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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귀농 당한 썰-55화 (55/74)
  • 〈 55화 〉 17세 가을(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그런데 실제 영주부에 보고되어 저장된 세곡은 평소와 비슷했다.

    그럼 두세 배에 이르는 그 많은 잉여 곡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당연히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줄줄이 세리와 행정관들이 잡혀 들어왔다.

    세곡을 거두러 갔던 기사와 병사들도 불려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들이 세곡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병사들은 세리의 명에 따라 세곡을 거두어 마차에 모으는 역할을 했다.

    평소와 다른 것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일정 내내 세리 일행을 보호했으니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어 알고 있을 것.

    진술을 해야 했고, 처벌은 간신히 피했지만 징계성 조치를 피하지는 못했다.

    하롯마을에서도 촌장과 유지들이 보고를 위해 영주부에 갔었다.

    존슨은 그때는 빠졌다.

    일리나와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존슨이 먼저 제안하고 일리나나 가족들이 생각해 본 후에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소는 숫소 하나에 암소만 좀 남기고 처분하자. 두세 마리 정도면 좋겠어. 너무 많아져서 기르기 힘들어. 양과 염소는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 그냥 좀 두고. 돼지도 숫컷은 하나만 남기고 처리하자고. 암컷은 그냥 좀 더 키워서 숫자를 불리는 게 좋겠어. 전체적으로 숫자는 불리는데 숫컷들은 빨리 팔거나 도축하고 암컷은 둬서 숫자 불리고. 어때?”

    가족들과 이런 식으로 의논을 했다.

    잠깐의 농한기.

    밀 수확 직전의 아주 잠깐 한가한 때.

    물론 이때도 식량이 바닥나고 밀은 아직 푸르니 배가 고픈 시기다.

    그러나 존슨의 집은 아직은 살짝 여유가 있다.

    창고에 밀 자루는 없지만 보릿자루는 좀 남아 있는 상태.

    이런 상태에서도 누군가 이웃이 너무 힘들다면 조금씩이라도 보리를 팔아 준다.

    촌장의 권유다.

    지난 봄에 분명히 보리가 자라는 걸 봤는데 며칠 사이에 싹 흔적을 없앤 걸 안다.

    그러니 불러서 슬쩍 물어 본 것이다.

    “조금 여유 있지?”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굶을 정도는 아니잖아? 조금씩 나눠서 이웃도 돕자고. 그냥 도우라는 것도 아니야. 값은 치루라고 할게. 순 낱알 상태의 보리 한 자루에 동전 칠십 개. 어때?”

    “봄의 춘궁기만은 못하지만 지금도 그에 못지않거든요? 영주부에서는 지금 보리 한 자루에 은화 두 개씩 거래 될겁니다.”

    “에이, 얼마 전에 갔을 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동전 칠십 개는 아니죠.”

    “하아, 그렇긴 하지.”

    “그들도 주민이지만 저희도 주민입니다.”

    “알아. 그래도 봄에 편 들 어 준거는 기억해라.”

    염소 한 마리 받아 놓고 이제 와서 이런 소리 한다.

    “염소 다리 하나 주실래요?”

    존슨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다.

    자기 손에 들어왔던 걸 내놓기 싫은 거다.

    “이웃이니까 절반 딱 잘라서 가액은 은화 하나로 하죠. 제가 은화 하나 손해 보죠. 대신 가격은 꼭 맞춰주시고. 그마저도 돈이 정 없으면 다른 거라도 대충 가액 맞춰주시고. 모피나 가죽, 가축, 천, 옷, 철로 만든 것, 어...또 뭐가 있을까요? 술, 꿀, 어어...그런 거. 촌장님이 대충 생각해서 가액이 맞을 것 같으면 보내세요. 너무 터무니없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고요.”

    “그래, 알겠다.”

    자기 돈 나가는 게 아니니 촌장도 대답을 했다.

    주민이 진짜 배가 고파서 굶어 죽어도 문제다.

    존슨은 에거시 때문에 돈이 좀 있을 법도 한데, 싹 입을 닦고 없는 척한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존이 술 좋아하고 노름 좋아해서 그가 죽기 직전, 한참 아플 때 존이 죽기 전에 외상값 받아야 한다고 여러 놈이 찾아왔었다.

    존슨과 그걸 해결하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좀 미루었고, 결국 에거시에게 배상금으로 받은 것으로 변제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좀 많이 깨졌으려나?’

    촌장은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존슨에게 양보하라는 뉘앙스로 말을 해서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늙은 촌장 새끼, 저번에도 순 내 노력과 아이디어를 꽁으로 얻어 처먹더니. 내 덕에 에거시 쫒아내고 다른 놈들 꽉 눌렀잖아? 뒤로 생긴 것도 많고. 그런데도 내게 해준게 뭐야? 오히려 염소 받고 말 몇 마디 해준 걸로 이제 와서 남 도우라 소리나 하고. 이 새끼도 확 보내야 하는 걸까?’

    촌장은 존슨의 눈빛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거 보내지 마세요. 벌채권은 왜 안 가져 가는 겁니까?”

    뒷얘기는 하지 않는다.

    벌채권은 촌장의 아킬레스 건이다.

    존슨은 자기가 불리할 때면 벌채권 빨리 회수해가라고 난리를 피운다.

    그러면 촌장은 어물거리며 자리를 회피하곤 했다.

    존슨의 말은 너무 엉터리 보내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 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존슨으로서는 늙은 촌장을 확 없애버릴까도 생각 했다.

    아니면 제르넨으로 이사를 가버릴 생각도 하고 있다.

    굳이 촌구석에 살면서 이런 놈들에게 이런 대우 받으며 사는 것도 우울한 일이었다.

    ‘내가 원해서 온 세상도 아니고. 직업도 전생에서부터 그토록 피해 다니던 농부고. 다른 놈들처럼 이계 진입하면 받곤 하는 뭔가 대단한 능력을 받았거나 큰 재산 받은 것도 아니고. 존 포우 새끼 밑에서 죽을 고생 했건만! 이 늙은 촌장 새끼가 뭔데 내 피를 빨려고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촌장은 그런데도 여전히 어떻게든 존슨을 달래려는 것 같았다.

    “가보니까 제르넨은 여러 가지 편한 점이 많더군요. 안전하기도 하고. 몬스터 토벌한다고 동원하지도 않고.”

    촌장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어려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꺼내는 존슨을 쳐다 본다.

    “여자들도 예쁘고. 하롯엔 내게 적당한 여자도 없는데, 거기는 진짜 예쁜 여자도 많더라구요.”

    그제서야 존슨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었다.

    ‘뭐야? 이 새끼 도시로 이주한다는 거야?’

    이주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영지간의 이주도 아니라 영지 내에서의 이주는 불가능한 건 아니다.

    촌장이 허가해준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법적으로는 그건 아니다.

    그냥 간다면 가면 그만이다.

    가서 영주부의 행정청에 신고만 하면 끝이다.

    오히려 시골에서 떠나고 도시에서 신고 안하면 이 시골로 인두세 내라고 통지가 온다.

    골치가 딱 아파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촌장들이 떠나지 못하게 말린다.

    꼭 도시에 가서 신고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한다.

    대개는 위압적으로 허가를 못해주겠다고 버티는 것이고.

    딱 보아하니 존슨은 그걸 아는 것 같았다.

    그냥 확 가버려도 그만이라는 것을.

    촌장의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찌푸려진다.

    “가 볼게요.”

    존슨은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남는 촌장은 머릿속으로 궁리가 많아진다.

    존슨 입장에서는 촌장이 기생충이나 흡혈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얽히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얽혀 살아야 하는 처지.

    그러니 그걸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

    아직은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당장 그러기 쉽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이번 밀 수확 시기에 존슨의 집은 떳떳하다.

    애초에 농사를 워낙 적게 지었다.

    촌장과 만난 이후로 마을 유지들을 찾아다녔다.

    땅을 필요로 하던 마을 주민들 몇 명에게 대부분의 땅을 팔기로 약속을 했다.

    밀 수확할 때 토지 가액 보다 조금 더 주기로 하고 거래를 한 것이다.

    밀 수확 때는 밀 가격이 조금 싸니까 더 쳐달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일종의 분할+외상 매매를 한 것이다.

    존슨이 촌장을 졸라 꾸역꾸역 일을 진행 시킨 것이다.

    촌장은 머리가 복잡하다.

    증인으로, 서기로 거래에 참여한다.

    물론 댓가는 받는다.

    염소나 양 같은 가축이 되었건 밀이나 보리처럼 곡식이 되었건.

    “그럼 너네는 뭐가 남은 거야?”

    촌장이 계약서를 적성하면서 물었다.

    “토리 메서든 씨가 농사짓다가 에거시 씨에게로 넘어 갔던 밭이요. 그거 저번에 배상으로 받았잖아요? 그거 하고 그 옆에 도엘 씨네 였던 밭하고.”

    “그거, 둘 다 그리 안 넓은 거지?”

    “그렇죠. 합해서...1,5에이커쯤 될걸요?”

    “그것뿐이야?”

    “네, 나머지는 집하고 텃밭이고. 아아, 임야. 강변에 있는. 그거는 누가 살 사람 없대요?”

    “글세.”

    살 사람이 없으니 거저 주다시피 한 것이다.

    마을에서도 좀 떨어진 곳에 있다.

    “근데 왜 농토를 파는 거야?”

    “헤나 임신 했대요. 지금 집은 임시로 구해준 거고. 애까지 함께 살려면 지금 집은 너무 좁아요.”

    “어, 그건 그렇지.”

    “밀도 좀 창고에 채워주고. 말도 하나 구해주려고요.”

    “아, 그래서 이 밭 가액에 말을 하나 넣었구나?”

    “호펜 씨가 말이 좋은 게 많아서요. 젊은 암말로 하나 달라고 했잖아요.”

    땅을 구입하려는 호펜 씨네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가축이 많다.

    땅의 가액으로 미리 집은 받아 수리해서 이사를 할 것이다.

    나중에 잔액 치룰 때 말하고 밀을 받아 창고를 채워줄 계획이었다.

    그래 놓으면 그때부터는 노름하거나 도둑맞지만 않으면 앞으로도 넉넉히 살 수 있다.

    현대 한국에서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 받고 현금으로 몇 억 정도 주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그렇게 받아 놓으면 앞으로도 그럭저럭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존 포우 밑에서 죽을 고생하다가 겨우 결혼 한 것이니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졸라탄과 약혼하고도 존 포우 때문에 혼인이 미루어진 게 분명했다.

    졸라탄의 부모들이 사는게 좀 어렵긴 해도 존 포우 같은 놈하고는 사돈 맺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존 포우가 죽고 결혼이 진행 된 것만 봐도 딱 그런 스토리였다.

    이곳이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다.

    그렇지만 돈이 돌아가는 상황이나 경제 활동 같은 건 거의 비슷하게 돌아간다.

    훔쳤건 어쨌건 엄청난 재물을 챙겨 잘 감춰둔 존슨은 여유 있게 상황을 이끌어 간다.

    거기에 더해 마법까지 점점 능숙해지면서 이전 삶의 관록과 태도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존 포우가 살아서는 하도 빡빡하고 어려우니 이전 삶의 기억이나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존 포우를 직접 없앨까도 숫하게 생각했었다.

    그럴 정도로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였다.

    그렇지만 지나놓고 생각하니 직접 손을 쓰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된다.

    죄의식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두고두고 후회 비슷한 감정이 남았을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그런 놈 때문에 죄의식 느끼고 산다면 그건 그대로 억울할 것 같았다.

    형제들이나 일리나가 알면 존슨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의문이고.

    하여간 마을에 사는 한 촌장과는 어떻게든 얽힐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밀 때는 밀고 당길 때는 당겨줘야 한다.

    이번 토지매매 계약에선 고분고분하게 나간다.

    먼저 식량 매매 같은 것에서는 빡빡하게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농지 자체를 확 줄여버렸다.

    게다가 존슨 일가는 일찍 다 수확을 끝내버렸다.

    영주의 세리가 왔을 땐 꼴랑 스무 자루 쯤 수확해 놓고 그게 전부라고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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