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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2막 (下)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 5 (35/111)



〈 35화 〉2막 (下)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 5

아내 앞에서 조금  머무르고 싶다는 클레멘트와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코넬리아는 재클린과 함께, 열기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천이 흐르는 시가지와 언덕 위 공방지대를 연결하는 열차 노선은 단 하나뿐이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톱니기관차는 조금만 어두워져도 일찌감치 차고지 안으로 들어간다.

만약공방지대에 온 관광객이 마지막 차편을 놓치면 꼼짝없이 공방지대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밖에 없다.

마차나 도보로 통하는 길이 없는  아니다. 다만 그 험준함이 예사롭지 않아서, 토박이 주민이 아니면 대낮에도 쉬이 다니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그 느끼한 남자는 아직 기다리고 있으려나?”

허둥지둥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코넬리아는 걱정이 되는 어투로 말했다.

베이지색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하얀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걷는 코넬리아.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응!”

체력 게이지가 쭉쭉 줄어드는 소녀와는 달리, 재클린은 여유 있는 보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내가 부탁했으니까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 확신이 근거가 있는 확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코넬리아는 스스로 생각해도 특별히 비관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낙관적인 성격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낮에 만났던 모겐스와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없다. 아무리 재클린이 두둑이 돈을 얹어서 줬다고 해서 그걸 정직하게 지키고 있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아니지,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지.’

바쁜 걸음을 움직이며 코넬리아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나쁜 쪽으로 하는 생각은 한도 끝도 없이 최악의 가능성만을 떠올리게 된다. 억지로 좋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도, 그렇다고 굳이  좋은 생각만 떠올릴 필요가 없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무엇보다도. 애초부터 애꿎은 모겐스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만약 모겐스는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재클린의 희망대로 가정하면.

‘제일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약속 시각보다 늦을 수도 있다는 거지.’

코넬리아는 가쁜 숨을 쉬었다. 그래도 소녀의 걸음걸이에서 힘들어 지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남 탓만 할 게 아니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도 코넬리아의 얼굴에 떠오르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에 대한 책임감.

그 옆얼굴을 바라보던 재클린이 소리 없이 웃었다. 바쁘게 걷는 와중에도, 코넬리아는 시야 가장자리에 들어온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허억 헉, 왜 웃는 거야, 동생?”
“별거 아니야. 내가 그냥 오빠를 들고 뛰어도 되는 걸, 굳이 거절하고 열심히 걷는 모습이 멋있어서!”
“칭찬은 고맙지만, 헉, 그런 거는 ‘그냥’이라고 할 만한  아니거든.”

순식간에 컴컴해지기 시작하는 주변을 보아하니, 재클린의 품에 들려져서뛰더라도 괜찮을  같기는 했다.

마음속에서 달콤한 유혹이 뭉게구름처럼 뭉실뭉실 떠오른다.

“허헉, 뭐, 그래도 동생한테, 헉헉, 이런 것까지 의지할 수는, 없지!”

공방에서부터 약속 장소까지는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았다. 게다가 클레멘트를 만나러  때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였으니, 돌아가는 길은 걸음이 가벼워지는 내리막길.

공방이 아닌 시립 기념묘지에서 출발했으니 거리가 좀 더 늘어나긴 했어도 말이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던 둘.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열기구는 조금 축 늘어져 있기는 했어도, 있어야  자리에 있다.

모겐스는 바스켓에 기대어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짱을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멀리 공방지대 아래 시가지를 구경하고 있던 그는, 재클린이 가까이 다가오자 급히 영업용 미소를 머금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자아, 어서 타세요.”

낮에는 언제 혼쭐이 났었냐는 듯.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접객하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겐스는 바스켓을 열어서 재클린과 코넬리아가 올라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저도 모르게 가슴께에 성호를 긋는 코넬리아를 보면서 슬쩍 웃고, 모겐스는 점화 버너를 조작하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청년의 말은 다행히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두둥실 떠오르면서 서서히 고도를 조정하며 낮아지는 열기구는, 낮에 올라갈 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에는 운행하지 않습니다만, 저녁나절은 이렇게 평온하죠. 낮에는 그, 죄송했습니다.”
“괜차나, 괜차나. 지나간 일이니까.”

모겐스의 사과를 받는 둥 마는  하는 코넬리아는 뭔가 생각이 있는 듯하였다.

순식간에 공방지대에서 시가지로 내려오는 하강 속도를 능숙하게 조절하여, 마치 깃털이 땅에 닿는 것처럼, 모겐스는 열기구를 부드러이 착륙시켰다.

“그럼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작별 인사는 조금 일러요.”

그렇게 말한 재클린은 코넬리아와 눈빛으로 의견 교환을 하고, 모겐스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도 부탁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예에?”

이런 부탁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모겐스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틈을 놓치지 않고 재클린은 주머니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었다.

“오전 7시쯤에 올 겁니다. 물론 삯은 충분히 낼 거랍니다!”
“하하.”

가볍게 웃은 모겐스는 열기구 버너 옆에 걸어둔 램프 걸쇠를 풀어서, 얼굴 높이로 들었다.

“산길은 어두우니 상점가까지는 모셔 드리겠습니다. 내일은 다른 동종업자를 찾아보시죠.”

겉으로는 친절해도 그 속마음에서는 모겐스의 인간미가 어김없이 엿보였다.

‘낮에 그런 짓을 당했는데 내가 뭣 하러 내일 또 태워? 재수 없게시리….’

어차피 딱 말투만 들어도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손님일 뿐이다. 뒷배가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후환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나름대로는 소소하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쩨쩨한 복수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모겐스를 빤-히 바라보던 재클린도 웃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모겐스 씨를 번거롭게 하는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 거예요.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데… 안 될까요?”
“저기요, 손님. 제가 굳이 돈 때문에 그러는 건—”

 어느 상황에서도 매끄럽게 돌아갈 것만 같았던 모겐스의 입이 작동을 멈췄다.

“내일도 오늘처럼 오르락내리락 한 번. 어려운 부탁은 아니죠?”

희미한 램프 등의 빛으로도 번쩍번쩍 빛이 나는 금화.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영물(靈物)이자, 그 존재가 과학혁명기에 밝혀졌음도 여전히 신성스러운 존재인 드래곤이 새겨진 무역용 금화다.

무지막지한 순도 만큼이나 그 가치와 무게도 엄청나서,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물건은 아니다. 바다 건너 구대륙으로 상당량의 현금을 이송할 때 교역 화폐로 서로 환전을 할 수 있도록 쓰였던 초고액의 금화.

시대가 흐르고 금융업이 발전하면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무역용 금화를 쓰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지만.

“후와…. 쓰읍.”

일반인은 일평생 볼 일이 없을 그것을 모겐스는 용케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는 모겐스를 보면서, 재클린은 가죽장갑을 낀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굴렸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모겐스 씨?”
“으으으윽. 도, 돈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쇼!”
“어머나.”

억지로 시선을 돌리고 내뱉은 그의 거절에, 재클린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 옆에서 코넬리아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 형은 흥정을 못 해도 너무 못하네. 다른 데 가자. 조수.”
“아뇨, 아니, 그게….”

모겐스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성큼성큼 바스켓에서 먼저 내린 코넬리아.

어두운 발밑에 한  크게 휘청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았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팔을 날개처럼 펼친 자세로 코넬리아는 말했다.

“우리가 억지스러운 부탁을 한 것도 아니잖아. 굳이 엎드려 기어줄 필요 없지. 그치?”

그렇게 말한 코넬리아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내려, 조수. 이 형아가 원하는 대로 후딱 꺼져 주자고.”

자존심과 돈 사이에서 잠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겐스의 앞에 재클린은 재차 금화를 내밀었다.

- 안 가져가시려고요?

마치 금화가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속마음의 메아리가 되울려 점점 커지는 욕심은 그의 생각의 방향타를 마음껏 뒤틀었다.

거절하기에는 역시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직 밤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검푸른 새벽 무렵.

둘은 다시 모겐스를 만나서 공방지대로 올라갔다.

시골의 아침이 빠르다고 하여서 도시의 아침이 특별하게 늦는 건 아니다. 가로등이 꺼진 공방지대의 거리에는 여러 공방의 열린 창가 밖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갓 구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제빵소는 부지런한 몇몇 고용인들이 두툼한 종이봉투를 들고 가게에서 나오고 있다.

절로 걸음을 멈추게 되는 향긋한  냄새의 덫을 이겨낸 둘은 곧장 클레멘트의 공방으로 향했다. 집사의 안내를 따라 응접실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딱 맞춰서 왔군.”

작업장 계단에서 올라온 노인은, 고글을 머리 위로 올린 채 기름때투성이인 작업복 차림이었다.

긴 소매의 웃옷을 허리춤에 묶어서 그대로 드러난 상체는, 얇은 셔츠를 팽팽하게 채우는 근육의 형태가 잡혀 있다. 형식적인 아침 인사도 없이 노인은 코넬리아에게 주입기를 줬다.

“주입하는 성수의 분량을 훨씬 늘릴 수 있을 거라네.”
“다짜고짜 설명입니까.”

중얼거리면서 코넬리아는 받은 활력 주입기를 살펴보았다. 예전에 부착되어 있던 투명한 실린더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살짝 눈을 찡그리고 이리저리 주입기를 보던 코넬리아는 달라진 점을 찾는  포기했다.

“언뜻 보기에는 주입구 부분만 교체한 것 같습니다만.”
“크크, 실린더 재질도 바뀌었고, 비효율적으로 낭비되었던 압축률도 올라갔다고.”
“압축률…?”

코넬리아가 중얼거린 혼잣말. 그 말을 들은 클레멘트는 신나게 떠들었다.

“실린더 내에 압축되는 기화 캐퍼시티를 확장했다고! 동일한 이상 기체를 사용하더라도 단위 밀도가훨씬 올라갔으니, 활력의 양이 성수라는 매질에 (…중략…) 카르노 기관의 작동 기전만으로는 인공 심장의 지속 가능한 수축-이완 운동량을 (…중략…)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 으응, 적절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알아먹을수 없는 노인의 말을 이해하는  진작에 포기했다. 그래도 코넬리아는 대답만큼은 시원시원하게 하였다.

“그래서 제가 뭘 조심하면 되는 겁니까?”
“나라고 해도 그건 모르지. 성수에 있다는 활력이 실제로 네 인공심장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난 모르니까.”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부디 조금 전의대화를 재클린이 대신 이해하였기를 바라면서. 코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넬리아 자신도 수도 밖으로 나와서 주입기를 직접 사용한 경험은 아직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들어가는 성수—에 들어 있는 활력—의 양이 늘어나면, 인공 심장이 작동하는 기간이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게 클레멘트와 코넬리아가 기대하는 효과다.

하지만 운이 없으면, 예상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일단은 정량대로 활력을 주입하면서, 매번 조금씩 늘려 볼까?”

재클린의 말이 현실적인 최선의 방책이긴 하였다. 그래도 코넬리아는 어딘가 찜찜하였다.

“그래야겠지. 그렇게는 한데… 으음….”

애매하게 말하는 걸 싫어하는 코넬리아도, 지금만큼은 확언하기가 어려웠다.

약(藥)과 독(毒)은, 분량의 차이다.

약을 많이 쓰면 독이 되고, 적절한 분량의 독은 약이 될 수도 있다.

인공 심장을 움직이는 데에 쓰였던 활력 또한. 그 분량이 지나치면, 독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도처럼 활력이 펑펑 넘쳐나는 곳에서도 그게 독으로 작용한 적은 없었잖아.”
“응.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연합 왕국의 수도인 앨버스, 그리고 왕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성지(聖地)에서는 문자 그대로 ‘숨 쉬듯이’ 사람들은 활력을 들이킨다.

일상생활에서 함께하는 활력은,  대부분이 코와 입으로 들어온다. 주입기의 실린더를 통해 직접 쑤셔 넣어야 하는 코넬리아의 경우와는 분명히 다른 방식이긴 하였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아니야. 이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지.”
“그럼 개발국으로 간다는 거?”

만면에 미소를 띠는 재클린. 코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앨버스로 돌아가는  좀 허무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어차피 돌아갈 곳이긴 하니까!”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야 뭐 다행인데….”

어차피 레드우드 시에서 경의사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좋든 싫든 수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재클린의 얼굴이 봄꽃처럼 화사해졌다.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조금 이상할 정도로 감정선이 올라간 재클린에게 코넬리아가 무언가를 물어볼 틈도 없이. 큼큼, 헛기침한 클레멘트가 앞질러서 말했다.

“그럼 자네들은 이대로 바로 수도로 돌아갈 생각인가?”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거짓말로 괜스레 둘러대었다가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주입기를 재클린에게 건네어 주면서, 대화 흐름에 어긋나지 않게 코넬리아는 적당하게 대답했다.

“아직 레드우드 시에는 다른 볼일이 있습니다. 동구 쪽으로 가 봐야 하거든요.”

레드우드 시는 철도를 기준으로 세 구역으로 나뉜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공방지대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각종 광석이 풍부한 탄광과 수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서구(西區).

국영 철도 노선을 중심으로 발전한 중구(中區)를 경계로 해서 그보다 동쪽으로는 완전히 새롭게 떠오르는 공장지대인 동구(東區)가 있었다.

지부가 있는 곳은, 공방지대가 있는 서구와는반대 방향인 동구 쪽이다. 원래 일정이었다면 코넬리아와 재클린은 레드우드에 도착하자마자 의원협회 지부를 먼저 찾아가야 했었다.

“흐음…. 거기에 볼일이 있다면 가야겠지.”

노인은 ‘동구’라는 단어에 자못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조심하라고, 꼬맹이. 그쪽의 아가씨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클린은 전달받은 활력 주입기를 파우치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

“다음에수도에 오시면  연락 주세요!”
“아무렴.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라네.”

크크, 웃으면서 노인은 고글을내려썼다.

“귀찮게 자꾸 물어봐서 미안하다만, 여기 도시에서 볼일이 끝나면 바로 수도로 가는 건가?”
“조금 더 솔직하게 물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클레멘트 씨.”
“허어. 무슨 말인가? 난 충분히 솔직해.”

너스레를 떠는 노인에게 코넬리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는 거로 설욕하였다.

어차피 이 영감이지금 당장 궁금한 건, 지금 이 도시에 없는 아들의 사정이겠지.
클레멘트와 아들이—자세한 가족 사정은 몰라도—하루라도 일찍 감정의골을 메우도록 설득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코넬리아 자신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겠지?’

굳이 노인에게 아주 정확하게는 말할 필요는 없다. 설령  노인이 다른 사람에게 실언으로 흘리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코넬리아는 적절하게 대답했다.

“볼일을 마친 이후에는 좀 더 남쪽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바트나를 들리겠군.”

속셈을 감추는 척도 하지 않는 클레멘트. 그런 노인을 보면서 코넬리아가 손을 가슴 앞으로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바닷가재 요리를 안 먹을 수는 없죠.”

그리고 상상 속 나무망치를 쥐고, 상상 속의 바닷가재 껍질을 톡톡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레드우드에서 하루 이틀 사이에 떠나지는 않으니, 편지라도 미리 보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 셈이라고. 흥, 꼬맹이가 괜한 참견을.”
“진짜 번거롭네, 이 할아버지!”

코넬리아의 장난기 섞인 분노에서, 정말로 화가 나는 심정이 절반.

그걸 뺀 나머지 절반은, 클레멘트의 변화가 눈에 띄게 보인다는 놀라움이었다.

원래 이렇게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클레멘트의 마음과 행동이 훤하게 보였다. 겉치레로 주고받는 게 아닌 알맹이가 담긴 대화를 나눈 코넬리아와 재클린은, 클레멘트와 작별을   응접실에서 나왔다.

그대로 공방에서 나서려는 찰나에.

“주인님과 긴 시간대화를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가 둘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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