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16세 가을(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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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염소 새끼를 끌고 촌장의 집에 갔다 온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세리들은 숫염소 한 마리 받고 밀 스무 자루로 해결을 봤다.
어떤 해에는 아주 빡빡하게 해서 과도하게 세금을 걷기도 하는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아주 심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여간 매년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농촌의 삶이 늘 그러하듯이.
‘굳이 농사를 잘 짓거나 많이 지을 것도 없겠다. 세리들이 다 가져가면 잘하나 마나 똑같은 상황이잖아? 내년부터는 대충 농사 짓는 식으로 가야겠어.’
존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농부라고 꼭 넓은 농토에서 대량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정 모자라면 추수할 때 이웃에서 밀을 조금 더 구입해도 된다.
이런 기가 막힌 마법 물품이 있으니 쌀 때 밀을 잔뜩 사서 쟁여 두었다가 비쌀 때 조금씩 팔면 그것만으로도 식구들 먹고 살기는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겠다.
실제로 지난 해 가을에 그렇게 구입했던 밀을 식량이 모자랄 시기인 봄과 늦여름에 조금씩 아주 비싸게 팔아 꽤 돈을 벌었다.
‘우리 먹을 거에서 조금씩 나누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며 내주는 걸 공짜로 받아갈 사람은 없다.
뭐라도 값을 치루거나 외상을 달아놓기도 했다.
그것들이 밀 수확 후 10배 정도로 돌아오는 것이다.
추수 때의 밀 가격과 보리고갯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봄에 보리 수확하기 직전의 밀 가격은 열 배 정도는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니 금화 100개 투자하면 금화 1000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안하고 그저 서너 배만 남겨도 존슨의 가족 다섯 식구는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세금도 조금 내고.
곡물상이나 잡화상으로 등록을 해야 하나?
그건 그때 가봐서 생각할 문제였다.
당장은 이웃한 농부들끼리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수준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
세리들은 이번에도 나흘을 머물고 떠났는데 존슨은 그들도 마법 물품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 했다.
그들이 머무는 촌장의 집에 슬쩍 가서 봤는데 낮에 잔뜩 모아두었던 밀자루들이 다음날 아침이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가서 멀리서 살펴보았는데 어느 날 해가 막 떨어진 직후에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자가 쌓인 밀자루 앞에서 뭐라 말하고 손을 움직이자 잔뜩 쌓여 있던 수백 자루는 넘을 밀자루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저것도 마법 물품이겠지?’
99% 확실했다.
아주 간절하게 욕심이 나지는 않지만 탐이 나긴 했다.
‘허긴, 그러니까 기사에 병사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이겠지.’
영주 입장에서 엄청난 마법 물품인데 누가 훔쳐 가면 곤란할 것이다.
이 마을 안에 머무는 가구가 325가구라고 했다.
마을 바깥에 있지만 이 마을로 간주하는 농장이나 농가가 68가구라고 했다.
그들은 화전민처럼 숲에 살거나 들판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했다.
즉 하롯 마을은 거의 400가구라는 뜻이다.
한 가구당 평균 20 자루의 밀을 세금으로 거둔다면 그것만 해도 8000자루의 통밀을 세금으로 가져간다는 뜻이다.
이 마을만 들려서 걷어가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5~6개 마을의 세곡을 거두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도 이런 세리 일행이 있을 것이다.
다섯 개 마을만 해도 4~5만 자루 이상의 통밀을 거두어 간다.
엄청난 양인데 이걸 다 집어넣을 수 있는 그 마법 물품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존슨이 가진 마법가죽 가방에도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존슨이 확인 해본 것은 밀자루가 20자루 정도 들어 있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그 이상은 확인하지 않았다.
밀 이삭이 가득 든 자루 중에서 창고에 보관하고도 남은 자루들을 마법가죽 가방에 넣어두었을 뿐이다.
그것 말고도 지난 해에 구입한 밀 자루가 500자루 정도 들어갔는데 표도 나지 않았다.
그 500자루의 밀 자루는 1년 동안 조금씩 나와 돈이나 가축으로 바뀌었다.
나머지 밀을 다 수확하고 줄기도 베어 건초 창고에 가득히 채웠다.
미리 창고에 넣어 두었던 것들도 조금씩 꺼내어 햇빛에 말려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비벼서 낱알만 털어냈다.
그걸 다시 바싹 말려 자루에 담아 마법동전주머니에 넣어 창고에 가서 꺼내 쌓아두었다.
“흐흐...”
존슨은 창고에 가득한 밀 자루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온다.
지하의 대피소를 가득히 채우고도 남은 것들은 원래의 곡식 창고에 가득히 쌓았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존슨의 마법동전주머니에 넣었다.
“밭이 넓으니 밀도 엄청나게 많다.”
일리나도 창고 안을 들여다보며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표정으로 감탄을 했다.
새로 수확한 밀을 도정하여 고운 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빵은 일 년 중에서 이때만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나머지 계절엔 밀이 부족하니 보리나 호밀이나 귀리를 섞어야 했다.
‘사실은 그렇게 잡곡을 섞는 게 건강에는 더 좋지!’
그걸 알면서도 존슨은 계란, 버터, 소금과 조청, 우유로 반죽을 한 부드러운 식빵의 맛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먹어 본 그런 맛이었다.
설탕이 귀해서 조청을 넣고 만든 달달한 빵은 자꾸만 한국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밀 수확만 끝났을 뿐이다.
잡곡을 거두고 그걸 보관하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존슨은 밀을 수확한 밭에 보리를 뿌렸다.
이번엔 보통의 농부들이 농사짓는 방식으로 보리를 파종했다.
그리고 일리나와 의논한 후 촌장을 통해 그 밭을 매물로 내놓았다.
너무 넓은 밭이라 내년엔 모르긴 몰라도 수백 자루의 밀을 세금으로 내야할지도 몰랐다.
자기 가족이 경작할 수 있을 정도 넓이의 농토만 가지고 있을 생각이다.
에거시에게 받은 것만으로도 예전 존 포우가 살았을 때 농사 짓던 정도 넓이 보다 몇 배나 넓은 땅이었다.
곧 혼인할 헤나의 몫과 가족이 농사지을 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헤나 몫 빼고 2에이커 정도의 토질이 좋은 평평한 밭 몇 개만 남겨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존슨의 식구들을 잘 살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쪽으로.
내놓은 것들은 팔리면 바꾸는 거고 아니면 몇 년 더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밀의 수확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나와 줄라탄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촌장의 집전으로 예물이 서로 교환되었다.
일리나가 줄라탄과 헤나의 신혼집을 마련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물론 혼인날 줄라탄의 집에서 일리나에게로 건네진 예물 상자도 얘깃거리가 되었다.
어려운 처지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이다.
존슨이 결혼 선물로 줄라탄과 헤나 부부에게 1.8에이커의 넓은 농토를 주었다는 것도 소문이 났다.
에거시에게 받았던 것 중의 하나였다.
존슨은 소와 돼지를 여러 마리 잡고, 닭과 오리와 양을 잡아 손님을 치루었다.
줄라탄의 집이 어려운 것을 아니 결혼 전에 미리 은밀하게 줄라탄을 만났다.
그를 통해 그의 부모에게 마차 한 대 분량의 밀과 보리, 소와 양 등을 건네 주었다.
온갖 음식들로 밀 수확 후의 피곤을 풀고 마음껏 새로운 부부의 새 출발을 축하해주었다.
예식을 집전한 촌장에게도 송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줄라탄의 아버지에게도 따로 말을 한 마리 건네었다.
며칠 동안 새 신혼집에서 나오지 않고 머물다가 나온 줄라탄과 헤나는 얼굴이 밝았다.
친구들이나 동네 젊은 축들이 초췌해졌다느니 얼굴이 거칠어졌다느니 하면서 놀렸다.
둘은 어색하고 쑥스러워 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신혼집이지만 그 집의 창고엔 존슨이 제공한 밀과 보리 자루가 잔뜩이다.
새로 만든 햄, 소시지, 치즈, 버터 등이 꽉 채워져 있었다.
“그럼 헤나는 앞으로 우리랑 안사는 거야?”
제티가 물었다.
“어, 일리나랑 존처럼 줄라탄과 헤나는 독립해서 새로 가정을 하나 만들어 사는 거야. 이제 앞으로 아기도 낳고 그러면서.”
“어어, 그래?”
제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쪽 애들이 좀 순진하지. 한국 애들처럼 발랑 까진 놈들이 아니라서...’
존슨은 그런 제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11살이라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쪽으로는 좀 둔해서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해를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야.”
일리나가 인사하러 온 줄라탄과 헤나를 보며 존슨에게 말했다.
“그렇지요. 조금이라도 일찍 해서 다행이야.”
“너는?”
“나야 천천히?”
존슨은 빙글거리며 어깨를 으쓱 했다.
존슨의 나이는 아직 16세다.
그리 늦은 나이가 아니다.
슬슬 혼인을 하려는 애들도 있다.
이미 한 애들도 좀 있다.
그렇지만 남자는 조금 늦어도 큰 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헤나도 내년이면 19살이었고 그러면 좀 늦은 편이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 식탁에 앉아 일리나와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줄라탄과 헤나를 보며 그저 마음이 뿌듯했다.
늘 코볼트가 걱정이었다.
흔적은 보이는데 코볼트 자체를 보기는 어려웠다.
‘야행성이라는 말이 맞을까, 아니면 좀 먼 곳에 둥지가 있나, 그도 아니면 숫자가 적은 걸까?’
고블린 둥지를 토벌할 때 느닷없이 나타나 공격을 퍼부어대고 사라진 놈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때 많은 사람이 죽어서 그 일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근래에 더 눈에 안보이기도 하고.
존슨 역시 코볼트를 생각하며 존 포우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코볼트가 돈이 될까, 코볼트를 노예로 부리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소문에 의하면 코볼트는 광산을 운영한다던데 무슨 광산일까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마법서를 열심히 뒤지는 중이다.
그걸로 해결할 수가 없어 촌장의 명령에 의해 영주부인 제르넨 성으로 가는 행렬에 끼어들어 갔다.
영주부에 있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노예 거래상에 들렸다.
이리저리 묻고서야 궁금증을 일부 해결할 수가 있었다.
존슨이 아는 것과는 달리 노예에게 걸려 있는 마법은 어설프게 흉내 낼 수는 없다.
예상보다는 고차원적인 마법이 필요한 것이다.
‘지구에서는 그냥 노예로 취급하고 낙인을 찍어서 노예로 부린 것 아니었나? 그래서 그렇게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곤 했던 걸까? 로마 시대에도 노예의 반란은 수시로 일어났다고 했잖아? 고려나 조선시대 때도 천민들의 반란이니 노비들의 반란이니 하는 일도 잦았고. 역시 여기는 마법이 발달된 세상이라 마법으로 해결하리라 예상한 건 맞았지만 너무 여러가지 마법을 쓰는 걸!’
제르넨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노예상들은 노예 거래만 할뿐이지 노예로 만들거나 노예에서 풀어주거나 하는 것은 하질 못한다고 했다.
그런 업무는 큰 도시의 마법사 조합이 전담으로 한다고 했다.
그 조차 영주의 의뢰를 받아 하는 것이지 마법사가 제 마음대로 마법을 쓰지는 못한다고 했다.
존슨은 일단 이왕 온 김에 노예들을 만나 얘기를 해볼 수 있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