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3막 (上) 내일은 아주 바쁜 하루가 될 테니 (6)
커크의 말에 코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요청대로 하는 건 좋은 거죠.”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지만, 그 웃음은 단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무의식중에 짓는 표정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인가.’
혼자 아픈 중환자 한 둘이 있다고 병동을 격리하지는 않는다. 코넬리아가 알고있는 한, 격리 조치를 시행하는 때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이 될 때다.
아직 아프지 않은 자라도, 이미 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 접촉했으면 시간이 지나서 그 질환이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러니 잠복기가 끝날 때까지 격리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염병에 걸려서, 아직 낫지 않았을 때.
어느 쪽이든지 결코 간단하게 끝낼 상황은 아닐 게 분명하다.
소녀가 마음속으로만 한 추측은, 커크를 따라 병동으로 가면서 확신으로 변하였다.
“여기는 조용하네요. 밑의 거리는 꽤 소란스러운데.”
코넬리아의 말에 커크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조용한 건 취향에 안 맞으십니까?”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쪽이 좋아요.”
“그러면 다행이군요. 여긴 꽤 조용한 편이니 말입니다.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램프를 들고 앞서 걷는 커크. 그 뒤에서 로드리와 나란히 걷던 코넬리아는 문득 코를 찡그렸다.
병동은 행정관에서 흙 마당을 가로질러서, 생활관과는 반대 방향인 급경사 쪽의 외진 곳에 있다. 그 근처에 다가가는 동안에 점점 익숙한 냄새가 코를 맴돌기 시작했다.
소녀가 맡은 악취는 구빈원으로 올라오는 골목에서 맡았던 것과는 다른 냄새.
익숙하긴 해도 절대로 친숙해질 수 없는 그 냄새는, 망자의 유해로부터 나오는 시취(屍臭)였다.
‘로드리는… 이미 알고 있군.’
표정 변화가 없는 로드리를 보면서 코넬리아는 어깨에 두르고 있는 숄을 바짝 감쌌다.
병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가까이 가면서 주위를 훑어보니, 저만치 놓여 있는 수레에 무언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볼 순 없었지만.
눈을 찡그리고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팔 하나가 덩그러니수레 바깥으로 늘어져 있었다.
“자, 들어오세요. 마스크와 장갑은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드리겠습니다.”
“아, 아아… 네.”
기분 탓일까.
자상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커크의 퀭한 얼굴이, 어째서인지 조금은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로드리가 있으니까 무서울 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폭언에 오롯이 동의하는 건 아니더라도, 솔직히 이 연약한 육체는 자기 자신도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자신보다 강한 동행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사고방식이고, 이건 렉스의 몸이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자기 합리화도 하면서 코넬리아는 커크가 먼저 들어간 뒤를 따라서 병동 현관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는 너무나도 환한 빛이 가득 했다.
“읏—”
암반응이 끝난 눈에 퍼부어지는 빛의 폭격에 코넬리아는 한동안 얼굴을 찡그렸다. 부신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를 자극하는 건 시각이아니었다.
후각.
병동을 채운 압도적인 소독약의 풍취.
미각.
긴장으로 마른 입안으로는 까끌까끌한 모래알이 맴도는 느낌.
촉각.
미적지근하고 끈적한공기가 뱀의 혓바닥처럼 뺨을 훑고 지나가고.
청각.
들려오는 신음은, 불행히도 가지각색이었다.
낮고 탁한 신음부터 시작해서 가느다랗고 높은 어린아이의 지친 울음소리까지 그 소리의 폭으로 줄을 세우면 모든 연령대와 모든 성별의 사람이 일렬로 설 수 있을 거라고, 코넬리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돌아오는, 시각.
밝은 건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공간뿐이다. 복도 불빛이 희미한 건 행정관과 마찬가지. 업무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은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보건 직원들이었다.
누가 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지만, 그들이 그 와중에 서 있는 건 커크의 연락이 미리 갔기 때문이리라.
“오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의원님.”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푸근하고 덕이후한 체형의 중년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향한 곳은 커크도 코넬리아도 아닌, 로드리였다.
“어. 그래.”
로드리는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냉큼 여성과 악수를 했다.
“늦은 시간에 수고가 많다. 환자 병실로 안내해.”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도 전혀 웃음기를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다. 코넬리아는 로드리의 능청스러운 대응에 그저 마음속으로 웃었다.
인버네스 코트 상의는 어느새 원장실에 두고 온 로드리는, 검은 면바지와 흰 와이셔츠, 거기에 검은 넥타이라는 옷차림이다. 그를 의원이라고 받아들이는 건코넬리아가 생각해도 당연했다.
로드리와 커크에게 소독된 위생 물품을 전달하던 직원들이 코넬리아를 흘깃 보았다.
“이쪽의 여성 분도 함께합니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왜이런 곳에 애를 데리고 왔냐’라는 책망이 담겨 있었다. 소녀의 속이 쓰려지는 질문에도 로드리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당연하지.”
짧게 대답하고 입을 다문 로드리와 직원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잠시 흘렀다.
“예. 알겠습니다.”
잠깐 망설이던 직원 하나가, 제일 작은 치수를 골라서 소녀에게 건네었다. 코넬리아는 마스크를 쓰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머리 위로 쓰고 있던 커다란 검정 보닛을 벗었다.
“이거 좀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금빛 머리칼, 청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오똑하게 솟아날 부분은 솟아나고 들어갈 부분은 들어간 이목구비. 작은 입술에서명료하게 귀족 악센트를 잡는 문장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리고 장갑에 이물질이 묻어 있습니다. 교체해 주세요.”
기껏 전해준 장갑을 끼지도 않고 그대로 내밀었다. 그 당돌한 행동에도 직원들에게 불쾌감은 생기지 않았다.
의원—으로 착각을 당하고 있는 로드리—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애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거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코넬리아가 굳이 소속과 신분을 꺼내지 않아도 저절로 몸에서 풍긴다.
코넬리아는 새로전달받은 깨끗한 장갑을 끼고, 다른 둘과 함께 병실로 향했다.
“여기입니다.”
마찬가지로 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직원 하나가, 닫혀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이런 적이 자주 있었는지 직원은 밖에서 대기하고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호흡하고 코넬리아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에는, 희미한 램프 불빛이 늘어진 드넓은 방이 있다. 처음부터 하나의 병실이었는지, 아니면 원래는 구획이 나누어져 있던 여러 병실을 억지로 합쳤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서로 발바닥을 마주 보는 두 줄의 병상은 끝에서 끝으로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 수는 얼추 헤아려도 족히 백여 개는 넘어 보였다.
그 병상에,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코넬리아는 커크와 로드리에게 ‘여기서 기다려라’는 의미로 손짓을 했다. 그리고 커크에게서 램프를 건네받고.
혼자서. 천천히, 병상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으으… 으으으….”
“아… 아아… 아윽…”
“끄으윽… 아파… 아… 아파….”
시큼한 냄새.
의미가 사라진 신음.
누워있는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노인과 젊은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 뒤로 걸어갈수록 고통스러운 목소리는 점점 어려지고 옅어졌다.
“아… 엄마… 어, 엄마….”
눈가가 시커메진 아이들. 푸석푸석하고 퀭하니 마른 얼굴의 그 시선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마지막 병상으로 다가갔다. 아직 예닐곱 살로 보이는 어린애가 입을 벌리며 누운 채로,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침상의 곁에 있는 간이형 수액 장치에서 연결된 관이 아이의 팔오금에 연결되어 있다.
“어?”
그걸 본 코넬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구멍이 뚫린 침상 아래에는 변을 받는 통이 있었다.
몸을 숙이고, 코넬리아는 배변통을 당겼다. 반 틈 차서 묵직하게 출렁거리는 배변통에 채워진 물처럼 묽은 변에는 자그마한 알갱이가 흩어져 있었다.
“오, 세상에…….”
코넬리아는 배변통을 다시 원래 위치로 밀어 넣었다.
허리를 세우면서, 소녀는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콜레라(cholera)가 돌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이 빨라졌다. 소녀는 놀란 감정을 숨기고 커크와 로드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 순 없었기에, 셋은 다시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정말로 지역 의원에서 협조를 안 했습니까?”
나오자마자, 장갑을 벗어서 폐기물 봉투에 넣고, 코넬리아가 말했다.
“이 상황을 알렸는데도 아무런 협조도 오지 않았다고요? 정말입니까?”
“예. 불행하지만 사실입니다.”
“말도 안 돼.”
턱을 쓰다듬으면서 코넬리아는 내뱉었다.
“이건 구빈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트나 시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걸 왜, 어째서 조처하지 않는—”
그러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뭔가 이상한 지점에 코넬리아의 질문이 달라졌다.
“커크 씨. 언제부터 수액 장치를 썼습니까? 누가 설치했죠?”
“제가… 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코넬리아의 앞에 서 있는 커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피곤함에 찌든 여성의 목소리는,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복도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선잠을 취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손을 들고 있었다. 기껏해야 자신—렉스였을 때—의 나이와 엇비슷해 보이는, 막 어른의 풍파를 맞고 있는 여성이었다.
완전히 지쳐 보이는 안색으로, 간호사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