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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1막 (下) 마르그리트의 옆얼굴 - 03 (14/111)



〈 14화 〉1막 (下) 마르그리트의 옆얼굴 - 03

그런 증기가 본디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영역에서 마구 날뛰고 있으니, [원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코넬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건, 반쯤 헐벗은 몸으로 옷가지와 짐을 쥔 채 빠져나오는 단순한 온천 방문객이 아니었다.

분명히 완전 메마른 성천 어느 한구석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아르샤 시의 시장.

그리고 그 시장이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챙겨서』 가지고 나올 무언가.

본디 집에서 불이 나더라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챙겨서 나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성천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장을 차린 시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바로 근처에 주차된 아르샤 시청 관용 증기차 주위를 쌍안경으로 유심히 살펴보고 있자니.

“왔다!”

코넬리아는 접안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좁고 동그란 시야 안으로 두세 명의 사내들이 천으로 꽁꽁 싸맨 뭔가를 손수레로 황급히 나르고 있었다. 그것을 트렁크에 넣기가 무섭게, 연신 콜록거리면서 건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낸 자.


 치수 작은 양복이 터질 듯이 몸을 감싸고 있는, 볼드 시장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뱃살과 턱살이 대단한 시장이 허둥지둥 차 조수석에 올라탄다. 뒤이어 사내들도 제각기 자리에 올라타고 그중 한 명이 운전석에 앉았다.

순환 보일러가 앞에 달린 증기차는, 점화 장치를 가동한 순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인했지! 동생!”


주머니 안에 쌍안경을 넣은 코넬리아는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재클린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빨리,  차 가로막아야 해, 어서!”
“어휴, 오빠도 참. 보는 눈이 너무 많은데~”

너스레를 떨면서, 머리 옆으로 두르고 있던 새부리 가면을 다시 쓴 재클린.

살짝 어깨를 튕기는 것만으로도 코넬리아를 허공에 띄웠고. 그와 동시에 팔을 휘적휘적 저으니 어느 사이에 코넬리아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동생의 품속에 들어와 있었다.

품에 안은 코넬리아를 보며 재클린은 말했다.

“[시장이 탄 차가 골목으로 들어갈 때. 그때 가로막아도 되지?]”
“훌륭하다, 동생.”

허셜이 코넬리아 자신에게 엄지손가락을 연거푸 치켜세웠을 때, 무슨 심정으로 날렸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로 하는 칭찬에 붙은 복잡한 미사여구를 간결하게 정리하느니, 간단한 몸짓으로 심정을 전달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그러는 쪽이 코넬리아가 시간을 애써 들면서 단어를 고를 필요도 없었다.

“[칭찬 고마워, 오빠♪]”

재클린은 코넬리아를 품에 안은 채로 뒷걸음으로 꽤 물러났다. 어느 정도는 달릴 만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무섭게, 지금 있는 건물보다 기껏해야 한 층 정도 낮은, 옆 건물 옥상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혀 안 깨물게 조심해!]”

마음의 준비를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으, 으어억—”

도움닫기를 내디딘 재클린은 빌딩과 빌딩 사이, 거리 위를 공중에서 가로질렀다.

코넬리아는 도저히 숙녀의 입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비명을 흘렸다. 재클린은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오빠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표정에  하나의 변화도 없다.

휘이이익—, 바람을 뚫고.

재클린의 디딤발이 땅에 닿았다.


「푸스스슥——」

두 사람분의 충격량은 오롯이 재클린의 발뒤꿈치에 실렸다. 그 충격에 조각나 부서진 옥상 바닥의 조각 파편이 휘날렸다. 콘크리트 먼지가 휘날리는 사이로.


“[하아압!]”


코넬리아를 품에 안은 채, 재클린은 달려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온몸의 힘을 담아서 도약.


한 덩어리가 된 두 소녀의 몸은 다시 한번, 옆 건물 옥상으로 향한다.


콰과과과—, 파열음을 긁는 재클린의 발자국.


그녀의 두 발을 따라 기다랗게 패인 자국  줄이 옥상 바닥에 새겨졌다. 처음 있던 곳보다 제법 낮아진 건물 옥상에서, 재클린은 이번에는 달음박질을 멈추고 바깥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차나 마차는 한창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원반]으로 너도나도 몰려가고 있었다.  흐름을 거스르는 차는 오직 하나.

잠깐 사이에 한 블록은 뒤처진 시장의 관용 증기차는, 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코넬리아와 재클린이 있는 건물 옆으로 커브를 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운이 좋네. 바로 이쪽으로 오다니♬]”
“그… 그러게… 우욱.”

재클린의 준족(駿足)은 칭찬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승차감은 썩 좋지 못하였다.

아니, ‘좋지 못하다’는 것도 너그러운 평가다.


“[오빠,  어지러워? 괜찮아?]”
“으, 으으응. 괜찮아. 오빠 괜찮아….”

그렇게 말을 하는 코넬리아의 안색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요동치는 재클린의 품에 안겨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다. 삼축으로 정신없이 바뀌는 입체적인 가속도 변화에 익숙지 못한 귓속이, 어지러움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괜찮으면  번만 더 참아!]”


동생은 인정도 자비도 없었다.


이번에 도착한 장소는, 차 앞이었다.


검정 삼각기가 매달린 공무 차량은  깜짝할 사이에 북적이기 시작한 큰길을 피해 요령껏 샛길로 갈 생각이었다. ‘뒤도 보지 말고 저택으로 가라’는 시장의 지시 사항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눈앞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귀 따가운 소음과 함께 차는 멈췄고.

“어이, 댁들 뭐야! 미쳤어?!”

옆자리의 시장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시청 직원이 먼저 내렸다.

“이 사람들이 눈이 없나, 차 안 보여? 빨리  비킬 거야, 어엉!? 어, 엇—…?”


그렇게 말을 하던 직원은 뒤늦게 재클린의 가면을 보았고, 말을 멈췄다.


재클린이 쓰고 있는 새부리 가면은,  교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편력의원(遍歷醫員)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수 세기 전, 지독한 전염병이 도는 곳을 배회하는 의원들은 모두 법으로 지정된 가면을 쓰고 다녔다.  가면은 기이하리만치 코가 길쭉하게 나와 있었는데 단순히 괴상한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악취로 병이 옮겨진다’는  당시의 지식에 따라, 나쁜 냄새를 피하고자 가면의 호흡부에는 약초 주머니가 들어가 있었다. 약초 주머니의 향이 역병을 피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 대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를 만들어냈다….


“히, 히익….”

조금 전의 화를 내던 기색은 간데없이, 직원은 몸서리를 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새부리 가면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역병이 있다」로 한  새겨진 불길한 뉘앙스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가면무도회 때에 으레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악령 분장의 소도구로 쓰일 정도였다.

역병 지역으로 격리된 곳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구원하였던, 본디 그들의 목적은 잊힌 지 오래.

시간이 흘러 연합 왕국 내에서  전염병은 모습을 감추었다. 더는 의원들이 가면을 뒤집어쓴 채 역병으로 폐허가 된 마을 곳곳을 배회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새부리 가면은 편력의원의 상징으로 남아서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에 조금은 억울하게 덧붙어져 있는 불행, 불운, 역병, 죽음, 저주 등등 온갖 부정적인 인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우… 우에에에…”


이상한 소리를 내는 소녀 하나를 품에 안고 있으니, 수상한 분위기는 한층 더 심해졌다.

“에이잇,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운전을 맡았던 사람이 자리를 피하는데, 직원들이 뻔히 보는 이 자리에서 시장이 약한 기색은 보일  없다. 시장은 조수석에서 내렸다.

“떠돌이 의원 나리! 안녕하신가!”


그 또한 속에서 무의식중으로 올라오는 원초적인 두려움으로 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애써 강한 척, 허세를 떨었다.


“그렇게  가운데를 막고 있다가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가. 우리가 길을 실수로 열기 전에 어서, 어서 비켜주게!”
“[길을 실수로 열다니. 아, 그런 뜻인가♪]”

새부리 가면이 비스듬하게 고개를 비틀어서 킥킥 웃었다.

“[어디까지나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아서 저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뭐 그런 말씀이신 거죠♬]”
“말이 통하는군. 허허, 그러니… 으, 으음?”

시장은 억지로 웃는 척을 하려다가,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던 거 같은 목소리인데. 혹시 우리 예전에 얼굴 본 적 있는 사이인가?”
“[아휴, 두말하면 섭섭하죠 시장님!]”


그렇게 말을 한 새부리 가면은 품에 안고 있던 소녀를 놓았다. 비틀거리며 땅에 선, 단정한 외출복 차림의 소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색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당신과 얼굴 본  없는 사이야.”
“자… 자네는 누군가?”


시장이 던진 질문은 무시하고 코넬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녹색의 눈동자가 바라보는 건 볼드 시장이 아니라 새부리 가면.

코넬리아의 마음을 읽은 재클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면을 벗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짧은 머리칼을 가볍게 손질하는 재클린은, 볼드 시장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미소를 지었다.


상상도 못 한 정체!


“아,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한나절인가요?”
“경의사 님…?”

볼드 시장은 체통을 지켜야 하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어제, 시청에서 자신의 영혼까지 탈탈 털었던 경의사.


그 경의사가,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완전히 들킨 건가? 아니야, 아직은 몰라! 이 녀석이 알 턱이 없다!’

당황한 가운데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논리 구석을 찾는 시장을 향해.


“수색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볼드 시장님♪”


재클린이 클록 안에서 꺼낸 건, 단풍나무를 깎아서 만든 개머리판과 금속 총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카트리지 교환식 스팀건이었다.

처음부터 근거리 호신용과 정숙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그 위력은 다섯 발자국만 떨어져도 보잘것없이 약해졌지만, 겉보기엔 플린트락 소총과 쉽사리 분간되지 않는다.

안전태엽을 푼 후, 꼼짝없이 소총으로 보이는 그 총구를 재클린은 볼드 시장과 증기차 사이로 흔들었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직원들은 얼른 꺼지라고 해 주세요~”
“무— 무슨 짓인가!? 난 시장이라고!”
“시장이면 총 맞아도 안 아프십니까? 그러면 안 비키셔도 되는데.”

까딱까딱. 재클린의 손짓에 따라 직원들은 차에서 내렸다.


“벽에 손 붙이고  있으세요. 허튼짓하면 시장이 아파질 겁니다!”


협박이면서도 묘하게 그 표현이 귀엽다. 물론 재클린은 시장이 ‘아파질’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볼드 시장 또한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직원들이 차에서 모두 나온 걸 확인한 재클린은 코넬리아에게 스팀건을 건넸다. 코넬리아는 총구 끝을 시장의 옆구리에 바짝 붙인 채 차 뒤로 이동했다.


코넬리아가 한 번 총구로  누르자, 시장은 덜덜 떨면서 트렁크를 열었다.

“이익…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알아!”
“어라. 지금 나보고 물은 거지?”

거침없이 대답하는 코넬리아의 말은, 지금까지 허셜과 호텔 카운터 직원을 비롯한 여러 시민과 나누었던 대화와는 전혀 달랐다.

역시 코넬리아 자신은 경의사인 걸 감추는 쪽이 편했다. 말을 편하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나는 무사할 거야. 너는 무사하지 못할 거고.”
“뭐, 뭐라고?”
“키 멀대같이 커다란 녀석이랑 나는 ‘주종관계’거든.”


주종관계. 즉, 주인과 하인의 관계.


“즉결심판(卽決審判)을 할 수 있는 경의사의 권리에는 설령 시장이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 몰랐어? 몰랐으면 이참에 배워둬.”


적당하게 소녀가 내뱉은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이는 완벽한 상하 관계가 있었다. 코넬리아 자신이 주인. 그리고 동생인 재클린이 하인 노릇을 한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자그마한 아이가 키 큰 어른의 부하’라고 생각할 법하고, 볼드 시장도 멋대로 그런 착각을 할 뿐이었다.


착각을 구태여 바로 잡아 줄 의무는 없지.


그런 생각을  코넬리아는 한 손은 스팀건을  채, 열린 트렁크 안에 반대쪽 손을 집어넣었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천을 풀어헤치니, 그 안에서 빼꼼히 모습을 나타낸 것은.


“조각상?”

어느새 다가온 재클린이 코넬리아의 귀에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코넬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총을 재클린에게 건넸다.

(흠…….)


양손으로, 묵묵히 천을 전부 풀었다.

아이의 몸이 된 코넬리아 자신의 몸뚱어리만 한 크기인 대리석 조각상. 팔찌와 장신구로 둘러싸여서 살짝 말랑하게 들어간 살결에서 도저히 돌덩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양감(量感)이 느껴지고, 물결치는 머리칼은 입김을 후우- 불면 흔들릴 것처럼 생동감이 있다.

한쪽 다리만 살짝 수그린 채 살며시 웃고 있는 여성의 귀에는 얇은 꽃잎이 동그랗게 모인 꽃 한 송이가 새겨져 있었다. 코넬리아는 연한 녹색의 반투명하고 미끄러운 막이 덮인 그 꽃을 쓰다듬었다.


“마르그리트 상(像)이군.”

그리고 문지른 손가락 끝에 묻은, 조각상을 뒤덮고 있던 점액질의 냄새를 맡았다. 비릿한 수생 식물 특유의 향이 코끝을 감돌고 지나갔다.

“이거 대체 얼마나  안에 담그고 있었던 거야.”


소녀의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안 그래도 식은땀이 흐르는 시장의 안색이 한층  나빠졌다.


“저, 그, 그건….”
“해명하시겠습니까?”


돌아보지도 않고.

푸르스름한 물때로 뒤덮여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 조각상을 보면서 코넬리아는 말했다.

“종교 시설에 있어야 할 여신상을 왜 시장님이 손수 [원반]에서 들고나와서 차에 실었는지. 이걸 즉석에서 지어내는 거짓말로 해명할  있겠습니까? 떠오르는 변명이라도 있으신지?”
“아, 저… 그게, 그, 말하자면—”
“이제는 그만 합시다.”

숙였던 허리를 세운 코넬리아는.


차 트렁크를 있는 힘껏, 쾅, 닫았다.


“이런 하급 중의 최하급인 성유물(聖遺物)을 물에 담근다고 해서 성천수로 변하지는 않아. 볼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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