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막간 / Intermission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린—기껏해야 십 대 초중반 즘으로 보이는 연령대인— 소녀가 온 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같은 군사기관 사이에서도 특별히 얼굴 한 번 보기 어렵기로 소문이 난 종립(宗立: 종교 기관이 설립한 조직 및 단체) 구원군이 9호실에 찾아왔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하였다.
이 소녀의 ‘보호’.
그럴싸한 죄목과 함께 단기 수감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녀를 정중하게 데리고 왔던 장교는 말했다.
『시 외곽엔 구원군이 보호 관리하는 성천(聖泉)이 있다.』
시종일관 불안한 기색으로 주위를 경계하는 장교의 손은 혁대의 권총 홀스터에 얹어져 있었다.
『매일 오전, 내가 직접 이곳으로 성천수를 배달한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대신 부탁하지 않는다. 나 외엔 그 누구도 만나게 하면 안 된다.』
장교가 속한 구원군(救援軍)은, 일반적인 군과는 다른 계급과 직군을 가지고 있다. 국교회 소속이자 바트나에서 가장 큰 교구가 창설한 조직인 ‘구원군’의 편제는, 백여 년 전 과거에 사라진 왕국의 편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일반인이 헷갈리는 건 당연하고 마틴 또한 정확하게 모든 구원군 계급을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마틴은 그 장교의 말에 가타부타 따지지 않았다.
군복 옷깃에 붙은 붉은색 패치 위. 오직 왕가로부터의 명령만 받들어야 하는 자가 달 수 있는 황금 루피너스(lupinus) 계급장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직위의 무게 때문인지 몰라도, 장교의 말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딱딱한 말투였다.
『저 애가 원하는 거 있으면, 이곳에서 나가는 거 빼고는, 뭐든지 다 들어주도록 한다. 물론, 9호실의 규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눈썹 위에서 시작되는 흉터는 길게 얼굴을 반 바퀴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그 험상궂은 얼굴의 장교가 한 부탁은 그리 힘든 건 아니었다.
소녀가 원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수수한 물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틴은 201호에서 머무른다. 그 방에서 수감 중인 소녀는 번거롭게 그에게 부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거나, 식사 말고 따로 달콤한 도넛을 먹고 싶다거나.
그나마 특별했던 부탁으로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거나.
마틴은 ‘9호실에서 흡연은 오직 지궐련만 허용되고, 오직 하루에 한 개비만 가능하고, 불을 붙이는 것 또한 자신이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만 허용된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불만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보였던 소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눈에 띄게 빠른 적응을 하였다. 그 증거로 소녀는 벌써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음. 음음.”
기본적인 대화를 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언어라고 부를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소녀는 재촉하였다.
마틴은 커피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창문부터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코니 양”
“으음!!”
정겹게 건넸던 인사는, 사나운 신경질로 되돌아왔다.
소녀의 다문 입술 사이로 물려 있는 담배가 부지런하게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꽤 도전적인 행동을 보이는 소녀를 무시하고 환기를 마친 다음, 마틴은 품속에서 적린(赤燐) 성냥갑을 꺼냈다.
“하루에 한 개비. 그 이상은 불을 붙여 드릴 수 없습니다.”
매일 똑같은 고지를 하면서 그는 마찰 면에 성냥을 그었다. 파르르, 하고 노란 불꽃이 붙은 성냥개비를 향하여 소녀는 몸을 숙였다.
“흐음-”
깊게 담배를 빨아 당긴 소녀는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혔다. “후우” 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 문 지궐련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곧이어 원래 자세로 돌아온 소녀—코니의 눈빛에는 초롱초롱한 생기가 돌아왔다.
“커피와 도넛, 그리고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싱싱한 조간신문까지.”
촤악- 하고 시원하게 신문을 펼친 코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완벽함.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지. 고마워, 마틴.”
“고맙다니 별말씀을요.”
마틴의 겸양 섞인 대답을 들은 코니는 신문을 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마틴도 주급을 받는 만큼 일을 하는 거지. 특별히 감사할 필요는 없는 걸지도 모르겠군.”
“하하….”
뭐라고 답변을 하기 어려운 의견이었다. 마틴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나서야, 코니는 신문에서 눈을 떼고 그를바라보았다.
“농담이었는데. 안 웃겼어?”
“예. 꼼짝없이 진담으로 들리는 내용이었어요.”
“역시 유머 감각은 머리로 공부한다고 익혀지는 게 아닌 건가.”
코니는 담배를 쥔 손으로 눈썹과 눈썹 사이를 두드리며, 살짝 찡그렸다.
“마틴. 우리 얼굴 본 게 일주일쯤 됐잖아.”
“그렇죠. 오늘이 7일째입니다.”
“슬슬 말 편하게 하는 게 어떨까? 서로 나이도 비슷한 사이인데.”
장난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는 코니.
마틴은 자기 동생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녀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고, 고민 끝에 대답하였다.
“저, 이것도 농담인가요?”
마틴의 말에 코니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소녀는 사레라도 들렸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연거푸 콜록거렸다. 급히 마틴이 성천수가 담겨 있던 투명한 유리물병에서 미적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왔다.
꿀꺽꿀꺽 마시고 간신히 숨을 고른 소녀는 재떨이에 아쉬운 담배꽁초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여기처럼 부담스러운 분들이 오는 곳에서, 말의 공손함은 나이가 아닌 직위로 나누고 있겠지. 뭔가 나 혼자서 편하게 말을 하니까 미안한데.”
“괜찮습니다. 저는 공손한 표현이 더 편합니다.”
마틴의 입장에서는 과장 없이 진심이었다. “아. 그래?” 하고 대답하고, 흥미가 식은 소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틴 또한코니에게서 눈을 떼고, 자신의 커피가 담겨 있는 머그잔을 쥐었다.
열려 있는 창밖으로 불어오는 아침 공기는 시원하고 맑았다.
겨울엔 바트나 시 북쪽 공업지구의 매연이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고, 지금처럼 해가 조금만 높이 떠도 쉽게 공기가 달구어지는 여름에는 반대가 된다.
남쪽으로 붙어 있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도시 전체를 쓰다듬는다.더군다나 여기는 시의 중심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는 남쪽 교구.
주택가의 나지막한 붉은 지붕보다도 많이, 커다란 참나무의 푸른 잎으로 만들어진 천장이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열린 창문을 액자 삼아 풍경을 바라보며.
때때로 도넛을 먹고, 메인 목을 커피로 쓸어내리면서, 거리에 들려오는 일상적인 소음을 배경으로 삼아.
코니는 그저 느긋하게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 소녀를 지켜보면서 마틴의 머릿속에 궁금증 하나가 떠오른다.
‘저 작은 몸에 저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걸까?’
원칙대로라면 간수는 수감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낮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칸막이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가 코니와 나란히 둥근 탁자를 함께 쓰고 있는 건 수감자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를 9호실로 데리고 왔던 장교의 주위 공기는 긴장감이 빽빽하게 들어 채워져 있었다. 그 주변에서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
그랬던 보호자와는 정말로 정반대의 분위기였던 코니는 ‘혼자있으면 심심하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자신의 앞에 늘 마틴을 앉혀 놓고 있었다.
거꾸로 소녀가 마틴을 감시하고 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마틴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신문을 바르게 접었다.
시계 분침이 한 바퀴 돌기도 전에 꼭꼭 씹어서 읽은 일간지에는 기사보다도 광고가 많았고, 그나마 실린 기사마저도 절반 이상은 기사인 척하면서 돈을 받고 써주는 실질 광고.
그나마 신간 소설이나 연극에 대한 기사라면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봤겠지만, 마틴이 오늘 읽은 신문에는 별로 구미가 동하지 않은 부동산 광고가 한가득하였다. 읽는 둥마는 둥 하면서 넘겨버린 아쉬운 지면을 떠올리던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코니 양.”
“응.”
“다른 신문은 필요 없으신가요?”
마틴이 가져오는 신문은, 매일 정기적으로 공공기관으로 납부되는 인쇄물이다.
그중에서도 이 소녀가 매일 읽는 일간지는 여러 신문 중에서는 비교적 그 유명세가 크지 않은 것이었다.
“다른 것도 읽어볼게. 일단은 이거 다 읽으면.”
코니는 읽고 있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소녀가 펼쳐읽고 있는 신문 1면에는 화려한 흑체(black letter; 강직하고 굵은 활자)로 『앨버스 포스트』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아무래도 수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소식 쪽이라서.”
코니의 말에 마틴은 내심 이해하였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지금 소녀가 읽고 있는 신문은 정통 언론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적어도 귀족 자제가 진중하게 분위기를 잡을 때 옆구리에 끼고 있을 신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는 해도 마틴의 눈에 보이는 소녀는 아무래도 가십에 흥미가 많을 연령대이니,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한창괴담을 주워섬기던 동생을 떠올리면서, 자신도모르게 입가에 지은 미소.
그 미소가 소녀의 시야 범위에 들어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당신. 지금 ‘여자애니까 이런 시답잖은 거나 좋아한다’라고 생각한 거지?”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생각을 쥐어 짜내려는 동안 말은 필연적으로 끊어지게 된다. 즉답하지 못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뻔했다.
“아닌 척하기는.”
소녀는 읽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당장이라도 화산처럼 분노와 스트레스를 폭발시킬 줄 알았지만, 의외로 코니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는 거꾸로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댁의 추측이 아예 틀린 건 아니지. 그래도 대부분 틀린 거긴 해. 자극적이고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흥분하는 건 여자애들이나 그런 게 아니야. 남자애도 똑같거든.”
“예?”
“나도 남자라고.”
코니는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육체는 십 대 초반의 여성이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제 인격은 스물다섯 살의 남성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소녀는, 자못 심각한 듯 눈매에 힘을 빡 주었다.
“삼 년 전에는 제식 훈련도 받았고, 열 발자국 안에서 더블액션 리볼버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쏠 자신 있다고.”
“허, 허어—….”
뭐지?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
뜬금없는 코니의 말에, 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마틴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
경쾌하게 웃은 코니는 집게손가락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슥 문질러 닦았다.
“나 혼자 웃긴 농담이라서 뭔가 미안한걸. 마틴.”
“그, 그렇죠. 농담인 거네요.”
“응. 농담인 편이 좋겠지. 나만 재밌는 농담.”
소녀는 테이블 위에 내려둔 앨버스 포스트 지(誌)위로 엎드렸다. 웃음기가 아련하게남아 있는 자그마한 얼굴을 신문에 폭, 박고.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콩, 콩, 콩.
엎드린 채로, 애꿎은 신문을 이마로 가볍게 박았다. 목 옆으로 느슨하게 양 갈래로 묶어 내린 금발의 머리칼도 규칙적으로 찰랑거린다.
자해(自害)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리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틴이 자리에서 일어나던 바로 그때.
“왔다! 이 녀석아!”
벌컥,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체크무늬 모자를 눌러 쓰고 검은색 인버네스 코트를 입은 청년의 품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 커다란 유리병이 들려져 있다. 장교복은 아니었지만, 사복으로 위장을 하더라도, 얼굴의 긴 흉터는 숨길 수 없었다.
일주일 전, 코니와 함께 9호실에 왔고, 매일같이 성천수를 들고 찾아오는 장교였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코니는 고개를 들었다.
“아 진짜…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약간 빨갛게 물들어 반들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가린 소녀는, 다시금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 야, 로드리, 푸흡, 너 그거 뭐야, 탐정 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그런 건 놀이로 하는 게 아니다.”
도통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장교—로드리의 얼굴은, 지금처럼 사사로운 잡담이 오가는 때에도 여전했다. 그는 마틴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전 마땅히 해야 할—.”
“데이비스 중령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으니, 점심시간에 확인하라. 소위.”
마틴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로드리는 창가 탁상에 성천수를 올려두었다.
“오늘 밤에 나간다. 말괄량이 자식아.”
“나간다고?”
엎드려서 킬킬 웃던 코니는, 들려오는 단어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동자가 반짝이는 소녀를 보면서 로드리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래.”
장교는 한 손가락으로 모자챙을 올리면서 말했다.
“소독(消毒)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