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16세 봄(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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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탁자 위 자기 앞에 놓인 금화를 쳐다보았다.
“이럴게 아니다. 이걸 모두 네가 보관하고 있어라.”
일리나가 금화를 싹 모아 존슨에게 내밀었다.
“왜요?”
“가족들 중 누가 이 금화를 제대로 쓰거나 보관할 수 있겠니?”
“그런가요? 헤나?”
헤나를 부르자 고개를 끄떡였다.
“엄마 말이 맞아.”
“나도.”
돌아보기도 전에 데이지도 대답했다.
제티도 같이 고개를 끄떡인다.
“알았어. 이건 잘 감춰두고 나중에 필요해지면 쓰자. 그리고 밖에 가축들은 우리가 키우면 되고. 밭. 저쪽 에거시 씨의 넓은 밭 알죠?”
존슨이 묻자 일리나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거 우리 겁니다.”
“뭐? 정말?”
“진짜야?”
다들 놀라 물었다.
존슨이 땅문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글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게 땅문서. 이건 촌장님과 에거시가 서명한 매매서류.”
제대로 쓰여 있고 서명도 되어 있다.
매입자가 존슨으로 되어 있고 매도자는 에거시, 증인으로 촌장의 이름과 서명이 날인되어 있다.
밭의 경계와 넓이 등도 적혀 있다.
존슨은 서류를 받을 때 모르는 척하고 촌장에게 하나하나 물어 내용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그러면서 글을 배워야 할텐데...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우와!”
다들 놀랐다.
다들 그 밭을 알고 있다.
마을 동쪽 지역의 밭 중에서 가장 넓고 번듯한데다 기름진 밭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경작한다면 못해도 매년 밀이 200자루 이상, 즉 10000Kg, 다시 말해 10톤 이상 생산되는 곳이다.
종자를 흩뿌리기를 하고 새가 주워 먹고 가뭄이나 홍수로 썩거나 말라 죽는 것을 제외해도 그 정도는 생산된다.
제대로 시비를 하고 잘 관리하면 2배, 3배도 거뜬히 나올 밭이다.
이전 농토는 밀이 70~80자루 생산된다.
남에게 빌린 밭에서 생산되는 것 등을 합쳐 130자루 정도를 생산한다.
그 중에 밀은 70자루 정도 된다.
아무래도 밀이 가장 돈이 되는 작물이기 때문에 가급적 밀농사를 짓는다.
그렇지만 도저히 안 되는 곳엔 다른 작물을 심는다.
그래도 꼭 밀을 심어야겠다면 감산을 감수하고 밀을 파종하는 것이다.
“당장 종자도 모자라겠는데?”
일리나가 그 걱정을 한다.
“그것도 그렇지요.”
마지막 눈이 내린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이제 산그늘이 아니라면 눈은 거의 다 녹은 것이다.
슬슬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그것만이 아니예요.”
다른 땅 문서들.
그 큰 밭보다는 작지만 1~2에이커 짜리 농토들이 여러 군데다.
“그리고 이건 강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강변에 언덕 있는데. 그 언덕 일대의 소유권.”
“어어? 강변에 높이 솟은?”
“맞아.”
일리나가 아는 것처럼 말해서 존슨도 살짝 놀랐다.
여자가 혼자 가 볼 수 있는 그런 위치는 아니었다.
“어떻게 알아?”
“예전에...”
일리나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말하기 껄끄러운 그런 곳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날, 존슨은 제티에게 도움을 청했다.
“변소를 퍼내야겠다.”
“에에?”
제티가 놀라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너랑 나랑 둘이서 해야지, 일리나가 하겠니 헤나나 데이지가 하겠니?”
“그, 그건 그렇지만...”
제티가 놀란 이유는 있다.
이곳은 변소를 파서 쓰다가 다 차면 묻어 버리고 다른 곳에 만들어 사용했다.
존슨은 그걸 퍼서 밭에 뿌릴 생각이다.
지금처럼 추울 때, 사람들이 나돌아 다니지 않을 때 퍼서 뿌려 말릴 생각이다.
나중에 사람들 돌아다닐 때 그런 짓을 했다간 몰매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존슨은 제티와 함께 마차를 개조하고 통과 인분을 퍼낼 장대가 긴 바가지를 만들었다.
그걸로 거의 가득 차다시피 한 변소를 퍼냈다.
통에 담아 밭의 가장 먼 곳부터 뿌렸다.
자기 집의 변소를 다 퍼냈다.
그런 후에 이웃한 다른 집의 변소도 퍼주겠다고 제의했다.
“보리나 호밀이나 귀리를 반 자루 주시면 싹 퍼주겠습니다. 반 자루를 더 주시면 외양간의 축분도 다 퍼내고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니 그러라고 했다.
‘아마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을 사람들은 에거시의 처분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촌장에게 말해 이 사건에 간여한 유지들 아니면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저 에거시가 처벌을 받고 마을에서 쫒겨났다는 정도다.
존슨이 보상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얼마나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촌장도 그 사건에 대해서 에거시가 처벌 받았다는 것 말고는 그냥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에거시의 가족이 처벌의 일환으로 마을을 떠난 것은 알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존슨 가족이 에거시의 것이었던 농토를 이전 농토 대신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농토보다는 훨씬 넓었으니까.
그러나 겨울 양식은 이전 밭의 것뿐이었으니 그리 생각할만도 했다.
존슨은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처지에 대해서 말을 해두었다.
그들은 봄이 되어 곡식이 모자라니 어린 형제가 그런 험한 일을 자원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존슨이 일부러 그런 식으로 오해하게끔 말을 애매하게 하기도 했다.
존슨이 청한 집들은 그래도 다들 먹고 살기는 그럭저럭 괜찮은 집들이다.
변소와 외양간 푸는 값으로 보리 반자루나 콩 한 자루 정도는 너끈히 낼 정도의 집.
존슨과 제티는 봄이 올 때까지 여러 집의 변소를 퍼내고 마굿간도 치워주었다.
퍼낸 오물은 자기 몫이 된 밭에 뿌리고 넓게 펴두었다.
봄이 되면서 불어오는 차고 메마른 바람에 인분과 축분이 말랐다.
존슨은 말 두 마리를 달고 쟁기질을 했다.
되도록 깊이 갈아 엎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 많아서 죽을 고생을 했다.
나무 쟁기가 부러져서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었다.
제티가 앞에서 말을 끌고 존슨이 쟁기질을 하는 식이다.
때로 엄청난 크기의 돌이 뭍혀 있다.
‘씨팔 새끼, 진작에 이런 것 좀 파내지.’
괜히 마을 떠난 에거시 욕을 했다.
물론 주인인 에거시가 직접 갈지는 않았겠지만.
부려지는 신세인 노예가 돌을 파낼 일은 없다.
오히려 묻으면 모를까.
괜히 일거리 만들어 죽을 고생하며 욕먹을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노예나 받을 걸 그랬나?’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쟁기질을 하여 거름과 흙이 잘 섞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스무 가구의 변소와 잿간과 아궁이와 마굿간을 치웠다.
거기에다 산에서 황토 흙, 석회가 섞인 흙, 낙엽이 썩은 부엽토와 반쯤 썩은 낙엽들도 마차 가득히 쓸어 담아 가져와 뿌렸지만 그건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땅은 넓고 장비도 없이 어린 사내 둘이 제대로 객토를 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낙엽과 부엽토는 집 옆의 텃밭에나 뿌려두었다.
“어머니와 헤나는 이 텃밭의 돌이나 골라내주세요.”
미리 그렇게 부탁을 하고 쟁기로 확 갈아 엎었다.
그런 밭에서 일리나와 헤나와 데이지가 돌을 골라냈다.
그 밭에 부엽토와 낙엽과 아궁이의 재를 치워 텃밭에 뿌려두었다.
이 정도만 해도 올해 텃밭에서는 농사가 잘 될 것이다.
“어후, 고되다.”
일하다 짬짬이 쉬어줘야 한다.
자신도 힘들지만 데이지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올해 11살이 된 막내 제티로서는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제티 역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힘을 내보고는 있지만 정말 힘들었다.
짬짬이 형이 전해주는 창술과 가끔 주는 달달한 음식 덕분에 버티는 것이다.
존슨은 데이지에게 총검술을 변형시킨 창술을 일러주었다.
자기도 익히면서 데이지가 하는 걸 보면서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총검과 창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올려치기나 돌려치기 같은 것은 창술에서는 아무래도 어색할테니까.
존슨은 이곳에서 깨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창고에서 수수를 발견하고 좋아했다.
이곳에선 사료용으로나 사용할까 주식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곡식이다.
아주 어려운 시기에는 어쩔 수 없는 갈아서 다른 곡식과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콩, 수수, 조, 피, 기장 같은 곡식들이 그렇다.
주로 먹는 곡식은 밀, 보리, 호밀, 귀리 같은 것들이다.
존 포우가 죽기 전에, 존슨은 시험 삼아 수수 5kg과 보리 0.5kg을 이용하여 엿을 만들었다.
존 포우가 멀쩡할 땐 그 놈 좋은 일 시키는 행동이 될까봐 절대로 그런 것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존 포우가 다치고 움직이도 못할 만큼 앓게 되면서 그때 시험 삼아 엿을 조금 만들었다.
사실은 가족들을 좀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던 장진오는 엿, 술, 식초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다.
존슨은 그걸 혼자 이리저리 해보고 엿을 만들었다.
장진오도 자기가 직접 만들어 본 것이 아니었다.
옆에서 구경하고 조금 돕는 정도라서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성공했다.
판에 부어 굳힌 뒤 콩가루나 밀가루를 묻혀 보관한다.
그러다가 가끔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리나와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에게 맛을 보여주었다.
때때로 조금씩 주어 단맛을 보게하는 것이다.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는 그 전에도 존슨의 말을 잘 들었었다.
그렇지만 단 맛을 본 후로는 절대 충성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일리나도 아주 감탄을 했다.
꿀과는 다른 단맛이지만 정신이 황홀할 정도의 단맛이었다.
술, 즉 막걸리는 누룩이 중요하다.
엿에서는 길금.
어려서 본 적이 있어 누룩이나 길금 만드는 것도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은 그 미묘한 노하우.
즉 배합비율이나 물의 양이나 시간이나 온도 같은 것들.
그런 것은 좀 가물거렸다.
그래도 엿은 좀 만들기 쉬운 편.
술은 좀 복잡하고 미묘하다.
술을 만들 줄 알면 식초는 거저 만들 수 있다.
술 만드는 방법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술 만들다 실패하면 식초가 되기도 한다.
식초 만드는 것은 일리나도 알 것이다.
나중에 물어보면서 조금씩 수정하면 될 것이다.
아니면 일리나도 식초나 술은 만들 줄 알지도 모른다.
식초를 만들다 실패해서 술이 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대개는 술을 만들려다가 식초가 된다.
아직은 술까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존 포우의 술 주정에 데이기도 했고.
나이가 나이니만큼 단 것이 당겨서 엿을 먼저 만든 것이다.
그늘에서 좀 쉬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
거름은 다 뿌렸고 밭도 다 갈아 놓았다.
요즘은 열심히 숲에서 부엽토와 반쯤 썩은 나뭇잎을 모아 오는 중.
“형, 이런 게 진짜 쓸모가 있어? 썩은 건데?”
제티가 보기에는 썩은 것을 파내어 가져가는 느낌.
“음, 빵 만들 때 시큼한 냄새 날 때가 있지?”
“어.”
“그것도 사실은 조금 썩는 과정이야.”
“진짜?”
제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엿 먹었잖아?”
“응.”
“그것도 사실은 조금 썩는 과정이야.”
“진짜?”
살짝 다르긴 하지만 그리 말하는게 낫다.
물론 당화와 발효는 다르긴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