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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1막 (上) 일어나려 할 때 - 01 (1/111)



〈 1화 〉1막 (上) 일어나려 할 때 - 01

목구멍이 따갑다.

의식이 들기 직전,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각이었다.


“윽, 으으… 콜록 콜록…!”


청년은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엎드려진 채 양팔을 뒤로 포박당한 채로는 쉽지 않았다.

잠깐 비틀거리고, 쓰러졌다. 뺨이 차가운 돌바닥에 짓눌러졌다.


창문 하나 없는 독방에서는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철문의 조그마한 창 밖, 일렁이는 횃불만이 유일한 빛.


‘돌겠네 진짜….’


입 안으로는 비린 피의 맛이 감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말라붙은 혓바닥과 입천장은 갈라져, 혼잣말조차 내뱉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지금은 이 통증을 느끼는 것조차도 감사히 여겨야 할 시간이었다.


‘지금 건강을 챙길 때가 아니긴 하지.’


청년은 소리 없이 쓰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밖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숨죽여 듣기 시작했다.


으레 독방을 감시하는 간수 같은 사람이 오곤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평소와는 달랐다.

귀에 익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낯선 구둣발 소리가 섞여 있다.

또각, 또각. 청아한 울음소리를 내던 그 걸음은 이내 청년이 갇혀 있는 독방 앞에서 멈추었고.


[끼이이익—]


귀가 따가운 소리가 녹슨 경첩 사이로 찢어져 나왔다.

열린 철문 사이로 들어온 사람은 둘. 여느 때처럼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간수,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제였다. 턱 밑부터 감싸도록 목깃을 세운 사제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검은 천이 드리워진 커다란 챙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리를 비워주게.”
“사제님. 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늘—…… 라고, 상원에서—…니까.”

가래가 끓는 듯, 사제가 내는  목소리는 일부러 입속에서 뭉개듯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 사제가 간수에게 뭔가를 속닥거렸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간수는, 철문 밖으로 나갔다.

“십 분 만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복도 너머로 멀리 걸어가는 간수의 소리가 들렸다. 사제와 단둘이 남게 간수가 자리를 비켜 주는 것. 이게 무슨 상황인지 청년은 눈치챌 수밖에 없다.


사형수가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찾아오는 고해성사의 시간이었다.


밖의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자 사제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엎드린 채 꼼짝을 못하는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사제는 말했다.

“방황하는 가엾은 영혼이 여신 이샤카의 품에서 안식을 찾기를. 참회의 말을 나눕시다. 형제여.”
“나는, 콜록, 털어놓을 게 없어.”

쓸모 없이 거창한 사제의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거슬린다. 청년은 억지로 고개를 들어 사제를 노려보려고 애썼다.


어차피 모자에 드리워진 검은 천으로 사제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무엇보다도―무슨 말을 하든 의미가 없었지만.


“의원(醫員)이 사람을 치료하는 게, 콜록 콜록, 무슨 죄라는 거지?”
“아아, 불행한 형제이시여. 삶의 마지막에 다가서 여신을 만나 뵐 이 순간에도, 자신이 빠진 죄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시는 것입니까.”
“죄 같은 건 아주  알지.”


지저분해진 덥수룩한 금발의 머리칼은 재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빛을 잃었다. 앞머리 사이로 살짝 보이는 녹색 눈동자는 여전히 반항기를 머금은 빛이 맴돌았다.

긴장하고 있어선지 조금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선은, 이제 갓 어린애 티를 벗어났어도 아직 풋풋한 면이 보인다. 그래도 다부지게 벌어지기 시작하는 어깨가 어른스러운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소년과 어른의 사이.


지금 청년의 찡그린 눈매에는, ‘선이 굵은 어른의 고집’과 ‘떼를 쓰는 소년의 반항심’이 뒤섞여 있었다.


“죄의 늪인지 웅덩이인지, 콜록, 그딴 거, 내 신발 밑창조차도 적시지 못해.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콜록 콜록!”
“후후….”


입을 가리고 살짝 웃던 사제는.

“그렇다고 아무나 치료하면 안 돼, 렉스 휴크레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걷었다. 잡아먹을 듯 사제를 노려보던 청년—렉스는 순간 말을 더듬었다.


“부, 부, 부교수님?!”
“이제 교수야. 멍청한 제자님아.”


언제나 반듯하게 넘기고 있던 머리칼을 일부러 엉클어뜨린 양, 교수는 여봐란  유백색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양 뺨에 넣고 있던 호두열매를 꺼낸 교수의 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명료해졌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여간… 정말 멍청한 짓을 하고….”

교수는 렉스가 앉을 수 있도록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옷 속에 숨기고 있던 물통의 뚜껑을 열어, 렉스의 입에 대었다.


정신없이 물을 꿀꺽꿀꺽 마신 렉스는 고개를 숙였다.


“좀 전에 무례한 말은, 저기, 그…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는 여기에서 나온 후에 받도록 할게.”

흐릿한 불빛으로 알아보긴 어려웠지만, 원래 반백이었던 교수의 머리가  본 사이에 하얗게 새어버렸다. 그는 품에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마셔.  방울도 남기지 말고.”

대체 뭘 먹이는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이도 없이 약병은 렉스의 입에 꽂혔다.


혓바닥을 휘감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약에서는 성긴 풀냄새와 비린 물냄새와 향긋한 방향성의 향기가 뒤섞여 있다.

“읍, 으읍.”


배에서 저도 모르게 올라오는 욕지기를 간신히 억눌렀다. 렉스조차도 처음 느끼는, 기묘한 맛의 물약이었다.

렉스가 완전히 약병을 비우자 교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이걸 늦지 않게 너에게 먹일 수 있어서.”
“부교수님. 이건 대체….”
“가사약(假死藥)이다. 이제부터 슬슬 졸리기 시작할 거고, 몇 시간 후면 완전히 인사불성의 상태가 되지. 자, 그거 돌려줘.”


교수가 내민 손에 렉스는 얼떨결에 빈 병을 건넸다.

“의식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망(昏忘)에 빠지자마자, 곧장 심장이 멈출 거다. 다행이지.”
“음. 그렇군요. 가사약… 네에?”

교수가 하는 말을 그저 끄덕거리기만 하던 렉스의 귀에는, 전혀 다행스럽지 않은 말이었다.

“말이 좋아서 가사약이지, 그냥 다 죽잖아요.”
“허, 너무 심한 말이군. 이번 약은 의학국에서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구해온 거니까, 운이 좋으면  죽는다고. 
“그거 운이  좋으면 죽는다는  아닙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렉스도, 지금 이대로 있다가는 무를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렉스.”

교수는 짐짓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번 주 진행될 사형 집행이 증기형(蒸氣刑)인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증기형.  말을 들은 렉스는 벌써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표정은. 몰랐는가?”

완전히 얼어 버린 렉스는 교수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증기형을 집행하는 사형집행실은 도시 중심에 있는 대형 증기기관에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죄인을 넣고, 스팀 챔버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를 불어넣는다.

새하얀 증기와 함께 죄가 정화된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순결한 증기는 곧 세계의 힘」.

이것이 지금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대원칙이다.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증기형을 당하는 사형수들 입장에서는 그저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에 불과하다.

 약병을 다시 품 속에 숨기면서 교수는 말했다.

“내가 여기서 나가자마자 넌 집행실로 이동이  거야. 렉스. 그리고 거기에서 의식을 잃을 거다. 형을 당하기 전, 담당의가  예비 영안실로 빼내는 게 최선의 목표야.”


증기로 한 번 삶아지고 나면 되살리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완전히 뇌 속 깊숙하게 푹 익어버릴 것이다. 그것만큼은 피해야만 했다.


“담당의는 이미 포섭했어. 정부 측 참관인들만 속이면 되니까, 일단은 한 번 죽은 것처럼 보여야 해.”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썩 나쁜 건 아니겠네요.”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교수의 시선에 연민이 섞여 있는  렉스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사약은 옛부터 각 지역과 나라, 시대, 환경에 따라서 수없이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대부분은 약을 먹고 의식을 잃은 채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가사약의 목적은 자연스레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죽은 척 하는 약이 아니라.

—고통 없이, 잠자듯 세상을 뜰 수 있는 약으로.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지만, 정말로 네가 죽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나 뿐만이 아니라 의학국 사람들 모두가.”
“모두…는 아니고 아주 조금이겠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말한 교수와 렉스는 쿡쿡 웃었다. 렉스는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품이 나오는 걸 느꼈다.

“약효가 너무 빠르군.”

몸을 일으킨 교수는, 손에 쥔 지팡이로 곧장 철문을 세게 두드렸다. 캉캉캉, 쇠를 두드리는 소리에 복도 저 너머에서 간수의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견디면 돼. 잠들지 말고 버텨. 곧 이송될 거니까.”
“네, 버티겠습니다. 집행실로… 옮겨지고 나서 잠들겠습니다….”
“눈을 뜨면 모든 게 잘 풀려 있을 거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게. 반드시 눈을 떠 줘.”

덜컹. 철문이 열렸다. 반틈 열린 철문 사이로 간수가 몸을 내밀었다.

“사제님. 일은 잘 끝났습니까?”
“예. 덕분에.”

어느샌가 모자를 쓰고 입 안에 열매를 넣은 교수는 짧게 대답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 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간수가 무어라 외치면서 렉스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

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마치 소라고둥 껍데기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울려 퍼져서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등을 떠미는 대로 움직이고.

구름 위를 걷듯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끌려지는 대로 내딛었다.


까무룩 의식이 잠들기 직전에 차려보니 어느 사이엔가 낯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렉스는 동공이 풀려가는 시선으로 천장을 보았다.

커다란 황동 파이프가 얼키설키 미로를 그리고 있는 천장.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구멍, 저 구멍에서 증기가 쏟아지겠지.


죽기 전 마지막까지 시선에 세상을 담아두고 싶다는 본능이 최후의 저항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저항도 덧없이 눈꺼풀 아래로 가라앉는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스스로는 죄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교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도 렉스의 머리에서 최후에 떠오르는 생각은, 후회도, 절망도, 분노도, 희망도 아닌.


단 하나의 의문이었다.

‘살려서는 안  사람을… 살리면 안 되는 걸까….’

희미한 의식은 영원처럼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렉스의 심장은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뛰고.

자연스럽게 멈췄다.





“———— 허억.”


숨을 들이쉬며, 렉스는 눈을 떴다.

얼굴에 흐른 땀은 아직 채 식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눌러 쓴 담요 속에서, 턱 밑까지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만 들린다.

꿈속에서 마주한 그 순간.


꿈에서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기억.


어느덧  달 전의 기억이다.

그렇지만 마치 바로 직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악몽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지금 자신은 증기기관차의 등속 운동에 몸을 맡겨서 수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렉스는 뺨에 달라붙은 옆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 아래로 흐르는 땀방울을 따라 드러나는 턱선은 가느다란 소녀의 맵시.

예전에는 고작해야 무릎이랑 상반신 정도만 겨우 가릴 수 있었던 열차 담요가, 지금은 완전히 뒤집어쓰고도 남는다.


담요가 커진 건 아니었다.

작아진 건 렉스였다.

체구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길어져 버린 머리카락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살아생전에 입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여학우용 제복 차림은, 아무리 적응을 하려고 해도 다리 부분이 영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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