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16세 봄(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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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식초 알지?”
“으으, 알지.”
“그것도 역시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썩힌 거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직 발효라는 걸 모르니 썩는 다는 표현을 했을 뿐이다.
“썩은 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
“그래?”
“응, 이게 식물들에게는 썩은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 같은 거야.”
“진짜?”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고된 일이지만 형과 누나들이 하니 따라하던 제티였다.
아직은 책임감도 강하지 못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제티는 일단 형이 하자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텃밭까지 끝나고 존슨은 밭을 또 한 번 갈았다.
이번엔 갈아엎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두둑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곳에선 두둑을 사용하지 않다.
다른 데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서는 본 적이 없다.
되도록 평평하게 만들어 종자를 바구니에 담아 손으로 흩어 뿌린다.
골고루 뿌려야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떤 부분은 밀집해서 뿌려서 소복하게 난다.
어떤 곳은 성글게 뿌려서 엉성하게 자란다.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제티가 불만을 토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여기 사람들 눈에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존슨은 쟁기로 갈고 꿋꿋하게 괭이로 흙을 퍼 올려 이랑을 만들었다.
존슨은 고랑에 종자를 쉽게 뿌리기 위해 나무로 바퀴를 만들었다.
그 바퀴가 굴러가면서 적당량의 종자가 골고루 뿌려지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어디서 본 기억을 가지고 원리를 궁리 했다.
이리저리 애를 써서 몇 번의 실패 끝에 만든 것이다.
그 장치 다섯 개를 만들어 각자에게 하나씩 맡겼다.
“이곳에 물에 불린 종자를 넣고, 이렇게 끌고 가면 되는 거야.”
물에 불렸어도 건져 올려 물기는 뺐다.
안 그러면 지들끼리 들러붙어 난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존슨이 시범을 보였다.
벌써 몇 번의 테스트를 해본 후였다.
존슨의 시범을 보고 일리나와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가 모두 달려들어 고랑에 밀 종자를 뿌렸다.
종자 뿌리는 장치는 앞쪽으로 씨앗이 뿌려지고 뒤에 달린 날개가 흙을 덮어 주는 역할을 한다.
바퀴와 연동된 작은 날개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랑에 뿌리는 이유는 올해는 봄부터 비가 덜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은 고작 그런 정도에 고랑에 뿌려서는 안 된다.
봄에 비가 자주 오지만 여름에 비가 드물게 내릴 수도 있다.
그럴 땐 이랑에 심는 것이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종자를 심는 데는 아주 제격이라 엄청나게 빠르게 파종을 끝낼 수 있었다.
존슨이 밭에 묘한 짓을 한다는 소문이 났지만 다들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주변 농부들은 존슨의 이상한 짓을 싫어했다.
어디 사람이 먹는 곡식을 심는 밭에 더러운 재와 인분과 축분과 온갖 쓰레기들을 뿌리는지, 괜히 헛수고를 하는 고랑을 만드는 것도 흉이었다.
다들 평평한 밭을 만드는데 고랑과 이랑을 만드니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다.
씨 뿌리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언제 뿌렸는지 다 뿌렸다고 하니 그것 가지고도 흉을 보았다.
아마 종자에다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면 더한 욕을 했을 것이다.
존슨은 가족들의 소변을 모아 종자를 하룻밤 담아 재워 두었다.
물에 불린 것이 아니라 소변에 불린 셈이다.
물론 소변 그대로 쓴 건 아니고 오래 가라 앉혔다가 사용했다.
종자 소독은 되겠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절대로 비밀로 하자고 해놓고 소변을 모아 삭혀 사용한 것이다.
사용하고 난 소변은 텃밭에 조금씩 뿌렸다.
사람의 소변엔 암모니아 성분이 있는데 이게 질소 비료의 원료가 된다.
그냥 사용하면 염분 때문에도 안 되고 너무 진해서 타버린다.
숙성 시키고 가라앉힌 다음 물에 희석해서 사용한다.
이럴 때 쌀뜨물이나 재를 섞어 사용하면 좋다.
일일이 다 설명해줄 수 없다.
그럴 지식도 없고.
그저 해보자, 하는 말로 하는 것이다.
좋은 건 알지만 그게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기 난해한 것이다.
존슨은 바쁘다.
매우 바쁘다.
농사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도 바쁘다.
그렇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달력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요일을 표시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곳의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나름대로 요일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쉬는 날엔 사냥을 한다거나 마을 밖으로 나간다.
농사일을 쉬는 것일 뿐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농사일을 하기 어렵다.
몸을 적셔가면서 일하기에는 체력이 약해서 병 걸리기 딱 좋다.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럴 땐 작업장에서 다른 작업을 한다.
겨우내 말린 목재를 다듬어 필요한 뭔가를 만들어 낸다.
톱이 없어서 작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도끼와 낫과 무쇠칼만 가지고 뭔가를 만들려하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남들 보는 데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고 혼자 작업을 한다면 슬쩍슬쩍 마법을 섞어 사용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 천지다.
조금은 바쁜 봄철이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촌장에게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촌장의 소개로 정식으로 글을 배웠다.
예전에 부촌장도 했던 에이요라는 노인에게 배웠다.
노인이라 농사에서는 손을 떼었다고 했다.
존슨만 시간을 내면 되는 일이니 오전마다 글을 배우겠다고 했다.
둘째 외삼촌인 페블에게 배우려 했었는데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지면서 결국 때를 놓쳤다.
그래서 다시 말하기도 어려워 촌장을 만났을 때 슬쩍 말을 했더니 에이요씨를 소개시켜 준 것이다.
알파벳을 알려준 후 몇 권의 아동용 독본을 베껴 쓰라고 시킨다.
그런 후에 단어와 문장을 일러주는 식이었다.
괜찮은 방법이라 어머니 일리나와 누나 헤나는 물론이고 두 동생에게도 그대로 가르쳤다.
글을 아냐고 물었더니 다들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함께 글공부 하자고 살살 꼬인 것이다.
자신이 외워서 베껴 쓰고 그걸 가족들에게 외워주며 베껴 쓰라고 했다.
자신이 들은 대로 단어와 문장을 설명해주었다.
다 아는 것이지만 신중하게, 그리고 열심히 배웠다.
그가 이전에 배운 건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한국의 장진오는 문자와 언어를 모두 합쳐서 5~6개 국어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국어인 한국어 빼고 일본어와 중국어는 대충 더듬거리며 말할 수 있다.
문장이나 단어도 대충 다 아는 수준.
영어는 학교 다니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열심히 했다.
모국어처럼 말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막히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 외에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발음은 좀 구려도 읽고 쓰고 억지로 생활 할 수준 정도는 했다.
그러니 영어와 비슷한 표음 문자 체계인 문자를 배우지 못할리가 없다.
게다가 이미 말은 잘 하고 있는 상태.
그러니 발음, 단어의 명확한 뜻, 그것만 제대로 익히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다.
그동안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글을 배운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빠르게 문자를 배우고 나니 농사일과 사냥 말고는 또 할 일이 없다.
마을에 뭔가 대단하고 신기한 기술 가진 사람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없다.
요크 바렛을 따라 다니며 그가 사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한 달쯤 하고나니 조금 심심해졌다.
사람들 마다 뭔가 잘하는 기술 같은 것이 있는지 묻고 다녔지만 특별한 것이 없다.
다 존슨이 아는 것들, 아니면 그보다 살짝 기술적으로 실력이 있는 정도다.
요즘은 사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짐승의 흔적이나 발자국이나 자취를 쫒거나 야생 동물이나 몬스터의 습성을 관찰하는 것이 일이다.
몬스터 둥지 가까운 곳에 몸을 감춘 채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존슨의 옆으로 몬스터들이 오락가락 한다.
너무 가까우면 들킬 위험이 크니 되도록 멀리, 그렇지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보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몬스터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저 놈은 왜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 소리는 뭘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정 아쉬우면 집으로 돌아올 때 적당한 동물 한 마리 사냥해서 돌아온다.
아니면 그마저도 귀찮으면 빈손으로 오기도 한다.
농사 일은 존슨은 물론이고 온 식구가 달려드니 특별히 바쁠 일은 없다.
게다가 존슨이 몇 가지 개량을 하여 농사일 자체가 확 줄어들기도 했다.
가축도 이리저리 팔거나 도축해서 마법동전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도 일거리를 확 줄여버린 것이다.
농사 일은 점점 더 바빠지지만 낮 동안에만 열심히 하면 된다.
여전히 해가 저물고 식사 후에 침실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마법 수련의 시간이다.
마법동전주머니에서 찾아냈던 기초적인 마법서들 중에서 발견한 ‘마법문자해설서’를 가지고 열심히 마법 문자를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마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여전히 다 알지 못하는 새로운 마법 문자를 익힌다.
그러면서 마법동전주머니 안에서 마법책들을 꺼내 자기가 배우고 익힌 글자가 있는지 확인해 본다.
그것들이 자기가 아는 방식 말고 또 달리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확실히 기억력이 끝내주게 좋아졌어. 확실히 그래, 그런데 조금 무서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네?’
글을 배울 때부터 알아차렸지만 어지간한 건 두어 번 정독을 하면 싹 다 외워졌다.
그러니 어깨너머로 어지간한 글을 다 외워 버렸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도 빠르게 진도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진오도 꽤 똑똑하고 기억력이 비상한 편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공부는 엄청나게 쉬워졌다.
존슨은 오늘도 새벽부터 서둘러 오늘 할일을 빠르게 처리 했다.
대충 장비를 챙기고 집을 떠났다.
일리나에게 말해 오늘 새벽에 구운 빵 두 덩어리와 햄 한 덩어리를 깨끗한 천에 둘둘 싸서 어깨에 가로질러 매는 가방에 넣었다.
집을 나선 존슨은 밭을 가로질러 곧장 숲으로 향했다.
어제 오후에 놓은 덫을 확인 했다.
망가진 것도 있고 탈출한 것도 있고 걸려서 빳빳하게 굳어 있는 것도 있다.
‘덫을 굳이 놓지 말아야겠다. 노력에 비해서는 얻는게 너무 적어. 돈도 많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토끼와 닭과 오리만 잘 키워도 굳이 이런 고생할 필요가 없는데. 정 고기가 필요하면 돼지를 도축해도 되고. 정 뭔가 색다른 것이 먹고 싶다면 그때 사슴을 잡거나 하면 되지 않겠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이제는 거의 매번 동물을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
토끼나 비둘기 같은 작은 동물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마법의 힘은 강력한 것이다.
‘마법을 배우게 되고, 돈이 많아지니 게을러지는 걸까? 아니면 나태?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