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2막 (中) 의원을 증오하는 사람 - 4 (29/111)



〈 29화 〉2막 (中) 의원을 증오하는 사람 - 4

카페에서 나온 둘은 클레멘트의 공방으로 곧장 향하였다.

「딸랑, 딸랑딸랑, 딸랑—!!」

정중한 예의는 잠시 접어 두고. 종이 부서지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인종 줄을 마구 당기는 코넬리아.

덕분에 집사가 손님맞이를 하러 나오는 시간은 훨씬 짧아졌다.

“또 당신들입니까….”

이번에는 문을 열고 바로 둘을 마주한 집사가, 조금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주인님은 당신들을  용건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오셨는지요.”
“우리가 왜 다시 오신 걸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 힘으로는 밀릴지언정 말씨름이라면 질 생각이 없다. 지극히 코넬리아다운 답변.

“클레멘트 씨는 저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대신 정성스레 말을 전해주신다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르샤 때에는 찾아볼  없었던 면이 슬쩍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재클린은  수 있었다.

초인종을 마구 당길 때의 그 기세는 어디로 가 버린 건지. 클레멘트의 집사와 대화를 하는 지금은 그저 나이 많은 어른 앞에서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

이전에 방문하였던 샘의 도시 아르샤에서 재클린이 보았던 코넬리아는, 언제나 상대를 말로 몰아붙여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대화법을 사용하였다.

그랬던 오빠가. 코넬리아가.

재클린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자세를 잡고 있었다.

“수도에서 먼길을 왔는데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어떻게좀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떤 각오를 다졌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코넬리아의 간절한 부탁에도, 고민할 것도 없이 집사는 즉답하였다.

“어차피 주인님은 당신들이 돌아오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시 찾아오면 그대로 돌려보내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군요.”

 말을 들은 코넬리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제가 클레멘트 씨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뭐라고 변명하진 않겠습니다. 카르노 기관의 건은… 없는 거로 해도 상관없습니다.”
“예?” “으, 으응?”

집사도 놀랐지만, 더 놀란 쪽은 재클린이었다. 지금 소녀가 꺼낸 말은 미리 상의를 했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 잠시만요. 저희가 무엇 때문에 레드우드 시에왔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죠, 도련님? 예?”

지금까지는 둘 사이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동생이 처음으로 말을 섞었다. 코넬리아는 그런 재클린의 시선을 무시하고 곧장, 집사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사정을  알고 왔습니다. 클레멘트 씨의 아드님과 돌아가신 부인에 대한 것도, 전부 들었습니다.”

 말은 아무리 집사라고 해도 놀랄 법한 발언이다. 철벽처럼 문 앞에 버티고  있는 집사의 표정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걸 알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 으음….”

잘 짜여진 기어카드를 집어넣은 기계인형처럼 일정한 톤으로 대답을 하던 집사가, 처음으로 문장의 끝을 맺지 못하였다. 그 앞에서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따.

“어째서 클레멘트 씨가 저희에게 화를 내시는지, 좀 전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주제를 모르고 상처를 주는 말을 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전 당신에게도 결례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꾸벅, 몸을 숙여 사과하는 코넬리아를  집사의 호흡이 아주 살짝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숨 쉬는 걸 아예 까먹을 정도로, 선 채로 굳어버린 재클린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이 자들은 대체 어디까지… 어디까지 알고 온 거지?’

유명 공방의 집사를 맡고 있다보면, 무작정 찾아오는 외지인은  수 없이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는 클레멘트의 공방이 특별할지 모르겠지만,  공방에서 외지인들은 그저 하루가 멀다고 들이닥치는 무례한 방문객 중 하나일 뿐.

그가 그래도 코넬리아와 재클린을 조금 특별하게 받아들인 부분이 있다면, 귀족 집안의 자제와보호자가  둘이서  적은 처음이었다는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그랬었다.

‘돌아가신 부인이라고 했지. 어떻게 거기까지.’

그 또한 처음부터 클레멘트의 공방에서 집 관리 역할을 맡은  아니었다. 십여 년가량 근무하였으니 짧은 기간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앞서 집사 일을 맡았던 자도 분명히 존재했었다.

클레멘트의 아들에 대한 건 아마도 집사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날 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주인님의 돌아가신 부인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당연히—거리의 주민들과 어느 정도는 교류를 텄었고, 불행한 재해에 휘말려서 배우자가 세상을 뜬 후 아들을 홀로 키웠다는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클레멘트는 그때의 일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입에 올리는 걸 극도로 꺼렸기에, 집사인 그가 알고 있는 것도 고작해야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아는 정도일 뿐.

그런 만큼. 코넬리아가 은연중에 흘린 이야기는, 적어도, 집사가 질문 하나만 던져도 바로 들킬 정도의 허술한 공갈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주인님께서 여러분을 뵙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변함없는 집사의 말이다. 그래도  뉘앙스는 처음과는 달리 훨씬 부드러웠다.

거꾸로 말하자면, 달라진 건 뉘앙스뿐이었다.

“여러분의 사과는 제가 대신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안 되는 겁니까?”
“몇 번을 물어보셔도 제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온화하지만, 분명한 거절.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재클린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코넬리아가 집사를 설득할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오빠의 진심은, 오빠의 신분으로 정해졌던 거야. 그걸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레드우드 시에 도착해서 재클린에게 아낌없이 조언하던 코넬리아는 「의원」이라는 신분이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만약에 길 지나가던 아저씨가 재클린에게 똑같은 소리를 했다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겠지.

마찬가지로, 아르샤에서 코넬리아는 「경의사」로서의 코넬리아였다.

치안 유지의 의무, 즉결심판의 권리를 지닌 「경의사」가 하는 말이었기에,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져버릴 것만 같은 소녀의 언행마저도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소녀가 허셜에게, 볼드 시장에게, 그리고 재클린에게 대하였던 다부진 목소리와 작지만 당당하게 편 어깨와 자신감이 담긴 눈빛 모두.

경의사이기에, 가능하였던 것이었다.

그런 코넬리아가 지금 저들의 눈앞에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년으로 보일 뿐이다. 레드우드 시에서 코넬리아는 원래의 직책을 숨기고 있었다. 민낯을 드러내고 부딪치는 코넬리아의 진심은, 안타깝지만, 결코 전해질 일이 없어 보였다.

한숨을 푹 내쉰 재클린은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힘으로 밀어붙일, 『강제 집행』의 준비.

겉보기에는 이 철부지 소년의 감시역으로 따라온 숙녀 정도로 보일 뿐이라는  재클린도 알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힘을 써야 할 때가 온다면,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영감 둘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닐 터이다.

사실상 협상 결렬의 신호가 코넬리아로부터 떨어진다면. 그때는 자신이 억지로 길을 열어야 할 차례다.

‘진심 어린 사과가 통할 거로 생각했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애들이나 믿을 법한, 그따위 걸로?’

그런 생각을 하는 재클린의 얼굴에서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진심만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순 없어. 오빠.

저 집사의 어디를 가격해야 할까. 어딜 후려쳐야 이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헤칠 수 있을까. 마른 입술을 혀로 핥는 재클린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던 바로 그 순간.

“왜, 왜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겁니까….”

코넬리아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재클린은 헉, 하고 제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오라버니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표정.

지금 그 표정은, 반평생을 같이 지내왔던 동생인 재클린조차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직접 사과하려는 걸 왜… 아저씨가 왜, 어째서 막습니까…?”
“그러니까 주인님의 부탁이라서—”
“저도 이렇게 부탁하고 있잖아요!”
“부탁하셔도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엉망진창으로 떼를 쓰는 코넬리아에게 진땀을 흘리던 집사가 재클린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당신이 모시는 사람이니, 당신이 좀 말려 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집사가 보는 재클린의 표정에서도 ‘이런 건 저도 처음 봐요’라는 걸 읽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제가 그렇게 큰 죄를 저질렀어요? 그냥 만나서 미안하다고 하려는데 왜 막습니까, 예?!”

이제 코넬리아의 말에는 최소한의 논리도 보이지 않았다. 억지와 적반하장의 중간쯤에서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

“으아아아아앙—!!”

마침내, 대성통곡을 했다.

“히끅, 아저씨가 뭔데, 흐으으윽, 아저씨가, 후에엥, 막는 거냐고요, 으아앙—!!”

끄어억 꺽꺽, 숨이 넘어가게 울어 젖히는 코넬리아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서러웠다.

“으어어엉— 진짜, 흑, 진짜 너무해요!! 흐읍, 흐어엉—”
“하, 이거 참…!”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 젖히는 코넬리아의 울음에 거리에 행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공방 건물과 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들도 하나둘 창문을 열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따가운 시선이 향하는 쪽이 어디인지를 깨달은 집사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아니 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거….”
“흐어어어—! 케혹 케혹, 크읍, 으헝허어—!!”

그러든지 말든지, 무릎을 꿇고 앞으로 엎드린 코넬리아는 주먹으로 땅을 치면서 통곡을 했다. 보호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는 소년을 더는 공방 앞에  수 없었다.

“이,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들어오세요! 어서!”

집사는 코넬리아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코넬리아는 순순히 집사를 따라 공방 건물로 들어갔다.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코넬리아를, 집사는 먼저 욕실로 안내하였다.

“세안을 하신 후 천천히 나오십시오. 주인님에게 사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응접실은 복도 끝까지 쭉 따라 들어오시면 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훌쩍이면서도 코넬리아는 예의 바르게 대답을 하고. 재클린과 함께 들어가서, 욕실 문을 닫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