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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3 (21/111)



〈 21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3

갑작스러운 코넬리아의 말에 아이의 부모는 잠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부모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어찌 보면—당연한 반응이다. 아이의 팔을 만진  말끔한 치마를 입은, 키가 큰 여성이었다. 그런데 정작 치료비를 요구하는 건 뭔지 모를 제복을 입은 작은 소녀였다.

잠깐 코넬리아와 재클린을 번갈아 바라보고. 부모  아버지로 보이는 쪽이 지갑을 꺼냈다.

“30링은 너무 저렴한 거 같은데 괘, 괜찮겠습니까?”


코넬리아가 제시한 치료비는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노천카페에서  한두 잔 마시면 끝나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모가 건넨 동전 몇 닢을 받은 코넬리아는 아이의 머리 위에 성호를 그었다.


“여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그리고 소녀는 부모에게 손을 내밀어, 거의 억지로 악수를 하였다.


“저희에게 주신 30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샤카의 성은(聖恩) 아래에서 멋지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아, 예,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얘야. 감사 인사해야지.”


재클린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허둥지둥 자리를 떠나는 가족을 보면서, 코넬리아는 손안의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있자니 옆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기척이 느껴졌다.

“돈을 왜 받아, 오빠?”

재클린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웃는 낯.

 웃음을 구성하는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눈매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게 높이 올라가 있었다.


“엇나간 관절을 바로 잡은  나잖아. 그 치료를 하고 보호자에게 치료비를 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도 나고. 오빠가 왜 나서서 돈을 받는 거야.”
“왜 받았냐고? 하하, 네가   안에 답이 있는데.”

항상 웃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고들 한다. 그래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코넬리아는 재클린의 가방을 들었다.

“의원이 사람을 치료했잖아. 그러니까 돈을 받아야지.”

손안에서 굴리던 동화(銅貨)를 제복 주머니에 넣고, 소녀는 원래 화제로 말을 돌렸다.

“지금 찾아가는 백화점, 여기서 별로  머니까 걸어가도  거야. 이륜마차 타지 말고 그냥 걸어가자.”
“오빠. 아직 대화 안 끝났어.”
“그래. 그렇게는 한데, 대화하면서 걷자고.”


화가 잔뜩 나 보이는 재클린이 뭐라고 하든, 코넬리아는 걸음을 내디뎠다.  뒤에서 노골적인 한숨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어차피 이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걷는다고 재클린을 따돌릴 가능성이 없다는 건 코넬리아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오빠, 나는 돈을 받으려고 아이를 돌본 게 아니야.”


긴 다리로 성큼성큼. 한순간에 코넬리아의 곁으로 다가온 재클린이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그 아이의 부모한테 돈을 받는 거야.”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보호자잖아. 나는 네 보호자, 라는 멋진 자격이 있지. 아직 수련 단계를 밟고 있는 동생을 지도편달해야 하는 정식 보호자.”


솔직히 누가 봐도 소녀가 재클린의 보호를 받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코넬리아의 대답은 당당하고 이로정연 하였다.


“동생이 치료비를 받는 걸 깜박했으니 어쩌겠어. 보호자인 내가 대신 받아야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잖아. 여기서는  의견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
“네 생각도 맞아. 훌륭한 의학도의 마음가짐이야.”
“비꼬지 마!”


재클린이 울컥 화를 내자. 거리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드는 가로수에 앉아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후드득, 날아올랐다.

거리의 바닥으로 산란하여 흩어지는 작고 검은 그림자들은 이내 희미하게 사라지고.

‘이야….’


코넬리아도 피부가 바짝 긴장한 것처럼 소름이 돋아 오르는 걸 느꼈다. 거리에서 둘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행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까지 열심히 무시하고 있던 재클린의 얼굴을 코넬리아는 슬쩍 올려다보았다. 아차, 싶은 당혹감이 동생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동생. 나는 비꼬는 거 아니야.”


코넬리아는 걸음걸이를 서둘렀다.


“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건, 있는 그대로 말하는 성격이거든.”
“오빠 성격이 그런 건 나도 잘 알아. 그렇지만….”
“잠깐만. 동생.”

『1+1』이라는 세움간판 앞에서 코넬리아는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에서 아까 받았던 동전을 꺼낸 소녀는, 거리에 가판대를 펼쳐 놓고 여러 음료수를 팔고 있는 직원에게 그것을 건넸다.

“스피어민트 두 잔. 시원하게.”


주문을 받은 즉시, 직원은 투명한 얼음을 가득 채운 종이컵에 물과 박하 방향유(芳香油)를 섞고, 연두색 박하 잎사귀를 담아서 코넬리아에게 내었다.


가볍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소녀는 양손으로 두 잔을 받았다.

“동생아. 사람을 치료할 때, 사람을 차별하면 안 돼. 그리고 그 치료의 가치를 헛되이 해서도 안 되는 거야.”

그중  잔을 재클린에게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시원해 보이는 박하차를 보며 재클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끄응….”

바로 받아서 시원하게 쭉 들이키고 싶다는 본심을 억누르고 있는 재클린의 손에, 코넬리아는 억지로 잔을 들이밀었다.

“네가  치료는 너의 품을 들인 치료야. 그걸 거저 베풀어버리면  도시의 교구에서 정당한 돈을 받으며 진료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라고.”
“그건 그래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간단하게 할  있는 거니까. 돈을 받을 정도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조금 전 부모가 ‘아는 사람’이었어? 아니잖아.”


코넬리아는, 아니 코넬리아의 몸이 되기 전의 렉스는, 진작에 왕립의학원을 수료하고 의학국에서 수련을 끝마친 의원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제 막 수련을 시작했었던 재클린은 실제 로컬에서의 임상 경험이 적었다.

“네가 쉽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널 나무라는 게 아니라 격려하고 싶어. 너에게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돼.”

그 시기의 가운데에서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코넬리아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돈을 추잡하게 여기지 마. 동생. 속이고 훔친 게 아닌, 정당한 대가라고.”


소녀의 말을 잠자코 듣는 동생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점차 사라지고.

“응, 잘 알았어.”

마침내 재클린의 경직은 봄  녹듯 사라졌다.

“그러면 이건, 네가 나한테 한  산 거로 칠게. 이의 없지?”
“이의 없습니다!”

기운차게 답변하면서 재클린은 코넬리아가 내민 시원한 컵을 잡았다. 동생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자, 내내 딱딱한 얼굴이었던 코넬리아도 비로소 웃었다.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녹은 얼음이 짤그락, 윤기 있게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차가운 박하차를 마시며 걷는 둘은 어느덧 백화점까지 제법 되는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서 근처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소녀가 가지고 있는 포켓용 지도에선 짧은 선 하나만 그으면  정도다.

그 지도에서는 알 수 없는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평면의 종이에서는 쉽사리 표현하기가 힘든 경삿길이었다.

도시 이름인 ‘레드우드’가 의미하듯 이 도시의 사방은 붉은 목질(木質)을 가진 거대한 침엽수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산간 지형에 있는 여타 도시답게 평지보다는 경삿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참은 걸은 거 같은데…. 설마 모르고 지나간 건 아니겠지.”


코넬리아는 중얼거리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백화점은 일이  끝난 다음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실은 재클린이 백화점 전단지를 보여주기 한참 전, 수도 앨버스에서 경의사 준비를 하면서 코넬리아가 알아보았던 정보에 백화점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철골이 드러나는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레드우드에선 오히려 특이하리만치 철골 구조가 강조된 건물은 흔하게 보인다. 그중에서도 붉은 나무와 벽돌, 시멘트, 그리고 구조물 스트럭쳐를 섞어서 지은 백화점 건물은 그 단단함과 정교함이 외양에서부터 풍겨 나온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가파르고 짧은 언덕 너머로  건물은 불쑥 나타났다.

“와아~ 진짜 멋있게 생겼어…!”
“후후. 몸은 다 컸어도 아직 어린애군. 동생.”


순수하게 감탄하는 재클린을 쓴웃음으로 바라보면서, 코넬리아는 자신이 알고 있던 이름이 새겨진 백화점 간판을 보았다.

[레드우드 역사 백화점].

이름은 특별하게 멋지진 않았다. 것보다, 역사에서 꽤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이름이다.

백화점 정문에 도착한 둘은 도어맨의 안내에 따라 짐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전문을 지나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재클린은 입을  벌렸다.

“이게, 개발도시(開發都市)의 백화점…!”

재클린은 양손을 마주 잡고 감격했다. 그 옆에 따라 걸으면서 코넬리아는 자신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놀라지 마. 내가 다 부끄럽다.”
“하지만 신기한걸. 수도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들어선 입구가 연결된 1층은 높이가 낮은 칸막이로 구분된 작은 매대가 체스판처럼 규칙적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보다 높은 층은, 중심부를 비운 채 정사각형 모양으로 선을 그리는 복도식 점포였다.

그리고 비워진 중심부에는 ‘움직이는 계단’이 있었다.

소문으로 듣던 그거!


코넬리아는 호다닥 달려가서, 목판을 덧대어 이은 계단 위에 올라갔다.


“오오, 오오오오! 올라간다!”

승강기처럼 건물의 수직을 오르내리는 이동 칸은 ‘새로운 발명품’이 꼬리표는 떼어낸  오래. 그럭저럭 최신 건축 양식에 민감한 곳이면, 이제 왕국 어디서라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단 자체가 움직이는 건, 코넬리아도 신문이나 일간지가 아니라 실제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동생, 이거 완전 멋지지 않아? 경사로도 아니고 계단 모양으로 올라간다고, 이거 이거!”
“네! 귀여워요, 오빠.”

뒤따라서 올라오는 재클린도 빙긋 웃었다.

“일단 숙녀복 코너로 갈까요. 3층에 있다고 하니까 여기서  층 더 올라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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