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1막 (中) 네가 잘못 되면 나는 어떡하라고 - 01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코넬리아는 다시 짐을 들고, 직접 걸어가려고 했다. 호텔 위치는 확인했으니 그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셜이 완전히 정색하면서 뜯어말린 건 코넬리아와는 다른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거리는 하늘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치안이 나쁘다—는 겁니까?”
“허어~ 이건 수도에서도 이미 알 법한데 말입니다. 보고 못 들으셨는지요?”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허셜의 반응을 보니 여기에 사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식에 가까운 듯했다. 정직하게 코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오기 전 읽었던 개요에,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만.”
“경의사님께서 어디서 받으신 개요인지 몰라도 그거 나중에 따끔~하게 혼쭐을 내주셔야겠네요. 최근엔 빈집이 부쩍 늘었으니, 생각만큼 안전하진 않다고요.”
크하하, 변함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허셜은 양손으로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관광 도시였던 예전에는 소매치기가 많았는데 요즘은 좀 더 심각한 범죄가~”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들어 올린 허셜이.
“경의사님.”
“왜?”
“이거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꿀꺽.
침을 삼키고, 심각한 표정으로.
“너무 가벼운데요…….”
그가 품은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다. 수도에서 파견된 경의사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한적한 지방 동네 의원이 아닌, 제아무리 감정 관리가 능숙한 사람이라도 진심에서 걱정이 우러나올 때나 볼 법한.
문자 그대로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어이구, 아침에 이걸 그렇게나 힘들게 들고 오셨단 말입니까! 이 정도는, 아니 이 정도라면 경의사님도 거뜬~하게 드셔야죠!”
“그게, 저, 사정이 있어서─”
“무슨 사정입니까! 편식 같은 건 제가 용서 못 해요, 진심입니다!”
“네가 베푸는 용서 같은 거 하나도 필요 없거든…!”
그보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말을 하려야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원래는 너보다 훨씬 근육이 많은 몸이었는데, 어,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거든. 그래서 이런 애송이의 몸뚱어리가 되어버린 거야.
나라고 좋아서 이런 꼬맹이가 된 게 아닌데, 어!
이런 말을 했다가는 단숨에 저 동정의 눈빛이 진지하게 환자를 바라보는 의원의 눈빛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지한 허셜의 걱정에 아무런 답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실은 얼마 전까지 병치레를 크게 해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대신에.
엇비슷하면서도 아예 거짓말은 아닌, 어중간한 변명을 하자.
“큰 수술도 몇 번이나 했고, 병상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인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기초적인 체력 이외에는 크게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국가를 위해, 경의사라는 중책의 직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저에게 조금은 버거울지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정도라면 혼자 하려고 했어요. 오늘 아침때처럼 말입니다.”
코넬리아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교수가 했던 충고를 떠올렸다.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동조(同調)할 때까지는 체력을 아끼지 마라.’
줄넘기를 고작해야 열 번 남짓 뛰어도 무릎과 발목이 동강 나는 고통으로 바닥을 벅벅 긁었던 코넬리아였다. 그때 들었을 때는 열 받기 그지없는 충고였다.
그 힘든 시기를 어느 정도 넘긴 후에는, 그래도 교수의 말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육체는 정신을 담고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 숨을 쉬는 동안은 죽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도록, 육체의 구석구석 빠지는 곳이 없이 활력(活力)이 순환하고 있다.
근육 섬유의 한 가닥 가닥마다 부하가 걸리고 혈액이 쏠릴 때마다.
렉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신이, 가느다란 아이의 육체를 파악해 나가기 시작한다.
코넬리아는 왼손가락을 활짝 펼쳐 보았다.
“말은 이렇게 멋있게 해도 전 아직도 제 몸의 주제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하, 아직 멀었죠. 아직도 예전의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멋대로 고집을 피우고, 또 다른 사람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려고 하다니….”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한심합니다. 이런 저 자신이.”
“그러지 마세요, 경의사 님!”
팡팡, 코넬리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허셜은 자신의 코끝을 쓰다듬었다.
“허셜 웰스, 눈물은 절대로 흘리지 않습니다. 제 눈물은 여왕님에게 바쳤으니까요. 하지만 코넬리아 씨의 강인한 정신에는 진짜, 지인짜 진심으로 감격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말은 고마웠지만, 딸꾹질이 터져 나올 정도로 세기 조절을 하지 못하는 어깨 팡팡에는 답을 잇기가 힘들었다.
“여튼 전 걱정하시는 것처럼 편식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입이 짧거나 끼니를 걸러서 힘이 모자란 건 아니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하~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후 실은 점심 식사를 할 때는 의외로 대식가이시구나~ 싶었거든요!”
시원한 웃음을 쉬지 않고 터뜨리는 허셜은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내려가면서 코넬리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이 사람, 실은 그렇게까지 마음에 안 드는 성격 상성은 아닐지도.
‘이래서 교수님도 사람은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고 하신 건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허셜을 만났다면 오늘보다는 조금은 더 지루하지 않게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후회—라는 감정은 아니다. 단지, 아주 살짝 아쉬울 따름이었다.
일 층 건물 바깥으로 나온 코넬리아는 허셜이 잡아 준 이륜마차를 타고, 시가지 중심의 고층 호텔로 향하였다. 걸어서도 잠깐이었는데 마차로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마부가 짐을 내려다 주려고 했지만, 코넬리아는 사양하고 양손으로 힘차게 가방을 들고 내렸다. 그리고 로비로 들어간 순간, 카운터의 양옆으로 보란 듯이 번쩍번쩍하는 그것이 시야 안에 포착되었다.
승강기.
이제부터 높은 층으로 가야 하는 코넬리아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승강기만큼 고마운 것도 없었다. 아무리 육체 단련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쪽을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외출이 힘들어질 정도로 움직여서야 앞뒤가 바뀌는 것이리라.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코넬리아는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구구절절 설명할 것 없이 의학국에서 떠날 때 받았던 기어카드(gear-card)를 건네주었다.
얇고 동그란 모양의 기어카드의 가장자리에는 육안으로는 일견 알아보기 힘든 오돌토돌한 요철이 새겨져 있었다. 하얀 실크 장갑을 낀 카운터 직원은 한 손으로 그걸 받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런 건 자주 다뤄봤는지 직원은 능숙하게 카운터 한 켠에 위치한 해석기관에 기어카드를 끼워 넣었다.
벽에서부터 이어진 손가락 굵기 만한 황동 파이프로부터 증기를 공급받는 해석기관은, 마치 타자기와 엇비슷한 크기의 사다리꼴 덮개로 감싸여져 있다. 상부의 동그란 홈에 기어카드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한 직원은 기계 옆에 달려 있는 커다란 붉은 레버를 당겼다.
찰캉 찰캉,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맞물렸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한다. 잠깐 사이에 기관에서 기다란 종이가 뽑혀 나왔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남은 부분을 가위로 자른 직원은 청색 자국이 남겨진 압지(押紙)를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환영합니다. 코넬리아 씨.”
아주 미미하게 눈꺼풀이 찌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원하시는 방이 있습니까?”
“제일 높은 층, 시청이 잘 보이는 방으로.”
“알겠습니다.”
눈썹 한 가닥, 미간의 주름 하나 움직이는 일 없이.
지극히 사무적으로 직원은 카운터 뒤의 열쇠장을 열어서 ‘1505’라 적힌 키홀더를 꺼내었다.
“몇 박 묵으실 예정이십니까.”
“원하는 때에 나가는 거로.”
“룸서비스는 어떻게 할까요.”
직원의 질문에, 코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수도에서 ‘재클린’이 찾아오면 안내 부탁할게. 그녀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도록 해 줘.”
“알겠습니다.”
잉크병에 펜촉을 한 번 담그고 메모지에 열심히 요구 사항을 적어 내려가는 직원.
“그 외에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전화 한 통 빌리고 싶은데.”
“전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코넬리아의 바로 눈앞에 전화기가 있었다. 코넬리아는 직원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그게, 공무 기록으로 남지 않는 사적인 전화를 하고 싶어서….”
배시시 웃는 소녀를 보면서 직원은 살짝 너그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예. 직원실에서 한 통 쓰셔도 됩니다.”
속으로는 양손으로 승리 선언의 자세를 취하고, 코넬리아는 직원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기본적으로는 호텔에서 뻗어져 나오는 전화선은 모두 교환국으로 향한다. 로비에 있는 전화를 쓰든 직원실에 있는 전화를 쓰든 교환국에서 수신자 기록과 발신자 기록이 남는 건 매한가지이다. 별도로 직통 회선을 꾸리는 관공서 건물끼리 주고받는 경우를 빼면 벗어날 수 없는 경로다.
그래도 두 전화선에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직원실에서 사적 용도로 쓰이는 전화가 훨씬 감청의 중요도가 낮다는 점이었다.
직원이 코넬리아에게 안내한 방은, 창문 하나 없이 온갖 상자와 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래도 찬찬히 살펴보면 작은 거울대며 찻잎 통이며 물을 간단히 끓일 수 있는 증기 포트까지 없는 게 없는 공간이다.
“저 혼자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입니다. 느긋하게 통화 하시길.”
“고마워.”
수도 없이 연습한, ‘어려 보이는 미소’.
특별한 대화 훈련을 받지 않는 일반인과 말을 섞을 때는 분명 유용한 도구.
코넬리아의 생각으로는, 도구보다는 차라리 ‘무기’인 쪽에 가까웠다.
상대의 경계심을 낮추고, 그 낮아진 마음의 벽을 뜨겁게 녹아내리게 한다. 이윽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 일련의 과정을 일반적인 성인이 하려면 정말 고도의 화술(話術)을 필요로 한다.
예전의 몸이었으면 렉스 또한 별반 다를 도리가 없었겠지만. 코넬리아에겐 단지 미소 하나면 충분했다.
외양으로 코넬리아를 평가하면서, ‘이 사람은 위해를 가할 리가 없어 보인다’는 선입견을 스스로 만든 상대가 제 꾀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무섭다, 무서워. 나 자신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