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3막 (下 - 1/2) 이 숙녀가 우리의 빛인가 (6)
지금은 9호실 밖에 나와 있더라도, 마틴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코넬리아 자신은 흠집 하나 생겨서는안 되는 중요한 상급 국민이다.
거기에 조금 전에 드래곤을 불러오면서까지 싸웠던 걸 생각해보면.
‘인제 와서 마틴의 에스코트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긴 하지.’
으르릉, 말씨름하는 둘을 보며 소녀는 고민에 잠겼다.
코넬리아가 아는 로드리는 꾀를 부리는 잔머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숨기지 않고 진심을 드러내다 보니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이런 성격인 걸 잘 아는 코넬리아는 그의 말을 흘러가는 말로 넘겨 들을 수가 없었다.
“로드리. 정말로 네가 나를 꼭 지켜야 하는 거야?”
잘못 들으면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로 들릴 법한 문장. 곧장 노려보는 소녀의 질문을 로드리는 피하지 않았다.
“습격자들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위협의 불씨가 남아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이 커졌는지는 너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코니.”
“알고말고.”
로드리가 말하는 불씨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건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적이 훔쳐간, 로드리의 앞으로 도착했었던 소포물. 문제는 그게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허탕을 쳤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든지 또 난장판을 피우면서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 우편집중국에는 수많은 눈이 득실거리니까 안전하다고 치더라도 언제까지고 여기서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다.
“너를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서 철저히 제압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습격을 당할 수 있다.”
“하긴. 대낮부터 총을 들고 쳐들어오는 작자들이니까.”
습격자들이 노린 건 소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둘.
로드리는 소포 내용물을 미리 빼돌려서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마틴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코넬리아도 거기에 맞춰주는 게 최선이었다.
“누군가가 또 나를 습격한다고 가정하면, 여럿이 이동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거지? 숨긴다고 해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말대로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의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에 일정 책임이 있는 구원군에서 할 말은 아니다. 코넬리아는 그렇게 핀잔을 넣고 싶었지만, 로드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잠시만 일어서 봐.”
그 말에 코넬리아는 별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주 보고 서 있던 로드리는 재차 말을 이었다.
“제자리에서 뒤돌아 서.”
“주문이 많은 아저씨네.”
투덜거리면서 소녀가 몸을 돌리자마자. 오른편으로 다가온 로드리는 자신의 왼팔을 어깨동무하듯 코넬리아에게 둘렀다.
아니, 그건 어깨동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하와와.”
앤시아는 양손을 모아서 입을 가린 채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왜 저러는 걸까 싶은 코넬리아의 머리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니.”
까치발을 들어도 소녀의 머리는 로드리의 가슴께에밖에 닿지 않는다.
옆에 바짝 붙어 선 그의 몸에 억지로 밀착이 된 코넬리아는, 압도적인 체격 차이가 새삼 실감이 되었다.
“여자애라서, 어린아이라서, 귀족 가문의 영애라서, 그런 조건들로 너를 얕잡아 보는 게 아니다.”
코넬리아의 왼쪽 어깨 아래를 파고들어 옆구리까지 단단하게 감싸 쥔 로드리의 굵은 손은, 소녀의 상반신을 통째로 감아서 집어삼키는 모양새였다.
“이게 지금 너의 신체다. 지금의 너는 이렇게나 말도 안 될 정도로 작고 약하다. 마음의 키는 클지언정,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마.”
“이거 놔. 로드리”
정색을 한 코넬리아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도 로드리는 눈썹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너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면 놓아주지.”
“인정할, 게!”
코넬리아는 자신의 옆구리를 감싼 로드리의 손을 있는 힘껏 밀어서 떼어 놓았다.
‘아~ 반박을 못 하니까 진짜 열 받네….’
머리로는진작 알고 있었다. 로드리의 말에 틀린 구석은 없다. 이 보잘것없는 몸으로는 습격자들과 맞서 싸우기는커녕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한다.
그걸 이제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알면서도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힘을 실었던 거였지만, 단순히 로드리가 손에 힘을 풀어줘서 가능했다는 게 더 짜증이 난다.
“마틴. 이 자식…이 아니라 로드리가 한 말, 너는 어떻게 생각해?”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소녀의 질문. 코넬리아 못지않게 신경이 뾰족해져 보이는 마틴은 입은 웃으면서도 눈매는 가운데로 기울어져 있었다.
“예. 참령님의 주장에는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적을 놓쳤으니 위험 요소는 사라진 게 아니지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마틴은 왼쪽 팔목에 고정된 금속 피리를 슬쩍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 위협을 두려워하는 사람보다는, 한 번 맞서 싸워본 사람의 호위가 좀 더 신뢰가 가지 않으실까요. 코니 양?”
“뭐 믿음직스럽기는 하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마틴의 의견이 틀린 건 아니다. 로드리가 비록 마틴이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만, 위험 요소는 분명히 남아 있다.
“음, 그래!”
둘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시답잖은 다툼으로 발목 잡혀 있을 이유는 없다. 코넬리아가 내린 답은 간단했다.
“같이 사이좋게 이동하자고. 마틴, 당신도 혼자서보단 둘이서 호위하는 편이 든든할 거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편리한 말을 꺼내는 코넬리아의 억지스러운 타협안. 그걸 로드리가 바람처럼 빠르게 박살 냈다.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이 낫지. 역시 내 동지들과 함께 가도록 할까.”
“제발… 너는 입 좀 다물고 있어 제발….”
무슨 축제도 아니고, 제복 차림의 사람들과 함께 줄을 지어 시가행진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나, 너, 마틴이서 9호실로 가는 거야.”
소녀는 자신과 로드리, 마틴을 순서대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로드리는 제복 못 벗으면 장교모라도 벗어.”
“모자는 왜 벗어야 하는가.”
“벗기 싫으면 웃통 다 벗던가. 그건 싫지? 그러니까 모자만 벗으라고, 응?”
코넬리아의 단호한 태도 속에 ‘거부’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드리는 “이걸 벗어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고 중얼거리는 소심한 반항을 하면서도,순순히 장교모를 벗었다.
“저는 이 차림대로라도 괜찮겠습니까?”
“마틴은, 오케이. 그대로라도 눈에 안 띄겠네.”
사복 근무를 하는 마틴은 흑회빛 바지와 가죽 벨트 안으로 리넨 셔츠의 끝을 밀어 넣고, 그 위로 얇은 재킷을 걸쳐 입은 가벼운 복장이었다.
“우편집중국 후문을 통하여, 도보(徒步)로 이동한다.”
예상했던 상황에서 많이 벗어났는지. 고민하면서 입을 여는 로드리의 목소리 사이에 간격이 띄엄띄엄 벌어지고 있었다.
“인원이 대폭 줄었으니. 외부 노출을 최소로 하는 경로. 그 경로를 사용하도록 하지. 길잡이 역할은 내가 맡는다. 코니 양은 나를 따라오고. 소위는 코니를 호위한다.”
“알겠습니다.”
“응.”
사이 좋게 대답을 하는 둘을 본 로드리는 재킷 안에 손을 넣어서 수첩을 꺼냈다. 한장을 찢어서 뭔가를 메모하고, 그걸 앤시아에내밀었다.
“예비 경로를 사용하겠다. 이 순서대로 이동하겠다.”
그걸 훑어본 앤시아가 “비워두도록 연락하지.”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자마자, 로드리는 목소리를줄였다.
“여기서 9호실까지 만이 아니라. 9호실에 도착한 다음의 일도 부탁하고 싶다. 소위.”
“에스코트하는 일입니까?”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마틴이 되묻자, 굳은 얼굴로 로드리는 말했다.
“그렇다.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은 리스크가 아니다. 확실하게. 코니가 좀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거다. 내키지 않는다면 사양해도 좋다.”
허나 네가 과연 사양할 수 있을까?
드물게 로드리가 도발에 성공한 거였는지, 아니면 정말 마틴을 걱정해서 나온 말이었는지. 어느 쪽으로 로드리가 입을 털었는지 코넬리아가 알 방법은 없었다.
어느 쪽인지는 모를지라도.
그 결과는, 어두운 밤하늘을 헤쳐나가는 경식 비행선에서, 별로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셋이 나란히 타고 있는 꼬락서니였다.
* * * * *
「츠즈즈즈—」
갑자기 창밖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코넬리아는 여전히 마틴에게 딱딱한 소리를 늘어놓는 로드리의 신발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밖에서 나는 이거, 무슨 소리야?”
소녀의 말을 들은 로드리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더니, 금세 대답하였다.
“응결음이다. 증기 체임버를 냉각하면서 표면에 얼음 가루가 생기고 그게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거지.”
“헤에…. 별 쓸모없는 지식이 하나 늘었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죠.”
모처럼 셋이서 공통으로 대화를 나눌 화젯거리가 생겼다. 일방적으로 로드리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던 마틴이 반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타고 있는 이 케스타 비행선이 왕국에서도 아직 몇 대 안 되는 최신 비행선이에요. 참령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다.”
얇디얇은 자존심을 지키느라 아는 시늉이라도 할 법하건만, 로드리는 시원하게 즉답했다.
“구원군이 운용하는 비행선 중 가장 새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자세한 명세는 들은 바가 없다.”
“나도 처음 듣는걸.”
코넬리아도 어깨를 으쓱하였다.
“마틴의 말처럼 이게 전국에 몇 개 없는 거라면 어디 가서 자랑해도 되겠는데? 나 케스타 비행선 탔다고.”
“하하. 그래도 될 거예요.”
셋이 탑승한 비행선의 정확한 명칭은 종립구원군 소속 관형고속항공선(冠形高速航空船).
하지만 다들 그 긴 이름보다는, 비행선 겉면에 자그맣게 쓰여 있던 케스타 cuesta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코넬리아도 옆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그대로써먹는 중이었다.
“그렇긴 해도… 최첨단 비행선치고는 뭔가 좀 불안한데….”
코넬리아의 중얼거림의 끝나기가 무섭게.
끼이이익, 하고 무언가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객실 천장에 매립된 주황빛 전등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로드리. 이거 괜찮은 거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코넬리아는 비행선을 타 본 적이 손에 꼽을 횟수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이 정도의 문젯거리에는 익숙한 건지, 로드리는 그다지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안전한 저압 축전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등은 얼마든지 어두워질 수 있다. 조금만 진정되면 다시 밝아질 거야.”
로드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팟—」
전등은 완전히 꺼지고, 유리창 밖에서 들어오는 푸르고 엷은 밤하늘의 빛이 셋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로드리….”
마치 빗금이라도 그린 것처럼 코넬리아의 얼굴은 한층 명암이 짙어졌다.
“설명 해주실까.”
“음.”
로드리는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회중시계를꺼내어서 슬쩍 보았다. 그러더니 혀를 차면서 말했다.
“1차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빛을 끄고 침묵 상태로 이동한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도착했군.”
“그런 건 좀 미리 말해줘.”
“미안하다.”
로드리는 하나도 안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도착할 때쯤에 전달하려고 했는데, 즐거운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는군.”
“즐거웠어? 지금 여기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코넬리아는 이 비행선에서 즐거운 분위기라고는 없었다. 로드리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즐거웠어. 그리고 지금도 즐겁다.”
탁. 회중시계의 뚜껑을 경쾌하게 닫은 로드리. 망설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코넬리아를 보면서 말했다.
“너랑 같이 있어서 즐겁지 않은 순간은 일 초라도 없었어.”
“오… 오우….”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이런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 코넬리아는 할 말을 잃었다.
소녀가 알고 있던 로드리는 감성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도 보통 먼 게 아니었는데.
무미건조한 로드리의 입에서 저런 문장이 나오다니.
“지, 징그러워…!”
완전 질색을 하면서 코넬리아는 닭살이 오돌토돌 돋는 양 팔뚝을 쓰다듬었다. 대체 어떻게 이 분위기를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던 차에.
“『내부 조명, 외부 식별등, 소등(消燈).』”
벽면에 붙어 있던 황동 전성관에서 비행선 승무원의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