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18세 여름(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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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또 다시 목책을 둘러야 하네, 말아야 하네, 하면서 다툼이 일기도 했다.
결국 한 명이 죽고 아홉 명이 다치고 나서야 겨우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추수 전까지 목책을 두르기로.
그 덕분에 군역 말고도 부역을 나가야 했다.
존슨의 집에서는 부역을 나갈 사람이 존슨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당첨.
목책은 이전보다 조금 더 바깥으로 밀어 내서 세우기로 결정되었다.
한쪽에선 경계를 그어 땅을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모두 달려들어 산에서 나무를 베었다.
다른 조가 베어낸 나무의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에 매달렸다.
소수의 자경단원들만이 망루 위에 올라가 감시를 한다.
자경단의 대부분, 부역으로 나온 주민들이 목책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곧게 뻗은 침엽수, 굵기는 지름이 50cm이하, 30cm이상으로 길이는 6미터 이상 되도록 잘라야 해.”
주문은 간단했지만 일은 녹록치 않았다.
이런 정도의 나무를 베려면 자칫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톱으로 자르기는 어렵다.
톱도 귀하지만 톱만으로는 자를 수가 없다.
톱으로 베고 도끼로 찍어낸 후에 다시 톱질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고도 마음먹은 곳으로 쓰러지지 않을 때가 자주 발생한다.
엉뚱한 곳으로 쓰러져서 사람이 다치는 경우다.
가지를 다듬고 껍질을 벗기는 일도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우선 굵은 가지를 다 잘라내도 숲 밖으로 끌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존슨이 조언을 해서 몇 마리의 말의 힘으로 간신히 끌어내는 식이 되었다.
하여간 마을 남자들 대부분이 달려들어 나무를 베고 다듬어 끌었다.
나무를 베어 마을로 가져오는 일만으로도 다들 기진맥진이었다.
나무가 한두 그루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균 40cm 전후 굵기의 나무를 베어냈다면 마을 둘레를 재서 계산하면 간단하게 필요한 나무의 갯수가 나온다.
마을을 두른 울타리 경계 표시를 한 곳의 길이는 대충 1.3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존슨이 재 본 결과 1.25km였다.
그러면 1250미터이고 나무 굵기는 0.4미터니까 나무는 못해도 3100 그루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까마득한 숫자였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그래서 한편에서는 왜 목책의 범위를 넓혔느냐고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하여간 마을의 모든 집이 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목책이 더 넓어져야 했다.
그 바람에 마을의 바깥쪽에 거주하던 이들은 모두 따로 부역 말고도 재물을 내야 했다.
존슨의 집 역시 존슨의 부역 말고 보리 열두 자루를 별도로 내야 했다.
한 사람 당 세 자루씩 배당이 되었다고 한다.
“아, 누구는 마을 외곽에 살고 싶어 사나? 나도 마을 안쪽에 살고 싶다고. 젠장!”
존슨처럼 재물을 내야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그런 외곽에 사는 이들 때문에 울타리가 더 넓어져야 했다.
나무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게 된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싫다면 그 집은 빼고 목책을 두른다는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존슨의 집과 가장 가까운 마을 주민의 집이 거의 10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예전에는 마을 밖에 있던 집이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전에 목책을 세울 때 어떻게 마을 안으로 편입되었다.
그런 후에 존 포우의 아버지, 존슨의 할아버지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리 서른 자루는 꽤 큰 액수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거둔 곡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식사도 마련해야 하고 장비도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일리나, 이번 기회에 우리도 마을 안쪽으로 집을 옮길까?”
존슨은 일리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일리나도 찬성한다면 마을 안쪽에 땅을 구해서 집을 지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리나는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흔들었다.
존 포우를 그리워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존슨은 무슨 이유에서 일리나가 거절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집이 대단히 잘 지은 집도 아니다.
오히려 보온을 한다고 자꾸 덧대어 붙여 꼴이 좀 우스운 집이다.
이전에는 자경단 건물 지을 땐 존슨 일가가 식사 준비를 했었다.
그러면서 이익을 챙겼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돈이 생기는 일이란 걸 아니 유지들의 가족들까지 끼어들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리나와 헤나는 각각 따로 참여하게 되어 보리로 수고비를 받기로 했다.
‘쳇! 보리 열두 자루 내고, 일리나와 헤나가 두 달에 한 자루씩 받으면 손해가 막심한데?’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나무를 베고 다듬어 목책을 만드는 것은 마을 일이고 자경단이 주관하는 일이니 존슨은 무료 봉사다.
다만 그들의 식사는 여자들이 하게 되면서 수고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인건비로는 형편없이 싼 것이지만 그조차도 다들 싫다고 빼려던 일이다.
수고비를 주기로 정해지면서 갑자기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다만 존슨은 자경단장과 따로 얘기를 해서 가축을 대는 일을 일부 맡았다.
염소, 양, 돼지, 닭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 일만 맡은 것이 아니니 실제로 그 일하는 것은 제티다.
일리나가 애들을 데리고 마을 사람들의 농장을 다니며 가축을 싸게 구입하는 것.
그걸 자경단에 약간의 이문을 붙여 넘기는 것이다.
존슨은 매일 오전에는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다.
오후에는 벌목장 근처에 마련한 취사장 근처에서 가축을 도살한다.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는데 주로 존슨과 친한 이들이다.
벌목은 힘들다.
그에 비해 가축의 도살은 훨씬 쉬운 편이다.
꺼려하는 사람은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인원이 많으니 매일 양이나 염소 몇 마리는 잡아야 하고 때로는 돼지, 때때로 닭 수십 마리를 도축해야 했다.
첫날에 소 한 마리 도축했고 중간에 몇 번 소를 잡아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냥 도축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염장도 하고, 훈제도 해줘야 한다.
피나 내장도 깨끗이 치워야 야생동물이나 몬스터가 꼬이질 않는다.
존슨이 가까운 숲에 깊이 구멍을 파두었다.
며칠에 걸쳐서 팠다고 하는데 사실은 디그 마법으로 대충 좁고 깊게 파둔 것이다.
폐기물을 버리고 흙으로 조금 덮는 식으로 계속해서 메워 올라가는 식이다.
존슨은 돼지 대가리와 내장 일부는 빼돌렸다.
돼지 뼈 역시 빼놨다.
그 덕에 한동안 존슨 일가는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로 끓인 스튜를 실컷 먹었다.
돼지 머릿고기는 삶아 눌러서, 족발은 존슨이 양념을 해서 졸이는 식으로 새로운 맛을 보았다.
“정육도 맛은 있지만 이런 내장이 더 맛있는 거야.”
존슨은 그리 말하면서 내장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해주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쇠머리와 내장도 그렇게 존슨 일가만을 위한 식재료가 되었다.
우족, 꼬리와 반골, 갈비, 도가니, 사골 등 해 먹을 것은 많았다.
‘사실 일제시대 때까지만 해도 왜놈들은 내장을 먹지 않았잖아? 서양 애들도 그랬고.’
가난한 나라라서 그랬는지, 입맛이 특이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복합된 것이겠지.
존슨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이놈의 세상도 이상하다니까!’
존슨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배가 고파 굶어죽는 사람이 흔한 세상인데도 먹지 않고 가리는 것이 많았다.
혹시 몰래 먹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확실히 없었다.
다들 ‘에이, 그런 걸 누가 먹겠어?’ 라고 말하거나 ‘어디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걸?’이라는 반응이었다.
‘굶어 죽는 것 보다는 먹는 게 낫지 않나요?’
이렇게라도 물으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라고 반응했다.
‘그나마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물어서 그런 걸까?’
이렇게도 생각을 해보았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쩍 물어도 고개를 흔들었다.
말로는 아무거나 먹을 게 있다면 먹어야지, 라고 말하지만 존슨이 예를 들어 말하면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먹을 게 아니라는 뜻이다.
개나 늑대의 고기, 육식성 동물의 고기, 존슨 일가가 먹은 돼지나 소의 부산물 같은 것들.
‘그런 거 말고 더 지독한 것도 있는데...’
존슨은 차마 메뚜기, 번데기 같은 그런 건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존슨이야 요령껏 이리저리 빠지기도 했지만 줄라탄은 좀 고지식해서 그런지 내내 벌목장에서 일했다.
헤나가 애처롭게 쳐다봐서 몇 번 도축장으로 빼냈지만 줄라탄은 도축하는 것 보다는 벌목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헤나의 권유에도 줄라탄은 고개를 흔들었다.
존슨이라고 대단한 뒷배가 있는 것이 아니니 더 이상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그 자신까지야 촌장이나 레먼드 씨를 통해 살짝 빠질 수는 있었지만 줄라탄까지는 어려웠다.
‘자신이 알아서 요령을 피워야지. 끝까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잖아?’
헤나는 종종 존슨에게 어떻게 해봐 달라고 눈짓을 하지만 존슨은 곤란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일리나와 헤나는 그런 식으로 끼워 넣어 수고비를 받고 식사 준비하는 데 끼워 넣었다.
그렇지만 일하고 있는 줄라탄을 빼내서 편한 일에 끼워넣기는 힘들었다.
서둘러 추수 전까지 부지런히 작업을 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워낙 범위가 넓고 필요한 나무가 많다보니 7월부터 9월까지 작업을 했다.
그랬지만 숲 쪽으로만 겨우 목책을 둘렀다.
반대편 강쪽으로는 그냥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그건 추수 후에 하기로 결정했다.
추수 때 하란다고 할 사람은 없다.
번갈아가면서 자경단 복무하는 이들이 나무를 베어두는 것만 해두기로 했다.
존슨 역시 한여름의 석 달 동안 나무 베는 데 동원되어 계속 나무를 베었다.
‘어휴, 조용히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네.’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다.
목책 공사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제부터는 추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진다.
농부에게 수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더구나 제르넨 시에 가서 구입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존슨은 이번에는 가지 않고 부탁하기로 했다.
자루를 위해 목면, 가는 로프 다발, 짧은 낫 같은 것이 필요했다.
다들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 남들 구입할 때 끼어서 구입해달라고 말하기 쉬운 것들이다.
존슨은 그러면서 산쪽으로 붙은 밭들의 밀은 밤마다 몰래 나가서 마법으로 이삭만 베어냈다.
이젠 이런 것도 가능할 정도로 마법에 숙련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윈드블레이드를 작게 만들어 이삭만 베어낸다.
또 다른 윈드 마법으로 떨어진 이삭들을 공중으로 떠올려 입구를 벌린 밀자루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건조까지 시켜두려고 노력 중이다.
두세 가지 마법을 함께 쓰면서 계속 움직여 자루 입구를 벌린 채 쫒아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남들 보는 데서는 해볼 수도 없는 기술이다.
그런 식으로 거의 절반쯤 수확을 했다.
데이지와 제티에게는 남은 밀밭의 이삭을 따도록 했다.
일리나와 존슨 이삭이 잘려나간 밀짚을 수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