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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1 (19/111)



〈 19화 〉2막 (上) 어린 애라고 안 봐준다고 - 1

- 2막 -


연합왕국을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고도(古都) 중 하나인 ‘앨버스’. 연합 왕국의 수도(首都)답게 앨버스의 아침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해가 떠오르기  어스름이 짙은 새벽부터 오가는 연락 마차의 말발굽 소리, 증기차의 보일러 체임버를 비우는 날카로운 피리 소리, 인도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신문을 파는 소년들의 외침, 부랑자들의 구걸을 쫓아내는 경찰들의 호각음.

그리고  모든 소리를 일순간에 뒤덮는, 수도 없이 빼곡하게 세워진 황동 굴뚝의 숲에서 동시에 내뿜어내는 거대한 울림소리.


「부오오오오—」

도시 최중심부 지하에 자리 잡은 수석증기기관(首席蒸氣機關)에서 기지개를 켜는 순간에는 앨버스 안의 모든 짐승이 깨어난다. 진작에 깨어나 있는 사람들에겐 성가신 알람이었어도 말이다.

수도에서 제법 외곽에 떨어진 곳에 있는 석조 건물도 그 울림소리의 범위 안이었다. 책상 위 머그잔에 담긴 커피에서 파르르, 동그란 파문이 생겨난다. 그 잔을 든 중년의 여성이 한 모금, 입술에 갖다 대었다.

반백의 갈색 머리칼은 뒤로 가지런히 넘겼고, 둥근 안경 아래로 주름이 그어진 눈매의 안으로는 날카로운 회색빛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취재 기획을 구두 보고로 한다, 라. 놀라운데. 절차를 무시하는 이 파격적인 방식은 누구한테 배우신 거지?”

만년필 뒤쪽 뭉툭한 끝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는 여성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편집국장인 나에게 바로 말하면 당신의 선임 멘토에게 예의가 아니야. 신입 아가씨.”
“알고 있습니다!”

배에 힘을 주고, 신입 기자는 열중쉬어 자세로 대답하였다. 주근깨가 사라지지 않은 앳된 얼굴 옆, 왼쪽으로 모아 묶은 체리빛 머리칼이  어깨 아래로 가지런히 흘러내려 있었다.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마른 침을 삼키는 목이 움직이는  그녀의 눈에는 뻔하게 보였다.

“알고 있으면 아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편집국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완전히 무시하고 나가라는 제스처에도 굴하지 않고, 신입 기자는 입을 열었다.

“경의사에 대한 소문. 들으셨습니까?”


 말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애꿎은 만년필을 괴롭히던 편집국장의 손이 멈췄다.

“언제적 소문을 말하는 건가. 동부 지역 실지(實地)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너에게 화를 좀 내고 싶은데.”
“편집국장님이 말씀하신 건은 대충 2년 전이죠? 그때 경의사가 파견되어서—.”
“정확히는 2년 3개월 하고도 여드레가 지났지.”
“예. 2년 3개월 8일 전에 경의사가 파견되었던 게 마지막이었죠. 물론 그 이야기는 아닙니다.”
“좀 더 가까이 와 보게.”

편집국장이 분명히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사실에 기쁜 마음으로 탁자에 총총걸음으로 다가간 불쌍한 신입사원의 넥타이를 잡아 바짝 끌어당기고, 편집국장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할까.”
“네…넵.”
“최근 소문인가?”
“잉크도  말랐습니다.”
“기자답게 설명해.”
“삼십 분 전, 아르샤의 지인에게 받은 전보입니다. 헤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신입 기자는 주머니에 접어 두었던 종이를 꺼냈다. 수첩을 아무렇게나 찢은 메모지였다.


“원본 전보는?”
“암호로 전달받았습니다. 이건 복호화(復號化)한 겁니다.”
“알았으니까, 원본도 꺼내.”

원본인 전보를 받아 들고 나서야 편집국장은 작은 메모지를 펼쳤다. 그리고 넥타이를 쥐었던 오른손에 힘을 풀었다. 캑캑거리는 신입 기자를 무시하고, 그녀는 원본인 전보와 그 해석이 담긴 종이를 교대로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이런 소식, 다른 경로로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 시청에서 철저하게 입단속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위생국도 얽혔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허어, 위생국이라.”


천하의 편집국장도 혀를 끌끌 찼다.

“건드리면  될 벌집통을 누가 건드리려고 하겠어. 다른 곳에서 조용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 이거, 네 선임 멘토는 알고 있어? 동료는?”
“아뇨. 특종이라고 생각해서, 아직 아무에게도….”
“그러면 다행이군.”

그렇게 말하고, 편집국장은 메모지를 갈가리 찢었다.


“앗, 아아!”
“내 등 뒤에 걸려 있는 인증서가 보이지.”

왕실 인장이 금박으로 입혀진, 「앨버스 포스트」란 이름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탤릭체로 쓰인 인증서는, 액자 속에 모셔져서 편집국장실의 벽에 호화로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건드리지 못할 사건은 없어. 침범하지 못할 구역도 없고. 그 말은, 뭐든지 찌른다는 말이 아니야. 못 찌르는  아니라 안 찌르는 거지.”
“네에….”
“삼 년마다 왕실에서 갱신하는 이 인증서가 없으면 우린 모두 범죄자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위쪽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는 신입 기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지만, 푸른 눈동자는 뜨겁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편집국장님이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잘 알고 있군.”
“실망입니다. 편집국장님.”


이를 악물고 말하는 신입 기자를 보던 편집국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용케도 욕은 안 하네. 욕을 해야 정직 처분을 내릴 건데.”
“그 정도는 참을 줄 압니다.”
“나 같으면 벌써 내 뺨을 때렸을 거야. 이게 중간관리직의 비애지.”


서랍을 연 편집국장이 그 안에서 기다란 종이 뭉치를 꺼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는 신입 기자의 눈이 마치 잡지 만평 캐릭터처럼 휘둥그레하게 커졌다. ‘앨버스 포스트’라는 잡지사 이름이 반듯하게 쓰여 있는 당좌수표(當座手票).

그것도, 금액란이 텅 비어 있는 백지 수표다.


백지 수표가 뭉텅이로 있었다.

“경비는 아끼지 않아도 좋다. 걱정 없이 마음껏 이용해. 그리고 정직 기간 자유롭게 ‘여행’할 때 연락은 여기로 하도록.”

편집국장은 메모지에 주소를 휘리릭 갈겨 써서 신입 기자에게 넘겨줬다.


“내가 개인적으로 들리는 청과점 가게다. 앞으로는 전보도, 전화도 이곳으로. 여기—회사로는 일절 연락하면 안 돼.”
“감사합니다!”
“단.”


냉큼 내민 신입 기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매주 금요일, 경비 사용 명세와 취재 내용, 정기적으로 보고해. 취재한 게 없으면 없다고, 있으면 있는 걸 정리해서.”
“윽, 네, 네에!”
“앨버스 포스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 적발되는 순간 모든 경비를 환수하겠다. 이의 없지?”

그 말은, 혹시라도 다소 ‘불법’에 가까운 취재를 하다가 걸리더라도 어디까지나 스스로 해결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걸 몰라서야 기자 자격이 없다.

“없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흥.”


슬쩍 콧방귀를 뀌고, 편집국장은 손에 힘을 풀었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악력이었다.

“편집국장님, 한 가지만 더 부탁을 드리고 싶은  있습니다.”


하얗게 손자국이 남은 손목을 탈탈 흔들면서 신입 기자가 말했다.


“제 선배님… 아니, 선임 멘토랑 함께 활동해도 될까요?”
“공은 나누면 절반이 될 텐데.”


편집국장은 이미  경의사에 대한 취재의 결과물을 ‘공’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아직 경력이 초짜인 기자가 가질 수 있는,  안 되는 기회에 대한 배려였지만.


“아닙니다. 저 혼자서는 부족하기에, 선임 멘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미 신입 기자의 시야는  알량한 공명심을 넘어서고 있었다. 편집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를 내는 데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다시금 허리가 직각으로 접히도록 신입 기자는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편집국장의 표정은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자네… 이름이 분명히, 나디아 헤루트였던가?”
“네! 나디아라고 편히 부르시면 됩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신입 기자—나디아를 보며, 편집국장은 머그잔을 내밀었다.

“자네 하나를 남쪽으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니지만, 선임 멘토까지 정직을 시키려면 조금은 핑곗거리가 있어야겠지.”

그리고 그 머그잔을 내동댕이쳤다.

“펴, 편집국장님!?”
“나디아 씨. 반지는 안 끼고 있지?”


목을 조이듯 꽉 조이고 있던 자신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편집국장은 웃으며 말했다.

“내 뺨을 한  시원하게 후려쳐. 그리고 욕을 한 사발 갈겨 줘.”
“어어어어, 어떻게 제가 감히!”
“그럴 마음이 안 들어? 그러면 그럴 마음으로 만들어 주지….”


편집국장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굳게 닫힌 편집국장실의 문. 그  바깥에는 여러 명의 기자 동료들이 서 있었다. 새파란 신입 하나가 대담하게도 편집국장실에—그것도 혼자서!—찾아간 건, 여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제각기 긴장된 얼굴로 연신 줄담배를 피우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방금 그거. 뭔가 깨지는 소리였지?”

누군가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직후, 요란한 고함과 함께 무언가가 쿠당탕 굴렀다.


“□■△※▼—!!!!”

육중한 호두나무문을 뚫고 들릴 정도로 우렁차게, 차마 말로 옮겨 적을 수 없는 비속어와 욕설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야, 야…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누가 말하는 거지?  후배야, 아니면 편집국장이?!”


주위의 동료들이 걱정과 동정이 뒤섞인 심각한 어조로 말을 하는 동안에도, 신입 기자의 선임 멘토는 천하태평인 얼굴로 담배를 들이마셨다.


“후흐, 괜찮아.”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선임은, 반듯한 2:8 가르마의 균형감에 걸맞은 평정심을 유지는 얼굴로 담배를 뻐끔 피웠다.

“내 귀에 지금 들려서는   소리가 들렸거든. 그런데 이게 너희들도 들렸다면 나만 환청인 건 아닌 모양이네? 그런 거지?”


천하태평인 건 겉모습만 그런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뭐라 말을 해야 좋을지 곤란해하던 사이에, 닫혀 있던 편집국장실의 문이 열렸다. 그 문 너머에 보이는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응접 테이블과 의자가 자유분방하게 나뒹굴고 있었고, 그렇게나 반듯한 옷가지를 강조하던 편집국장이, 완전 엉망진창으로 머리와 옷가지가 흐트러진  씩씩대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당장 사라져. 당장, 전부다.”

편집국장은 조용하게, 정확한 딕션으로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비켰다. 오직 신입 기자 나디아의 선임만이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나디아 또한 만신창이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슬며시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케이 선배. 저 모가지에요.”
“모가지고 자시고 코피, 코피!”

선임 멘토—케이는 손수건으로 나디아의 얼굴을 닦고 코를 막았다. 그의 손수건을 받아  나디아는 피를 훔치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선배. 제가 허락도 없이.”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
“아니에요. 사과할 필요… 있거든요.”


나디아의 말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을, 케이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연신 흐르는 코피를 손수건으로 막은 코맹맹이 소리로 나디아는 말했다.


“선배도 모가지에요.”


케이는 기절했다.



* * * *


번쩍.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날카로운 편두통에 코넬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마도 악몽을 꾸고 있었다.


아마도. 기억은  나지만.

덜커덩덜커덩, 귓가에는 레일 이음매 위를 지날 때마다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엉덩이 밑으로는 기차 특유의 진동감이 느껴진다.

열차 일등석 객차 안, 4인용 객석실. 시선을 돌리니,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열차 창밖의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있지 않았다.

코넬리아는 창문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느껴지는 손은 여전히 작고 가녀린, 여자아이의 손이었다.


이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음냐 음냐—… 그렇게 큰 건  먹어요, 우헤헤….”


그리고 맞은 편에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생이 있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코넬리아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머리는 꿈을 기억하지 못했다. 머리가 하지 못하는 일은, 악몽이 스쳐  식은땀으로 축축한 피부가 대신 기억한다.


동생은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아직 진정되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코넬리아는 허리춤의 시계끈을 당겨 회중시계를 보았다.


“아직 여유롭군.”

수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열차 시간표를 정확하게 믿을 순 없다. 넉넉히 삼십 분, 관대하게는 한두 시간 정도의 오차는 생각해야 한다. 그걸 고려해도 아직 개발도시(開發都市), ‘레드우드’에 도착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생각만큼은 아직 아르샤 시를 떠난 후로부터 시간이 그다지 많이 지나지 않았다.


코넬리아는 재클린이 자는  물끄러미 지켜봤다. 아르샤에 와서 줄곧 수면 시간이 부족한 건, 코넬리아 자신만이 아니었다. 굳이 계산해보면 실제로는 동생 쪽이 훨씬 부족했을 것이다.

첫날은 코넬리아가 부족한 활력을 충전하고 나른하게 뻗어 있는 동안, 시청에서 한 무더기로 가져온 감사 자료를 동생 혼자서 보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의학국에 연락하여서 성천과 관련된 정보를 취합하였다.

그리고 이제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을  번째 밤은, 이 기차를 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눈을 떠야만 했다.


“고마워, 정말.”


멍하니. 코넬리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난 정말 너밖에 없어. 동생.”
“포크… 이건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거군요….”


행복한 얼굴로 꿈나라에서 헤어 나올 줄을 모르는 재클린의 얼굴에. 코넬리아는 자신의 담요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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