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2막 (下)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 1
여태까지 사람의 뼈를 본 경험은, 셀 수 없다. 카데바 해부 실습은 물론이거니와 실제로 외상 진료에서도—원하든 원치 않든—사지 말단 부위의 골단부 노출은 심심찮게 접했다.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놀란 이유는 단순히 ‘뼈’를 봤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진이, 오로지 ‘뼈만’ 촬영하였다는 지점이었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을 찍어서 인화한 건 아니겠죠?”
“허어. 우리 꼬맹이 눈에는 이 영감이 이 나이 먹고 그런 장난을 칠 만큼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말은 그렇게 해도 노인의 표정은 그다지 불쾌한 기색이 담겨 있지 않았다.
“여기, 집게손가락이 살짝 뒤틀린 거 보이지. 젊은 시절의 상처거든.”
클레멘트가 가리킨 사진 속 손가락은, 그 말처럼 두드러지게 어긋나 보이는 뼈가 보였다.
“언제든지 시험 삼아서 다시 찍어볼 수 있네. 그리고 이왕 시험 삼아서 찍을 거라면 똑같은 걸 두 번 찍을 필요는 없겠지. 바로 지금, 도련님의 가슴을 찍어보는 거로 확인을 할 거고.”
낭비가 없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대단합니다. 이거도 직접 발명하신 겁니까, 클레멘트 씨?”
“나는 따라 만들었을 뿐이야.”
고개를 가로저은 클레멘트는 작업대 선반에 무언가를 차례차례 가지런하게 올려두기 시작하였다.
“구대륙의 뮐 교국(敎國)에서 활약하는 과학자가 처음 고안했다. 그 사람이 공개한 논문을 따라서 만든 거지. 과학자 녀석들도 쓸모가 있다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의학적으로 엄청나게 유용할 게 분명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군.”
코넬리아의 호들갑에 큭큭 웃으면서. 그가 꺼낸 건 교어(敎語)로 적혀 있는 학회지였다. 그걸 받아 쥔 소녀는 그대로 재클린에게 건네주었다.
네가 한 번 읽어봐.
무언의 부탁을 받아 들은 재클린은 얇은 학회지를 휘리릭 넘겼다. 그러다가 눈에 짚이는 페이지에서 멈추고, 그 부분을 코넬리아에게 보여주었다.
“‘후술하는 내용의 세부 사항은 국제진단학회의 요청에 의한 세미나에서의 강연을 축약하여 부록으로 첨부한다’…라고 쓰여 있어요.”
“더군다나 꽤 최근이야. 이거.”
아티클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 첫 문단에 적힌 날짜는 겨우 두 달 전.
종이로 인쇄가 되어서, 도서 판매상들의 손에 들어와 배를 타고 연합왕국으로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보면, 이걸 클레멘트가 손에 넣은 건 정말로 가까운 시일 내였을 것이다.
‘휴우.’
코넬리아는 가슴 속을 답답하게 누르기 시작하던 불신감의 무게감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최근 발명이면, 왕립의학국에서 아직 이 대단한 발명과 관련된 정보에 깜깜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교국에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쓰이진 않았을 듯하니, 여기라고 크게 뒤처진 건 아니겠습니다.”
아무도 따지지 않은 변명을 하던 코넬리아는 페이지를 몇 장 넘겨 보았다. 상세하게 그려진 도록과 기구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엑스선 조사 장비의 제작]이라는 캡션과 함께.
“충분한 환경과 도구만 갖추어지면 누구나 따라서 만들 수 있겠군요. 클레멘트 씨 정도의 솜씨를 가진 엔지니어라면 가능하겠어요.”
그렇게 노인을 칭찬하던 코넬리아는. 뭔가 의문스러운 점이 떠올랐다.
”헌데. 교국에서는 왜 이렇게 상세하게 공개를 한 겁니까?”
이런 기술개발의 심오한 지식 방면으로는 문외한에 가까운 코넬리아라고 해도, 지금 이엑스선조사 장치가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겉핥기 수준으로 방금 접한 사람도. 그리고 바다 건너 대륙 저 너머의 교국 의원들도, 이 발명이 얼마나 의학과 과학에 크게 기여할지 바로 떠오를 정도다. 하물며 이걸 발명한 쪽에서는 그 잠재적인 힘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정도로 자세히 구조도까지 공개하면 아무나 다 따라하잖아요.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신도 그랬고요.”
“그러게. 나라면 특허청에 바로 부리나케 달려갔지. 흐흐.”
소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는 듯, 클레멘트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감광지를 챙긴 그는, 작업실 한쪽의 쪽문으로 향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공개했는지 우리 같은 사람은 모르지. 그렇지만 바다 건너 이렇게 알려준 덕택에, 바다 건너의 누추한 공방에서도 조사장치를 만들게 되었으니, 감사할일이지.”
“그건 정말로 감사할 일…이군요.”
살아생전에 가볼 일이 없는 저 멀리 이역(異域)의 과학자가 만든 연구물.
그 과학자는 연구물의 독점을 포기하였다. 포기한 혜택은 모두가 나누어 받았다.
「숭고하다」라고 하여도 좋을, 위대한 선택.
‘나와는 완전히다른 생각을 한 거지….’
고작해야 한 사람 몫이나 겨우 할까 말까 한 의원인 주제에, 동생한테 잘난 척하면서 뻐겼던 기억이 챠르르륵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남다른 가치가 있을 때, 그 가치에 맞는 대우를 받을 권리는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코넬리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딱 하나.
그 권리를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동생에게 한 짓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알게 된 순간, 코넬리아는 얼굴이 무서운 기세로 화끈거렸다.
코넬리아의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클레멘트 또한 이 놀라운 발명품 앞에서는 심란해지고 있었다.
“이런 건 정말로 과학자들이 대단하다고.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일세. 역시 아카데미를 토대로 하는 업종은 다들 이러는지 모르겠네. 의원들도 이렇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가?”
“아, 아하하…. 글쎄요?”
뭐라 답변할지 난감한 재클린은 살짝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철저하게 소규모 도제 형식으로 기술이 전수 되는 엔지니어 공방은, 《증기혁명》을 맞이한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직종의 체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엔지니어직의 세세한 분야로 나누어지는 ‘전문화’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꾸준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었고. 노인이 속해 있는 〈기술 엔지니어 협회〉는 그 노력의 하나.
코넬리아와 재클린도 수도에서 오래 살았으니, 어떤 직업의 위상이 높고 낮은지는 대략적인 상식으론 알고 있었다. 소녀가 알고 있는 한, 엔지니어는 아직은 하급 전문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엔지니어 중에서도기술 엔지니어는 토목 엔지니어보다 한 단계 아래로 여겨진다. 아무리 〈협회〉를 만들면서 따라가려고 해도 학문의 토대부터가 달랐다.
과학자처럼 이론부터 시작하느냐.
아니면, 엔지니어처럼 실제 현장에서부터 적용하느냐.
의학은 그 중간의 어딘가에 서 있다. 왕립의학원에서 가르치는 의학과 의원의 최종 목표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목표점을 향하는 과정은 천로역정에 비할 정도로 험난하다. 이런 고민은 재클린도 예전에 했던 적이 있는지, 꽤나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답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으~음, 저는 과학자나 엔지니어 쪽이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는 잘 몰라요. 그래도 학회 세미나로 다른 과 사이에서 의견 교류를 꾸준하게 하는 건, 의학원에서도 하는 거긴 해요!”
“그렇지? 역시 우리 기술 엔지니어 협회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자아 자, 클레멘트 씨.”
재클린을 기점으로 이상한방향으로 뻗어 나가려는 말의 흐름을, 과감하게 허리부터 자른 코넬리아가 고쳐 잡았다.
“당신이 만든 그 엑스레이 조사 장치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아차차, 나 원 참. 이 중요한 대사건을 앞두고 무슨 짓을.”
혀를 찬 노인은 덥석, 코넬리아의 팔뚝을 붙잡았다.
그리고 어어 하는 사이에 컴컴한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저항할 틈도 없이 좁은 방 한 면에 부동자세로 세워지고, 등 뒤의 슬롯에 감광지를 넣은 노인은 진공 플라스크를 덮고 있던 검은 천을 걷었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클레멘트는 조사 장치를 작동하였다.
“어린애 답게 웃어보게. 사진 찍을 때 그렇게 딱딱하게 인상을 찌푸리면 쓰나.”
“어차피 찍히는 건 뼈다귀뿐인데 무슨….”
어이가 없는 코넬리아의 반론을 흘려듣고.
노인은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는 소녀─의 가슴 부위를 신중히 촬영하였다. 그리고 감광지를 들고 암실로 향하기 전, 집사에게 부탁하여서 재클린과 코넬리아를 응접실로 다시 안내하였다.
그로부터 잠시 후.
마스크를 마치 머리띠처럼 이마 위로 올린 클레멘트가 갓 인화한사진을 가져오기까지는,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신기해. 이거 참 신기하군….”
클레멘트는 두 장의 사진을 겹친 채, 응접실 탁자 위에 올렸다.
“이건 예전에 찍었던, 우리 집사의 흉부 사진이지.”
그가 가리킨 사진은 새하얀 갈비뼈 사이로 희무끄레한 안개가 뭉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코넬리아는 흥미로운 듯 턱을 습관적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정도 크기는 분명 폐일 거고… 또 이건 심장 부위겠군요. 살아있는 사람의 몸속을 해부하지 않고도 볼 수있다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놀라긴 아직 일러. 더 신기한 건 네 몸이라고.”
클레멘트는 집사의 사진을 옆으로 치웠다.
그 밑에서 가려져 있던, 코넬리아의 흉부 엑스선 사진이 드러났다. 그걸 옆에서 고개를 쭉 내밀어 보던 재클린이 “흐억”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에는, 집사의 사진에서는 분명 심장의 희끄무레한 이미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도저히 자연스러운 인체의 장기(臟器)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구조물체가 찍혀 있었다.
대략적인 모양은 심장 같이 생겼다.
오직, 겉으로의 형태만 그럴 뿐이다.
테두리만 사람의 심장처럼 생긴 그 안으로는, 작은 톱니가 오돌토돌하게 새겨진 크고 작은 회전기어가 셀 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혈액을 펌프질하는 역할을 맡은 멤브레인은 기하학적인 빗금 패턴으로 그려진 금속 직조 문양의 새하얀 그림자로 나타나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심장보다는 오히려 코넬리아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회중시계의 뒷면 무브먼트(*태엽 장치를 작동하는 부품)가 아닐까 할 정도.
“뒷면에 필름을 놓고 앞에서 엑스선을 조사한 물체는, 밀도가 높은 물질일수록 하얗게 표시가 되거든. 이렇게.”
클레멘트는 코넬리아의 사진에서 가녀린 쇄골과 앙증맞은 아크로미온을 가리켰다.
“이건다른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뼈지. 그리고 그사이에 비치고 있는 이 모양이, 지금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인공 심장이란 거다.”
“이게… 제 가슴 속에 있다고요…?”
코넬리아는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움찔움찔, 규칙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튜브의 부피 변화가 느껴졌다.
“이런 멋진 걸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구먼. 진작에 이걸 말해줬으면 문전박대는 하지 않았을 건데.”
“말할 틈도 없이 쫓아낸 건 당신이거든요?”
퉁명스러운 코넬리아의 말에 클레멘트의 주름진 눈가가 둥글게 휘어졌다.
“흐흐, 그래. 꼬맹이답게 그렇게 솔직한 게 얼마나 좋아?”
“아까부터 계속 꼬맹이 꼬맹이 하시는데, 저는 꼬맹이가 아닙니다.”
“원래 애들은 다 그런 말을 하지.”
“그게 아니라─”
“아니라, 그다음에는 뭔가? 퍼블릭스쿨에서 ‘변명은 계집애나 하는 짓’이라는 상식을 못 배우신 걸 보면, 너무 어려서 거기까지는 아직 진도를 못 빼신 건가?”
이제는 숨기는시늉도 하지 않고 드러내고 클레멘트는 소녀를 비웃었다.
‘잘도 무시하겠다, 이 영감탱이가…!’
반박하고 싶은 말은 코넬리아의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쌓이긴 했다. 그 중의 무엇도 입 바깥으로 꺼낼 만한 정보는 없었다.
“‘지금’의 저는 꼬맹이가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코넬리아는 엑스선 사진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모든 걸 투명하게 감싸는 요술 망토의 조각을 덧대어 붙인 것처럼, 마치 사진이라는 액자가 소녀의 속을 훤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꼬맹이라서 솔직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솔직해야 해요. 클레멘트 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만 말입니다.”
“호오…. 나에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글쎄요.”
어깨를 으쓱한 코넬리아는,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클레멘트에게 내밀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이런 사진만으로 만족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저희에게 더 물어볼 게 있지 않으십니까?”
“그야 물어볼 건 산더미만큼 있다만….”
노인은 코넬리아가 일부러 중요한 점을 피해서 말꼬리를 돌리는 게 못마땅해 보였다. 그럼에도 순순히 코넬리아의 뜻대로 대화에어울려 주었다.
“이 인공 심장으로 보이는 장치의 동력(動力)이 도저히 짐작이 안 된단 말이야. 이 사진만으로는 도저히…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건지 상상이 안 돼.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아는 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아마 당신 같은 과학자들은─”
“엔지니어라네. 과학자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고 날아오는 클레멘트의 지적에 코넬리아는 순순히 정정하였다.
“예. 다시 말하죠. 당신 같은 엔지니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이 인공 심장은 활력으로 움직이는겁니다.”
“활력? 그 생명체를 살아있게 움직인다는 그거 말인가?”
“대략적으로는 지금 클레멘트 씨가 생각하는 그 활력이 맞습니다. 좀 더 정확히 따지면 살아있지 않은 비생명체에도 깃들어질 수 있습니다.”
“허어~….”
클레멘트가 불신이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게, 코넬리아는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본디 활력(活力)이란 건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구분하려는 도구로 쓰이던 개념이었다. 그게 지금은 한 두 문장으로 축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지만, 일반인에게 널리알려진 활력의 뜻은 이 초창기의 의미다.
「활력이 비생명체에 깃들어져 있다」는 문장은 모순이 되는 뜻이라고, 클레멘트가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입견을 깨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코넬리아는 재킷을 벗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눈으로 보는 게 좋겠습니다. 엔지니어답게 말입니다.”
손목 끝을 덮는 새하얀 긴소매 셔츠 차림.
코넬리아는 재클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재클린은 품안에 넣어두고 있던 핸드 파우치를 코넬리아에게 건넸다.
“바로 이것처럼 말이죠.”
“주사기…인가.”
“그냥 주사기는 아닙니다.”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파우치 안에서 꺼낸 건, 성수가 담겨 있는 수통과, 증기 주입기였다.
이전에 샘의 도시 아르샤에서 동생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세계에 주어진 모든 활력은 여신의 숨결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성스러운 축복과 함께 하는 활력은, ‘살아있음’을 존재하게합니다. 세계가 창조할 때 생겨난 활력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의 주위에 존재합니다.”
파우치의 내용물을 탁자에 올린 코넬리아는 증기 주입기에서 능숙하게 실린더를 분리하였다. 그리고 수통에서 성수를 실린더 눈금만큼 넣고, 달칵- 하고 맞물리는 소리가 나게 장착하였다.
“이 장치는, 활력이 담긴 성수를 증기로 바꿉니다.”
둥그런 용두 버튼을 반 바퀴 돌리자, 순식간에 미량의 수분이 우윳빛으로 바뀌었다. 그걸 보던 클레멘트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는 걸 본 코넬리아는 증기 주입기의 손잡이에힘을 주었다.
철컥. 날카로운 바늘이 주입기 끝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증기를 인공심장에 직접 주입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망설임 없이.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코넬리아는 곧장 자신의 인공심장 튜브에 찔러 넣었다. 셔츠 위로 꽂은 증기 주입기의 방아쇠를 그대로 당겼다.
실린더 속의 증기가 모조리 소녀의 인공심장 안으로 들어가고, 소녀는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