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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3막 (下 - 1/2) 이 숙녀가 우리의 빛인가 (2) (62/111)



〈 62화 〉3막 (下 - 1/2) 이 숙녀가 우리의 빛인가 (2)

“일로 와 봐.”

코넬리아의 일방적인 명령.

그것도 완전히 위에서 아래로 깔보는 말이 퍼져나가자, 그 넓은 로비에 한순간이나마 침묵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갑자기 찾아오는 소리의 공백을 흔히 ‘천사가 지나갔다’고 말한다. 대체 천사가 몇 명이나 왔길래 이렇게 조용해진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코넬리아가 그 천사를 불러온  자신이란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이는 가족과도 같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적어도  번 정도는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리지만, 가족처럼 너무 가까운 사이에는 그게 쉬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런 몸이 되기 전의 렉스 휴크레이였다면 이런 실수를 했을까. 설령 실수했더라도 이렇게 주목을 받았을까.

‘너무 눈에 띄는 일을 해버렸어.’

자책하면서 아랫입술을 질근 깨무는 소녀를 보던 로드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말을 나누던 경찰과 대화를 짧게 끝마치고, 코넬리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친분을 과시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만. 코니.”
“나도 알고 있어. 알면서 실수했어. 미안.”

흉측하게 구멍이 숭숭 난 접수대를 사이에 두고 마치 바텐더와 손님처럼 마주 보고 있는 둘. 손님인 쪽은 물론, 접수대에 손을 짚고 비스듬하게 서 있는 로드리다.

“저들한테는 너를  친척 동생이라고 말해두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로드리는 코넬리아의 옆에 앉아 있던 마틴을 슬쩍 보았다.

“그쪽 소위도 입은 무겁게 해주셨으면 좋겠군.”
“당연하지요. 코니 양에게 폐를 끼칠 행동은 하지 않아요. 로드리 씨.”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마틴과 그 눈빛에 담긴 진심을확인해 보려는 로드리.

알게 모르게 긴장감으로 채워지려는 둘의 빈틈을 코넬리아는 본의 아니게 찔렀다.

“뭔가 이상한데.”

지그—시 로드리를 노려보는 코넬리아. 주머니에서 손을 뺀 소녀는 의자에 앉은 다리를 쭉 편 자세로 양팔은 접수대 위에 팔짱 끼듯 올렸다.

“로드리. 너 설마… 아직도 통성명 안 했어?”

아무리 육군과 구원군이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로드리가 마틴을 보고 직급으로만 부르는 건 이상했다. 마틴이 로드리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덜 이상하더라도.

물론, 생각을 해보면.

로드리가 정말로 마틴의 이름을 몰라서 그런 호칭을 썼을 리는 없었다.

9호실에 매일 같이 출근을 하면서, 그리고 그 전에 코넬리아 자신이 9호실에 들어갈  있도록 수를 쓰는 동안 마틴과 말을 고작 한두 번 섞을 사이는 절대 아니겠지. 마틴의 상세한 직책이나 내부 사정은 필시 자신보다도 로드리 쪽이 훨씬 더 깊이 알고 있으리라.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하겠다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로드리가 취하는 태도는, 코넬리아에겐 곤란하다.

소녀는 영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돼. 로드리. 지금 굉장히 무례한 짓을 한 거라고.”
“무례한 짓인가.”
“응.”

어릴 때부터 로드리는 자신이 내린 생각은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끝까지 바꾸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

그래도 코넬리아의 조언을 받아들일 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모범생의 태도.

“얼굴은 충분히 익고도 남았지만… 정식으로 소개를 아직도  했었군. 내 불찰이다.”

로드리는 장교모를 고쳐 썼다.

“종립구원군 중앙본영정보부 소속, 로드리 R. 필립 참령(參領)이다.”
“참령, 참령이면.”

마틴은 로드리의 왼쪽 가슴팍에 있는 계급장을 보았다. 눈에 익지 않는, 낯선 계급 표식은 아마 그에게 별다른 정보가 되지 못한 듯 보였다.

아주 잠깐. 열심히 고민하던 마틴은 “아하!” 하고 작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쪽 계급으로는 소령…에 속하던가요?”

그다지 확신이 서지 않는 마틴의 말. 로드리는 손을 내밀면서 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겠지.”
“저도 정식으로 소개를 해야겠군요. 왕실육군 특무부(特務部) 소속, 마틴 라이트 소위입니다. 현재 근무지는 아시다시피 법무부 교정 협조시설입니다.”
“반갑다. 라이트 소위.”

맞잡은 마틴의 손을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면서, 로드리는 말했다.

“어째서  특무부의 영걸(英傑)이 바트나까지  건지 궁금하다.”
“전부터 궁금하셨다면 이미 알 만한 정보는  아실 듯한데요.”
“구원군은 그다지 정보 수집이 밝은 편이 아니라서 말이다.”
“하하, 솔직하시네요.”

꾸밈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짓는 마틴. 물끄러미 그의 옆얼굴을 보던 코넬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접수대로 몸을 숙였다.

“특무부가 그렇게 대단한 곳이야?”
“나한테 묻는 것보다는 라이트 소위에게 듣는 편이 나을 텐데.”
“마틴은 너무 겸손하게 대답할 거 같아서.”
“그렇긴 하군.”

대화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마틴을 바로 곁에 두고, 로드리는 태연하게 코넬리아에게 말했다.

“특무부는 「전투는 해야 하지만 전쟁을  수는 없는 지역」에서 활동한다. 때로는 작전 지역이 국경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평화로운 민간 지역이기도 하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위치에서 일하는 자들인데.”

로드리는 ‘평화로운’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때 조금 강한 억양을 넣었다.

“아주 드물게, 너무나 두드러진 활약을 하는 자가 있었다.”
“흠, 흠흠.”

그저 듣고만 있어도 낯이 간지러운지 마틴은 코를 긁적였다. 로드리는 그가 그러든지 말든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연합왕국의 영웅이 탄생하였는데, 그가 일반 군인이라면 모를까. 특무부 소속이라 좀 곤란했던 거였겠지.”
“헤에~….”

절망적인 수준으로 입담 솜씨가 없는 로드리가 말해도 흥미가 동할 정도였다. 자리에 다시 앉은 코넬리아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수줍음을 잘 타는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여태까지 봤던 마틴은 그런 이미지는 아닌데.”
“그것이 첫인상이 가진 무서운 힘이다. 달리 말하면, 라이트 소위는 평상시의 행동조차도 강한 위력을 지녔다.”

삐걱 거리는 접수대에 몸을 기댄 채 로드리는 말했다.

“그 위험한 고원에서도 라이트 소위는 정말, 군인들 사이에선 빛나는 활약으로 대단히 명망이 높았고—”

그렇게 말을 하던 로드리는 마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위의 별호(別號)와 작전 지역,  기밀이던가?”
“전투작전지역은 3급입니다. 별호는 굳이 기밀정보는 아닙니다만… 코니 양에게 알려드리고 싶진 않네요. 하하.”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로드리는 코넬리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건은 뭐냐.”
“어, 응? 끝이야?”

정말 아무런 징조도 맥락도 없이 갑자기 대화가 바뀌었다.

당황한 코넬리아가 반사적으로 내뱉은 물음을 듣고는, 조금은 측은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는 로드리.

“뭐가 끝이냐고 말하는 건가. 코니.”
“대체 어디로 갔냐고… 마틴의 빛나는 활약상….”

행여라도  소리를 다시 내어서 모두의 시선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 악문 코넬리아는 대신 애꿎은 접수대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렸다.

“명망 높은 마틴의 활약, 나도 알고 싶다고…!”
“본인이 말하길 원치 않으니 나는 말할 수 없다.”
“끄… 끄응~….”

엄격하고 근엄한 로드리의 말에 틀린 구석은 없다.

억지로 떼를 부리고 있는 게 자신이라는 건 코넬리아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열 받았다.

‘뭐어, 어차피 드래곤이랑 관련이 있는 거겠지.’

마틴이 금속 피리를 불자, 마치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이곳으로 나타났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완전히 박살이  우편집중국 로비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붕을 뚫고, 거대한 집채 하나가 내리꽂히는 듯 보였던 그 기억을 떠올린다.

드래곤. 강력한 신체 능력과 경이로운 수명, 거기에 인간이 실리적으로 사용할  있는 비행 능력을 지닌 거대한 생명체.

알려진 정보보다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움이 더 강렬한 존재를 바로 지척에서 만났다. 도저히 꿈이나 착각으로 어물쩍 넘어갈  없는 강렬한 흔적을 남긴 채.

물어보고 싶은  산더미만큼 있었지만 그건 마틴에게 물어봐야 마땅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항만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음.”
“거기서 오토마톤을 쓰지?”
“—냄새를 맡았군. 코니.”

로드리는 주변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발을 굴러서 접수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약간의 거리를 벌리고 각자 의자에 앉아 있는 코넬리아와 마틴. 그 둘을 마주 보며 로드리는 기대어 섰다.

“코니. 나 대신 소포를 수령하기로 했었지.”
“아…. 소포라면 그거, 말이죠.”

마틴은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도둑맞았습니다.”
“조금 전의 그 습격 때?”
“예. 지금 경찰이 수배를 내리고 추적하고 있어요.”

그 말에 로드리는, 미묘한 차이였지만, 분명히 얼굴을 찡그렸다.

“물이 새고 있다.”

로드리의 중얼거림에 마틴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혼잣말에 담긴 의미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드리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빼앗긴 소포뿐만이 아니었다.

누출(漏出).

「코넬리아가 로드리의 사서함을 열어보았다」는 정보가, 어디선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때 코넬리아가 로드리의 팔을 툭툭 쳤다.

“허리 숙여.”

그 말에 로드리는 곧장 양손을 허리 뒤로 돌리고 열중쉬어 자세로 상체를 숙였다. 나이차가 있는 친척 아이의 말을 경청하려는 신사와도 같은 태도.

손을 둥글게 모은 코넬리아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 [그냥 종이만 들어 있는 소포야.] ’
“음?”

코넬리아의 말에 로드리는 고개를 까딱 기울여서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 [내용물은 내가 가지고 있어.] ’

우편집중국 지하. 조금 전, 특별 사서함에서.

소포를다시 재포장을 하던 코넬리아는, 함께 내려온 직원 눈에 들키지 않게 헝겊 주머니를 슬쩍 빼돌렸다. 부피와 무게 둘 다 작았던 물건이었기에 가능했다.

‘ [접수 책임자 중에 아롤드란 자의 뒤를 확인해 봐. 정보 누출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
“흠.”

충분히 놀랄 만한 소식을 듣고도 로드리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잠깐 말을 멈춘 코넬리아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의 기억을 빠르게 되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 [마틴에게서 눈을 떼면 안 돼.] 

그도 너무 많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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