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17세 여름(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하롯 마을까지 그 소식이 전해진 것은 한 달도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물론 내용은 아무도 몰랐다.
세금을 거둘 때가 아닌데 갑자기 영주부의 관리들과 기사들이 병사들을 끌고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쩔쩔 끓을 것 같은 초여름의 무더위에 관리와 병사들이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무장을 하면 엄청나게 덥기 때문이다.
촌장이 놀라 무슨 일인가 싶어 벌벌 떨며 나서서 응대했다.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촌장을 위시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협박을 해댔다.
수상한 자를 신고하라고 했다.
‘수상한 자라니?’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둘러보았다.
존슨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리나를 쳐다보았다.
일리나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그녀도 이웃 여자들과 뭔가를 속닥거렸다.
갑자기 나타나 수상한 자를 내놓으라니 무슨 영문인지 몰라 허둥댔다.
나중에야 촌장과 자경단장 등이 내막에 대해서 들었다.
물론 촌장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 중에서 꽤 여러 명이 욕을 먹고 뺨을 맞고 발에 차인 이후였다.
봄의 보리 수확한 세곡을 거두어 가던 관리 일행이 공격을 받았다.
누군가 동조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니 낯선 사람, 행동이 이상한 사람에 대해서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다들 보리를 수확하고 밀을 파종하느라 바빠서 하다못해 강아지 손이라도 빌려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한 달도 더 전의 일이었다.
1년 농사가 이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제일 먼저 사냥꾼들이 불려와 뺨을 맞고 발에 걷어 차였다.
마을을 벗어나 숲에 나무하러 갔던 마을 주민 몇 명이 불려왔다.
그들 역시 사냥꾼이 당한 대로 당했다.
관리와 기사와 병사들도 고작 주민들이 세리 일행을 공격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상관에게 당한 화풀이 하는 것이다.
괘씸한 마음에 욕을 하고 때리는 것일 뿐이다.
아니면 이번 기회를 빌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고.
하여간 그 무렵 마을을 벗어났다고 고변된 주민들은 모두 불려나와 모욕을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촌장이 나서서 주민들에게 돈과 재물을 모아 관리와 기사들에게 쥐어주었다.
“우리 마을은 척박한 곳이라 보리 수확 할 때는 굶주려서 딴 데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렇게 기운 없는 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겠습니까, 또 여기는 영지로서는 거의 끝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낯선 이방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눈에 띄었다면 진즉에 말씀드렸을 거고요.”
그러니 제발 돌아가 달라는 의미로 모욕을 당하면서도 돈을 만들어 바쳤다.
그게 비록 기사가 받는 품위 유지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적은 액수였다.
그렇긴 했지만 그들이 보기에도 이 마을은 거의 거지 소굴 비슷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관리와 기사 일행이 떠난 후 마을은 한 동안, 여름 내내 그 얘기로 시끌벅적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해준 것 말고는 다른 정보가 없으니 곧 그 얘기는 사그러들었다.
존슨은 속으로 웃었다.
물론 욕 먹으면서 뺨을 맞고 발로 차인 사람들이야 울화가 치밀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 정도는 너무 흔한 세상이다.
저런 식의 조사라면 들킬 이유가 없었다.
화살 하나 쏜 적도 없고 흔적은 고블린들이 만들어 주었을테니까.
존슨은 혹시나 추적 마법 같은 것이 걸려 있을까봐 영주부의 것이던 마법 아티팩트를 깊이 감추어 두었다.
두껍게 여러 번 단단히 포장하여 자신의 마법동전주머니 안에 넣어둔 것이다.
이름도 ‘장진오 보물5호’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정도라면 혹시 마법동전주머니를 잃더라도 이 물건을 존슨 말고 꺼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존슨은 있는 듯 마는 듯 조용히 살았다.
재산은 늘어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팍 줄어들지도 않았다.
항상 힘겹게 일하고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
남들과 다른 것이라고는 엿 하나뿐이다.
몰래 수수로 엿을 만들고 그걸 마법가죽 가방 안에 잘 보관하고 있다.
그것도 때때로 조금씩 꺼내 일리나와 데이지와 제티 등과 나눠 먹는 것뿐이다.
여름이 되어서도, 추수 직전까지 몇 번이나 영주부의 관리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조사를 했다.
“이 새끼들이 우리랑 원수를 졌나! 지들이 어디서 잃어버린 것을 왜 여기서 찾는 건데?”
마을 주민들이 화를 냈다.
그래봐야 기사나 병사들 앞에서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올 때 마다 주민들이 끌려가 욕을 먹거나 뺨을 맞거나 발로 차였다.
그러고도 꾸역꾸역 돈을 만들어 바치고 나서야 봐준다는 식으로 마을을 떠났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여름이 지날 때까지 다섯 번이니 그러니 화를 참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관리들이 올 때마다 매번 접대를 안 할 수도 없다.
그 덕에 앞에 섰다가 끌려가서 욕을 먹고 뺨을 맞아야하는 촌장도 미칠 노릇이다.
사냥꾼 케머린과 버밀도 매번 끌려가 얻어 터지고 욕을 먹는다.
두 사냥꾼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러다 둘이 드디어 의기를 투합하여 토미 바렛에게 사냥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촌장을 증인으로 하여 마을 주변의 숲 일부를 토미의 영역으로 정해주었다.
자기들만 끌려가 얻어 터지기는 싫다는 의미다.
다음엔 네 놈도 끌려가 맞으라는 뜻이다.
‘마을에 등록된 사냥꾼들 다 데려와!’ 이런 식으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토미는 일 년에 사슴 몇 마리, 토끼 몇 마리를 공역의 대가로 내놓으라고 했다.
그걸 두 사냥꾼에게 건네주고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두 사냥꾼도 역시 그런 식으로 촌장과 협약을 맺고 영주부에 허락을 얻어 둔 것이다.
토미 바렛도 그렇게 영주부에 가서 허락을 얻어두면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관리들이 왔을 때 토미 바렛도 사냥꾼이라고 해서 함께 끌려서 뺨을 맞았다.
‘마을 사냥꾼 다 데려와!’
이번에도 이렇게 명령하니 토미 바렛도 안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토미 바렛이 아직 정식 사냥꾼이 아니고 사냥꾼이 된지 한 달도 안 되었다고 말했다.
그랬어도 괜히 말대꾸한다고 뺨 맞고 발에 차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냥꾼의 예상과는 달리 딱 한 번 더 그렇게 영주부의 관리가 왔다.
그 후로는 오지 않아 두 사냥꾼을 실망시켰다.
토미 바렛은 한번 욕을 당하고 그 후로 당당하게 마을의 사냥꾼이 되었다.
토미 바렛의 아버지 요크 바렛은 외팔이다.
존슨은 그동안 요크 바렛이 왜 손목이 잘렸는지 이유를 알아놓았다.
영주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활을 쐈단다.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가 쏜 화살에 영주의 아들이 다쳤단다.
공은 공이고 과오는 과오라 손목을 잘리고 영지에서 추방 당했다고 했다.
영주의 아내가 아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돈주머니를 쥐어주었다.
영주는 다른 영지로 이사할 수 있는 이주 허가증 등을 쥐어주었다고 했다.
토미 바렛이 정식 사냥꾼이 된 후 존슨은 토미의 아버지 요크에게 자신과 제티에게 활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밀 수확이 끝나면 그때부터 요크 바렛이 활쏘기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존슨이 큰 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인당 한 달에 보리 한 자루씩을 내기로 한 것이다.
존슨은 새로 보리 자루를 만들어 두었다.
마법동전주머니 속의 보리를 꺼내면 그걸 일일이 다 털어내고 다시 말려서 새로운 자루에 넣어두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자루는 기가 막히게 알아 본다.
존슨 역시 자기가 만든 자루는 힐끗 봐도 구분할 수 있다.
겨울이 끝날 때까지 배운다면 기초는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제티도 몸이 많이 자랐다.
존 포우가 죽고 존슨이 가장이 된 후로 일리나와 의논하여 가족의 식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고기와 곡물을 적절히 섞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양과 소의 젖을 짜서 중탕하여 마시거나 치즈나 버터를 만들도록 했다.
매일 양과 소의 젖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중탕을 하지 않으면 자칫 결핵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를 장진오가 기억하고 있었다.
한창 자랄 나이의 존슨과 제티라서 그런지 키가 부쩍 자라는 중이다.
물론 데이지와 일리나의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존슨은 한동안 시간을 내지 못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던 마법에 다시 매달렸다.
아직은 순수한 활 실력으로 명중시키기 어렵다.
바람 마법에 타켓티드 마법을 가미한 후 거기에 화살을 얹어야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이다.
이번 겨울 동안 순수한 활 실력만으로 백발백중 할 수 있는 궁술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것이다.
‘오오, 이거야, 이거! 진즉에 찾았어야 했는데!’
존슨은 드디어 꼭 필요한 마법서를 찾아냈다.
제티가 잘 외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민 했었다.
마법동전주머니를 한참이나 뒤진 끝에 찾아낸 것이다.
처음엔 기억력 강화 마법이라거나 기억술, 기억상승 같은 단어로 찾았는데 없었다.
그렇다고 얼마나 많이 들어 있을지 알지 못하는 마법서 몽땅, 이렇게 꺼낼 수는 없었다.
이쪽 세상에도 무식한 놈들 많아서 자칫하다가는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책이 몇만 권쯤 들어 있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진 않겠지만.
책 자체가 종이가 아니라 양가죽을 가공한 것이다.
종이에 비해 엄청나게 두껍고 무겁다.
이전의 마법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무식하게 쑤셔 넣어 두었다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숫한 단어를 빈 양피지에 적어 체크를 해가면서 찾았다.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결국 다른 마법서에 적혀 있는 마법을 보고서야 찾아냈다.
‘시력과 두뇌활성화를 통해 독서의 능력을 강화시켜주고 효율을 높이는 S/O마법 총해’라는 제목의 마법서였다.
‘제목을 뭐 이따위로 짓는 거야?’
즉 시력을 강화하고 두뇌를 활성화시켜 기억력을 좋게 만드는 마법이라는 뜻이었다.
S/O마법 총해라는 색인으로 찾아낸 것이다.
S/O 마법은 셀프 마법인지 아더 마법인지를 구분하는 이곳만의 방식이다.
셀프 마법으로만 쓸 수 있는 마법이 있고 아더 마법, 즉 내가 아닌 타인에게 걸어주는 마법이 있다.
또한 양쪽 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있다.
존슨은 대충 책 잘 읽는 마법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꼬박 보름 넘게 밤마다 매달린 끝에 마법의 구성을 이해했다.
그러고도 보름을 더 연습하여 드디어 성공시켰다.
‘이게, 꼭 세뇌시키는 것이나 비슷한 것이네!’
존슨이 보기에 그러했다.
마력을 동원한 마법으로 사람의 뇌에 몇 가지 기능을 가진 마법진을 낙인 찍듯이 새겨 넣는 마법이다.
‘효과는 대박이지만 졸라 위험하고도 비열한 마법인걸!’
뇌에 새기는 마법진에 장난질을 해두면 세뇌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노예 각인이나 다를 바 없는 마법이잖아? 마법진만 노예 마법진이나 세뇌 마법진이 아니고, 기억력 상승, 이해력 상승 같은 것일 뿐이지. 이거 나중에 연습 삼아 다른 놈한테 써봐야겠다.’
마법진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그러나 특정한 마법진을 놓고 연구해 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 있는 연구였다.
특히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비슷한 마법은 활용도를 높이는데 유리했다.
즉 한 가지 마법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
‘완전히 OSMU 같은 거지. 한 마법으로 다양한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