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17세 봄(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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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높게 자란 나무의 맨 꼭대기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거의 직선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베버릭 마을을 지나 서둘렀다.
며칠 전에 베버릭 마을에 들어선 것을 확인 했다.
지난밤에 그들이 출발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틀을 연거푸 야간 출장을 나선 것이다.
‘그렇지!’
세리 일행은 폐허가 되어 흔적만 남은 마을의 야영지 중 한 곳에 몰려 있었다.
큰 집이 있었는지 세 벽이 절반 정도 높이로 남아 있는 곳이다.
터진 앞쪽으로 마차를 나란히 세웠다.
그들은 남은 벽에 의지하여 머리 위로 천막을 쳐서 이슬을 막는 식으로 야영 중이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이라 보초를 서던 영지병들도 아주 노곤해서 꾸벅거리며 조는 때였다.
그들이 그 마을에 머무는 것을 확인한 직후 미리 계획을 세운대로 가까운 숲으로 향했다.
사실 계획은 여러 가지를 세웠다.
어떤 것이 더 확실할지는 모른다.
그저 예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마을이 폐허가 되었다면 산적이나 몬스터의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몬스터가 머물만한 골짜기 몇 곳을 뒤져 결국 고블린의 둥지를 찾아냈다.
그곳을 살그머니 물러나온 존슨은 마법의 눈을 이용해 오소리를 비롯해 몇 마리의 동물을 잡았다.
오소리의 목을 칼로 찔러 피를 내고 그걸 점점이 떨어져 이어지도록 흘렸다.
중간에 피가 나질 않으면 버리고 다른 동물의 피를 냈다.
영주의 세리 일행이 머물러 있는 마을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금방은 모르지만 곧 피 냄새를 맡은 고블린들이 몰려들어 피 흔적을 따라 올 것이다.
존슨은 마을로 다가가면 혹시 마법적인 경계 장치가 있는지를 살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을 가는 줄을 이어놓은 부비트랩이 있는지를 살폈다.
조심스럽게 그런 것을 피했다.
가는 줄을 이리저리 엮어 돌이나 나뭇가지에 연결해 놓은 것이 있었다.
주로 병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건드리면 줄이 끊기거나 튕겨지면서 돌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게 아니면 당겨 놓았던 나무가 확 펴지면서 무성한 잎이 와스락 소리를 내는 식이다.
최대한 다가간 존슨은 어두운 복면을 쓰고 아주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더구나 마법으로 형체를 감추어 모닥불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 처럼 보였다.
나중에 마법의 눈을 이용하거나 대지의 기억을 읽는 마법으로 살펴보아도 그림자로 보일 것이다.
거의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슬립!”
마법이 발동되었다.
졸던 영지병들이 깊이 잠들었다.
잠자던 이들은 더욱 깊이 잠들었다.
한 번으로 쉽게 될 일은 아닌데 다들 어느 정도 잠을 자려 하던 중이다.
대부분은 잠이 들어 있고 경계병과 한두 명 정도만 깨어 있었다.
그들 조차도 살살 졸음이 몰려 올 시간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기사의 존재가 작전의 성패에 가장 중요했다.
그 때문에 기사와 수련 기사들에게 한 번 더 슬립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기사들과는 따로 영지 관리들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품을 뒤져 결국 베고 있던 옷 뭉치 안에서 마법 아티팩트를 발견했다.
블로우 건을 사용하려 했더니 시간이 깊어서인지 슬립 마법만으로 다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굳이 블로우 건을 사용하여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슬립 마법은 곧 풀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금방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는다.
마법의 효과만 멈춘 것이지 잠까지 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존슨은 여기서 잠깐 고민을 했다.
‘고블린들이 이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 보아하니 작은 마을이던데. 역시 블로우 건을 사용해야 할까?’
고블린들이 어설프게 공격해서 금방 퇴치되면 마법 가방을 잃은 것을 감출 도리가 없다.
존슨은 깊이 잠든 기사와 수련 기사들의 목에 독액을 묻힌 침을 꽂았다.
블로우 건을 쓸 필요도 없다.
손으로 독침을 꽂아주고 빼낸 후 그 자리에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호랑독가시나무의 가시를 꽂아 주었다.
찔릴 때 통증으로 잠이 깰 수도 있으니 침을 찌를 부위에 약하게 마비 마법을 걸어둔다.
호랑독가시나무의 독액만으로는 약하니 다른 독액을 묻힘 침으로 찌르고 거기에 가시를 꽂아두는 식으로 진행했다.
병사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독침을 꽂았다 빼고 호랑독가시나무의 가시로 바꿔 꽂아 주었다.
이십여 명 되는 세리 일행을 몽땅 그렇게 하고 나서 마을을 벗어났다.
숲 저쪽에서 어수선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야 고블린들이 오는 모양이다.’
페더폴 마법을 걸고 최대한의 속도로 숲의 키 큰 나무 꼭대기로 올라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직 어둠이 깊게 깔려 있었다.
존슨은 옷을 벗고 장비들을 제자리에 두고 침대로 기어들었다.
온 몸이 노곤하고 피로가 쌓여 괴로웠다.
“셀프 힐링!”
스스로의 몸에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마법을 걸고서야 잠이 들었다.
“형! 얼른 일어나.”
동생 제티가 와서 존슨을 깨웠다.
“어어, 알았어.”
밤을 새워서 그런지 온 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계속 이렇다.
지난 밤에 일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마음이 풀어져서 더 몸이 피곤한 것 같았다.
제티가 나가고 다시 한 번 더 자기 몸에 셀프로 힐링 마법을 걸어 주었다.
조금 낫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날이다.
보리의 수확은 끝났지만 다른 농삿일들이 남아 있다.
특히 심을 시기가 살짝 늦은 콩을 빨리 심어야 했다.
콩을 많이 먹는 문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콩은 농장에서 중요한 작물이다.
특히 가축을 기르는 경우에는 더욱 중요하다.
존슨은 잡곡 중에서 수수와 콩을 가장 좋아한다.
이용 방법이 많고 영양분도 풍부하면서 존슨이 좋아하는 맛이다.
이번 해에는 특히 수수를 많이 심었다.
엿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청으로 만들어도 좋겠지만 여기는 담을 병이 만만치 않다.
나무통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소량포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병에 담을 수도 없다.
그러니 천생 노력이 더 들어가더라도 엿으로 만들어야 했다.
판매를 하려면 그냥 엿으로 팔 것이 아니라 찍찍 늘려 가락엿으로 만들어 팔 계획이다.
그래야 정체를 확실히 감출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아예 고급화 전략으로 나가볼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살고 있는 곳의 주민 분포나 문화 자체가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평민이 70~80% 였다.
20~30%는 노예.
귀족?
귀족은 거의 0.001%쯤이나 될까?
순전히 존슨의 예상이다.
백작령이라지만 이곳에 귀족의 수는 모두 합쳐서 30명이 채 안된다고 들었다.
정식으로 작위를 받은 귀족은 다섯.
영주인 백작, 기사단장인 자작, 행정총감과 재무총감, 영지군사령관이 남작이라고 했다.
그 나머지 귀족은 모두 세습이 안 되는 단승 작위인 준남작과 기사 작위뿐이다.
그 다섯 명의 정식 귀족과 그 부인, 직계의 친자녀만 정식 귀족으로 인정해 준다.
백작의 동생이나 다른 형제도 있겠지만 그들은 이곳에 살지 않는다.
그들도 정식 귀족일 것이다.
하여간 정식 귀족은 극소수.
나머지 귀족은 준남작.
대다수의 평민.
이러니 고급 상품이라는 걸 만들어 봐야 팔 곳은 뻔하다.
조금 조사를 해보니 그런 것들은 수도에서 만들어지고 판매 된다.
그걸 직접 구입해 사용한다고 했다.
즉 여기서 만들어서 수도로 팔 수는 없다는 의미.
그러니 그저 자기 식구들이나 먹는 정도가 가장 안전하고 좋다는 의미다.
그래도 술을 담글 때나, 식초를 만들 때도 수수는 사용 된다.
쌀로 해야 될 것을 수수로 하는 것이다.
쌀 보다는 탄수화물의 함량이 적어서 엿을 만들어도 쌀엿 보다는 좀 덜 달지만.
콩은 더 용도가 많지만 그건 존슨만 아는 방법.
존 포우가 죽은 후 존슨은 소량의 콩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았다.
암염에 조금씩 물을 뿌려 짙은 소금물을 만들었다.
간수는 아니지만.
그걸 이용해 두부를 만들어 보았다.
순서를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성공.
처음 것은 간수가 많이 들어가 몹시 썼다.
보리 수확한 것은 금방 사라진다.
빚진 것 갚아야 하고, 그동안 좀 굶주렸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보리빵도 실컷 먹는다.
이번엔 세금도 거의 두 배가 넘도록 거두어 갔다.
그 덕인지 모르겠지만 일리나에게 곡식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일리나도 자기네가 얼마나 보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바삐 수확하기는 했지만 거두는 대로 존슨이 싹 다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늘 1~2자루의 보리만 남아 있었다.
일리나가 존슨에게 물으면 아들은 늘 그 범위 안에서만 빌려주라고 말했다.
“되도록 파는게 좋아. 값이 헐하더라도. 나중에 받겠다면 오히려 그쪽이 서운해 해. 잘 알잖아?”
아들의 말에 일리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자기도 남에게 곡식을 빌려 보기도 했으니 잘 안다.
빌릴 때야 당장 배를 곯아야 하니 고마워하며 빌린다.
그러나 갚을 때가 되면 몹시 아깝다.
손해 보는 느낌이다.
존 포우는 욕을 퍼부어대며 지랄지랄을 해댔다.
물론 빌려준 사람에게 하는 것은 아니고 집안에서 식구들에게만 욕을 했다.
“그러니 빌려 달라고 해도 되도록 빌려주지 말고. 팔아요. 가축이건, 숨겨둔 귀금속이나 옷이건, 뭐건. 하다못해 농기구라도 받아요. 손해 안보려면.”
존슨의 말에 일리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뭔가를 받고 한 자루나 두 자루를 팔아도 다음날이면 창고에 또 한두 자루나 두세 자루가 남아 있었다.
존슨이 자기 침대 밑을 파두겠다고 했어도, 숲에 감춘다고 했을 때에도 일리나는 그저 알았다고만 했지 그걸 어떻게 얼마나 감추냐고 묻지 않았다.
존 포우의 지랄을 받아주며 굳어진 습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리나는 아들의 말에 순종했다.
그렇게 가축이 늘어났다.
가축을 가공한 것들, 그러니까 가죽, 모피가 창고에 쌓였다.
육포나 훈제햄이 주방 창고로 들어갔다.
동전이나 은전, 구리반지, 은반지 같은 장신구와 사금이 일리나의 비밀 상자에 모였다.
새로 짠 면포와 옷이 데이지의 옆방 창고에 들어갔다.
철제농기구가 창고에 쌓였다.
그러고도 밀을 수확하지 못해 나중엔 노예를 받아달라고 했지만 그건 거절했다.
한 때는 존슨도 노예를 써볼까 생각했었지만 그럴 정도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다.
아직 어린 데이지나 제티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 알아보니 입은 하나 더 늘어나지만 노동력은 절반 정도로 예상해야 한다고 했다.
자발적인 노동을 하지 않으니 누군가가 옆에 지켜 서서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안하면 채찍질하거나 매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가축에게도 매질을 하지 않는 존슨이다.
매질하던 존 포우에게 넌더리가 나서였다.
경작권을 받기도 했다.
대신 소작을 주는 식이다.
이건 세금 문제가 좀 복잡해지는데 그걸 촌장과 의논을 했다.
촌장 입장에서는 마을 주민이 배곯아 아사자가 나오면 골치 아프다.
식량을 지원해 주려면 마을 유지들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합의가 잘 안된다.
물론 겨울 동안 몇 번이나 회의가 열렸지만 합의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