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막 (下) 마르그리트의 옆얼굴 - 01
“이 정도는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설명하신 것만 들으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닌걸요!”
크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 허셜과는 달리.
“그렇습니까.”
자못 심각한 얼굴로 코넬리아는 아랫입술을 습관적으로 깨물었고, 그걸 본 허셜도 눈치껏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왜 그러십니까, 경의사 님?”
“허셜 씨의 입이 어느 정도로 무거울까 고민이 됩니다. 이게, 외부로 새어나가면 제가 정말 곤란한지라.”
보기 드물게 약한 표정으로 코넬리아는 말했다.
“저의 일을 보조하는 동안, 원래 대로라면 노출되지 말아야 할 정보가 허셜 씨에게 드러납니다. 허셜 씨의 입이 무겁지 못하다면….”
거기까지 말하고. 코넬리아는 휙 돌아섰다.
“들어갑시다. 사무실 안으로.”
“지금! 경의사 님, 지금 너무 신경 쓰이는 부분에서 말을 끊으셨는데요!”
“그쪽으로는 말을 안 하는 편이 팀워크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코넬리아는 발코니 문을 열었다. 뒤를 따라서 사무실로 들어온 허셜은.
바로 옆, 낯선 그림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걸 느꼈다.
“[——…후욱.]”
새부리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보다도 키가 한 뼘은 커 보이는 누군가. 회색 클록을 몸에 두른 채 거친 호흡음만 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어제 코넬리아가 들고 다녔던 왕진 가방이 들려 있고.
다른 한 손이 체중을 실어 지탱하고 있는 건, 코넬리아가 손에 쥔 것과는 조금 다른 지팡이였다.
보통 지팡이라고 하면 땅을 짚으면서 발에 무게가 덜 실리도록 도와주는 것들을 말한다. 그러나 새부리 가면을 쓴 낯선 이의 지팡이는, 훨씬 날렵한 모양의 유선형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 지팡이를 코넬리아가 발로 툭 걷어차자, 무게 중심을 잃은 새부리 가면이 순간 몸을 휘청였다.
“쓸데없이 무게 잡지 말고, 따라 나와.”
“[—…후욱 훅…—]”
무시무시했던 첫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정도였다.
“아차. 소개를 안 드렸던가요?”
허셜과 재클린이 첫 대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코넬리아는 짐짓 몰랐던 척 능청을 떨었다.
“제 조수입니다. 오늘 저희를 도와줄 겁니다.”
약간 거북목에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새부리 가면. 그 머리를 툭툭 치면서 코넬리아가 말했다.
“허셜 씨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입이 무거우시잖아요, 그죠?”
“네, 네에! 아무렴요!”
대체 오늘 하루 동안 몇 번이나 놀라는 걸까. 그렇게 코넬리아마저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로, 허셜은 “밑에 가서 이륜마차를 잡아 오겠습니다~!!”라며 거의 반쯤 비명을 지르면서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갔다.
그 뒤를 바라보는 새부리 가면—재클린이 코넬리아의 곁에서 작게 속삭였다.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은데, 오빠?]”
“믿어야지. 그다지 힘든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그 말대로, 코넬리아가 허셜에게 부탁한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이런 건 어린 애라도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그렇지만.]”
허셜이 어떤 황당한 부탁을 들었는지, 그리고 그 부탁이 무슨 일을 불러일으킬지 알고 있는 재클린은.
“[…오빠가 믿는다면 나도 믿어야지.]”
새부리 가면 아래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고.
먼저 계단을 따라 총총걸음으로 내려가는 코넬리아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사무실 1층 입구에 허셜이 잡아 온 이륜마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정말로 잠깐이었다. 좀 전에 코넬리아에게 했던 허셜의 말대로 성천은, 코넬리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 시가지의 중심에 있었다.
왕국 수도에서 구(舊)시가지에서는 모든 길이 왕궁으로 향하였던 것처럼, 아르샤에서도 크게 뻗은 길이 모이는 곳에 바로 그 성천이 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성천의 거리」가 있다.
오로지 샘 하나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오래된 도시다운 모습이다.
“커피 하우스나 음식점도 원래 한 곳에 모여 있잖아요? 목욕탕이나 온천도 다 똑같단 말이죠~”
마차에서 내린 허셜은 어느샌가 도시에 갓 찾아온 손님에게 신나게 설명을 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아르샤의 성천도 원래 ‘진짜’는 하나지만, 그 옆에 수많은 샘과 온천과 욕탕이 세워졌다 이겁니다~”
“성천 하나가 말랐다고 거리 전체가 무너지진 않았다는 말씀이군요.”
커다란 대로(大路)를 따라서 각종 장식물과 눈길을 끄는 광고판으로 꾸며진 대형 건물이 여기저기에서 존재를 뽐내고 있다. 시야에 담기는 풍경을 보며 코넬리아가 허셜에게 물었다.
“그래서 일부러 안내서에는 원(元) 성천을 특정 짓지 않았던 겁니까?”
“성천 단 하나뿐만이 아닌, 아르샤의 모든 샘이 성스럽다는 거니까요. 아르샤 시에서 주장하는 건 말이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코넬리아는 단언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문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곳 주민인지 아니면 밖에서 온 사람인지는 몰라도, 몇 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서 온천 건물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 영화(英華)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진짜 성천의 장소.
“바로 저 건물입니다.”
그곳도 다른 온천장과 비슷한 정도로 발길이 오가고는 있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한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륜마차에 탈 때 ‘성천 바로 앞이 아니라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가자’고 부탁했던 코넬리아였다. [원반]이라 성천의 옥상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간판은,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과연, 말씀하셨던 대로.”
말라붙었다는 샘에 버젓이 손님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도.
코넬리아는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샘’은 말랐지만 ‘온천’은 여전하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허셜 씨.”
[원반]이라 적힌 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는, 다른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다른 온천장에서의 작은 굴뚝에서는 아무런 증기도 안 나오고 있거나, 기껏해야 정말로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힘없이 한두 줄기만 증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원반]의 거대한 황동 굴뚝에서는 가히 쉬지 않고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다.
다른 건 뿜어져 나오는 증기의 양 차이 만이 아니었다. 굴뚝 그 자체의 빛깔에서도 세월이 엿보였다.
“우리 성천의 굴뚝, 아직도 반들반들하네요. 저보다 어려 보입니다만?”
“예. 상당히 어린 굴뚝입니다.”
코넬리아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아는 허셜은 순순히 동의하였다.
“저 굴뚝은… 성천이 마른 다음에 세워진 거니까요.”
온천이라는 건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중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는 온천은, 처음부터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것이다. 예로부터 성천이라고 불린 곳이나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온천이라면 예외 없이 이런 곳이었다.
그리고 다른 온천은.
솟아나는 물을 가열해서, 문자 그대로 ‘따뜻한 물’을 제공할 뿐이다.
“지하수로 나오는 걸 가열해서 온천으로 삼는 거죠.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장담합니다. 얼마 전에도 한 번 왔었거든요. 가만 있어 보자….”
손가락을 세면서 날짜를 헤어리던 허셜은, 자기도 놀랐는지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었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군요.”
“허셜 씨가 성천을 찾아갔다는 말입니까?”
누가 봐도 허셜은 겉보기에는 성천을 찾아야 할 인물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런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코넬리아에게 허셜은 웃음으로 화답하였다.
“크하하~ 어릴 때부터 몸 튼튼한 건 자랑 중에서도 으뜸 자랑거리였죠~!”
이상한 부분에서는 눈치가 없는 것도, 그의 단점이자 장점일 것이다. 허셜은 잘도 자신의 건강함을 코넬리아 앞에서 과시하였다.
“제가 성천에게서 특별한 걸 바란 건 아니고, 단순히 온천욕을 하기 위해서 들렸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내심 기대를 하게 되잖아요.”
“기대, 말씀이시죠.”
코넬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셜 씨. 지금 떠올리신 심정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네, 네에…?”
“의원인 당신도 가지고 있던 기대라는 게, 정말로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들의 목적지는 [원반]이 아니었다. 향한 곳은 [원반]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건물 옥상이었다.
호텔로 사용되는 건물 옥상에는 새하얀 이불보가 수없이 널어진 빨랫대가 있다. 얇고 흰 이불보가 기분 좋게 넘실거리는 사이를 헤치고 셋은 성천이 보이는 측면으로 이동했다.
“저거 큐티스제(製) 차량 맞지?”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코넬리아가 오른손을 뻗어 가리킨 건 [원반]과 바로 닿은 옆 건물, 포장도로 갓길에 주차된 증기자동차였다. 어느샌가 소녀의 곁에 서 있던 재클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클린이 얼굴을 숨기고자 뒤집어쓰고 있는 새부리 가면이 익숙지 않은지, 허셜은 바짝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기색이다. 그러면서도 용감하게 코넬리아 옆으로 와서 소녀가 가리키는 걸 보았다.
“오~ 큐티스제라고 하면 엄청 귀한 물건 아닌가요?”
“차만 귀한 게 아닙니다. 저 차 주인도 꽤 귀하신 분이죠.”
검은 삼각기가 매달린 차량을 보면서 코넬리아는 손뼉을 쳤다.
“자아, 시작합시다. 허셜 씨, 남자다운 모습 보여주세요!”
“하하! 맡겨만 주시길!”
그렇게 기세 좋게 나섰다가도 혼자서 일 층으로 내려오니, 역시 여러 사람이 오가는 모습에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당차게 내디딘 걸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엉겁결에 위를 올려다본 허셜.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입은 싱긋 웃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는, 코넬리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서, 가세요.
“시작되는 건가, 나의 자폭 쇼….”
그렇게 중얼거리고 허셜은 성큼성큼 [원반]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져 있었다.
어제 코넬리아가 들고 다니던.
그리고 조금 전 재클린이 그에게 건네어 준 왕진 가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