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쉼표 / whole rest
【쉼표 / whole rest】
산속의 해는 일찍 저문다.
레드우드 정도의 도시라고 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예외는 아니다.
악어의 등처럼 지평선을 가득 채운 산세에 저녁놀은 금세 가려지고, 연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은 천천히 그림자로 마을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 하늘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새하얀실구름이 마치 거미줄처럼 이쪽저쪽으로 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도심부에서 외진 곳으로 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경량 엔진을 장착한 소형 비행선이거나. 또는 외역의 거점 도시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경식 비행선이리라.
사방팔방 흩어지는 그 하얀 흔적을 되짚어보면 모두가 한 곳, 『레드우드 중앙역(central platform)』으로 모이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주간 비행일정의 마지막으로, 레드우드 시가지에 넓고 긴 그림자를 그리는 거대한 경식 비행선이 도착했다. 사설 운송 업체 특유의 호화로운 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진 비행선은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내려오기 시작한다.
「부오오—」
냉각 증기를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하게 내뿜으면서 플랫폼에 착륙하자마자 플랫폼 직원들이 지지대 연결 로프와 비행선을 단단히 고정하였다.
곧이어 내리는 승객들 하나하나에서 부유한 계급 특유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여성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하나같이 허리를 옥죄는 크리놀린 드레스를, 재력이 곧 외양으로 드러나는 남성은 윤기가 흐르는 실크햇과 잘 다듬어진 수염, 반짝 빛나는 안경과 손에 꼭 알맞게 쥐어진 지팡이를 들고 차례로 비행선에서 내린다.
그 일련의 행렬의 맨 마지막, 맨 끝. 마지막으로 비행선에서 내린 성인 남녀 커플은 앞서 내린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으우우우우~!”
기지개를 쭉 뻗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은, 주위에 누가 보든지 신경 안 쓰고 외쳤다.
“햣하~ 남의 돈으로 타는 비행선 최고~!”
“그래. 기차보다는 훨씬 좋아.”
그 옆으로, 굳어진 어깨를 빙빙 돌리는, 칼 같이 반듯하게 가르마를 넘긴 남성도 제법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후배 덕분에 이런 멋진 걸 타고 왕국을 돌아다니는 날이 찾아오다니…. 역시 나는 후배 복이 있어.”
“그렇죠, 이제야 제 면모를 알아주시니 기분이 좋슴다, 케이 선배님.”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나디아, 될성 푸른 네 떡잎은 진작 알고 있었다고!”
그 푸른 떡잎에서 난데없는 정직 통보를 받고 기절했던 과거는 이제 안녕.
겉으로 보기에는 빡빡하고 고집이 세 보이는, 턱밑까지 셔츠 단추를 반듯하게 채우고 체크무늬 넥타이를 맨 남성—케이의 이런 우유부단한 속 됨됨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딱딱한 직장 근무 분위기에서 위로 아래로 치었던 반동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걸까.
그녀—나디아는 수 시간 동안 안락하게 하늘을 날아온 비행선의 여정에 만족해 보이는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님.”
“응?”
“이따가 제 ‘친구’가 아는 척을 하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알았죠?”
“하하, 어차피 너와 어울릴 건데 내가 왜 놀라겠어, 후배?”
전혀 쓸모 없는 걱정이라는 양 호언장담을 하는 케이의 허세는 순식간에 시험에 들게되었다.
가벼운 여행 가방을 들고 플랫폼을 빠져나온 둘이 역사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돌진하듯이 달려온것이었다.
“나쟈~!!”
수도 앨버스에서 출발한 이래 줄곧 무난한 정장복 차림으로 다니고 있는 나디아와 케이처럼, 그녀에게 다가온 여성도 사무원들이 즐겨 입는 직선적인 단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하얀색의 둥근 클로슈(cloche)가 잘 어울리는, 나디아보다 약간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인 여성.
굽 높은 구두로도 용케 달려와서, 마치 범인을 제압하는 경찰처럼 힘껏 나디아를 끌어안았다.
“오래간만이야~ 나쟈!”
“프헉—”
입으로 숨을 거의 강제로 배출 당하는 나디아.
그런 그녀를 꽉 안았던 여자는 팔에 힘을 풀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이게 정말 얼마 만인 거니~! 옆에 사람은 누구? 남편?”
“나… 남편 같은 소리 한다, 콜록콜록.”
살짝 거리를 두면서도 나디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반가워, 셜리. 이 사람은 내 직속 선배님이셔. 케이라고 부르면 돼.”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저는으으은!”
악수하기 위해 정중하게 내밀어진 케이의 오른손. 그 사심 없는 손을, 동글동글한 여성—셜리는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듯 힘껏 쥐었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은 단지 외모로 느껴지는 편견으로 쉽게 다가오곤 한다.
그 작은 체구에 압축된 힘의 맛은 여간 맵지 않았고, 제대로 맛을 본 후의 구면 사이에서는 좀 더 신중해지긴 하지만.
“어머 어머, 반가워요~ 케이 씨, 라고 부르면 되죠?”
“네! 좋습니다아악!”
힘차다 못해 일그러지는 비명이 되어가는 케이의 대답. 그 뒤틀어진 표정의 원인이 자신이라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셜리는 웃는 낯으로 손을 놓았다.
“아 참!”
가볍게 박수를 치면서. 그녀는 문득 떠오른것처럼 말을 꺼냈다.
“슬슬 해 떨어지고 날씨 선선해지려 하는데~ 제가 잘 아는 선술집으로 갈까요? 오랜만에 가볍게 수다를 떨자고요!”
“고마운 제안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레이디, 저희는 우선 숙소에, 아얏!”
지극히 당연한 거절을 하려던 케이의 말을 나디아가 잘랐다. 선배의 발끝을 살짝 밟은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가장 크고 시끄러운 선술집으로 가는 거지.”
“어휴, 우리 나쟈~ 눈치 하나는 참 빨라!”
그렇게 답하면서 둘을 이끌고 앞장서는 셜리.
중앙역에서 걸어서 오 분 정도의 거리, 그녀가 안내한 선술집(pub)은 과연 ‘가장 크고 시끄러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아직은 이른 저녁이지만, 작은 창문과 어두운 조명으로 꾸며진 선술집 안은 이미 많은 손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구석진 자리로 간 셋.
하얀 머리띠를 두른 종업원에게 주문한 맥주 석 잔과 따끈한 양고기 파이를 두고, 셋은 되도록 편안한 자세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그들 주위의 수많은 테이블처럼—일을 끝마친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 짓고 목을 축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 내용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나쟈. 네가 알려준 자에 대한 걸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니, 공방지구 쪽에서 어떤 사람이 엘림 호텔을 말해주더라고.”
셜리는 양고기 파이를 수저로 한 웅큼 베어 먹으면서 말했다.
“반신반의했지. 너무 순순히 알려줘서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찾아가 보니….”
말을 멈춘 셜리는 시원한 이슬이 맺힌 나무잔에 담긴 맥주를 꿀꺽꿀꺽 삼켰다.
“군인들이 있더라고.”
“군인? 하하, 그럴 리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친 건 케이였다.
“군인이 민간 시설에 머무르고 있으면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렇지, 후배?”
“으음…. 확실히 입단속을 하긴 어렵겠죠.”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디아도 내심 케이의 말에동의하였다.
자신들이 좇는 ‘경의사’에 관련된 정보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아르샤에서 열흘 가까이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수도위생국의 끝없는 압박 기술뿐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간인과 명확히 구분되는,군인이 움직이는 정보까지 숨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둘의 반응이 놀랍지도 않은 듯이 셜리는 케이를 가리키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못 믿겠으면 안 믿으셔도 돼요~ 아저씨~”
“아…아저씨…라고…?”
케이에게는 군인 소식보다도 아저씨 호칭이 훨씬 충격적인 듯 보였다. 선배가 옆에서 황당하든 말든 나디아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연히 연합육군이 거기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무슨 연관이 있는 거겠지. 경의사는 군과도 손을 잡는다는 걸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고려해보려는 나디아의 말에 셜리는 뜻밖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야. 육군이 아닌 건 확실해. 처음 보는 군복이었다고.”
“뭐?”
나디아가 듣기에도 놀랄 법한 이야기였다. 양고기 파이를 연신 스푼으로 퍼먹으면서 셜리는 말을 이었다.
“카키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었어. 거기에 호칭도 좀 특이했는데. 그 뭐냐, 우리가 보통 아는 소령 중령 그런 게 아니라….”
“카키색이라면.”
맥주로 입술을 살짝 축인 케이가 말했다.
“참령. 아니면, 부령이나 정령.아닌가?”
“맞아요! 딱 그런 거였어요!”
윙크를 날리면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셜리였지만, 정답을 맞힌 케이는 좀 전과는 달리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구원군」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구원군이라면 바트나 중심 교구에서 굴리는 조직 아닌가요? 용케도 알고 계시네요. 대단합니다, 선배님.”
“그야 내가 후배님 보다는 짬이 있으니까 알아도 이상할 건 없지, 하하하!”
조금만 추켜 세워져도 금세 우쭐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재수 없으면서도 귀엽다’는—서로 어울린다고 보기에는 어려운—두 감정이 뒤섞이는 기분이 든다.
“군인 건은 일단 제쳐두고, 경의사에 대한 정보도 있었어?”
“아무렴~”
원래는 안주 삼아 먹을 양고기 파이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셜리는 티슈로 입술을 닦았다.
“나쟈. 네가 말한 ‘그 사람’을 호텔 앞에서 본 적 있다는 증언을 들었거든.”
그 사람.
“키는 마치 남자처럼 크고, 새벽하늘처럼 빛나는 짧은 은발이 두드러지는 마른 체형의 여성.”
“그 증언, 신뢰할 수 있어?”
“여신님의명예를 걸고!”
엄숙한 척 선서를 하는 폼을 잡는 셜리. 그 행동은 장난끼가 흘러넘치고 있었어도, 설령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보증’이 담겨 있다.
“지금 바로 가야 함다! 선배님!”
“지, 지금? 그보다는 짐을 맡겨야 하니, 마시던 건 마저 마시고 숙소부터 먼저 잡아야….”
아직 많이 남은 맥주에 미련이 남는지 말이 길어지는 케이. 그의 맥주잔을 뺏다시피 내려놓으면서 나디아는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숙소’에 가자는 거예요!”
* * * * *
“그렇게 부탁하셔도 말이죠.”
호텔 접수대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철벽의 방어를 펼치고 있었다. 그 직원의 앞에서 대조적으로 연신 비굴한 웃음을 짓는 숙녀 하나.
“아휴, 그렇게 안 된다, 안 된다~ 말씀하시지 마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붉은 버찌 빛의 머리칼을 왼쪽으로 높게 올려 묶은 여자—나디아는 왼쪽 팔뚝을 들이밀었다.
연회색 재킷 위에 감긴 노란 완장에는 굵은 글씨로 ‘보도’라 적혀 있었다.
공식적으로 취재 활동을 하는 기자는 반드시 차야만 하는 완장. 명목은‘취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 뒤에는 ‘문제가 되는 언론사와 기자를 관리하기 위해’란 목적이 숨어 있는 건 나디아라고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알고 있으니까 되려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제가 지금 취재로 온 게 아니라, 정말로, 저엉말로! 저희 개인적인 약속으로 찾아온 거라고요. 이거 봐요~”
그녀는 카운터 직원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직원은 그 명함을보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투숙객에 얽힌 그 어떤 부탁도 저희로서는 절대 응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무시하는 게 맞는 거 같은걸. 후배.”
나디아의 옆에 서 있던 남자—케이가 말했다. 그는 나디아와 마찬가지인 기자완장을 차고 있었다.
“이건 빙고라는 거지?”
“그렇죠. 선배.”
“이 직원.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애초에 듣는 시늉도 안 하는데. 했던 말만 반복할 뿐이야.”
“신신당부를 받았다는 거겠죠. 분명히 ‘그 사람’한테.”
접수대 직원을 앞에 세워두고도 태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는 둘.
그 앞에서 여전히 사무적인 미소를 짓던 직원의 시선. 나디아는 그 시선이 아주 살짝 움직이는 걸 눈치챘다.
자신이 아니라, 약간 더 뒤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에.
“움직이지 마.”
기척 없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음으로 깔린 남성 목소리. 나디아의 뒤에 바짝 다가와서 옆구리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머리 위로손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