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1막 (中) 네가 잘못 되면 나는 어떡하라고 - 02 (7/111)



〈 7화 〉1막 (中) 네가 잘못 되면 나는 어떡하라고 - 02

코넬리아는 전화기 걸쇠에 걸러져 있는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대었다. 얼마 후, 신호가 연결되었다.


“[-아르샤 전화교환국입니다]”


잡음이 자글자글하게 섞여 있지만,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코넬리아는 송화기에 입을 가까이 대었다.

“수도 앨버스, 술집 ‘무화과’로 연결해주십시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잠시 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코니!]”


아직 코넬리아는 입도 열지 않았건만, 먼저 상대방이 반갑게 별명을 불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코넬리아는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할아버지….”
“[-묻고 싶은 건 많지만, 그건 나 대신 재클린이 해주겠지. 그래.]”
“재클린. 재클린이, 출발했습니까?”

소녀의 의문은 궁금한 답을 알아내기 위한 목적의 질문이 아닌, 확신을 위하여 짚고 넘어가는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수화기 너머 할아버지는 코넬리아가 기다리던 확답을 해주었다.

“[-그래. 오늘 아침 일찍 기차에 탔어. 아르샤 도착 예정 시각이 아마도 오후 다섯 시쯤…이던가?]”
“다섯 시면 조금 남았군요.”

다행히도 전화가 엇갈리기 전에 먼저 연락을 한 셈이 되었다.


“동생에게 전화가 오면 이곳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코넬리아는 지금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과 방 번호를 할아버지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서, 말을 이어나갔다.


“교수님과는 부디 화해 하시길 바랍니다. 할아버지.”
“[-흥, 화해라니 그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릴! 마음 같아서는 아주 그냥 @#$%&*^—]”

잠시 동안 거친 욕설이 귓가를 세게 울리고 지나갔다. 코넬리아가 저도 모르게 귓가에서 수화기를 멀리 떨어뜨리고 있으니 얼마 후 “[-끊는다!]”란 말과 함께, 전혀 예상할  없는 타이밍에 통화는 끝이 났다.


송화기에 바짝 붙다시피 하였던 고개를  코넬리아는 수화기를 원래 걸려 있던 걸쇠에 내려놓았다.

할아버지의 상심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고 아꼈던 손자를 사형수의 중범죄자로 만들고,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소녀의 몸으로 만든 장본인이니까. 여러 가지 전후 사정을 설명해드리긴 했어도 완전히 받아들이시긴 힘드신 듯하였다.

‘오직 시간만이 보살펴주리라. 이 말이 이런 경우겠지.’

약을 써도. 축원(祝願)을 빌어도.

마음의 병은 쉬이 낫지 않는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후, 수도를 떠날 때까지의 기간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은 몇  없었다. 그때마다 울분을 터뜨리는 당신을 보니 코넬리아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코넬리아 자신의 마음부터 보살펴야 할 처지니, 타인을 걱정할 만큼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방에서 나온 코넬리아는 어느새 다른 손님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직원에게 눈인사하고 승강기를 탔다. 15층 버튼을 누른 벨보이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코넬리아에게 물었다.


“짐은 제가 들겠습니다, 손님.”
“괜찮아. 내가 직접  거니까….”

사양하려고 했지만, 어느샌가 벨보이가 코넬리아의 왕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


벨보이가 나쁜 손버릇으로 훔친 게 아니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말이 된다.

지금 눈앞의 시야가 조금 흐리게 보이는 건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자기보다 몇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녹색 유니폼의 벨보이. 옷과 마찬가지로 녹색 빛의 캡을 눌러쓴 채 벨보이가 말했다.

“손님. 안색이 정말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의원을 부를까요?”
“괜한 걱정 하지마…. 좀 지쳤을 뿐이거든.”


의원 앞에서 의원을 부르려고 하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알면서 이 녀석이 그런  아니겠지?


“아직 저녁을 안 먹어서 그래. 응, 배가 고파서 그런 거니까 의원 같은 거…, 안 불러도 돼.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완강히 거부하는 손님에게 한낱 벨보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영원히 올라가는 것 같았던 승강기는 이윽고 멈췄다. 허리께 올라오는 슬라이드 도어를 열고 벨보이는 잠자코 짐을 1505호 앞에 내려다 놓았다.


말없이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인 후.


손짓으로 코넬리아는 그대로 벨보이를 돌려보내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 넓은 건 아니지만, 혼자 묵기에는 좁지 않은 적절한 침실이었다. 창문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별로 두꺼운 커튼은 아닌지 환하게 바깥의 빛이 비쳐 들어와서 방은 어둡지 않았다.


숙소에 왔으니 이제 당분간은  지긋지긋한 손짐을 번거롭게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코넬리아는 욕실로 향하려고 했지만, 힘이 풀린 다리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어라, 이상하네….”


코넬리아는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벽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소녀는 침대에 앉았다. 흐트러지는 호흡을 바로 잡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의 맥을 짚었다.

고르지 않은 맥박수에 탄성을 잃은  겉으로만 부풀어 오른 요골동맥이, 앙상한 손목에서 퍼져 나와서 가느다란 손가락 끝을 훑고 지나간다.


단순히 지쳤다고 나오는 모양이 아니었다.


고민을 하고 답을 내놓으려고 해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활력이, 벌써 떨어진 건가…?”

가방 안에 스스로 활력을 보충할 수 있는  가지 도구가 있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몸은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꼼짝하질 않았다.


와, 와아… 이거 진짜 위험한데—….


 생각을 끝으로.


코넬리아는 침대에 쓰러져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

흘러가며 쌓이는 시간의 무게는 그 무엇도 버텨낼 수 없다. 생명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 뿐만이 아닌, 살아있지 않는 건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수십  전 번성하였던 외양을 지닌 그대로 낡아가는 아르샤 시청(市廳). 그 정문으로부터 그  대로까지 이어지는 긴 광장에, 흑석 사이로 사치스럽게 꾸며진 황동 분수대가 줄을 지어 서 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험준한 산맥 중턱 부근에 자리를 잡은 수원(水源)에서부터 연결한 상수도관은, 사시사철 시청 앞에서 분수가 시원스레 내뿜어지게 만든다.


비록 아르샤가 예전의 모습은 잃었다고 해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시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시장도 여느 때였으면, 여느 때처럼, 시장실에서 분수 감상에 여념이 없었겠지만.

“그거랑 관련 있는 것부터 철저하게 숨겨, 일급 서류랑 같이!”

시청 2층의 절반을 가득 채우는 문서 보관실. 실내에서 쓰기엔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조명 아래에서. 몇 겹은 접힌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도록 시장은 지시에 여념이 없었다.

평소 자신의 자랑스러운 뱃살처럼 흘러 넘쳤던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절대 들키면 안 돼….”

시장의 닦달에 수많은 직원이 어수선하게 서류 뭉치를 들고 지하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비워진 서류에 미리 예비용을 넣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정부에서 오는 외부 감사는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차례, 연초마다 찾아온다. 직원들도 어느 정도의 선에서 적절하게 커버를 하면 되는지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적당히 짜고 치는 일. 최저한으로 지켜야 할 선 정도는 지켜야 한다.

그런 부분은 일상적인 업무 중에도 따로 준비하는 조직이 꾸려져 있다. 일상적인 감사 대비는 일상일 뿐이다. 이건 시장만큼이나 직원들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시장의 호들갑이 이해가  되었지만.

‘경의사가  온다’는 소식부터는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다.


여기서부터는 안전하지만, 여기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위험하다.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 경고선은 처음부터 정해지는 게 아니다. 엎치락뒤치락 부딪치는 동안 눈치껏 암묵적으로 찾는 지점.

그 지점이, 경의사의 경우는 완전하리만치 공백의 영역이었다.


기껏해야 일개 의사가 경찰 완장을 차고 다닐 뿐이라고 평가절하를 하는 사람도 없는  아니다.

시장이 생각하기엔, 그런 사람들은 경의사에게 당해볼 일이 없는 입장이니까 그런 쉬운 말이 나오는 거였다.


그들이 차고 다니는 무형의 완장은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길… 하필  중요한 시기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시장은 허리춤의 회중 시계를 꺼내 보았다. 어느덧 시간은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오늘은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수위 직원이 달려왔다. 절박한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멍청한 녀석, 바로 여기로 오면 어떡하냐!”
“하, 하지만 저도 그럴 수가 없는 게─”

수위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등 뒤에서 불쑥, 낯선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볼드 시장님!”


그가 처음 마주한 건, 의학국 제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붉은 라인으로 강조가 된 검은색 세퍼릿 재킷은 먼지 한 점 붙어있지 않은 새하얀 셔츠를 감싸고, 재킷 위를 크게 덮는 흑회색 클록(cloak)은 발목에 닿으리만치 길게 내려와 있다.

검정빛 긴 치마는 무릎 발목께까지 부드러이 늘어져 있고, 그 아래로 드러난 복숭아뼈를 감싸는,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츠를 신은 그 자는.


바로 그 사람은!


“누… 누구십니까?”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한심한 목소리로 볼드 시장은 물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경의사는 분명 ‘체구가 작고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도 훨씬 키가 큰, 비대칭으로 기울어진 보브컷인 짧은 은발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르샤 시장의 질문을 무시하고 씩 웃었다.

“어휴 이거 참, 역시 소문은 무시할 수가 없군요. 어쩜 이렇게 성대하게 제 환영 파티를 준비하고 계시는지….”

그 말에 답변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점심때, 근처 레스토랑에서 목격되었다고 하는  소문의 당사자라고 믿기에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인상착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혹시 헛소문이었나?

시장의 마음속에서 헛된 희망이 생겨나려는 차에.

“아 지금 ‘헛소문’이란 생각하신 거죠? 제 앞에서 거짓말하면 못써요.”


여자는 멍하니 서 있는 시장의 손을 잡고 억지로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명함을 그의 손바닥에 꼭꼭 눌러 담았다.


“다시 한번 인사를 하죠, 반갑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분홍빛 로사리오(rosario, 크고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염주)로 감긴 오른팔을 슬며시 과시하면서. 그녀는 시장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을 꺼냈다.


“코넬리아 B. 경의사입니다.”
“보…볼드 시장입니다….”


얼어붙어서 꼼짝  하는 시장과의 악수를 풀고. 그녀는 소란스러운 기미가 줄어들지 않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심상찮은 걸 느끼고 여기를 바라보는 직원도 있지만, 그 수는 아직 소수.


“하압.”

양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그녀는 두 번, 강하게 박수를 쳤다.

“주목―!!!”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상상할  없는 커다란 박수 소리와, 마른 사람의 목청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예사롭지 않은 고함소리.


동시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시청 직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한 건 시청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죽을상을 지은 채 서 있던 수위 직원이 기껏 닫았던 문이 벌컥 열리고, 바로 문 바깥에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들어온 것이었다.

「우두두두―」

마치 말이 발굽을 구르듯, 딱딱한 구두 밑창이 대리석 바닥을 요란하게 두드리면서 문서 보관실 사이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공간을 점유한 그들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사이에 두고, 뒷짐을  채 양발을 어깨 너비로 벌렸다.


얼핏 보기에는 특색이 없는 게 특색이라고  만큼, 무난한 회색빛 정장 차림.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짧은 머리칼 위로 짤막한 챙이 달린 플랫캡을 앞으로 비스듬히 눌러 쓰고 있다.  가지 특이한 게 있다면, 셔츠 위로 몸에 붙는 조끼를 입고 있는 그 청년들의 왼쪽 팔뚝에 채워져 있는 완장이었다.

검색 바탕의 완장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속이 채워지지 않은, 굵은 자줏빛 선으로 그려진 둥근  하나.


 상태로, 아무 말 없이.

열띤 함성보다도 무섭고 무거운 침묵으로. 잠자코 그자들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넓은 문서 보관실 전체가 숨조차 쉬기 버거울 긴장으로 채워져 갔다.


“흠.”


팔짱을  채. 살짝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여성은 명령하였다.

“얼른 받아쓸 준비 하시고,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서류만 정리하여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총 스물네 건입니다.”

그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기다란 행정 용어가 뒤섞인 그녀의 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동안, 그 넓은 문서 보관실은 종이에 연필이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직원들은 그녀가 하는 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장은 처음에는 초조하게 여성의 뒤에 서 있다가, 점차 긴장이 느슨해지고, 마침내 표정이 완전히 풀어졌다.

“─…스물네 번째, 연령별 만성 질환 이환율의 5개년 통계. 아르샤 시 전역 통계입니다. 세부 행정구역이 아닙니다!”

경의사가 감사를 요청한 서류 중 몇몇은 시의 재무 상태와 함께 중앙 정부로 귀속되는 세수를 건드리는 껄끄러운 것이었지만. 그 외는 대부분 도시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문서였다.

어떻게 보면 원래 본연의 직업인 ‘의원’에 가장 적합한 감사이기도 했다.


‘역시, 그건 모르고 있는구먼….’
“볼드 시장님.”

조금 전의 우렁찬 말과는 다르게, 작은 목소리로 경의사가 말을 걸었다.

“예, 옙?!”


설마, 단둘이서 캐물을 생각은 아니겠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고민을 하는 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경의사는.


“시장님에게 선물♪”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시장을 살짝 가볍게 안으면서 인사를 한 경의사는, 조금  자신이 말했던 요청 목록이 적힌 종이를 시장에게 건네주었다.

“한 시간 안으로 서류 꼭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있으면 자리가  불편하시죠?”
“예 그렇죠…가 아니라, 아뇨, 아무 상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정확히 한 시간 동안 자리 비워드릴게요. 그 사이에는 제 친구들이 시청 직원분들을 바짝 도와드릴 겁니다. 그렇지, 얘들아?”

경의사의 밝은 목소리에도, 완장 차림의 사람들은 입을 다문  시청 직원이 가져오는 서류 뭉치를 헤집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어,  잠깐 혼자서 바람 쐬고 오겠습니다. 서로 먹고살자고 하는  아니겠습니까, 그죠?”


다행히도 이 경의사는 생각보다는 말이 통하는 쪽인 것 같다.


어디까지 겉으로 꾸며낸 건지 몰라도.


‘대놓고 딱딱한 게 아닌 것만으로도 숨을 돌리겠네. 후우, 적당하게 직원 하나만 감시로 붙여 놓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볼드 시장을 보는 경의사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인사를 끝마친 경의사는 출입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에게  가지 명령을 전달하고, 나는 듯이 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시청 바깥으로 나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온 때부터 그녀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팔랑팔랑,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시청에 혼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나간 경의사는, 주위를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담벼락을 따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흥 흐흥~♬”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윽고 골목길 끝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뒤를 밟는 기척은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지저분한 건물의 마당으로 이어지는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간 그녀는 등 뒤, 자신을 노려보던 시야에서 잠시 멀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압!”

전력 질주 후, 속으로 기합을 넣으면서 도약. 손으로 담벼락을 짚고 곧바로 훌쩍 넘었다.  담벼락 너머에 있는 건 바로 코넬리아가 머무르고 있는 고층 호텔의 뒤편이었다.

 쪽 무릎을 굽히며 착지한 그녀는 먼지 묻은 손을 털면서 건물 틈 사이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린 양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지인을 만나러 왔다.”

곧장 호텔 카운터로 향한 그녀는 살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먼저 연락이 되어 있을 건데. 확인해 줘.”
“만나  분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넬리아 B.”

 이름을 올린 여성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수도에서 온 재클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