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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막간 / Intermission (17/111)



〈 17화 〉막간 / Intermission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코넬리아의 손이 떨린다.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거 참으로 감사한 일을…!”

옷을 개는  마는 둥 하는 코넬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예찬. 그 예찬은, 오롯이 허셜을 향하고 있었다.

때는 아르샤 시를 떠나기 전날 저녁.

시청에서 관련 보고를 끝마치고 호텔 숙소로 돌아오니, 카운터에서 허셜이 코넬리아와 재클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먼저 자신들에게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해도 저문 이런 시간에.”

코넬리아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일은 충분히 마무리되었다고 생각되었기에, 소녀는 시청으로 찾아가기  허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긴 했다. 어디까지나 숨길 부분은 숨기고, 드러낼 부분만 드러내면서.

만에 하나, 선택적으로 전해진 정보에서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주의력 깊은 사내가 괜히 날 찾아왔을 리는 없을 터이고.’

이런 걱정을 하는 코넬리아의 고민이 무색하리만치, 허셜의 표정은 밝았다.

“경의사 님! 다행입니다~ 이 시간이면 아~주늦은 시간은 아니에요!”
“늦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온천 말이죠! 온천!”

크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허셜의 얼굴빛은 수 시간 건 일을 수습하면서 만났을 때와는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기분 탓…은 아닌 것 같군.’

분명히 허셜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잔뜩 찌들어 있는 기색이 뚝뚝 묻어나던 안색이었다.  칙칙한 안색이 몰라보게 맑아졌다. 아마 뺨과 구레나룻에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다듬은 탓도 있겠지.

“허셜 씨는 온천을 다녀오셨나 봅니다. 저희가 시청에서 바쁠 때에.”
“‘저희’라면 조수분도 경의사 님과 함께 있으셨어요?”
“예에. 그야 당연히—.”

바로 옆에, 라고 말을하려고 했던 코넬리아는.

“좀 전까지 같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모습을 감춘 재클린의 빈 자리,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연스럽게 빙글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괜히 말끔해진 피부 자랑을 하려고 오신  아니겠고. 저희에게 좋은온천을 소개하고 싶으신 겁니까?”
“소개하기 뿐이겠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모셔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아, 얼른 갑시다, 얼른요!”
“그렇게까지 권하신다면야.”

코넬리아는 즐거운 속내를 감추고, 마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가지 발상.

“허셜 씨.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얼마든지 뭐-든지 물어보세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허셜에게 코넬리아가 물었다.

“혹시 지금 가는 온천, 여탕과 남탕이 분리되어 있습니까?”
“네?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괜한 걸 어째서 묻느냐는 허셜의 말에는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기척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허셜의 질문에 소녀가 대답할 때였다.

“수치료(水治療)를 목적으로 하는 곳은 특별히 남녀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물에 젖어도 되는 얇은 면 옷을 입고 간이 가림막정도로 공간만 나눌 뿐이었죠. 수도 앨버스에서제가 이용하였던 곳은 다 그랬습니다만.”
“아하, 그런 시설은 아르샤에도  군데 있습니다. 지금 가는 곳은 그런 온천이 아닌데 말이죠~…. 거북하시면 지금이라도 바꿀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겉으로는 담백하게 보일 것이다. 스스로 그런 판단을 내리면서 표정 관리를  힘을 다하는 와중에.

‘이얏호—!’

코넬리아는 마음속으로 덤블링을 돌았다. 마음속으로 앞으로 전력 질주를 해서, 마음속의 양손으로 마음의 땅을 짚어 화려한 회전 동작을 반복한다.

지금은 원래의 자신보다 나이도 육체도  토막이 난 여자아이의 몸이라고는 해도. 몸뚱어리는 그래도  자아(自我)만큼은 어엿한 렉스 휴크레이.

여탕에 대한 호기심, 없을 리가 만무하다!

“아차차. 그렇지. 그걸 깜박했네….”

코넬리아가 내심 기뻐하는 동안, 무언가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허셜이 혀를 찼다.

“욕탕 옷이 기본으로 비치된 곳은 아니라서 완전히  벗고 들어가야 하거든요. 혹시 좀 불편하시면 욕탕 옷 준비를 부탁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의외의 경험은  수 있을 때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살며시 미소를 머금고, 코넬리아는 점잖게 대답하였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그랬다.

‘아, 알몸——!’

이번에는 뒤로덤블링을돌 차례였다.

목적지인 온천은 허셜과 함께 걸어가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정도의 가까운거리에 있었다. 거리가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아마 살짝 정신이 붕 떠 있던 탓도 있었으리라.

허셜과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귀로 들어온 그의 말은 코넬리아의 고막을 한 번 거치고나서 반대쪽 귀로 빠져나갔다.

“제가 특별히  부탁을 드렸으니! 그럼 느긋-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허셜 씨.”

코넬리아 자신으로서는 드물 정도로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남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탕에 들어가기 전, 탈의실부터 그 시설은 깔끔하고 화려하였다. 과연 허셜이 경의사에게 감히 추천하는 온천다운 곳이었다. 조용한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코넬리아의 손이 벌벌 떨린다.

그 떨림에는 기대와 함께.

마음의 심연에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하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원래 온천이라는 게 이렇게 조용한 곳인가?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옷을 다 벗은 코넬리아는 욕탕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향했다 문 옆에는 소금이 담겨 있는 함(函)과 함께 새하얀 면수건이 가지런히 개어 놓여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이었어도 높은 가격이었던 면화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흔하디흔한 직물로 만날 수 있다.그중에서도 욕탕에서 쓰이는 두툼한 수건은, 바다 건너 동녘의 종교국(宗敎國)에서  관습 중 하나다.

“호, 혹시 모르니까….”

수건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코넬리아는 조심스레 닫혀 있는 욕탕의 문을 열었다.

겉으로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으나 그 안은 뜻밖에도 넓었다. 높은 천장과 벽과 바닥은 모두 이국적인 타일이 깔려 있었고, 빼곡하게 설치된 가스등의 오렌지빛 조명은엷고 따스한 증기를 포근하게 덧칠한다.

“오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여인 조각상. 그 상이 들고 있는 항아리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물이 아름답게 상을 적셔 내리고 있는 광경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오—~~ 오오~…!”

기관지에 좋은 따뜻한 김에는 광천수 특유의 향이 감돌고 있다. 그걸 깊게 들이마신 코넬리아는 “후우”하고 내쉬고.

“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절망하였다.

욕탕에는 코넬리아 자신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밖에 없잖아—!!”

없잖아, 없잖아, 업자나—….

아무도 없는 탕에 메아리치는  코넬리아의 절규뿐이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코넬리아는 주먹으로 물기 젖은 타일 바닥을 팡팡 두들겼다.

그러다 보니 좀 전, 넋이 나간 대화 중간에 “경의사 님을 위하여 특별히 탕을 통째로 빌렸습니다”란 말을 들었던 거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오로지 이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뇌가 날조한 기억일지도 몰랐지만.

‘허셜… 너무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는군…!’

글썽이는 눈물을 훔친 코넬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천에는 죄가 없다. 그리고 허셜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너무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걱정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겠지.

아쉬운 마음은 잠깐뿐이었다. “홉”하고 짧게 각오를 다진 소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발, 그다음은 허리 아래까지 들어갔고 이내 목 아래까지 몸을 푹 담갔다.

체온보다 조금 더 높은 온천의 뜨거운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어우… 시워언하다….”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온천에 들어간 새하얀 팔뚝이 금세 빨갛게 상기되었다. 찰랑거리는 온천물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도 붉은 홍조가 들어 있다.

그렇게 온몸으로 열기를 받아들이고 있자니, 물에 젖은 머리칼이 귀찮게 뺨에 계속 달라붙었다.

“머리가 긴 사람은 묶고 들어가는 게 매너야. 몰랐어, 오빠?”
“알 턱이 없잖냐, 하하. 내가 언제 와 본 것도 아니고.”

재클린의 말에 답하던 코넬리아.

문득 고개를 젖혀, 거꾸로 된 풍경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재클린이 있었다.

옷을 입었을 때도 두드러지는 가슴은 옷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당당하게존재를 드러낸다. 군살 없이 몸을 균형 있게 감싸는 재클린의 근육은, 비록 커다란 키이긴 해도 특별히 마르거나 심하게 살이 쪄 보이지 않는 조화로운 체형을 만들고 있었다.

간신히 귀 아래까지 내려오는 짧은 보브컷의 은발이 물기로 반짝이고.

수건을  손을 허리에 올린 채.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면서 동생은 말했다.

“오빠. 머리끈 있어?”
“어. 그냥 손목에 끼워두고 있기는 한데.”

뒤집힌 시야는 그대로.

고개를 젖힌 채, 코넬리아는 답했다.

“대신 묶어줄래? 몇 번을 해도 아직 이건 좀 서툴러서.”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가만히 내려뜨리면 허리께에 내려올 정도로 길었지만, 지금은 그저 물을 머금은 다발일 뿐이다.

“나 원 참. 어쩔 수 없다니까?”

어째서인지 조금은 기쁜 기색으로. 재클린은 온천밖에서 살짝 걸터앉은 자세로 코넬리아의 머리를 다듬어 잡았다.

“생각보다 안 놀라네, 오빠. 동생의 몸을 보고도 반응이 너무 덤덤한걸.”
“안 놀란 건 아니야.”

어느 쪽이냐면, 너무 놀란 나머지 ‘나 지금 놀랐다!’라고 반응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놀랐어?”
“오빠 몸을 보고 내가 왜 놀라?”
“…그래. 그렇지.”

소녀의 몸이 되어서 의식을 차리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의식을 차린 후, 끔찍하리만치 고통스러운 재활 치료를 거칠 때.

재클린은항상 자신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줬었다. 인제 와서 그 어떤 몰골도 동생에겐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나저나 용케도 들어 왔네. 입구에서 안 막았어?”
“가면 쓰고 부탁하니까 바로 허락해주던데, 허셜 아저씨.”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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