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3막 (中) 나쁜 일은 나의 몫 (9) (56/111)



〈 56화 〉3막 (中) 나쁜 일은 나의 몫 (9)

「쨍그랑——」

“헉!”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코넬리아와 마틴은 그 자리에서 납작 엎드렸다.

펠트 모자 위로 갓 쪼개진 유리 조각이 부스스 쏟아졌다.

“꺄아아악!”

건물과 광장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계단에는 손님과 관광객으로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들 중 누가 귀가 찢어질 만큼 높은 비명을 지르자, 순식간에 패닉이 찾아왔다.

대부분은 사방팔방 흩어졌지만.

그 중 여럿은, 똑바로, 우편집중국 출입문을 향해 계단을 걸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긴팔을 입기에는  더운 날씨였지만 손목 소매와 무릎 아래까지 길게 덮는 회색빛 프록코트를 걸치고 있는 사내들.

다리를 매끄럽게 감싸는 검정색 코튼팬츠 아래로 발목을 단단히 감싸는 전투화부츠를 신은 그들은,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그들의 손에는 총신이 기다란 볼트 액션 소총이 들려져 있다. 숙련된 자세로 어깨 견착을 하고 소녀 쪽을 곧장 겨냥한 총구 끝에서 불꽃이 튀어 나왔다.

「핑, 피잉—」

튀겨지는 도탄음(跳彈音)과, 퍼져 오는 돌가루 냄새.

아직 그리 가까운거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걸으면서 한 조준이 흔들렸는지는 몰라도. 바닥에 손을 짚고 앞으로 쓰러져 있는 코넬리아에서 꽤 빗나간 사격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 발자국 근처의 연석에서 하얀 연기가 픽픽 솟아오르는 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안으로, 빨리! 코니 양!”
“아! 으응!”

엎드린  앞으로 가던 마틴이 소녀에게 재촉하였다. 코넬리아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었다.

‘어… 어라?’

머리로는 ‘도망가야 한다’는 경고가 떠오른다. 당장이라도 건물 안으로, 기어서라도 들어가야 한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몸은 그 반대로 완전히 굳어서,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코니 양!!”

마틴은 코넬리아의  팔뚝 아래로 손을 집어넣고 그대로 힘껏 끌었다. 거의 반 억지로 소녀와 함께 로비층 현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서서히 숨이 가빠져 오는 코넬리아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익숙한 실내 카펫의 감촉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고, 고마워. 마틴.”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코넬리아는 품 안에 소포를 안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답변은 앞으로 허둥지둥 구르듯이 뛰는 거로 대신 하였다.

그 뒤에서 마틴도 등으로 소녀를 가리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함께 접수대로 향했다.

“무장 공격입니다! 다들 대피하세요!!!”

커다랗게 외친 마틴의 목소리는 효과가 있었다. 밖에서 들려온 총성과 깨지는 유리창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로비가 단숨에 혼란으로 채워졌다.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인파들은 무시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다리가 풀려버린 코넬리아를, 마틴이 부축하듯 일으켜 세워줬다. 그리고 아까 얼굴을 봤던 그 직원이 그 몇  사이에 도망쳐버린 접수대를 위로 타고 넘어갔다.

“훅, 후욱—”

미친 듯이 고동 치기 시작하는 심장.

고작해야 허리 높이인, 두꺼운 목재로 제작된 접수대. 잠깐 위협을 피할 수는 있을지라도 아주 잠깐 정도일 터이다.

지금은 진짜 기절하면 안 돼.

몸을 움츠린 코넬리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보안요원은?”
“아마도 저기 너머에 있습니다.”

확인할 틈이 없었으니 마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로비층에 있어야 하는 보안요원 수 명이 여기—접수대 뒤—에 없다면,다른 공간에 있으리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마틴이 가리긴 ‘너머’는 접수대 너머. 즉 사방이 탁 트여 있는 로비 공간이었다.

“지금 싸우면—”

소녀의 말을 기다릴 것도 없었다.

또다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이번에는 광장으로 향한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진작 너덜너덜해진 현관문을 몸으로 밀면서 거침없이 들어온 프록코트 차림의 습격자들. 바닥에 유리 파편들과 나무 조각이 널브러져 있는 걸,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타앙—!!」

총성이 퍼지고. 누구의 몸에서 나왔는지 모를 핏무리가 접수대 너머, 부채꼴 모양으로 비산(飛散)하였다.

“히… 히이이익…”

자기가 생각해도 정말 보잘것없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코넬리아는 손으로 입을 꽉 눌렀다. 혹시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비명을참기 위해서였다.

 대신 자신의 등 뒤, 접수대 너머에서 들려오는 총성을 듣지 않기 위해서 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저 소리가 끝나면, 다음 차례는 나겠지.’

살짝 비관적인 생각을 하면서 코넬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디귿 형태로 배치가 된 접수대의 뒤편에는, 생각보다 여러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거기에는 조금 전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일을 하고 있었던 접수원들도 있었다. 몇 명은 완전히 고개를 무릎에 파묻은 채 쪼그려 앉아 있고, 누군가는 벌벌 떠는 손으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기도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틴은 코넬리아의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허리춤의 홀스터를 풀었다.

“혹시나 해서 챙긴 건데.”

그러면서 리볼버 권총의 약실을 확인하는 마틴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느긋하고 평온하였다.

“코니 양. 저 자식들은 말이 통하지는 않을 거 같네요.”
“…그러게.”

입을 막고 있던 손에 들어갔던 힘을 조금 풀었다.

“아까 뒤에서 따라올 때는 얌전했는데.”
“그저 코니 양에게 들킬까 얌전한 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마틴은 왼쪽 팔목을 감고 있던 끈을 풀어냈다. 빙글빙글 풀어낸 끈의 끝에 매달려 있는 건, 손가락 두어 마디 크기의 얇고 가느다란 피리.

그걸 입에 문 마틴은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힘껏 불었다. 쉬이이이익, 하는 작은 금속음이 들릴 뿐이었다.

“지원군 요청을 했습니다.”
“김빠진 장난감피리 같은 소리였는걸.”

뭔가 실망이 가득 차 보이는 코넬리아에게 마틴은 피리 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일반인의 귀에는 안 들리는 소리지만, 분명히 들렸을 거예요. 곧 그녀가 저희를 구하러 올 겁니다. 코니 양.”

「타앙—」 「쨍그랑!」

바로 등 뒤로 들리는 커다란 총성과 파괴음을 뚫고 퍼져 나갔을까에 대해 의심스러웠지만, 코넬리아는 마틴의 말을 믿는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소녀에게 물었다.

“저 치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짐작 가는  있습니까, 코니 양?”
“그건—.”

마틴의 질문에 코넬리아는 답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탕— 타앙!!」

접수대 뒤에 숨어 있으니 눈으로는 볼  없었다.

고작해야 허리 높이의 접수대를 가볍게 타고 넘어서, 소리 만큼은, 코넬리아의 귓속으로 총성과 비명을 집어넣는다.

코넬리아는 아직 전쟁터를 직접 겪어본 적은 없다. 소녀가 알고 있는 전쟁터의 모습은 활자와 그림 속의 모습. 아마도 이런 참혹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전쟁터.

바로 조금 전. 그리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한 건 아니었어도, 걸어가면서도 능숙하게 노리쇠를 젖혀서 탄피를 배출하고, 재장전을 마치고 견착 후 조준하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 짐작이 가는 게 하나, 흡, 있기는 한데.”

거세게 뛰는 인공심장 위에 손을 얹고.

소녀는 가만히, 공격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작게 신음하던 목소리가 총성으로 덮어진 후, 영원할 것만 같던 공격은 다시는 이어지지 않았다.

빠드득.

빠드득.

전투화의 밑창에 깔리는 유리 조각들이 대리석 바닥에 날카롭게 갈려져 나가는 소리.  소리 만이 불길하게 로비층을 떠돌고 있었다.

유리 조각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귀를 기울이며 손가락을 접던 마틴은, 코넬리아에게 말했다.

“다섯 명입니다.”

다섯 명.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수.

로비층에 있던 보안요원들과 꽤 오랫동안 교전을 했어도, 습격자들이 입은 타격은 거의 없는 듯하였다.

뚜벅. 뚜벅.

조심스럽게 느린 속도로 걸음을 옮기는 그들에게서 방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접수대 뒤에먹잇감을 몰아놓았으니, 허둥댈 필요는 없다는 것처럼.

고작해야 스무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을까. 더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마틴, 지원 요청은 언제 와?”
“그게 말입니다. 음.”

회중시계를 보던 마틴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곧, 옵니다.”
“곧이라니!”

내 인생이 곧이라니!

익숙지 않은 긴장감에,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코넬리아의 그 애단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말로 마틴의 ‘지원군’은 곧, 나타났다.

처음 이변을 알아차린 건 습격자들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고, 마치 지옥의 심판자가 다가오는 것처럼 두려웠던 발걸음 소리도 뚝 그쳤다.

멈춰서 이쪽을 조준하고 있는  아니겠지?

코넬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쪼그려 앉은 자신의 발끝을 보다가.

“어머나.”

조금 전까지 또렷하게 보였던 그림자가 희미해진 걸 느꼈다. 이곳의 채광(採光)을 맡는,  높은 곳에 덩그러니 뚫려 있는 유리창에서 들어오던 빛이 사라진 것이었다.

소녀는 좀 더 고개를 젖혔다. 옥상 바깥이 비쳐 보이던 천장의 채광창도 무언가로 가려져 있었다.

 ‘무언가’가 뭔지는 모르겠어도, 우편집중국의 옥상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건 분명했다.

“왔군요. 지원군.”

마틴의 둥근 눈매가 짓는, 감정이 사라진 미소.

“지원군이 들어오는   보세요. 코니 양. 일반인은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한 모습이니까요.”

마틴이 말하는 ‘일반인’이라는 건, 필시 ‘군대와 접점이 적은사람들’을 일컫는 거겠지.

9호실의 사람 좋아 보였던 마틴은 이미 사라졌다. 마틴 라이트 소위는 다시 한번 금속 피리를 불었다.

「피이이익—」

여전히 힘이 빠지는 피리 소리였지만 지원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신호였다.

직후.

우지끈—하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터무니없이 거대한, 같은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정도로 커다랗고, 위대하게 느껴지는 [군물자 특별 운송기체].

학자들 사이에서는 용각류(龍脚類)라고 별도로 분류되는.

속칭 「드래곤」이,   높이의 천장에서 로비로 휘몰아치듯 내려왔다. 착지하면서 몸을 내딛는 충격으로 코넬리아는 엉덩이가 한순간 1센티미터 정도는 들썩이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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