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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9) (83/111)



〈 83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9)

“어. 그렇지. 작전을 지시하겠다. 로드리, 마틴.”

코넬리아는 턱을 살짝 당겼다.

“여기서 가장 의심스러운 세척실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이 폐공장의 비인가 거래 증거품을 확보한다. 적을 만나면 단호하게 제압하되 가능하면 안 다치게 하는 식으로…. 아니, 아니야.”

소녀는 실수를 깨달았는지 자기가 말하고도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부탁과 명령이 뒤섞이면, 무엇을 우선순위로 매겨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큼큼. 헛기침하는 시늉을 한 코넬리아는 바로 고쳐 말했다.

“적을 제압하되 치명적인 부위는 피해서 공격하라.”
“우리를 죽일 생각으로 적은 조금 전 사격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적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소녀가 내린 명령이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마틴의 확인에는 푸념이 섞인 듯하였다.

여태까지는 로드리의 말실수는 짚을지언정 코넬리아의 지시에는 토를 달지 않았던 마틴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런 반응을 하는 건.

‘누르면 안 될 마틴의 마음속 스위치를 눌러버린 건가?’

코넬리아는 자신의 지시가 어느 부분에서 군인의 사고방식을 건드렸는지는 대충 짐작은 갔다. 그걸  바깥으로 꺼내기에 앞서서, 소녀는 마틴이 하는 말을 잠자코 계속 들었다.

“말씀하시는 대로 명령은 따르겠어요. 경의사 님. 그렇지만 여기서 적을 배려할 필요가—.”
“라이트 소위.”

점점 길어지려는 그의 말을, 코넬리아 대신 로드리가 중간에서 잘랐다.

“경의사 님이 내린 명령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자기 해석은 그만두도록. 그렇지 않습니까, 경의사 님?”
“물론이다.”

그렇게 말한 코넬리아는 지금까지 로드리에게 괜히 타박했었던 걸 후회하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후 사정까지 이해를 해주는  로드리였다.

그의 조건 없는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고 마틴이 오해를 하는 이 상황을 바로 해결해야만 한다.

‘당한 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는 마틴의 생각,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

코넬리아는 딱히 착한 척을 하려는  아니었다. 로드리가 다 차려 놓은 작전을 그대로 읊으면서 자신이 꺼내었던 문장에도, 상대편 적을 특별하게 동정하는 분위기는 결코 없었다.

그런데도, 군인 정신에 충실한 마틴조차 오해할 정도로.

경의사라는 독보적인 특별신분조차 가려질 정도의 압도적인  편견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말을 할 것도 없었다.

‘이런 일로 시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사소한 오해에서 팀워크가 무너지고, 결정적인 순간에서 오해로부터 비롯된 패착을 짚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다.

“마틴.”

코넬리아는 다리를 어깨너비 폭으로 벌리고, 방수 우의를 입은 채 팔짱을 꼈다.

“명색이 경의사니까 사람을 죽이게 하지 않는다, 고 이해하는  알겠다. 그 뒤의 생각도 물론 알고 있어. 어리니까, 여자애니까, 작전이 무르다는 짐작이 있겠지.”
“경의사 님. 전 그게—.”
“변명이나 사과는 작전이 끝난 후 로드리랑 같이 해줘. 그보다는 설명을 보충할 테니까  들어.”

소녀는 로사리오가 둥글게 감겨 찰랑대는 오른손으로, 집게손가락을 하나 세워 들었다.

“증인이 필요하다. 증거품만큼 중요한 증인이 법정에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사람을 하나 데려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아… 증인.”

잠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마틴.

“증인을 꼭 여기서 찾아야 하나요.”
“꼭 여기일 필요는 없지. 그런데 다른 부대원들이 증인을 확보한다는 보장도 없다.”

어림짐작으로 대강 말하는 코넬리아도 그저 하고 싶어서 가정에 가정을 연거푸 이어가는 건 아니었다.

외부 상황이 어떤지 현재의 위치에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상상을 할  있을 뿐. 존재만으로도 단순 보병부대와는 상성이 극단적으로 유리한 오토마톤이, 한두 기도 아니고 무려 두 자릿수로 모여 있는 구원군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 공격이라고 해도 그들이 쉽사리 무너지진 않겠지. 미끼 작전의 성패가 단순히 알  없는 적과의 교전에 달려 있다면, 이미 그 교전에서의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다. 애초에 경의사를 데려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지금 그들에게 전투 결과보다도 중요한 건. 존 제르바의 공장 설비의 배후에 있는 존재를 파악하고 그 배후와 무역상사 사이의 관계를 입증해내는 것.

그리고 경의사는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을 구원군과 바트나 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쏠리게 만드는 쓰임새 좋은 인형이다.

흠이 가지 않게 귀중품처럼 곱게 먼지가 쌓이도록 모셔두는 인형이 아니라,험지에서 움직이고 떠들고 지시를 하는 태엽 인형의 쪽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내가 일을 누군가 대신하겠거니,라고 마냥 멍청하게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도망치러 간 와중에도 공장 밑에서 생쥐처럼 여태 숨어 있던 녀석이라면, 증인의 가치가 충분할 거 같다만. 그렇지, 마틴?

허리 양옆으로 손등을 올리고, 소녀는 어깨를 폈다.

“증인을 죽이지 말라는 내 명령. 안 따를 거야?”
“따르겠습니다.”

곧바로 답변하는 마틴. 그를 올려다보던 코넬리아의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은.

“후훗.”

웃음을 흘리면서, 곧바로 풀어졌다.

“남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쉽지는 않군. 그래도 나쁘진 않아. 나쁜 기분은, 일단 아니네.”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그렇게 배워가는 거다. 코니.”

언제 또 정중하게 말했냐는 듯, 로드리는 소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리고 마치 올바른 시범이라도 보이려는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세척실로 이동하는 길잡이 역할은 내가 맡겠다. 코니는 내 좌측 후방에서 이 보(步) 간격으로 이동하고. 소위는 오직 코니를 호위한다.”

간결하게 명령을 내리는 로드리는, “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틴에게 바짝 붙어섰다.

“그리고 말이지….”

코넬리아의 귀에는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마틴에게 속닥거리는 로드리.

‘응?’

예상하지 못한 로드리의 행동에 코넬리아는 깜짝 놀랐다. 놀란  마틴도 마찬가지다. 로드리가 뭐라고 속닥속닥 말을 하자마자 안색이  바뀌었다.

귓속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말을 끝마친 로드리는 마틴의 어깨를 툭툭 격려하듯 두드렸다.

“알겠지?”
“네, 네에. 알…겠습니다.”

폐공장에 도착한 이후부터 감정 변화는 위아래로 뾰족뾰족하게 바뀌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마틴이.

그 마틴이 처음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나에게 숨기면서까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고 물어도  가르쳐줄 거지?”
“당연하다.”

로드리는 건조하게 답했다.

“마틴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했다. 그뿐이다. 이제 이동할 것이니 열심히 따라와라. 나는  보폭대로 걸을거니까.”
“어어, 비겁해 너! 야!”

대화를 피하려고 하는  분명했다. 그걸 알아차린 코넬리아가 따질 사이도 없이, 로드리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음을옮기기 시작했다.

만약 로드리를 바로 따라잡는다고 해도 코넬리아는 그에게 딱히 귓속말의 내용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로드리가 자신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비행선에서의 대화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해도 비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는 기꺼이 입을 다물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코넬리아와 말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마냥 피하는  비겁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진짜 빨리 걷네!’

로드리가 자기 보폭대로 걷는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발로 걷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지 보폭은 넓든 좁든 유지하면서 움직이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로드리는 뒤에서 코넬리아가  따라오는지 힐끔힐끔 안 보는 척하면서 보고 있었다.

소녀가 빠른 걸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따라 올해 정도의 속도를 절묘하게 유지하면서.

그리고 열심히 앞뒤를 번갈아 가면서 주시하느라 바쁜 마틴도 신경을 쓰면서.

지하 공간 자체는 그렇게 넓다고는 할 수 없어도, 통로는 평범하게 복도가 늘어져 있는 게 아니라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로드리는 머릿속에 지도뿐만이 아니라 나침반도 넣어둔 것처럼, 그 복잡한 길을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그동안에 금방이라도 나올  같았던 수수께끼의 적은, 나오지 않는다.

마치 제 자리를 계속 맴도는 것 같은, 미로를 헤맬 때마다 와닿는 특유의 그 느낌.

그 시간도 오래 가진 않았다.

천장의 전등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한 주황빛으로 채워진 복도. 그 위를 이리저리 걸어 나가던 로드리는, 여느 때처럼 꺾이는 부근에서 살짝 머리를 내밀어서  너머를 살펴보았다.

그다음에 당연히 앞으로 나갈 줄 알았던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행여나 코넬리아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왼팔로 확실하게 멈춰 세웠다.

“목적지 입구에. 누군가가 있다.”

로드리는 우의 아래의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내었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둥그런 구멍이 서너 개 나란히 붙어 있는 금속 너클은, 그걸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그 주먹에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선사한다.

그 위험한 걸 양손에 끼면서 그는, 코넬리아의 옆에 어느새 바짝 다가온 마틴에게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아르투르 제(製) 소총이다.”
“재장전을 하는 시간에 물을 끓이면 파스타도 삶을 수 있는 그거 말이군요.”

마찬가지로 마틴의 말 또한 마치  앞에 불이 붙은 초를 세워둔 것처럼 작고 조심스럽다. 코넬리아도 손을 세워 입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안 다치게 조심해.”
“알았다. 가능한  살살 패도록 하지.”
“상대방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네가 다치지 말라고.”
“음. 노력하겠다.”

목을 한 바퀴 시원하게 돌리고, 로드리는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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