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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2) (76/111)



〈 76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2)

코넬리아의 혼잣말을 들은 로드리가 아, 하고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경의사 님.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건….”
“그래. 그거지.”

코넬리아는 살짝 인상을 쓴 얼굴로 자신의 반들반들한 턱 끝을 엄지와 검지로 만지작거렸다.

“별로 좋은 추억이 없는 냄새다.”

소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악취의 첫 기억은, 해부학 실습수업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였다.

수도 앨버스의 중심구에는 여러 교육 목적의 아카데미가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 코넬리아—정확히는 렉스 휴크레이—가 이수한 왕립의학원은 연합 왕국 내에서는 가장 실습 환경이 좋은 편이었다.

‘실습 환경이 좋다’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바다 건너 대륙에서 경험을 쌓고  우수한 해부학 교수가 교실을 세웠을 수도 있고, 수사학(修辭學)이나 교회어(敎會語) 강좌를 다른 학년으로 조정하여서 커리큘럼의 부담을 분산시켰을 수도 있다.

그 다양한 경우의 수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고 직관적인건, 하나의 카데바(cadaver)를 담당하는 학생의 수였다.

자금도 없고 운도 없는 지방 의학원에서는  구의 카데바로 수십 명의 학생이 분담하여 수업하는 반면, 모든 방면에서 풍족한 의학원은 잘게 조를 쪼개어도 한 조에 하나씩 카데바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서 해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코넬리아는 후자 쪽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건, 포르말린에 푹 절어 있는 카데바와 함께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수밖에 없다는 뜻.

처음에는 코를 틀어막으면서 해부 실습을 하다가도, 일 년간의 오랜 실습이 끝날쯤이 되면 밤이 깊어지는 시간에는  테이블에서 빵을 먹을 정도의 비위가 생긴다.

카데바에 대한 존중감을 잃어버리는  아니냐는 걱정을 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잠깐이나마 일상적인 삶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리라.

갓 입학했을 때에는 “후후,  냄새로 샤워를 하기 전까지는 의학원생이라고  수 없지….”라고 포르말린에 절인 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쭐거리는 선배님이 대단하게 여겨지고.

그 선배님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은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때의 경험은 코넬리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렬했으며.

냄새를 맡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꼴을 보니, 앞으로도 한참은 더 잊혀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교수실에서 거의 머리를 박는 시늉을 했었지. 유급이냐 아니냐의 갈림길이었으니까.”
“박는 시늉이 아니라 정말로 박았습니다. 내가 옆에서 직접 보았던  당시 경의사 님은-”
“굳이 정정해주진 않아도 돼….”
“따르겠습니다.”

코넬리아와 로드리 둘이서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흠흠.”

헛기침하고, 소녀는 앤시아에게 말했다.

“잠깐만 당신과 로드리와 마틴, 셋과 함께 대화하고 싶다. 아주 잠깐이야.”
“알겠습니다.”

코넬리아자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외부 소속인 마틴이 끼어드는 건 고민할 법도 한데.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코넬리아의 명령을 따르는 부분에서 군인의 면모가 보인다.

앤시아는 수신호로 부하들에게 사인을 보낸 다음 마틴과 함께 소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나머지 작전 일행들과 아주 멀리 떨어지지는 않아도 빗소리에 대화가 파묻힐 정도의 거리. 넷은 바짝 가까이, 서로 마주 보는 식으로 둥글게 섰다.

“앤시아 정위.”

코넬리아가 제일 먼저 말을 던진 쪽은 앤시아였다. 소녀의 말에 앤시아는 열중쉬어 자세로 “예!”라고 힘차게 답변했다.

만약 시야를 맞춘다면 내려다보는 시선이 되겠지.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앤시아는 코넬리아가 아닌  머리 위의 어딘가를 보는 자세로 턱 끝을 살짝 올린 자세다.

아까 말했을 때보다 한층 더 딱딱해진 거 같은데. 좀체 적응이 안 되는 코넬리아는 조금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내고 입을 열었다.

“곧 찾아갈  제르바의 공장은 에버라드 무역상사의 자회사와 화물을 주고받은 거지.”
“예.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자회사였지?”
“시청에 등록된 서류에 따르면, 청어를 운송하는 유통업체였습니다.”
“청어라….”

코넬리아는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청어란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시장 저잣거리에서 소금에 절인 채 상하기 직전인지 상하는 중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생선 더미부터 떠오른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한 냄새 하는 물건이 등장하는군. 로드리.”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코넬리아는 로드리와 눈이 마주쳤다. 거의 동시에, 서로서로 눈치를 본 것이었다.

“이런 산속에서 바닷물고기라도 양식했을거 같지는 않은데. 참령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송어라면 모를까, 청어 양식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이런 산속에서 했을 가능성은아주 낮겠습니다.”
“그래. 내 생각도 같다.”

포르말린의 냄새를 맡은 순간 굉장히 위험한 예상이 떠오른 건 코넬리아뿐만이 아니다.

표정 변화가 읽기 어려운 로드리도, 드물게 말수가 많아진 걸 들어보면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뉘앙스였다.

청어를 운송하는 업체를 사용한다는 건,  정도의 지독한 비린내는 되어야 간신히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물품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코넬리아와 함께 의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 로드리라면 몰라도, 이런 방면으로는 접점이 없는 사람에게는 꽤 충격적인 물품일 수 있다.

“로드리. 구원군의 기밀 유지 서약은 신뢰할 수 있는가?”
“엄정하게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민감한 질문인데도 로드리는 즉답하였다.

“종립 군사 조직의기강과 기밀 유지는 별개입니다. 오늘 오후의 ‘그 일’도 있으니, 더 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지.”
“그렇지. 음, 확실히 그렇군.”

오늘 오후의 그 일.

우편집중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에서, 로드리는 정보 누출을 의심했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던 로드리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코넬리아에게 이견은 없다.

“앤시아 정위. 현장 통제는 당신의 역할이라고 들었다.”
“예. 구군본부에서 설계한 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소녀가 앤시아로부터 들은 작전 개요는 매우 엉성한 얼개에 불과했지만, 비행선이 착륙하기 전부터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조각조각 나누어진 설명은 들어두었다.

“로드리에게 듣기로는.”

이야기의 출처를 확인하는 겸 서두를 안전하게 꺼내고, 소녀는 곧장 말을 이었다.

“전위(前衛)가 공장의 안전을 확보하고, 후위(後衛)가  뒤를 엄호하면, 특작 인원이 공장 내부에 진입하여 증거 물품을 확보하는 작전이지. 그 구성에서 나는 후위에 들어가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경의사 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여전히 뻣뻣한 자세로 앤시아는 답하였다.  말에 담긴 무언의 압력에 코넬리아도 딱히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마약만큼 위험하고, 최대한으로 생각하면 마약보다도 위험한 무언가가 얽힌 거래.

일단 구원군은 본대가 참가하는 구 항만 작전을 리스크의 중심으로 판단한 후 미끼 작전의 화력을 조정했긴 하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불확실한 부분은 있었다.

‘로드리가 마틴을 달래기 위하여 적당히 위험성을 부풀린 걸지도 모르지….’

우편집중국에서 마주하였던, 총기로 무장한 인물들.  배후가 만약 예상하던 것처럼 무역상사 쪽이었다면, 구원군에서 부담을 느낄 정도의 화력은 거꾸로 무역상사 입장에서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코넬리아가 무역상사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그 귀한 사람들을 이렇게 외진 산골짜기에 배치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없으면 없는 대로 다행이고.’

폐공장에서 진짜로 심각한 싸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 의아함은 코넬리아 자신만의 의문으로 묻어두고.

“그러면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미안한데… 작전 편제를 바꿀 수 있을까?”
“부탁으로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앤시아는 여전히 도끼처럼 날카롭게 뜬 눈으로 사선 위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의사 님. 명령하시길 바랍니다. 명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럼 명령하지. 앤시아. 내가 로드리와 마틴, 셋만 공장에 들어가겠다.”

코넬리아는 손가락을  펴서 보였다.

“공장에 나와 함께 진입하는 인원은 가능한 한 이렇게 최소로 하고, 전위와 후위는 앤시아가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구성하고 싶은데— 아, 아니. 이렇게 구성할 거다.”
“따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망설임 없는 앤시아의 대답. 그 뒤로 의문점이 한두 가지 따라오는 건 자연스러웠다.

“다만, 저는 경의사 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경의사 님이 행여라도 다친다면 저희는 목을 내놓아야 합니다.”
“안전 확보도 중요하지. 공장 바로 앞까지는 따라와도 괜찮아.”

설명이 좀 부족했던 걸까. 코넬리아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작전 편제를 다 엎자는 건 아니고, 단지 공장 내부를 목격하는 사람을 줄이고 싶어서그런 거니까. 어 음,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돕겠습니다.”

구체적인 세부를 말하는 데에 애를 먹는 코넬리아를 대신해서. 몸을 약간 앞으로 내민 로드리가 입을 열었다.

“존 제르바의 공장 부지까지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한다, 앤시아. 내부에 들어가서 증거 물품을 확보하고 촬영하는 걸 셋이서 하겠다는 거다.”
“육군 특무부의 멍멍이를 믿는다는 건가.”

마틴의 귀에 들어가도 상관없는지 여봐란듯이 지적하는 앤시아. 그녀의 말에 마틴은 ‘그 정도는 이해한다.’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상부에는 보고할 의무가 있어도, 상부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기밀을 반드시 엄수해야 하는 의무 또한 있습니다. 정보가 허투루 새어 나가진 않아요.”
“그렇다. 경의사 님은 그를믿는다.  역시 신뢰하지.”

로드리도 그의 옆에서 단어를 한 스푼 얹었다.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앤시아는 조금 놀라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나는 중요한 순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앤시아.”
“그건 그렇지.”

빗방울이 요란하게 튀는 방수 우의. 양손을 그 등허리에서 맞잡아 열중쉬어한 자세 그대로.

“하…”

위아래로 살짝 벌어진 앞니 틈 사이. 깊숙한 뱃속에서 나오는 앤시아의 한숨은, 안개로 자욱한 밤공기에서 또 다른 하얀 김을 만든다.

“…바보.”

찡그린 눈으로,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욕을 중얼거리고.

앤시아는 드디어 코넬리아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내렸다.

“경의사 님. 어째서 셋이서만 공장 내부를 확인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 알려주겠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코넬리아가 손짓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소녀의 지시에 앤시아는 열중쉬어 자세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방수 우의를 살짝 한쪽만 귀 뒤로 걷어 올리고, 코넬리아가 입술을 가까이하였다.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악취 말인데, 그건 포르말린의 냄새다.”
“포르말린이면 그 동물 박제 유리병을 채우고 있는  말씀이십니까?”

코넬리아의 목소리만큼이나 자그맣게 앤시아가 되물었다. 상식 수준에서는 포르말린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있으면 그다음부터 설명은 간편하다.

“존 제르바의 공장은 앰버밍 처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앰버밍(embalming).

시체가썩어서 부패하지 않도록, 각종 화학물질로 소독하고 가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물론  공장에서 단순히 여러 동식물을 앰버밍 처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만에 하나, 라는 게.”
“당신도 신문에서 본 적이 있을 거고, 나와 로드리는 이미 실물로 본 적이 있지.”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해부 실습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마주하였던 카데바였다.

“훨씬  위험하면서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인간 앰버밍」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손을 모아서 앤시아의 귀에 속삭이는 코넬리아의 말. 그제야 앤시아는 코넬리아가 우려하는  어떤 건지 깨달았다.

원래부터 얼굴이 하얀 편이었지만 이번엔 입술까지 빛이 파래질 정도로 창백해진 앤시아는, 열중쉬어 자세를 유지하면서 상체를 바로 세웠다.

“설명 감사합니다. 경의사 님.”

오른쪽 귓바퀴 뒤로 방수 우의가 넘어간 것도 까먹은 채.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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