 착각으로 곧바로 기세를 빼앗기게 되었다.

“엇, 어억.”

정말로 아차 하는 사이에.

로드리는 사내의 코앞에 도착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방아쇠를 재차 당기려고 했지만, 재장전을 하지 않은 소총은 그저 달칵거릴 뿐이었다.

어차피 그가 방아쇠를  손가락에 힘을 주기 전에 로드리는 총구를 몸 바깥으로 밀어내듯 쳐내었다. 한 발은  쏠 수 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진 못했으리라.

구부정한 사내가 당황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려고 했지만, 로드리는 간격을 벌리지 않았다.

사내의 손목을, 자신의 손으로 강하게 내리친 로드리. 그 충격에 “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사내는바로 총을 떨어뜨렸다.

“진정하라.”

상대가 생각보다 너무 약하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너클 부위가 아니라 주먹을 말아  새끼손가락 부분으로 가격을 한 게 나름의 배려.

그렇지만 바로 이어서 오른쪽 팔꿈치로 사내의 목울대를 가격한 건 일말의 배려도 없었다.

“캑캑, 콜록콜록!”

목과 어깨를 뒤로 힘껏 밀면서, 그대로 다리를 걸어서, 기침이 터진 사내를 넘어뜨렸다. 반 바퀴 구르면서 엎드리듯 누운 상대의 등 위를 로드리는 완전히 깔아뭉개듯 올라탔다.

비록 두드러진 근육질은 아니더라도 로드리의 몸은 자칫하면 둔해질 수 있는 체형이다. 그 걱정을 지워버리는 그의 날렵한 움직임에 코넬리아는 내심 감탄하였다.

‘자신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군….’

일대일 격투로 제압하는 로드리의 모습은 언뜻 보아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사내의 양팔을 등 뒤로 꺾어 돌린 로드리는 곧바로 몸을 더듬어서 다른 무기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완전히 무력화를 한 걸 확인한 다음에서야 사내의 등을 무릎으로 누른 채 입을 열었다.

“종립구원군 소속 로드리 참령이다. 형씨.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수… 순순히 말할 거 같아…? 내가 왜?”
“다시 한번 묻는다. 이름과 소속을 말해.”
“내 입으로는 죽어도  가르쳐줄 거라고.”

두꺼운 안경을 사내는 나름 비웃는 표정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진지함이 만약 코넬리아나 마틴에게 향했으면 효과가 있었을지 몰랐다.

그가 저지른 실수 아닌 실수는, 자신의 상대가 로드리였다는 점이었다.

“죽어도 안 말한다는 사람들, 아주 많이 봤지.”

두 다리와 허벅지로 완전히 사내를 고정한 자세로. 로드리는 양손에 쥐고 있던 너클을 벗었다.

“그 용감한 자들도 나중에는 이렇게 말하더군. 말할 테니까제발 죽여달라고.”
“엉?”
“전문적인 심문 기술을 가하겠다. 얌전히 받아들여라.”

사내가 버둥거리려는 찰나에 왼손을 붙잡았다. 그대로, 엎드려서 짓눌린 사내의 얼굴 앞 바닥에 억지로 옮겼다.

로드리는 허리춤에서 군용 나이프 꺼내서, 손에 그대로 힘껏 꽂았다.

“히… 히헤….”

콘크리트 바닥에 깡, 부딪혀서 떨리는 나이프의 칼날.

사내의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상처 하나 없이 파고든 나이프를 로드리는 곧바로 거둬들였다.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다시 한번, 나이프를 찍었다.

“「카앙—」”
“히익… 히이이…!!”

이번에는 검지와 중지 사이였다.

“연습은 끝났다. 다음부터 너의 손가락을 단번에 자르겠다.”
“진짜로? 진짜 잘라?!”
“한 마디씩 자를 테니 정확히는 세 번이다. 엄지는  번이겠군.”

그렇게 말하고 로드리는 나이프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거대한 말벌처럼 공기를 찢는, 살벌한 소리가 붕붕 울린다.

그러다가 턱. 하고 손아귀로 나이프 손잡이를 힘껏 붙잡았다.

“그럼 엄지부터 시작한다.”
“말할게! 말한다고! 볼라트!!”

온몸으로 버둥거리면서 사내는 외쳤다.

“볼라트 지르코프! 여기 공장, 존, 존 제르바의 공장에서 일하는 볼라트 지르코프!”

 진심이 담긴 외침을 듣고 나서야 로드리는 압박하던 체중을 살짝 풀었다.

“볼라트. 멋진 이름이군, 극동연방 출신인가?”
“그래. 제기랄….”
“왕국어가 무척 능숙하다. 여기서 무슨 업무를 하였는가.”
“생체비활성보존 약품 제조합성 제형 가공을 맡았는데 더 자세하게 말해도 다, 당신이 알아들을까…? 못 알아듣겠지이?”
“그건 그렇지. 나는  알아듣는다.”

로드리는 사내—볼라트의 위에서 비켜주었다. 그리고 아직 그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사이에, 코넬리아와 마틴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약속했던 증인이다. 소위. 데려가라.”
“아야야… 응? 소위라고…?”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볼라트는, 로드리의 옆으로 온 일행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런 곳에 왜 애가 있는 거지? 그것도 여자애잖아!”

그중에서도, 코넬리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야. 혹시 인질로 데리고 다니는 거야?”
“인질은 무슨—”

그 말에 코넬리아가 곧바로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로드리는 옆구리를 툭 쳐서 진정시켰다. 소녀를 대신하여 말을 꺼낸 건 마틴이었다.

“볼라트씨. 저는 연합육군 소속인 라이트 소위입니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신변은 보장하겠습니다.”
“쳇, 인제 와서 저항할 리가 없잖수. 어… 아니, 그보다 당신, 육군이라고 했지.”

흙먼지로더럽혀진 안경을 소매로 쓱쓱 닦고, 볼라트는 양서류처럼 둥그런 눈을 껌벅거렸다.

“이거 참, 애도 그렇고 댁도 그렇고. 어째서 이런 위험한 곳에 온 거야….”
“어라.”

코넬리아는 볼라트의 말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위험한 요소는 차고 넘치는 폐공장에,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간에는 확실히 자신과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가 올 만한 건 아니었다.

자기는 그렇다 치고.

‘군인도 오면 안 되는 위험한 곳이라는 건가. 여기가.’

코넬리아의 마음속에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런 소녀의 옆에서 마틴은 그에게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볼라트 씨는 저희에게 질문할 처지가 아닙니다. 앞으로 당신은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합니다”
“허어. 쳐들어와서 두들겨 패놓은 쪽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가 화를 내는 것도 코넬리아가 보기에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볼라트가 억울하다고 주장해서 딱히  달라질 건 없다.

마틴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편안하게 말을이었다.

“거짓말로 저희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어이, 난 연방 사람이야. 나는 여기 연합왕국의 사람이 아니라—”
“볼라트 씨. 여기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건, 이 안에 숨기고 싶은  있다는 거겠죠?”

밀려오는 마틴의 질문에 볼라트는 째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 자체가 답이었다.

“총기 사용이 꽤 서툴러 보이셨습니다만… 뭐, 좋습니다. 볼라트 씨.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무슨 궈, 권한으로.”
“권한이라면 내가 있다.”

옆에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던 코넬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어린 애는 어른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는 눈빛을 마구 던져 오는 그에게 코넬리아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뭐야? 뭐길래 이러는… 거지요?”

앞뒤 재지 않고 솟아나려던 그의 언행은, 로사리오를 보는 순간부터 바로 조절되기 시작했다.

사치의 상징인 분홍색 진주. 그것들이 한두 알도 아니고 잔뜩 꿰여 있는 로사리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드는데, 묵주 사이에 끼어 있는 어떤 것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붉은 동전이었다.

“내가 지금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엄청난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가?”

안경을 고쳐 쓰는 볼라트의 혼잣말에 마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넬리아는다시 소매를 내리고, 마틴의 허리 뒤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얌전히 이 군인의 말을 따라주시길. 볼라트. 그게 댁을 위한 거다.”
“어째서 애가 이런 곳에 왔는가 했더니, 그런 거였나. 흐흐… 이거 정말 허를 찔렸다고.”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안경을 고쳐 쓴 볼라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고슴도치 모양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가 싶더니.

코넬리아를 향해 몸을 불쑥 기울였다.

마틴이 어느새 총을 빼내어 볼라트의 배를  누르는 건, 거의 동시.

“아 제발…. 허튼짓은 안 한다니까. 무기도 없잖아?”
“당신의 몸이 무기입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하기엔 충분하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살벌한 거는  치워주십셔. 네에?”

손을 훌훌 터는 시늉을 하면서, 볼라트는 뒤로 반 발자국 물러섰다. 마틴의 총구는 그의 가운에서 자연스레 떨어졌지만, 겨냥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과연….”

노골적인 마틴의 적대감을 마주하면서도 볼라트가 웃음을 실실 흘렸다.

“아까 전까지는 증언하기 싫었는데, 마음이 바꼈어. 증인이 되어 주지.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내가 남아서 다행이었네.”
“무슨 의미입니까.”
“별 의미는 아니야. 재밌는 꼴 구경하겠다 싶어서어.”

아까 로드리한테 얻어터지고 나서도 완전히 기세에서 눌려 있던 것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달라진 기색이었다.

“아가씨. 실례지만 아가씨가 이 둘보다 위쪽의 사람이시군?”
“이 자의 질문에 대답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간 끌기입니다.”
“끼어들지 마. 지금 난 군인 양반한테 한 말 아니거든…. 크크, 뭐야, 독점욕인가?”

조금 전까지 벌벌 떨면서 로드리에게 빌었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볼라트는 안경 아래로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날 못 죽이는 거지. 그럴  없을 거잖아. 애초에 그러려고 나를 남긴 게 틀림없을 거라고.”
“남기다니, 누가 당신을 여기에 일부러 남긴 건가?”

참지 못한 코넬리아가 볼라트에게 물었다. 소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알아차린 그는 고개를 숙이고, 지저분한 이를 드러내며 좀상맞은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마지막이니까 말해주는 건데 지금 함께 오신  분을… 동료라고 생각하는 거요?”
“더 대화할 필요 없습니다. 증인은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마틴이 볼라트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바로 바짝 붙어서 인정사정없이 뒤로 꺾었다.

“아야!”

짧게 비명을 지르는 사내는, 그러면서도 코넬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정신 차리쇼,  이름은 모르는 경의사 아가씨! 지금 아가씨만 모르고 있어!”
“입 다물어. 개자식아.”

순간  말을 누가 한 건지, 코넬리아는 말의 내용과 말의 주인이 쉽사리 연결되지 않았다.

바로 앞에 서 있는 마틴에게서 나온 목소리이긴 했어도. 그가 이런 식으로 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마틴?”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마틴은 ‘아차’ 하는 낭패가 섞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코넬리아에게 변명하는 대신, 그는 곧바로 로드리와 눈빛을 교환하였다.

“음.”

로드리가 고개를 까딱 움직였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마틴이 볼라트를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코니. 어서 세척실로 먼저 들어가자.”
“어, 어어? 마틴은?”
“소위에게는 증인의 인계를 맡긴다.”

로드리가 코넬리아를 거의 끌다시피 하면서 세척실의 문 앞으로 향했다. 그 둘의 등을 보면서, 볼라트는 끝까지 떠드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나라면  들어갈 건데~~~!!”

로드리는 그 도발을 무시하고, 잠겨 있지 않은 세척실의 문을 밀어서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