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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3막 (下 - 1/2) 이 숙녀가 우리의 빛인가 (8) (68/111)



〈 68화 〉3막 (下 - 1/2) 이 숙녀가 우리의 빛인가 (8)

“죽는 건 싫으니 말해주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면 되는 건가.”
“그래. 답하기 곤란한  대답 안 해도 좋아.”

빠져나갈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주는  맞다. 로드리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소녀는 다리를 꼬아 앉았다.

‘마틴에겐 좀 미안하게 될 일이지만….’

지금 마틴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질문부터 꺼냈다.

“구원군의 작전에 내가 왜 따라가는 거야?”
“그건.”

로드리는 회중시계를 슬쩍 확인하고 말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여유롭진 않다. 짧게 설명하겠다.”

여태 자신이 불필요하게 날려 먹은 시간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지점이 오히려 대인처럼 보이는  뭘까.

심란한 코넬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드리는 주머니에서 꺼낸 얇은 실크 장갑을 손에 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참여하는 작전에서 코니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위도 주력 본대의 작전개요를 전달받았으니 대략적인 내용은 알겠지.”
“예. 그렇습니다만… 참령님의 말을 듣자 하니 그것도 코니 양에게는 전하지 않은 것 같군요.”

마틴의 지적이 맞았는지, 로드리는 침묵으로 긍정하였다. 시선을 피하지 않는 그를 바라보면서 코넬리아는 질문을 던졌다.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 로드리.”

소녀의 목소리에는 원망이나 분노가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손위 누이가 동생을 타이르듯, 한없이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을 하지 않은 거겠지. 그래도 마틴에게는 알려주고 나한테는 비밀로  그것까지는 없었잖아.”
“코니 양의 말이 맞습니다. 최소한 코니 양에게는 진실을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숟가락을 얹는 마틴은 힘주어 말했다.

“저희는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 더는 서로에게 비밀로 감추면 안 됩니다!”
“그건… 미안하다.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로드리는 알 듯 모를  마틴을 슬쩍 흘겨보았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코넬리아는 알아볼 수 있어도, 옆에 앉은 마틴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후우.”

로드리가  의미가 없는 동작인 것처럼 손뼉을 한 번 치자,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마틴의 등 뒤에서몸을 일으켰다.

검정에 가까운 모브빛 로브를 두르고 후드를 뒤집어쓴 자.

마치  작대기 하나에 옷을 걸어놓은 것처럼, 깡마른 그 자의 양손이 마틴의 어깨 위로 올려졌다.

“힉—”

너무 놀라면 비명도 지를 수 없다. 코넬리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지만, 로드리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까.”

그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마틴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대범한 성격 때문에 놀라지 않은 게 아니다. 마치 그의 시간만이 멈춘 것처럼, 마틴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아스트라페. 시간은.”

로드리가 물어보자 마틴의 등 뒤에 있는 자—아스트라페가 입을 열었다.

“일 분 안으로.”

성별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잔뜩 쉰 목소리.

그 말을 들은 로드리는 좀 더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코니. 9호실은 바트나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가는 모든 정보는 육군 특무부에 흘러 들어간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틴의 재킷 품속에 거침없이 손을 집어넣는 로드리. 그 손에 쥐어져 나온 건, 성냥갑만 한 테이프 레코더였다.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말은 녹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로드리는 제복 옷깃에 자석으로 고정된 루피너스 계급장을 떼어서 레코더 위로 수차례 문질렀다.

“네가 참여하는 작전은 외부로 새어나가선 안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중요한 양동 작전(陽動作戰)이다.”
“양동 작전이면… 주력 부대 쪽이 시선 끌기라는 거야?”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지만 구원군 본대에서는 우리 쪽이 미끼다.”

자기 와이어(magnetic wire)에 기록된 녹음을 싹 날려버린 로드리는 레코더 뒷면 뚜껑을 열었다.

배터리 단자에 붙어 있는 납땜을 떼어내고, 원래 마틴의 재킷에 있던 자리로 돌려놓았다.

“마틴은 자기가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다. 나도 내 소임을 다 하는 바이다. 그래도 마틴의 말처럼, 우리 사이에선 흉금을 털어놓는 게 좋겠지.”

말을 끝낸 로드리가 마틴 뒤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스트라페에게 손짓을 했다.

그 직후. 마치 잉크병에 떨어뜨린  한 방울처럼, 자흑색의 로브는 그림자 아래로 몸을 감추었다. 마틴은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다.

“—…확인이라면 어떤 건가요?”
“별 건 아니다. 이미 끝난 일이다.”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얼굴이란 게, 이럴 때는 정말 대단한 재능이다.

지켜보는 코넬리아가 기가 막힐 정도로 로드리는 태연하게 말했다.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오늘 작전부터 설명하겠다. 본 작전과 미끼 작전이다. 우리 쪽이 물론 미끼다.”
“본 작전은 그럼 1차 지점인 물류단지 쪽인 거지요?”
“그렇다. 그쪽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임무다. 소위.”

로드리는 품 안에서 헝겊 주머니를 꺼내었다.

“구 항만의 물류단지엔 수많은 무역상사(貿易商社)의 교역품이 있다. 그 가운데로 실로 위험한 물건이 지난 일 년 동안 비밀리에 드나들고 있었다.”
“으~음. 어두워서 잘 안 보여.”

가늘게 눈을 찡그린 코넬리아의 투덜거림을 들은 로드리는, 반대쪽 손에  전등으로 주머니를 비춰 보였다.

정체불명의 얼룩이 묻어 지저분한, 낯익은 헝겊 주머니. 그건 코넬리아가 로드리의 사서함에서 받아 와서 앤시아에게 전달하였다.

내용물의 정체가 적혀 있던 편지는 적혀 있는 지시대로곧장 잘게찢어서 태워버렸고, 이미 다른 경로로 정보를 받았는지 로드리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보였다.

“지금은 빈 주머니지만.  안에 들어 있던 건 높은 순도로 정제된 환각제였다.”

로드리는 헝겊 구석에 새겨진 문양을 가리켰다. 황금빛 염료로 물들어진, 아래를 향해 둥글게 휜 초승달 문양.  아래로 백여 년 전의 설립연도가 쓰여 있다.

“그 문양. 과연, 에버라드 무역상사의 것이군요.”

전달받았던 작전개요에 이미 담겨 있었는지, 마틴은 별달리 놀라지 않은 어투로 물었다.

“회사 문양이 박힌 주머니에 그런 위험한  보관했을 리가 있을까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차 검증은 끝났다. 오늘 밤이 지나면 더 확실해질 것이다.  항만의 자회사가 방치하고 있던 창고에서 쏟아져나올 테니까.”
“구원군 쪽에서 그렇게까지 확신하고 있다면… 이미 사전 조사는 끝마쳤겠죠.”

마틴이 순순히 이해할 정도로. 로드리가 하는 말에는 단단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구원군은 오늘 에버라드 무역상사를 정리한다.”

헝겊 주머니를 다시 품 안으로 넣는 로드리.

“내일부터 외부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에버라드의 건(件)이다. 본 작전의 설명은 여기까지다. 우리가 참여하는  미끼 작전이다.”

미끼 작전.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양동 작전의 자그마한 축.

“이 미끼 작전은 코니를 중심으로 한 작전이다. 라이트 소위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은 제하고 설명할 것이다만.”
“예에. 괜찮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로드리의 말은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마틴은 순순히 동의하였다.

놀란 쪽은 오히려 코넬리아였다.

“내 협조가 필요하다는 정도라면 이해하겠는데, 날 중심으로 한 작전이라고?”
“그렇다. 코니. 네가 맡았던일이다.”

일부러 ‘중심’을 강조해서 말한 코넬리아에 회답하는 로드리는, 뜻밖의 화제를 입에 올렸다.

“왕립의학원 의원협회 바트나 지역 지부에서 바트나 시립 구빈원의 콜레라 사태를 방기(放棄)하고 일을 소극적으로 수습한 사건.”
“어어.  콜레라 사건 말이지.
“이 건으로 지역 지부에 엘리자베스와 코니 네가 함께 쳐들어갔었는데. 기억나는가.”
“그야 당연하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난 일이라고.”

여러 일이 있다 보니 어느덧 지역 지부에 들른  세 달 정도는 흐른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거기에 관련되었다면 날 끌어들이는 게 이해는 되는데…. 그런데 아직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잖아?”

코넬리아의 물음에는 일리가 있었다.

어째서 지부장은 콜레라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고 했던 걸까?

 큰 피해가 시립 구빈원에 일어나는  감수하면서, 그리고 책임의 추궁이 자신에게 찾아올 걸 충분히 알면서도 말이다.

선의로 구빈원을 도와준 엘리자베스와 구빈원 교구 관리인 커크의 협력 요청을, 바트나 지역 지부장인 제이슨이 뭉개버렸다.

그리고 어째서 제이슨이 그랬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습격 사건에 화려하게 휘말렸다.

“음. 천하의 코니도 이 미약한 단서만으로 진실에 다시금 도달하기란 어려운 일인가.”

일부러 떠보는 듯한 말투지만 너무나도 어설픈 문장을 엄숙하게 말하는 로드리. 이어지는 그의 말은 코넬리아를 더욱 혼란 속으로 빠트렸다.

“너도 모르는 사이에 사건의 핵심을 입에 올렸었다. 우리도 그 덕분에 알아차렸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다니. 아이러니하군.”
“내 입으로 말했었다고?”
“제이슨을 당황하게 했던  말.”
“아.”

코넬리아의 입술 사이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지금 말한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그리고 왜 내가 지부장실에서 했던 말을 네가 알고 있는 건지, 거기에 화를  때가 아니었다.

“하하. 아니, 하.”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건, 웃겨서 그런 것도 비웃음도 아니었다. 그건 어처구니가 없을 때 나오는 헛웃음이었고.

그 복잡한 감정은 이윽고. 헛웃음마저 잃었다.

“정말 말이 안 되는데….”

열기로 채워지는 소녀의얼굴은, 어스름한 조명에서도 보일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정말로 이건 아니잖아. 로드리. 그게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할 리가 없잖아….”
“협회에 중요한 시민의 생명이다. 코니. 빈민은 시민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코넬리아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의 떨림이 긴장의 떨림이었다면, 지금은 분노의 진동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빈민들은 사람도 아니란 거냐.”
“코, 코니 양.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사이의 격해지는 대화를 자르려고 생각했는지, 마틴이 억지로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의도가 제대로 먹히진 않았다.

“쿼런틴 조약 때문이었어. 빌어먹을.”

여전히 화를 씩씩 내면서 코넬리아는 말했다.

“그 개자식들, 항만 폐쇄를 막으려고 콜레라를 숨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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