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7 (25/111)



〈 25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7

“어, 그러니까… 조수?”
“무슨 일인지요, 도련님.”
“고생시켜서 미안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동생의 머리를 쓰담쓰담 하면서 코넬리아는 말했다.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진 않은데… 어째 너와 있을 때마다 계속 사과만 하는 거 같네.”
“하하, 오빠, 약해지면 착해지는 성격이었어?”
“원래 착했거든. 그리고 안 약하거든!”

발끈한 코넬리아가 다리를 힘껏 바둥거렸다.

“놔, 내려줘! 내 발로 걸어갈 거야!”
“워어, 진정해, 오빠. 지금은 안정을 취해.”


코넬리아 나름대로는 혼신을 다해 발버둥치는 저항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재클린은 웃었다.

“그리고 오빠가 미안할 필요는 없어. 반대로 내가 어렸을 때는 오빠가 날 업고 다녔잖아. 기억 안 나?”
“아… 그랬었지. 응.”

자신이 재클린보다는 키가 확실하게 컸었던,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어린 시절의 일.


재클린이 말을 꺼내기 전에는 완전히 잊고 있었을 정도로 오래된 추억이었다.

“오빠는 나한테 미안해하거나, 부담스러워서 하거나, 사과해야 할 거는 하나도 없어.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네.”

코넬리아는 재클린의 목 뒷덜미에 비스듬히 뺨을 기대었다.

“지금보다 강해질 테니까. 그때까지는 부탁할게.”


원래 자신의 몸, 이십 대 중반의 렉스 휴크레이로 돌아가는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래도 지금처럼 빈곤한 체력에 조금만 무리해도 꼼짝을 못 하는,   초반 연령대라고 해도 유별나게  허약한 육체를, 개선할 방법은 찾아낼  있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가슴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왕립개발국 시제품으로 급하게 심겨진 ‘인공심장’을.

지금보다  강하게, 더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 지금처럼  하면 졸리고,  하면 기절할 정도로 연비가 나쁜 체질을 고쳐 나가는 것.


지금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찾아가고 있는 기계 공방에, 그 해법의 실마리가 숨어 있었다.


“후후….”


아마도 여러 생각에 잠겨 있는 코넬리아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소녀를 업고 있는 재클린은 더할 나위 없이 밝은, 최고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뒤로 업고 있는 코넬리아의 허벅지를 팔로 감싸 짚어서 체중을 지탱하고 있던 재클린은, 몸을 가볍게 둥기둥기 흔들었다.

“너무 애쓸 필요는 없어. 오빠. 가끔은 이렇게 나에게 의지하는 것도 사랑스럽거든.”
“동생… 지금 그 말은 무서운데요.”
“어? 내가 말을 잘못  건가.”
“자각이 없다는 점이 특히  무서워!”


식겁한 코넬리아의 발버둥을 무시하던 재클린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오빠. 근처에 다 왔어.”
“벌써?”

동생의 어깨 옆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어보니. 스패너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금속제 간판이, 바로 몇 걸음 앞에 있었다.

재클린의 등에 업혀 있는 동안에는 시야가 동생에게 집중되어 있느라 몰랐지만. 지금 멈춰선 주변에 보이는 건물은, 구릉에 올라오기 전에 보았던 골목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마치 여기가 ‘장인이 모인 동네’라는 느낌이 공기로부터 전해져 온다.


구릉 아래 시가지의 건물은 철골 구조를 드러내고는 시멘트로 벽을 메워 붉은 벽돌로 꾸밈새를 붙인, 세련된 형태의 건축물이 많았다. 반면 지금 둘이 서 있는 공방지대는 석재 기둥 사이에 두꺼운 나무로 틀을 만들고 석회로 채운 예전 건축 양식이 대부분.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마주한 건물 또한, 고루한 형식의 복층 건물이다. 동생의 등에서 내린 코넬리아는, 문에 매달린 벨을 당겼다.

「딸랑— 딸랑—」

종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몇 번 당긴 후 기다렸지만. 좀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 늦네. 외출 중인 건가?”

벨을 당긴 채 코넬리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공방의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높게 솟아오른 황동 굴뚝으로는 회색 연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누가 있을 거 같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확신할  없다.

“무턱대고 찾아온  실수였나….”
“발소리가 들려. 오빠.”
“응?”


몇 걸음 떨어져 있던 소녀에게, 재클린이 현관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문의 윗부분을 채우고 있는 우윳빛 유리 너머로, 누군가가 다가온 그림자가 비쳤다.


“[지금 벨을 당기신 분은 누구십니까?]”

교육을 받은 중년 남자 특유의 미성이 들려왔다.


코넬리아는 자신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재클린이 막아 세웠다. 집게손가락으로 쉿- 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계 엔지니어 협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실례지만 클레멘트 씨를 뵐 수 있을까요?”
“[오늘은 방문 선약이 없습니다.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예의 바른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쌀쌀맞은 태도다. 이 정도는 진작에 예상하였는지 재클린은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해서, 미리 연락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내일, 말인가요?”

재클린이 코넬리아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X자를 그린 코넬리아가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힘찬 몸짓에는 기구를 내일  타진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재클린은 문 너머 사내에게 말했다.


“클레멘트 씨에게 저희가 왔다는 걸 전해주세요. 그럼 바로 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겁니다.”
“[용건을 말씀해 주십시오. 주인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코넬리아가 나설 때였다. 재클린의 옆에 서 있던 코넬리아가 큼큼, 헛기침하고 말했다.

“이렇게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수도에서 찾아온 의원이, 카르노 기관의 샘플을 가져 왔다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문 앞에 있던 인기척이 멀어졌다. 살짝 안도의 숨을 쉬는 재클린을 보면서 코넬리아가 말했다.


“지금 저 안에서 좀 망설이는  느껴졌지?”

여태까지 문 너머의 남성은 무뚝뚝하면서 절도 있게 대화를 하였다. 그랬던 사람이 유독 코넬리아의 용건을 듣자 미묘하게 늦은 답변을 하였다. 우연의 일치는 아닐 터였다.

“오빠가 말한 ‘카르노 기관’에 반응한 거지?”
“제대로 찾아왔다는 징조였으면 좋겠는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는 둘의 앞,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살짝 열렸다.

반가운 표정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코넬리아와 재클린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둘을 마중하러 나온  조금 전 대화를 나눈 사람이 아니었다.

“콜록, 콜록.”

여기저기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는 작업복을 위아래로 입은 초로의 노인.  노인의 손에는 익숙한 것이 있었다. 간판에 있던 스패너였다.

앙증맞은 간판 치수가 아닌, 어지간한 어른 팔뚝만 한 크기라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네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노인은 커다란 스패너를 힘껏 휘둘렀다. 벽에 까앙— 부딪힌 스패너의 충격음이 시끄러이 퍼졌다.

“좋은 말로   꺼져!”
“클레멘트 씨? 맞으신 거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재클린이,  노인 뒤에 서 있는, 집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조금 전 둘과 대화를 나누었을 게 분명한 그는 그림으로 그린 듯 모범적인 집사 복장을 갖추고 있다.


그녀는 재클린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 맞습니다. 이분이 클레멘트 씨입니다.”
“죄송하지만 저희와 대화를 해요.”

코넬리아를  뒤로 숨기고 재클린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몸짓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화가 난 건지, 노인—클레멘트는 스패너를 고쳐 쥐었다.

“너희 의원 나부랭이들이 잘도, 잘도—!”


그리고 그걸 곧장 재클린에게 휘둘렀다. 태도는 위협적이지만 처음부터 커다란 상처를 주려는 게 목적인  아닌 거 같았다.


둥글고 묵직한 스패너의 끝이 아니라, 손잡이 자루로 어정쩡하게 부딪치게 하려는 의도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휘두른 노인의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클레멘트 씨. 죄송합니다.”

재클린의 등 뒤에 있던 소년 복장의 어린애가 몸을 앞으로 들이밀며 불쑥 나와 섰던 것이었다.

“의원을 싫어하시는군요. 이해합니다.”
“어, 어린 애가 왜…에이잇,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클레멘트는 스패너를 쥔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 대신 언어로 때리기 시작했다.

“애가 뭘 안다는 거냐.  돌아가! 네 녀석들과는 말 안 섞는다, 의원 나부랭이가 뭐하러 카르노 기관을 보려고 하는 거야! 너희 같은 자식들이— 캑캑, 콜록콜록!”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던 클레멘트는 끝까지 잇지 못하고 기침을 쏟아 내었다. 집사는 몸을 움츠리고 한참 동안 기침을 하는 클레멘트의 등을 두드렸다.

“콜록, 콜록콜록… 으으. 너처럼 어린 녀석이 뭘 이해한다는 거냐.”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신  아닙니까. 돌팔이들의 손에.”

그렇게 말하고. 코넬리아는 클레멘트의 손을 잡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