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3막 (上) 내일은 아주 바쁜 하루가 될 테니 (3)
로드리의 막말은 그저 단어 나열에 불과할 뿐, 특별히 깊은 의미를 담았는지 해석할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란 건 누구보다도 코넬리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나야 뭐 맛있는 거 먹으니까 좋긴 한데.”
그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손에 들고 있다.
“로드리.”
“왜.”
“내가 예전에도 이렇게 단 걸 좋아했었던가.”
특별히 의식해서 관찰하지 않는 한, 타인이 아닌 본인의 습관은 의외로 알기 어렵다. 소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 걸 딱히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지?”
“예전이란 건 어느 정도의 기간을 말하는 거야. 태어나서부터?”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이미 해가 저문 지 한참이 지난 시각. 시가지는 빼곡하게 들어선 가로등의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수은등 아래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란히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는 둘.
검은색 보닛*을 쓰고, 평범한 외출복 위로 허름한 감색 숄을 두르고 있는 코넬리아. 그리고 소녀와 약간 거리를 두되 곁에서 함께 따라 걷는 로드리도 신사복으로는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 인버네스 코트* 차림이다.
“끙… 그러니까 요컨대…”라 말하면서 고민에 빠진 코넬리아의 커다란 모자가 살짝 기울어졌다.
“의학원을 다니던 때. 그때의 내 식습관에 대해서 말해줘.”
“튀긴 음식을 좋아했지. 동방에서 온 차를 즐겨 마셨고, 유제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가당 음료수나 제과점 디저트를 좋아하였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별나진 않았어.”
정확하게 코넬리아가 물어보았던 그대로의 답변이었다.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기 어려운 건 로드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직접 묻자. 그렇게 생각하고 코넬리아는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에는 내 입맛이 바뀐 거 같냐.”
“반년 전의 ‘수술’을 기준으로 봐서 달라지긴 했지만—”
덤덤하게 말을 이어 나가던 로드리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코넬리아의 한쪽 어깨를 자신의 품에 안듯이 끌어당겼다.
“저거 보이지? 응?”
그가 가리킨 건,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기둥으로 세워진 사거리 이정표였다.
“여기에서 윙킹 스퀘어 가든 쪽으로 가면 돼. 오른쪽으로 꺾어야지.”
“어, 으응.”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목적지를 알고 있는 로드리가코넬리아를 이끌고 가는 게 맞았다. 이렇게 일일이길을 알려주는 편보다 훨씬 덜 번거로운 게 당연하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로드리는 코넬리아를 앞장세우고 있었다.
9호실에서 나설 때부터, 그는 이 거미줄처럼 길과 거리가 복잡한 항만도시에서 약도 따위로 길을가르쳐줄 생각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내가언제 죽더라도 너 혼자서 9호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로드리가 죽는 모습은 좀체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히 극단적인 걱정이었다.
그렇다고아예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쓸모없는 대비는 아니었다. 코넬리아는 9호실부터 그의 방향 지시를 외우면서 걷고 있었지만.
“이제 슬슬 놓지?”
조금은 아플 정도로, 로드리는 소녀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찌릿하고 째려보자 그는 손아귀에 들어갔던 힘을 풀었다.
몇 걸음 훌쩍 떨어져서 팔을 빙글빙글 돌리는 코넬리아에게 로드리는물었다.
“어땠어.”
“어땠냐니, 음음. 뭐.”
얼마 안 남은 츄러스를 입에 다 털어 넣은 코넬리아. 그런 소녀의 목에서 갑자기 헛기침을 터지게 할 정도로, 로드리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피보호자인 너와의 거리감을 일거에 좁히는 행동으로 큰 환심을 얻으려는 행동이었는데.”
도저히 장난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별로였는가 보네.”
“아 씨 정말… 정말, 이런 걸 누구한테서 배웠어, 너!”
아까 밑도 끝도 없는 도발을 한 것도 그렇고. 지금 또 되지도 않은 환심 운운을 하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아닌 로드리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건, 분명히 ‘배후’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누가 배후로 있느냐’보다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게 시켰느냐’란 궁금증이 더 크게 들긴 했지만 말이었다.
발을 쿵쿵 구르면서 걸어가던 코넬리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 자식. 어떤 놈한테 배운 걸 지금 나한테 써먹어 보는 건가?)
그렇다면 좀 전에 의미를 알 수 없었던 행동도 설명이 된다.
더는 뭔가 얻어낼 건더기도 없는 사이끼리 주고받았던, 정체불명의 기분 나쁜 행동들.
“로드리. 조금 전의 신체 접촉은 말이지.”
큼큼. 헛기침하고. 코넬리아는 말했다.
“너 정도의 외모면 다른 이성한테는 먹힐 수 있다. 그건 내가 보장할게.”
“렉스는 허튼소리로 보장을 하는 인물은 아니지. 나도 조금은 내 얼굴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군.”
“와, 그런 거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대화가 삐걱거리면서도 용케 탈선하지 않고 이어진다. 이쯤 되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아무튼 우리 사이에는 필요 없는 짓이니까. 나한테 갑자기 그런 거 하지 마. 단순하게 그냥 기분 나쁠 뿐이라고. 진짜.”
“우리 사이. 우리 사이….”
몇 번 입안에서 우물거리고는 “좋은 어감이네.”라 말하는 로드리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코넬리아는 짧은 한숨을 내쉬는 걸 숨기지 않았다.
탄식을 뱉는 십 대 초반의 소녀와 그 뒤에서 에스코트하듯 주위를 경계하며 따라 오는 이십 대 중반의 청년.
“이왕 말하는 김에 잔소리 좀 더 할게. 엇차~”
양팔을 벌려서 균형을 잡으며, 코넬리아는 인도에 포장된 타일의 선을 따라 걸었다.
“예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확실하게 한 가지 말투를 정하는 게 좋겠어. 너무 오락가락하는 말투를 쓰면 사람들이 당황한다고. ‘우리 사이’에서는 그럴 일이 없어도.”
“사람의 말에는 감정이 담기니까,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말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흐이구. 말대꾸할 때는 또 강직한 말투가 된단 말이지.”
폭이 반 뼘도 되지 않는 하얀 타일의 선을 따라서.
코넬리아의 자그마한 발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딘다.
“하긴 너처럼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말하는 게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르, 지—…!”
사뿐사뿐 걸어 나가던 소녀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어차피 평지에서 장난을치는 것일 뿐이니까. 기껏해야 한 발자국만 옆으로 옮겨도 될 일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로드리가 코넬리아를 옆에서 안전하게 낚아채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잖아, 안 그래?”
마치 파티에서 함께 왈츠를 추는 파트너의 허리를 감싸 쥐듯, 소녀를 비스듬하게 품에 안고 말하는 로드리.
조금만 이마를 숙이면 코끝이 스칠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보던 코넬리아는.
“푸후, 그렇긴 하지.”
옛날 일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소꿉친구란 건 대단하다니까. 고마워.”
원래의 몸, 렉스였던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
지금의 몸인 ‘코넬리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를 이어주는 친구.
이 둘이 겨우 반년 전만 하더라도 배드민턴 실력이 호각이었던 소꿉친구 사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정말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 적었다.
“그래도 여기서는 우리 사이를 아는 사람들이 없을 거니까, 남들 눈치 안 봐도 되는 건 좋네~”
균형을 제대로 잡고, 이제는 괜히 장난치지 않고 평범하게 걸어가는 코넬리아. 소녀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외국어를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말했다.
“윙킹 스퀘어 가든에 다 온 거 같은데, 이제 어디로 가?”
“마지막으로 암기 확인을 하자.”
변함없이 제멋대로 대화의 조타키를 휙휙 돌리는 로드리. 그는 가든 울타리 주위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코넬리아는 그러려니하고 그의 옆에 앉았다.
가로등으로 새하얀 빛이 가득 채워진 정사각 꼴 소형 광장은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거리 어디선가 극단 공연이 끝나고 우르르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로 제법 북적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만약 군복을 입고 있었다면 상당히 주변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꽤 멋진 인버네스 코트를 입고 무게를 잡고 있는 로드리의 옆얼굴을 보던 코넬리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팡팡 두드렸다.
“좋아. 물어봐!”
기합이 잔뜩 들어간 소녀를 보면서. 로드리는 엄격하고 근엄,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네 이름은?”
“제인. 제인 에이번.”
“네가 여기를 방문하는 건.”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서.”
“고향은?”
“위더랜드.”
“상세한 주소.”
“연합왕국 서부 위더랜드 시 외곽 제1교구 소속 성 아우구스투스 구빈원(救貧院).”
“바트나 시에는 왜 왔지?”
“엄마 손만 붙잡고 따라와서 모름.”
“엄마의 이름은?”
“메어리 에이번.”
“바트나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두 달 정도.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금요일인 건 기억하고 있음.”
“종교는.”
“연합국교회.”
“신국기도 2장 9절.”
그 말에 코넬리아는 무릎 위로 깍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이샤카의 부름에 답하노니, 사랑하고 타기(唾棄) 하는 모든 것에 삶의 기쁨이 있으라. 그대를 여신의 믿음에 부르오매, 하늘이 굽어살피는 모든 것에 평화가 있어라. 팍스 파렘.”
기도를 마무리한 소녀는 왼쪽 눈을 살며시 떴다.
“정확하지?”
“괜한 걱정은 안 들 정도로 정확하군. 렉스.”
로드리는나무 벤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서려는 코넬리아의 어깨를 감쌌다.
“글쎄 나한테 이럴 필요는—”
“목적지. 바로 저기에 있다.”
로드리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중후한 석조 건물이 있었다.
아낌없이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는 첨탑의 끝에는 커다란 종이 매달려 있고. 언뜻 보면 종교 건물처럼 보이는 그 지붕 위에는, 언덕 아래의 광장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간판이 달려 있었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널빤지를 이어 붙인 간판에 적여있는 그 이름은 [바트나 시립 구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