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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화 〉3막 (中) 나쁜 일은 나의 몫 (6) (53/111)



〈 53화 〉3막 (中) 나쁜 일은 나의 몫 (6)

“결과적으론 그렇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겠죠. 저는 지부장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봅니다.”
“코니 양. 그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일부러 의심하는  아니겠지?”
“이런 상황에서는 농담 같은 거 하지 말아요, 베스 씨….”
“미… 미안….”

단순히 콜레라가 발병한 것만으로 극단적인 검역 제한 조치를 시행하지는 않는다. 주민 집단 내부에서 여러 사람이 걸리기 시작할 때, 즉, 유행(流行)하기 시작할 때에야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한다.

제이슨이 그녀들에게 말하였던 여러 방안—상수도 공급 업체를 바꾸는 등등—은 여러 주요한 예방법 중 하나이긴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을 외면하고 있었다.

지역 지부가 제일 먼저 했어야만 하는 조치는.

“지부장은 시립 구빈원의 지원 요청에 협조해야 했습니다.”

지난밤. 구빈원을 방문하였던 코넬리아의 눈앞에서, 바짝 말라붙은 채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었다.

수레 위에 잔뜩 쌓여 있었던 시체가 있었다.

몇날 며칠을 힘들게 일하여서 탈진 직전인 직원들이 있었다.

죽지 않아도 되었던 죽음에 분노하였던, 피곤함에 찌든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은 콜레라에서 시작되었지만. 한 번 시작된 비극의 막을 내리는 건, 이 도시 어딘가에 잔뜩 있을 수액 장치를 지원하는 거로도 충분했을 것이었다.

제이슨 호스론.

그는, 지역 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부장은 콜레라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고 했다고 봐요. 그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있다는 거지.”
“저랑 베스 씨에게 숨기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치만 아마 그 이상일 겁니다.”

코넬리아는 붉은색 가스등이 들어온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푸른 잎사귀로 촘촘하게 세워져 있는 벽이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끝이  보일 정도로 늘어서 있는 포플러 나무.

방풍림(防風林)으로 조성된 공원은 바다로부터 도시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를 억눌러 준다. 얕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코넬리아를 스치고 지나간다.

곧이어 녹색 가스등이 켜지고. 옆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둘은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 맞은편에 도착하니 엘리자베스가 팔꿈치로 코넬리아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코니 양, 배고프지 않아? 샌드위치 하나 사 줄까?”
“한턱 사 주신 다면야 저는 좋습니다만.”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의도인가. 그렇게 생각한 코넬리아가 고개를 돌려 보니, 공원 입구에는 여러 노점상이 가판대를 늘어놓고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팔고 있었다.

감자튀김과 갓 튀긴 밀가루 과자, 그 옆으로는 얇고 하얀 식빵 사이에 여러 소스를 버무린 야채와 생선 살을 채워 넣은 샌드위치, 귀한 얼음을 갈아서 만든 시원한 차 등등.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더불어 파격적으로 저렴한 액수가 적혀 있는 가격표가,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단단히 멈춰 세우고 있었다.

싼값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다.

코넬리아는 군침을 삼키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베스 씨. 죄송하지만 공원 안쪽으로 스무 걸음만  걸어간 다음에 사면 안 될까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어? 그 정도야 뭐 어려운 건 아니지.”

엘리자베스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코넬리아와 함께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무 걸음 걸었고. 뭐 사고 싶어, 코니 양?”

일부러  궁금한 척을 하는 연기를 하는 거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사람 성격이 좋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코넬리아는 말하였다.

“저는 칩스 하나 부탁드려요.”
“그러면 샌드위치 쪽은 내가 먹을게.”

엘리자베스는 여러 가판대 중  곳으로 가서, 감자튀김과 샌드위치를 하나로 묶어서 파는 메뉴를 샀다. 왔던 길을 돌아가 사는 엘리자베스를 따라서 코넬리아의 시선도 이동하였다.

“흐음…….”

가볍게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척하면서. 코넬리아는 시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눈으로 한 번씩 훑었다.

한두 가지 특징을 묶어 기억에 담는 소녀에게로, 엘리자베스는 두 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금방 돌아왔다.

“이렇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안 먹는다니. 인생의 절반은 손해를 보는 거라고.”
“헤헤에… 그러게요.”

엘리자베스의 충고 아닌 충고. 코넬리아라고 값싼 샌드위치의 맛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소녀 또한 렉스의 몸이었을 때 노점상에서 파는 샌드위치는 즐겨 먹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한번 잘못 사 먹은 샌드위치로 며칠 동안 배탈로 심하게 고생했던 이후로는 입에도안 대었지만.

건네어 받은 감자튀김은, 하루만 지나도 수명이 사라지는 신문지를 고깔 모양으로 접은 종이봉투에 가득 담겨 있었다. 각자 먹을 것을 쥐고.

둘은 붉은 흙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체  그렇게 숨기려고 했던 걸까요.”

중얼거리듯 말하는 코넬리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면, 지금 저희처럼 누군가에겐 의심을 살 건데 말이죠.”
“아마도 으음…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그랬을까?”

엘리자베스가 생각에 짚이는  말했다.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지부장이라면— 마차 수레에 시체를 잔뜩 싣고 언덕길을 내려오는 걸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을 거예요.”
“코니 양의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이제 가까이에서 스쳐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누구 귀에 이야기가 들어갈까 걱정하지 않는지, 엘리자베스는 원래 목소리대로 말했다.

“쿼런틴 조약은 일이 너무 커진다고 했었지. 지부장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어, 코니 양.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지 않아?”
“호오라.”

짧지 않았던 면담 속에서도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다. 코넬리아는 짧게 감탄하였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하셨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어, 분명히 콜레라가 물로 퍼지는 수인성 질병이라는 걸, 그 아저씨는 알고 있었어. 맞지? 상수도 공급부터 의심해서 제한 조치를 한 거잖아.”

아마 이 도시에서 그 누구보다도 콜레라 대처의 최전선을 겪었을 엘리자베스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량은 절대 가볍지 않다. 열심히 고민하느라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지부장이 네 질문에 답할 때는 마치 콜레라에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처럼 말했어. 나도 화부터 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고. 어째서 그렇게 말한 걸까.”

콜레라는 세균으로 전염된다.
콜레라는, 마땅히 걸릴 사람이 걸린다.

이 둘은 절대 하나로는 묶일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한 걸까.

“지부장이 진짜로 믿는  어느 쪽이지?”

 말을 코넬리아는 바로 맞받아서 답하진 않았다.

“그러게요. 어느 쪽일까요….”

적절하게 흘려 넘긴 건 그녀의 물음이 터무니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엘리자베스가 꺼낸 질문은 지나치게 정확했다.

코넬리아가 제이슨에게 던졌던 질문은—처음부터—지부장이 이 정황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에둘러서 알아보려는 게 목적이었다. 먼저 질문을 꺼낸 코넬리아가 아닌 엘리자베스가, 그걸 그 자리에서는 바로  수 없던 건 당연했다.

뒤늦게라도 알아차린  신기할 정도였다.

코넬리아는 그녀의 말에 내심 놀랐지만,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우선, 지부장이 저희를 얕잡아 보고 있던 건 확실합니다.”

쿼런틴 조약을 입에 올리던 그 순간. 능글맞게 웃던 제이슨의 얼굴에서 일순간 핏기가 사라지던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이슨 지부장은 처음부터 일을 키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시립 구빈원을 방치하고, 뭉개버린 겁니다.”
“그러면 실패한 거네.”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엘리자베스의 감정은 그보다도 깊고 어둡다는 걸 코넬리아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일을 키우고 싶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동감입니다. 지부장은 실패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우연인가, 아니면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제가 알았으니 그는 실패한 겁니다.”

로드리가 말하였던 ‘소독’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는   있었다. 그저 구빈원 한 곳의 진료 지원을 지역 지부가 거부한, 그런 낮은 단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트나 지역 지부는 병들었다.

병든 오물(汚物)은, 소독해야만 한다.

“아. 그러면 일단은 내가 오늘 코니 양을 도와야 하는 일은  끝난 건가?”

샌드위치를  먹은 엘리자베스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면서 가볍게 하품을 했는데, 아무래도 무심결에 한 모양인지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미안해.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아니에요. 저야말로 오늘처럼 비번인 날에 베스 씨의 시간을 잡아먹어서 미안해요.”

이번에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하하, 그렇게 생각을 해주니까 고마운걸.”

웃음을 흘리면서 엘리자베스는, 옷 앞섶에 가리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어 벗었다.

“네 일이 끝나는 대로, 그 로드리라는 군인이 이걸 너한테 주라고 했어.”

그녀가 건네준 목걸이에는 금속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소녀의 새끼손가락만 한 열쇠의 머리 부분에는 두 자리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특별하게 더 들은 메시지는 없어. 그냥 네가 이걸 받으면  거라는데. 어때?”
“…알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받은 열쇠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건 코넬리아는, 종이봉투에 남은 감자튀김을 입에 탈탈 털어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입안에서  덩어리가 된 감자튀김을 삼키고. 코넬리아는 입을 열었다.

“베스 씨. 돌아가기 전에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데요.”
“응, 뭐든지 부탁만 해. 뭐든지… 라고는 해도 가까운 곳이면 좋겠지만.”

멋쩍게 웃는 그녀에게 코넬리아가 말한 곳은, 다행히도 가까운 거리였다. 지역 지부 건물에서 지금까지 걸었던 만큼. 그 정도 걸어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트나 동부 정거장.

민간 자본으로 깔려진 철도 노선과 비행선(飛行船) 노선이 모이는 동부 정거장은 평일 오전이라고 결코 한산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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