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5)
미끼 작전이 설계된 직후. 구원군의 본부에서 출발하기 전에 전위 담당 부대원은 폐공장 부지의 지도를 받았었다.
직사각형 형태 지도에는 커다란 격자선이 그어져 있고, 그 위에는 숫자와 문자가 쓰여 있다.
가로 격자의 「문자」와 세로 격자의 「숫자」를 이어 붙이면 하나의 단어가 된다. 그 단어는 폐공장 부지의 각 ‘좌표’가 되고, 사전에 조를 짜서 좌표를 나누어준다.
갑작스럽게 적에게 습격을 당하지 않는 한, 무조건 정해진 좌표 만의 정보만을 수집한다.
구시대의 탐색 방식—바다 어부의 그물망처럼, 모든 인원이 모든 지역을 훑듯이 탐색하는 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불평불만을 토해내고도 남았다.
그들이 과거에 사용하였던 방식과 비교하면, 분할 탐색이 엉성하다는 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도를 지나칠 정도의 비난도 ‘타당한 항의’로 포장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
이미 은퇴하거나 명예로운 영전을 기다리는 오래된 사람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로드리를 비롯한 젊은 구군장교들은 새로운 탐색 방식을 그만두지 않았다.
인력과 시간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옛날 옛적의 탐색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구원군에게 작전이라는 건, 언제나 예외 없이, 인력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정상적인 편제였다면 가만히 부하들의 탐색 결과 보고만 들었겠지만, 로드리가 몸소 탐색 작업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건….”
운 좋게도 전위 부대원들의 군홧발을 피한, 정문 입구에서 조금 안쪽으로 외진 곳에 있는 뜰에서.
“야, 로드리. 이거 봐.”
코넬리아가 부른 그곳에는, 아직 형태가 뚜렷한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가 내리는지 한참이 지났다. 이렇게 심한 비를 오랫동안 맞으면 조각상도 깎여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의 자국은 그 폭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자국인 거 같은데.”
“예. 존 제르바의 공장이 폐공장이라고는 하나, 거래는 지난달에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장갑을 벗은 로드리는 몸을 숙여서 흙을 만져보았다. 그러더니 마치 침대 밑을 확인하는 가정부처럼 바짝 엎드렸다. 오른쪽 뺨을 진흙탕에 비비듯이 바닥에 바짝 붙였다.
“흠. 흐음….”
어깨에 부착하고 있던 램프를 왼손으로 떼어서, 여러 방향에서 수레 자국에 그림자들 그려본다. 그다음에는 패인 흙에 손가락 끝마디를 넣었다.
“수레바퀴의 자국은 그저 ‘여기에 바퀴가 굴렀다’라는 흔적만을 남긴 게 아닙니다. 아주 많은 「진실」이 남겨져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이.”
시커먼 펄은 그의 손가락 끝에 엉겨 붙어서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아주 가까운 과거에 움직인 자국입니다. 여기는 바로 직전까지 사람이 드나들었던 겁니다.”
손가락을 비벼서 대강 털어내고. 그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를 불렀다. 깍듯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부하에게 로드리는 뭔가를 속삭였다.
“─예! 팍스 파렘!”
잠시 동안 그의 말을 들은 부하는 경례하고. 왔던 길의 방향으로 되짚어 달려갔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부하에는 이미 흥미가 없다는 양, 로드리는 다시 축축한 가죽 장갑을 끼면서 코넬리아에게 말했다.
“후위에 지금 발견한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몇 가지 조건에 맡는 수레를 발견하면 바로 압류할 것입니다.”
“만약 중간에 수레를 바꾸거나 하면 놓치겠네.”
“맞습니다. 하지만 수레를 그대로 쓰면서, 이 날씨 험한 밤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면, 저희에게도 기회는 있을 겁니다.”
설명을 덧붙일수록 어쩐지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안 하는 거보다는 무조건 낫다, 는 거군.”
“예.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로드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폐공장 부지로 흩어졌던 부대원들이 속속 돌아오기 시작했다.
“D8부터 12까지의 탐색 결과는—”
“우리가 점검한 곳은 A0부터 D0까지 수직 배열인데—”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부하들의 보고를 청취하는 로드리. 다행히도 정보를 취합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까 코넬리아와 로드리가 발견한 수레바퀴의 흔적은 다른 곳에도 일부 남아 있었지만, 그 외에 의미가 있을 만한 물건은 보이지않았다.
눈에 띄지 않은 건 증거품뿐이 아니다. 어느 좌표든, 누가 숨어 있다거나 바로 직전까지 머무르고 있었다는 특별한 인기척은 없었다.
몰래 폐공장을 사용하고 있었을 직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으레 버려진 공장 부지라고 하더라도, 불량한 방문객이 없는지 한두 명 정도는 배치되어서 순찰을 다니는 경비원도 보이지 않았다.
“—…유해 동물의 진입을 막는 덫은 몇 개 있긴 했지만, 보통은 사람이 드나들지 않을 수풀 속에 있었습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아닙니다.”
“그 외의 덫은? 함정도 있지 않을까?”
“글쎄. 공장 내부에는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공장 외부에는 없었습니다.”
“최소한 공장에 진입하기 전까지 위험성이 확 줄어든 건 다행이군.”
“저도 보고를 할게요.”
불쑥, 뒤에서 나타난 마틴의 존재에 코넬리아는 잠깐 딸꾹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랬다.
“공장 부지와 바로 붙어 있는 연립 주택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지 좀 특이한 사항이 있었는데 말이죠.”
마틴은 품속에 넣어서 가지고 온 뭔가를 꺼냈다. 하얀 빵 덩어리였다.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냄비 안 스튜의 온기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바로 오늘 저녁까지 사람이 살던 건물이었어요.”
마틴이 말하는 것에 담긴 의미는, 누군가가 민간인을 소개(疏開)했다는 것.
“적어도 몇 시간 전부터… 미끼 작전이, 이미 노출되었다는 말인가.”
로드리의 얼굴에는 낭패의 기색이 역력했다. 살짝 웃으면서 마틴은 “글쎄요?”하고 로드리의 질문을 쓱 빠져나갔다.
“우연히 다들 어디론가 놀러 갔을 수도 있죠. 하여튼 중요한 건, 이 폐공장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 함정입니다. ”
“동의한다. 이건 「의도된 고요함」이다.”
의도된 고요함.
악센트가 달라지는 단어였다.
“일부러 이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건가. 폐공장의 부지, 그리고 부지 주변의 건물들까지?”
“예. 우리가 미리 눈치를 채고 작전을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도록 수를 쓴 겁니다.”
“그렇다면 이상하군. 왜 우리를 내버려 두고 있는 거지.”
로드리는 여전히 한쪽 뺨에 검은 흙이 묻은 채, 비를 피해서 우의를 쓸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폐공장 건물 내부로 우리가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걸까.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다.”
“가장 운이 좋은 경우는이 상황이 정말로 의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희망이고, 희망 사항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게 특기죠.”
“운이 가장 나쁜 경우는, 이미 우리 전체가 함정에 빠졌다는 거겠지. 처음부터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는 거다.”
“불행한 예상은 언제나 적중합니다. 우린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들어왔어요. 전 이쪽에 한 표 던지겠습니다.”
위험천만한 말을 하면서도 마틴은 전혀 긴장된 기색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가 코넬리아의 앞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였던 것만 생각하면, 9호실에서 조금 경직된 자세로 뻣뻣하게 신문을 넘기던 모습만 떠오른다.
‘역시 특무부의 영걸…. 이런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군.’
그런 생각을 하는 코넬리아의 앞에서. 마틴은 팔짱을 낀 자세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저는 여기, 폐공장의 부지를 노려보고 있을 ‘누군가’의 정체를 모릅니다. 짐작만 할 뿐이죠. 실례지만 참령님은 그게 누구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모른다. 그러나 경우의 수는 몇 가지 없을 것이다. 무역상사와 제3지구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일지도.”
“어느 쪽이든지 아직까지 여기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요. 어째서 공격하지 않는 걸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동의한다.”
로드리와 마틴의 대화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에 갇혀 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지금 상황이 수상하다는 경고하고 있다. 이건 코넬리아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가 되는 건 그 경고를 받은 이후의 일.
상대에게 노출된 작전은 취소해야 하는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작전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는가?
‘후우… 머리가 다 아파져 오는군.’
쿡쿡 쑤시는 편두통이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소녀는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외부로 쏠려 있던 감각을 몸 안으로 돌렸다.
생각을 재정비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 여유는 길지 않았다.
「두근- 두근-」
문득 코넬리아는 인공심장의 박동이 조금 빨라진 게 느껴진다.
긴장이라는 건 그저 마음속의 생각뿐만이 아니다. 신체의 여러 부위도 스트레스에 함께 반응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정도는 누구든지 다 경험으로 아는 지식이다.
“이상한데….”
코넬리아의 중얼거림.
그 말에 로드리가 “네?”라고 짧게 말을 하였지만, 소녀는 대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인공심장의 박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마구잡이로 질서를 잃고 뛰는 건 아니었다. 찬찬히 느껴보면 그저 평소보다 약간 빠른 정도. 그걸 알면서도 느껴지는 위화감이 코넬리아의 뱃속을 간지럽혔다.
그 두근대는 박동의 힘.
활력!
‘이상하다, 분명히 이상해!’
그제야 코넬리아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치 활력 주입기로 직접 성천수를 주입한 것처럼, 인공심장에 활력이 솟아나고 있었다.
단순히 착각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맹렬하게 치솟는 활력이 인공심장의 안에 팽팽하게 가득 차 있다.
소녀가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하려는 찰나.
「두근—」
가슴 속에서 열이 솟아올랐다.
한 번 불이 붙은 심지는 꺼지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터진 활력의 폭발은 허파로, 등으로, 팔과 다리로, 이어서 목을 따라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듯 파고들었다.
이윽고 소녀의 눈의 뒷면에 해가 떠올랐다.
그 시간은 로드리가 마틴에게 뭔가를 말을 하면서 눈을 한 번 깜박일 정도의, 아주 찰나의 순간.
“—……헉.”
잠자코 서 있던 코넬리아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뒤집어쓰고 있던 방수 우의를 조금 끌어 내렸다.
이마를 다 덮을 정도로 우의를 내린 소녀는 최대한 시선을 감추고, 비에 젖어 몇 가닥씩 한 덩어리로 붙은 앞 머리칼 사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동이로 퍼붓는 양 쏟아지는 장대비.
그 빗물과 어둠에 섞여서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짙은 안개.
탐색을 마친 부대원들은 여전히 화기로 무장한 상태로 긴장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은,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지쳐서 풀어지겠지.
만약에 정말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면, 그때를 노려서 공격해 오겠지.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몸을 숨겨주는 건 코넬리아 자신이 있는 구원군뿐만이 아니었다. 은폐는 모두에게 공정했다.
그 바깥으로 구원군은 아직 나올 수 없었다. 아직 여기에서 마쳐야만 하는 「임무」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겨진 답은 단 하나.
임무를 완수하여야 한다.
“로드리. 후위에 신호를 보내라.”
“음?”
갑작스러운 코넬리아의 명령조. 조금 놀랐는지 고개를 돌린 그는, 소녀가 먼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수를 쓰고 있는지는 몰라도 적은 이쪽을 안개 너머에서 감시하고 있어. 우리가 공장 내부로 진입하는 동시에, 이쪽을 공격해 올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어느 사이엔가 ‘적’으로 칭하고 있는 코넬리아.
소녀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서 로드리는 말했다.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경의사 님은, 나와 라이트 소위가 놓치고 있는 뭔가를 알아차렸습니까?”
코넬리아는 자기 입으로 「직감」이라는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로드리에게 확실하게 제시해야 할 근거도 없었다.
사실은, 딱히 근거가 필요 없었다.
소녀는 로드리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방수 우의의 소매를 걷어서, 분홍빛 로사리오가 칭칭 감겨 있는 오른손을 꺼내어 보였다.
“경의사가 장교에게 명령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던가.”
“아닙니다.”
로드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를 폈다. 그러고 나서야 한 박자 늦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 생각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을 하였다.
위화감에 당황하는 로드리의 모습은, 지금 코넬리아의 눈에는 별다른 흥미를 끌어내지 못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소녀는 말했다.
“네 처지를 생각해서 명령은 잠시 유예하겠다. 아주 잠깐이다.”
코넬리아의 목소리의 온도가 바뀌었다.
“지금 바로 폐공장의 내부로 진입한다. 진입하는 동시에 후위에 신호를 보내라. 조명탄이 있으면 그걸 꼭 사용하는 걸로.”
“적도 눈치를 챌 수 있게 하라, 는 의미입니까.”
“그래.”
소녀는 턱 끝으로 로드리에게 명령했다.
“입구로 안내해라. 마틴, 너도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