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쉼표 / whole rest
“히, 히에엑~~!”
그 동시에 바로 옆에 있어야 할 선배가 곧바로 납작 엎드렸다.
그것도 듣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로 괴이한 비명을 지르면서!
“나, 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살려줘!”
“저기…. 그냥 머리 위로 손만 들면 되는데?”
케이의 뒤에 다가왔던 또 다른 누군가의 맥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옆으로 굴린 나디아의 시야에 들어온 건, 키가 작고 몸이 가느다란 아이였다.
조금 전 셜리가 말하였던 제복 차림은 아니다.
곱슬거리는 짧은 적갈색 머리칼이 이마를 비스듬하게 덮은 아이는 남자아이들이 입는 호두빛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 차림. 위장 목적이라면 누구나 훌륭하게 속아 넘어갈 평범한 복장이었다.
특이한 게 하나 있다면.
“쟤— 쟤가 다 한 거라고!!”
“왜 이러는 거냐. 이 인간.”
공황 상태로 바닥에 달라붙은 케이를 따라 엉겁결에 따라 한쪽으로 앉은 소년.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번들거리는 소년의 황금빛 눈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눈동자.
사람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어.”
나디아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차렸는지, 소년은 고개는 그대로 케이를 향한 채 시선은 그녀를 향해 돌렸다.
‘이 사람, 원래 이런 건가?’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나디아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볼썽사납게 바로 줄줄 불어버리는 케이를 싸늘한 눈초리로 보았다.
“선배님.”
“미, 미미미미안해, 한 번만 봐 줘!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선배, 그거 총 아니에요….”
케이의 등 뒤에서 소년이 쿡쿡 누르고 있는 건, 한 손으로 쉽게 쥘 수 있도록 짧게 개조된 금속제 경찰봉이었다.
그걸로 후려쳐지면 몹시 아파 보이니까 총이나 다름없이 위험하긴 하겠지.
“아~ 아아~ 나는 총이라고 한 마디도 안 했다구? 그치, 매튜?”
소년은 웃으면서 양손에 쥐고 있던 경찰봉을 벨트에 다시 끼워 넣었다. 동시에 나디아도 자신의 뒤를 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안심하고 뒤를 돌아본 그녀는 무지막지한 근육질에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팽팽한 팔뚝 근육을 감싸는 회색 와이셔츠는 당장이라도 올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두드러진 승모근은 어깨에서 목덜미까지 비스듬하고 탄탄하게 각을 그리고 있고.
양옆으로 짧게 머리를 깎은 운동 체형의 남자. 매튜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딸꾹거리는 나디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아렌드 군. 그런 점이 현명합니다.”
복식호흡에서 밀어져 나오는 그의 묵직한 칭찬에 저도 모르게 “헤헿”하고 웃은 소년—아렌드는 아차 싶은지 황급히 헛기침하고 말을 돌렸다.
“아, 그래. 매튜! 얘들이 지금 경의사의 뒤를 졸졸 쫓고 있는 그 자식들인 거지.”
“음.”
아렌드의 질문을 들은 매튜는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이는 나디아의 팔에서 기자 완장을 벗겨내었다.
“수도 앨버스에서 활동하시던 분이로군.”
“어, 어떻게 알았어요?”
어차피 완장을 차고 있는 이상 신분 노출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역까지 특정이 될 줄은 몰랐기에 나디아는 깜짝 놀랐다.
매튜는, 케이의 등 뒤에 있는 소년에게 ‘너도 완장을 벗겨라’고 손짓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만 보고는 알 수 없지. 허나 댁들 말이야… 아르샤에서 경의사를 수색하고 다녔다는 2인조 수도권 신문기자로 이미 정보가 왔다고.”
“거봐, 다 들켰잖아!!”
후회와 원망이 절묘하게 뒤섞인 비명을 지르며, 케이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이,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었잖아! 후배!”
“그렇게까지 좌절을 하면 저도 마음에 상처를 입어요, 선배님.”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나디아는 선배에게 아쉬운 감정을 가질 만한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편집국장에게 제안하였고, 자신이 앞장서서 선배를 끌어들였던 이유.
「경의사」라는 건 그만큼이나 매혹적인 소재다.
왕실로부터 여신의 권능을 받아서 비정기적 활동으로 지방의 수직 행정 체계를 마음대로 뒤흔드는, 『법의 예외』에 존립하는 경의사. 그런 존재를 추적하는 위험성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경의사 쪽에서 일부러 정보를 흘리면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을 유혹하는 건 정말로 위험하게 다가온다.
거기에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예. 맞습니다. 매튜 씨.”
어느새 딸꾹질이 멎은 나디아는 근육질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들이 찾던 그 기자가 우리예요.”
“의외군. 부정할 줄 알았는데.”
“저도 여러분이 숨기는 시늉 정도는 할 줄 알았으니까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녀의의도가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그들 또한 나디아 쪽에서 노골적으로 ‘우리가 찾고 있다’는 활동을 드러내놓고 어필하고 있는 점 또한 눈치를 챘어야만 한다.
지금 이 둘이 당장 호텔 로비에서 자신을 쫓아내지 않는 것만 봐도, 나디아는 자신의 추측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하고 가볍게 헛기침을 한 매튜는 케이의 등덜미를 붙잡았다.
“제대로 찾아왔다. 지금은 축하해주지. 언제까지 축하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흡사 갓난아기를 드는 것처럼, 그의 몸을 번쩍 세우는 매튜.
“그럼 같이 올라가볼까.”
“올라가다니…. 호텔 위로요?”
그녀의 말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을 때 나오는 확인이었다.
매튜는 아렌드와 눈빛을 교환하면서 답했다.
“너희들도 만나보고 싶은 거잖아. 경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입니까!”
나디아의 주근깨 핀 얼굴 위로 보기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희가 지금 바로 만나 뵐 수 있는 건가요?”
“응~ 하지만 조심해야 할 거야, 인간~?”
완전히 기가 억눌린 케이의 옆에 서 있는 소년, 아렌드는 어린애다운 외모엔 어울리지 않는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둥글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엿보인다.
“경의사 녀석은 우리와 달라. 무지하게 무섭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은 둘의 등을 떠밀면서 승강기로 향했다.
“매튜, 그럼 우리 먼저 올라갈게!”
“바로 경의사 씨에게 안내하십시오. 아렌드 군.”
“응! 이따 봐!”
어어, 하는 사이에 매튜는 호텔에서 밖으로 나갔다. 승강기를 탄 손님은 아렌드와 나디아와 케이, 셋.
아렌드는 넘쳐 흐르는 긴장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둘에게 배지를 건네주었다. 세로로 기다랗게, 납작한 마름모꼴로 가공된 자수정 배지였다.
“꼭대기 층에 도착하기 전에 옷깃에 꽂아.”
조금 전과는 달리 딱딱해진 아렌드의말투. 소년이 가리키고 있는 자신의 셔츠 칼라에도 같은 배지가 꽂혀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겁을 주려는 것치고는 너무 과격한 표현이 아닐까. 조금은 의아한 나디아였지만 그 궁금증은 곧 해결되었다.
잠시 후.
땡— 하는 종소리와 함께 멈춰선 승강기의 열린 문 너머.
기다란 호텔 복도에는 카키색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 연신 바쁘게 오가고있었다.
나디아와 케이는 눈이 마주쳤다. 말이 나오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생각을 지금 떠올렸는지는 알 수 있었다.
(구원군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한참은 더 가야 있을 남방 직할시 바트나. 그 중심 교구에서 운영하는 종립구원군이 여기에 있었다. 셜리의 말대로였다.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지 복도부터 객실 문은 전부 열려 있다. 복도 벽의 가스등 불빛과 함께 어우러진 매캐한 담배 연기는, 입에 엽궐련을 물고 있는 군인들이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앞만 보고! 복도 끝까지 걸어!”
아렌드의 말에 나디아와 케이는 고개를 앞으로 향한 채 걷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물론 주변을 연신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타자기에서 막 뽑아낸 서류는 잉크가 마를 사이도 없이 서둘러서 누군가의 서명을 받으러 사라지고, 뭔가 초조하게 연락을 하는 자들은 연신 전신기 앞에서 지궐련을 핀다.
각 방마다 벽에 붙은 커다란 지도에는 여러 종이가 핀으로 꽂혀 있었다. 복도에서 그 내용까진 보이진 않지만, 사선으로 그어진 붉은 선으로 기밀을 뜻하는 종이가 여기저기 나풀거리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치는 셋을 향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빛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의 바늘이 날을 세우고 있다.
(아까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던 건가.)
자수정 배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디아는 매튜가 기자 완장을 미리 벗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가운데를 감히 기자가 돌아다닌다면, 분명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창문 밖으로 던져졌을 게 분명했다.
“다 왔어.”
아렌드와 함께 도착한 복도의 끝. 거기엔 이 층에서 유일하게 닫힌 문이 있었다.
콩콩, 노크를 두드린 아렌드는 곧장 문을 벌컥 열었다.
“들어간다~! 경의사 씨!”
당당하게 외치는 소년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간 나디아는, 눈에 보이는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눈에 봐도 호화로움이 엿보이는 방.
입구 문에서 바로 보이는 응접실에는 손님을 맞을 수 있는 티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그 사이로 한 명이 거꾸로 서 있는 뒷모습.
손으로 바닥을 짚고, 발과 몸통은 천장을 향해 커다란 활처럼 휘어진 자세. 그대로 팔꿈치를 굽혔다가 편다.
“여섯… 다섯… 넷…”
물구나무 자세로 팔굽혀펴기.
짧은 반바지 안에 밀어 넣은아몬드빛 셔츠는 땀으로 젖은 얼룩이 선명하게 등 위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머리끈으로 짧게 뒤로 올려 묶은 은발의 머리칼에 물방울이 반짝인다.
“셋…둘… 하나…”
목표를 채웠는지 다리를 내리고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운 사람은, 의자에 걸려 있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머리끈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