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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1막 (下) 마르그리트의 옆얼굴 - 05 (1막 끝) (16/111)



〈 16화 〉1막 (下) 마르그리트의 옆얼굴 - 05 (1막 끝)

서로 잡아 막을 것처럼 노려보는 둘.


그 사이로 재클린이 끼어들었다.


“자아, 다들 그 정도로 하세요♪”

재클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누군가를 깔보는 비웃음도, 마지못하여 짓는 쓴웃음도 아니었다.

“오—가 아니지, 조수님의 말이 아까부터 너무 거칩니다. 저희가 맡은 ‘일’을 넘어서는 발언은 삼가셔야 해요!”
“에구구.”


동생의 말에 코넬리아는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과연 적절한 순간에 재클린이 분위기를 끄려고 나선 이유가 있었다.


경의사의 신분으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임무와는 별개로. 코넬리아가 아르샤 시를 찾아온 건 위생국에서의 조사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방 지역의 마른 수원(水原)으로 등록된 성천의 이름을 단 음용수가 수도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건, 공공 보건과 위생에 결벽주의적으로 깐깐한 위생국 입장에서는 못 본 척 넘길  없는 사건이었다.

여기에 대한 아르샤 현지 조사를 선행하는 역할을, 경의사인 코넬리아가 떠맡았다.


그리고 유사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하여 성천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정한 건(件). 아직 끝을 내지 못한 건은, 그들이 마무리를 지어줄 것이다.

“볼드 시장님.”

코넬리아에게 스팀건을 건넨 재클린이 이번에는 시장에게 말을 하였다.

“이번 ‘일’에 대한 업무는 위생국 관할로 넘깁니다. 저희가 조사하고 보고 들은 모든 정보는 오늘 중으로 위생국으로 이관하니, 앞으로의 저희에게 말씀하셨을 때보다는 좀 더 성의를 갖추어서 답변하셔야  거예요.”
“알겠네…….”

그 드세던 볼드 시장의 기운이 단숨에 수그러들었다.


코넬리아의 호신용 지팡이로 가격이 된 무릎이 아픈 건지, 아니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건지.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는 시장을 직원들이 옆에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도시의 미래를 포기하시면 안 돼요.”
“끝난  사실이잖은가….”

힘없는 시장의 손을 붙잡고, 재클린은 강하게 말했다.


“아르샤 시는 끝나지 않았어요! 끝난 건 시장님뿐이에요!”
“으… 으응?”

설마. 놀리는 건가?  타이밍에?


손을 잡힌 채 이 말을 듣는 시장도, 바로 곁에서 말이 들려오는 코넬리아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도 놓친 사이에. 재클린은 얼이 나간 얼굴로 굳어버린 볼드 시장의 손을 놓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볼드 시장님이 태어나기 전에도 아르샤 시는 있었습니다. 앞으로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고 언제까지 있을지 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장보다도 훨씬 키가 큰 재클린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성천이 없어도, 앞으로도 이 자리에서 도시는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을 거예요! 끝나는 건 여태까지의 그릇된 일이 끝나는 겁니다. 이건 볼드 시장님도 반성하셔야만 해요.”
“이, 이렇게 일이 잘못 틀어질 줄은 몰랐는데….”
“안 틀어져도 마찬가지예요. 하면 안 되는 일은 해선 안 되는 겁니다♪”


볼드 시장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말은, 분명, 시장과 같은 눈높이에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재클린의 말은 코넬리아 자신과 달랐다.

말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는 뜻만이 아니다. 말을  때의 마음가짐에서 보이는 크나큰 차이점. 그 부분은 아마 볼드 시장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재클린의 언행에는 장난기가 있을지언정 남을 흉보고 깔보는 괴롭힘은 없다. 필요한 상황이라면 적절하게 거짓말을 하는 융통성은 있을지라도, 타인을 철저하게 악의로 속이는 거짓과는 선(線)이 다르다.

‘정말 대단해, 동생….’

코넬리아는 재클린에게 비추어서 자신을 바라본다.

완전히, 철저하리만치 반대다.


허셜과 말을 나눌 때는 편견을 가진 위치에서 끝까지 찍어서 내리누르는 말을 하였다. 조금 전까지 시장과 언어폭력을 주고받을 때도, 자신의 말에서 ‘존중’이라는 두 글자의 뜻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었다.


‘전에는  그랬던  같은데. 여자애가 되어서 그런가?’


그런 졸렬한 변명을 떠올린 것조차, 코넬리아에겐 자괴감만 심해질 뿐이었다.

“앞으로 위생국이 내리는 조치가, 바로 아르샤 시를 위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볼드 시장님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어도 말이에요. 아셨죠?”
“알겠네. 명심하고 있도록 하지….”
“약속한 겁니다, 시장님?”

거짓과 사실의 흐릿한 경계에서도 가장 빛이 나는 건, 진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호소력이다.

나와는 달라.

어린아이가 되어서 그런지, 여자가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둘  합쳐서 여자아이가 되어서 그런지.

필시,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단순히 ‘여자’라서 자신의 성격이 꼬였다고 생각을 한다면—재클린은 물론이거니와—자신보다 성격이 번듯한 수많은 여자에게 너무나도 크나큰 실례겠지.

이런 한심한 자학을 하며 코넬리아는 골목 너머를 바라보았다.


“경의사 나으리, 이제 슬슬 자리를 비킬 때가.”
“앗차차.”


이번에는 재클린이 입으로 손을 가릴 차례였다.


아직 [원반]의 소란이 가라앉은 것 같지는 않았다. 경적이 울려 퍼지는 큰길 쪽은 여전히 북적이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두 번은 꺾어 들어오는 골목은 아직까진 별달리 주목을 받는 기색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 골목길을 가로막은 채 있다가는, 소동이 여러 사람의 눈에 띄는 건 시간문제다.


“볼드 시장님. 직원분들과 함께 차에 타세요. 시청으로 가요♪”


어차피 모든 조사가 이루어질 곳은, 이런 골목 바닥이 아닌 아르샤 시청이다. 지난밤 수도에 먼저 연락을 했던 대로 위생국이 심야 기차를 탔다면, 슬슬 아르샤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운전대는 좀 전의 직원분이 잡아주시고. 시장님은 조수석에 타 주세요. 저는 뒤에 앉겠습니다!”
“저기, 자리가 좀 부족할 거 같은데….”
“아, 조수님 자리는 없어도 됩니다. 어차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한 재클린이 코넬리아에게 슬쩍 윙크했다.

“원만하게 설명 잘 부탁드려요!”
“아하하….”

이것만큼은 미리 말을 맞추고 계획을 짠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재클린이 생각하는 일이 뭔지  수 있었다.


자리를 뜨는 시장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면서 소녀는 중얼거렸다.


“마중을 나가야 할 사람이 있군.”

코넬리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지금쯤 온몸이 습기로 흠뻑 젖은 몰골로 불쌍하게 거리 한구석에 서 있을 허셜이였다.




* * * *

깐깐한 위생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코넬리아와 재클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자료를 정리하여 넘겨주고, 수사와 관련되어 쏟아지는 질문과 답변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어쩔 도리가 없이 코넬리아와 재클린은 하룻밤을 더 묵어야 했다.


아르샤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런 시간에 배웅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셜 씨.”


다음날.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어두운 새벽. 아르샤 역사는 수은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 급수(給水)하는 증기기관차의 희뿌연 증기는 몇 사람 없는 플랫폼 위로 스산하게 흩어지고.

「치익- 치익-」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보일러에 닿은 물방울이 증발하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잔잔하게 채우고 있었다.

아직 기차가 출발하기까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재클린이 뭔가 이것저것을 사러 도로 역사 건물 안으로 돌아간 사이, 플랫폼에서 코넬리아는 허셜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어휴 아닙니다~ 어차피 저는 새벽잠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밤새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잠을 좀 설쳐서. 아, 피곤하진 않습니다.”


눈 밑이 퀭한 코넬리아는 약간 충혈이 된 눈을 비볐다.

“이런 얼굴로 말하면  믿으실까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제 말씀하셨던 온천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죠! 크하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허셜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 뿌듯함의 뒤에 안도의 한숨이 섞여 있는  못 본 척하기로 하고.


“그나저나 이거, 이제 저희는 쓸 일이 없으니 드릴까요?”

온천에서 받았던 토큰을 내밀었다. 토큰을 열 개 모으면 한 번은 거저 사용할 수 있는 거니, 아르샤를 찾는 외부 사람에겐 사실  쓸모가 없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허셜은 코넬리아가 건넨 토큰을 받지 않았다.

“기념품으로 하나 정도 가져가세요. 그리고 그걸 볼 때마다 아르샤 시의 뜨~끈한 온천수를 기억하고, 꼭 다시 찾아오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온천수는 기억에 남을 만했죠. 인정합니다.”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고.

“그럼 늦기 전에 착각을 고쳐드려야.”


아르샤 역사에서 빵긋 웃는 낯으로 한 아름이나 되는 종이 쇼핑봉투를 껴안고 걸어오는 재클린을 보면서, 코넬리아는 말했다.


“허셜 씨. 삼  전에 무언가 일이 터져서, 갑자기 아르샤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게 아닙니다.”

도시가 쇠락하고 나서야 해결책을 찾는 시장. 도시가 쇠락한 시점부터 문제점을 고민하는 허셜.


크게 보면 허셜 또한 시장과 똑같은 판단 실수를 하고 있었다.

“칠 년을 버텼던 겁니다. 성천이 사라지고도.”

버티고 버티다가, 무너져 내렸다.

고작이라면 '고작'이라고 해도 좋을 시답잖은 현실이다.


재클린이  말은,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쇠락하기 시작하는 도시의 기세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설 수 있으리라고는, 코넬리아 자신은 믿지 않는다. 허셜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 사람도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부정적인 발상이 뻗어져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최소한  명은 있지….’

그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재클린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뭐예요~ 저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으셨어요?”
“허셜 씨의 첫사랑 이야기.”
“네? 이 와중에?!”


혼란에 빠진 재클린을 보고 피식 웃고. 코넬리아는 토큰을 뒤집었다.

검은 녹이 슬어 붙은 마르그리트의 옆얼굴은 마치 눈물이 마른 자국처럼 보였다.

-1막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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