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3)
“내부 확인은 아직 못 했으니,어디까지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면…. 주의를 거듭하여야 하겠습니다.”
“나와 의견이 같아졌네.”
코넬리아는 어깨와 목의 잔 근육에 잔뜩 들어가 있었던 긴장을 조금 풀었다. 명령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별로 입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앤시아가 제대로 이해를 해 줘서 다행이야.’
소녀의 말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었다면.
솔직히 코넬리아는 제대로 설득을 할 자신은 없었다. 남은 방법은 불신 속에서 오로지 수직적인 명령으로 작전 변경을 강행하는 것뿐일거고, 아무리 로드리를 믿는다고 해도 그는 앤시아를 대체할 수 없다.
안 그래도 불안한 미끼 작전에서 더더욱 불안함이 증가하는 건 피하기 어려웠겠지.
그 걱정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코넬리아에겐 자신감이 붙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이런 명령을 하는 게 혼란을 주는 건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부득이한 상황이란 걸 이해했기를 바란다. 앤시아.”
“말씀하셨던 위험성은 잘 이해하였습니다. 명령하신 그대로 수정하겠습니다.”
감정의 동요가 어느 사이에 사라진 앤시아는, 마틴이 서 있는 방향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라이트 소위. 브라우니 카메라 사용법은 알려 주지. 어렵지 않다. 현장 촬영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일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기만 전달해 주시면 돼요.”
“그럼 좀 편하게 되었군. 하여튼 당신은 남의 일꾼이니 우린 당신의 행동에 간섭은 하지 않겠다.”
“배려 감사합니다.”
로드리도 그렇고 앤시아도 그렇고, 유독 마틴에게는 쌀쌀맞게 대화를 하는 거 같았다.
‘애초에 친할 필요가 없는 사이인 건 맞지만….’
같은 작전에 참여하는 이상, 잠깐은 시늉이라도 따뜻하게 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싶은 코넬리아였다. 이런 걸 입 바깥으로 꺼내는 순간 주제넘은 오지랖이 된다는 정도는 소녀도 알고 있었으니, 어디까지나 속으로 가질 뿐인 불평.
“로드리. 경의사 님을 모시고 전위 영역에서 이동한다. 공장 내부는 특작 인원 대신 VIP가 진입하도록 호위한다.”
“알았다. 선행되는 내부 위험 요소 확인은 내가 하겠다.”
“마리엘라를 빌려줄까.”
“그냥 주면 모를까, 빚을 지고 싶진 않다. 앤시아. 마음만은 고맙게 받지.”
아주 잠깐.
로드리가 피식 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맨날 남 걱정을 하느라 바빴는데. 누군가가 내 걱정을 해주는 건 오랜만인 거 같군.”
로드리의 말이 코넬리아의 습자지처럼 얇은 양심을 푹푹 찔렀다.
그래도 더는 여유로이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앤시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소녀에게 경례한 후 부하들에게 돌아갔다.
경의사가 앤시아와 로드리에게 절대 상위의 명령 하달을 하는 것처럼, 앤시아 또한 구원군을 통솔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분위기를 장악한 거로 보였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무어라 구시렁거릴 말이 나올 법도 하건만.
잦아들기는커녕 더더욱 거세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열심히 손과 팔을 움직이면서 무어라 외치는 앤시아에게 집중된 그들의 시선에는 터럭만큼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코넬리아의 옆으로 마틴이 다가왔다.
“사진을 제가 촬영하는 거고, 증거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증거품? 아.”
걱정스레 꺼낸 그의 질문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 답은 다행히도 로드리가 먼저 꺼냈다.
“현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촬영이 우선이다. 만약 인력으로 옮기기 어려운 증거품은 오토마톤을 사용한다.”
편리한 도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오토마톤.
“그치만 그걸 끌고 오면 선전포고라고 그랬잖아.”
소녀의 지당한 지적에도 로드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맞습니다. 소란을 굳이 일으키고 싶지 않기에 후위에서 대기하는 겁니다만,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로드리는 방수 우의 안에서 한 뼘 길이의 붉은 막대기를 꺼내어서 코넬리아와 마틴에게 주었다.
그걸 받아 쥔 마틴은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었지만, 자신의 손바닥에 들린 이 막대기가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르는 코넬리아는그러지 못했다.
이걸 로드리가 왜 줬는지 당황하는 소녀를 보던 로드리가 입을 열었다.
“플레어 스틱입니다. 단단한 곳에 끝을 강하게 긁으면,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성냥처럼 불이 붙습니다. 아주 강한 빛입니다.”
“헤에. 신기하네. 그러면 이걸 어디서 쓰면 되는 거지?”
“원래는 긴급 조난에 빠졌을 때 쓰는 것입니다만, 경의사 님과 라이트 소위는 오토마톤을 부를 때에 사용합니다.”
이 짙은 안개 속 수백 미터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오토마톤 조종사의 눈에 보인다면.
“정말로 아껴둬야 할 물건이겠네. 쓰는 순간 위치가 완전히 발각된다는 거잖아.”
여러 불법 증축물이 숲처럼 솟아 있는 제3지구에서 시야가 닿는 범위 안에서는 ‘여기에 수상한 거 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코넬리아는 조금 전 마틴이 그랬던 것처럼 방수 우의를 젖혀서, 속이 깊숙한 안주머니에 플레어 스틱을 넣었다.
“로드리, 이걸로 오토마톤을 부르려면 공장 밖에서 나와서 해야 확실한 거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셋은 공장 내부로 들어가는 건데?”
『가볍게 들고나올 견적이 나오지 않는 증거품이라면, 플레어 스틱으로 오토마톤을 부른다』라는 계획은 얼핏 보면 괜찮아 보여도.
빛을 이용한 신호 전달에는, 빛을 보내는 사람과 신호를 받는 사람 사이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맹점이 있었다.
“이걸로는 불안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바깥에 연락할 다른 수단은 있어?”
로드리와 대화를 하다 보면, 애써 경의사로서 무게를 잡고 있던 말투가 여느 때처럼 편하게 풀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형식으로나마 공손한 말투를 유지하는 로드리는 “다른 수단은, 당연히 있습니다.”라고 소녀의 질문을 받았다.
“구원군끼리는 가능합니다. 경의사 님과 라이트 소위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둘은 플레어 스틱을 쓰면 됩니다.”
“잠깐만. 너희끼리 되는 수단이 있는데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거야.”
“외부인이기 때문입니다. 표징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바깥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표징…. 이 반지 말이지.”
코넬리아는 자신의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보았다. 마틴도 허둥지둥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표징을 꺼내었다.
겉보기에는 다른 흔해 빠진 싸구려 반지와 특별히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표징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당신들은 구원군의 일원. 멤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징으로 연결이 되는 건 단순한 일원보다도 짙은 유대가 있어야만 합니다.”
“짙은 유대?”
“예. 일족이 되는 겁니다.”
“허허… 허어어.”
어이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 반.
나머지 절반은, 답답함에서 우러나온 너털웃음.
‘뭔 소리야?’
어렸을 때부터 로드리는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녀석이기는 했지만. 지금 만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로드리가 훨씬 먼 곳에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다 아는 단어인데도.
단어를 모아서 만든 문장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종립구원군은 어디까지나 바트나 중앙 교구에 속한 조직이다. 어느 정도의 종교적 색채를 지니는 건 코넬리아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신의 은총을 백성에게 베풀기 위하여 만들어진 만큼, 그 성격은 시간이 흐른다고 쉬이 바뀔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이질감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넓은 틈을 보일 줄은 몰랐었다.
“연결이니 일족이니 하는 그런 비유는 너희네들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사고방식이라 말이다. 나와 마틴 같은 일반인에겐 이해가 쉽지 않은 것 같군.”
“비유가 아닙니다만….”
“경의사 앞에서 꿍얼거리는 거 있다, 없다?”
“없습니다.”
짐짓 목소리를 깔고 코넬리아가 말하자 곧장 말을 줄이면서 답하는 로드리.
소소한 권력 남용에 재미를 느끼던 소녀는 “뭐어, 그건 그렇다 치고.”라고 말을 돌렸다.
“요컨대 그 ‘연결’인가 뭔가로 넌 건물 바깥에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거지. 우리는 안 되는 거고.”
“예. 다만 안팎으로 구원군의 보조는 지속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럼 그 걱정은 이제 안 할게. 너한테 맡긴다. 로드리.”
여기가 아카데미라면 모르는 건 알 때까지 묻고 또 물어서, 질문하는 사람과 답변하는 사람 모두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문답을 거듭하겠지.
만약 이번 일이 끝나고 언젠가 로드리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찾아오면, 코넬리아는 기꺼이 그와 한참 동안 떠들어댈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지금은, 때와 장소 모두가 어울리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정신 차리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거야. 렉스 휴크레이!’
코넬리아는 축축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팡팡, 두들겼다.
살짝만 방심해도 자꾸만 앞으로 닥쳐올 일에서 눈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땅을 처박고 안 보인다고 해서, 무서운 속도로 시시각각 돌진해 오는 미래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안전에 만반의 대비를 하는 건 로드리, 너. 그리고 마틴의 역할이지.”
소녀는 자신의 옆에서 주의 깊게 대화를 듣고 있던 마틴에게 말을 걸었다.
“마틴, 드래곤을 부를 수 있는가.”
“지금 부르라는 건 아니죠?”
“지금이라도 부를 수 있으면 좋지. 안 될 거 같지만.”
“하하. 부르라면 부를 수도 있죠.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까 안 불겠습니다.”
팔목에 감고 있는 자그마한 금속 피리를 보여주면서 그는 웃었다.
“제가 드래곤을 부르면, 반드시 나타납니다.”
“마틴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고, 단지 확실한 다짐을 받고 싶어서 한 번만 더 물어보겠다. 확실하게, 당신의 의지로 드래곤을 부를 수 있는 거지?”
“여신 이샤카 님의 명예를 걸겠습니다.”
“음, 좋아.”
코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틴의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뒤.”
소녀의 말에 그는 깜짝 놀라서 뒤로 돌아섰다.
어느샌가 부하에게 지시를 다 끝내고 다시 돌아온 앤시아는, 뭔가 불룩하게 들어 있는 방수 륙색을 건네었다.
“브라우니 카메라 2개. 촬영용 백색 조명 전등이 들어 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걸 받아든 마틴은 가볍게 왼쪽 어깨에 걸어 매었다. 마틴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그녀가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로드리는 재촉하였다.
“작전 시간이 가까워졌다. 앤시아.”
“알고 있다. 곧 전위 그룹이 움직인다. 넌 경의사 님과 함께 이동하면 된다.”
작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골칫덩어리가 한둘이 아닌 입장에서, 앤시아는 신기하리만치 평온한 얼굴로 코넬리아에게 말했다.
“경의사 님. 전위 담당 부대는 팔에 붉은 천을, 후위는 녹색 천을 매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로드리를 놓치더라도 붉은 천을 맨 자를 따라가면 됩니다. 숙지하시길.”
“알려줘서 고마워. 앤시아. 이동 시간은 오래 걸릴까?”
“일직선 거리가 아니라 엄폐물이 확보된 루트로 크게 둘러서 이동합니다. 십 분 안으로는 도착할 예정입니다.”
십분.
애초에 여기 위치가 공장에서 250m 떨어진 곳이라고는 들었어도, 코넬리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앤시아한테뭔가 더 물어보려고 막 입을 열려던 찰나에,코넬리아는 등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떠미는 걸 느꼈다.
누가 밀었는지 고민하는 스트레스조차도 아까웠다.
“이익….”
간신히 안 넘어지고 균형을 잡는 코넬리아. 그런 소녀가 제자리에 서서 안도할 여유는 없었다.
지척에서 덩어리가 되어움직이는 구원군들을 따라가면서, 로드리는 입을 열었다.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십시오. 경의사 님.”
“알고 있어. 다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명령하지 마.”
“정 힘들면 내가 아까처럼 이동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너 진짜 아까처럼—”
이의를 제기하려고했던 소녀는,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아까처럼’의 기억에 간신히 말을 집어삼켰다.
로드리가 말한 의도가 선량한 도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끄러운 치욕의 기억으로 마음을 공격하려는 악랄한 복수일 수도 있다.
후자의 발상은, 더도 덜도 말고 코넬리아 자신처럼 마음의 절반은 못된 심보로 채워진 평범한 사람이 할 법한 발상.
코넬리아가 생각하는 로드리의 의도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전자일 거 같기는 했다. 그리고 의도가 착하다고 해서 그 낯뜨거운 자세의 결과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알았어. 빨리 걸을게. 걸으면 되잖아!”
“어째서 화를 내는 겁니까. 경의사 님, 내가 뭔가 실수를 했습니까?”
“아니야. 너는 실수한 적 없어. 잘못한 건 내 쪽이다.”
“그럼 자신의 잘못을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십시오. 경의사 님.”
“아무렴…!”
뭔가 근본적으로. 로드리의 ‘공손한 표현’은 아주 근본적으로, 아주 완벽히 잘못되었다.
그걸 인제 와서 고쳐 잡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