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16세 봄(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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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나가 아니라면 에거시가 존 포우를 굳이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일이 없었다.
존슨은 그렇게 예상을 했다.
고작 금화 몇 개라지만 자가 경작을 하던 농토를 잃은 일리나가 그 빚을 갚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채무자로서 불리한 위치의 일리나를 이리저리 달래는 것은 에거시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계획도 존 포우가 부상 당하고 난 후에 세운 것인지 모른다.
애초에는 그저 돈 빌린 걸로 하고 빚이나 지워두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가 그걸 빌미로 존 포우를 위험한 곳으로 자꾸 내몰다 보면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그 후에 어찌 해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닐 가능성도 크다.
이전부터 하는 짓이 수상했으니까.
여라가지 계획을 세우고 적당한 상황에서 적당한 방법을 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존슨의 예상이고 판단이었다.
처음엔 에거시가 굳이 존 포우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둘이 접점이 거의 없었다.
자경단, 같은 마을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존 포우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었다.
존 포우가 대인관계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다.
탐낼만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도 많고 마을 유지이기도 한 에거시 정도 위치의 사람이 굳이 존 포우를 가까이할 이유는?
없다.
거기서 장진오는 에거시의 옛사랑과 존 포우와 연결을 지은 것이다.
일리나는 네 아이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아직도 매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다.
장진오의 눈으로 보기에도 젊은 처녀들을 포함하여 이 마을 모든 여자들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미인이다.
사람의 취향마다 조금씩 다르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진오의 눈에 그리 보이니 에거시가 그리 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원래의 존슨이었다면 자기 어머니를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장진오는 존슨 본인이 아니니 친어머니라는 것 보다는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이 더 먼저였다.
촌장은 이미 에거시를 쳐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자기와 친한 유지들에게 미리 은밀하게 당부를 해두었다.
에거시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자기 속셈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부끄럽고 슬픈 심정이 다 드러난다면 부끄러워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에거시는 영주에 반항한 것과 사기를 친 것으로 인해 처벌을 받을 것을 요구 받았다.
아니면 배상을 하고 마을을 떠나겠는가라는 배심원단의 제안을 받았다.
어느 쪽이건 피해를 당할 뻔 한 존 포우의 가족에게 막대한 배상은 해야 했다.
또한 범죄의 와중에 존 포우의 땅을 속여서 매각하도록 했다.
그 돈을 갈취했으니 피해에 대한 보상과 배상을 해야했다.
남겠다면 엄청난 배상을, 떠난다면 상대적으로 덜한 배상을 해주는 것이다.
에거시가 어떤 속셈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을 주민들은 그저 죽은 존 포우의 서명을 위조하여 사기를 치려던 파렴치한으로 여기지만.
에거시로써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친 그런 일이 되어 버렸다.
다행이 존슨이 밝히지 않아 일리나에 대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거시는 존슨이 그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존슨의 눈빛이 아주 차가웠다.
실제로 존슨은 에거시를 파렴치한, 자기 여자를 빼앗아가려는 도둑놈 쳐다보듯 했다.
그저 사기를 쳐서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또한 헤나나 데이지 같은 다른 가족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참석했지만 일리나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존슨이 절대적으로 막은 것이다.
그걸 알고 에거시는 그렇게 판단했다.
여기서 더 저항하거나 우겨대면 그때는 일리나에 대한 것을 밝힐지도 모른다.
그건 에거시 자신이 싫다.
에거시가 일리나를 좋아하는 감정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 대상이 일리나인줄 모른다.
일리나 본인도 모를 것이다.
아내, 자녀들, 친인척들 모두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느니 마을을 떠나고 싶은 에거시였다.
존슨이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진실은 에거시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존슨은 그리 짐작하지만 서로 얘기를 해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에거시 본인의 속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에거시는 사람들의 시선 뒤로 촌장과 거래를 했다.
그 덕분에 조금은 느긋하게 재산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촌장의 처분대로 존 포우의 가족에게 존 포우에게 빌린 금화 일곱 개 외에도 배상금 명목으로 별도로 돈을 지불해야 했다.
가족 전체에 금화 열두 개와 각 개인에게 따로 금화 하나씩을 더 보상했다.
존 포우가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 농토는 되살 수 없었다.
그쪽 사람이 정당하게 구입한 것이라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에거시 자신의 소유였던 다른 밭을 존 포우의 유가족에게 넘긴다고 했다.
존슨에게 넘긴다고 해도 될 테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냥 존 포우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 안에는 일리나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미망인인 일리나에게 넘긴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존슨에 의해 일거에 거절 당했다.
존슨이 아고 있는지 모르는지를 테스트 해본 것이다.
그걸 보고 확실하게 안다고 파악한 것이다.
존슨은 그런 에거시를 더러운 벌레 쳐다보듯 차가운 눈으로 쳐다 보았다.
나중에 에거시가 존슨에게 따로 얘기를 나누자고 했었다.
존슨은 그것마저도 거절했다.
촌장에게는 더 많은 양보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존슨도 짐작만 할뿐이다.
결국 최종 승자는 촌장인 것이다.
에거시는 농토와 재산을 처분했다.
서둘러 처분하다 보니 헐값에 처분하기는 했다.
그래도 굳이 남겨두지 않고 다 팔아 치운 것이다.
고향에서 쫒겨나는 셈이다.
그렇지만 오래전 젊었을 때 외지를 떠돌던 경험도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촌장을 통해 금화 열일곱 개에 해당하는 재물, 존슨의 집이 위치한 근처 가까운 곳의 밭에 대한 증서, 노새 두 마리와 소 스무 마리 등을 넘겨 주었다.
여기에는 돼지 서른 마리, 염소와 양이 각각 쉰 마리, 닭과 오리 등 가금이 수십 마리였다.
가져가기 곤란한 가축으로만 왕창 주고 말과 당나귀는 전부 가져갔다.
많은 손해를 보았지만 에거시는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가족을 이끌고 제르넨으로 향했다.
여섯 대의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가족들을 전부 소집했다.
뿐만 아니라 부리던 노예와 이주를 원하는 일가친척을 모두 이끌고 마을을 떠났다.
자경단에 말해 제르넨까지의 호위를 부탁했다.
에거시가 떠나기 전에 존슨은 촌장이 불러서 그의 집으로 갔다.
돈주머니와 밭문서와 노새와 소를 받고 조금 당황했다.
“정해진 것만 준게 아닙니까?”
처벌 내용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노새와 소도 다 배상금에 들어있다.
촌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해진 것은 밭의 원상회복과 가져간 금화 일곱, 그리고 가족 1인당 금화 하나씩의 보상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네게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준 것이니 그냥 받아라.”
“아아, 네.”
여기서 거절해봐야 이상하게 생각할게 뻔했다.
밭문서를 펼치며 물었다.
“어디 밭이래요?”
“너희 집 동쪽에 있는 에거시의 밭 중에 제일 큰 거.”
“에에? 그거 한 덩어리가 5에이커나 되는 큰 밭 아닙니까?”
“맞아. 5에이커.”
5에이커면 무려 6000평이 넘는 엄청난 넓이다.
그게 한 덩어리이니 얼마나 넓을지는 상상할 수 없다.
이전 농토는 개울 건너 마을 반대편이더니 가까워져서 좋다.
더구나 넓이는 두 배 이상 넓어진 셈이다.
이전의 농토는 2에이커 조금 넘는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밭 문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에거시라고 해서 돈을 쌓아놓고 있는 것이 아니니 돈 대신에 다른 재물로 대납한 것이다.
밭, 산, 곡식, 가축 같은 것들이다.
가져갈 수 없는 것들로 배상을 치른 것이다.
“이거, 가액 계산은 맞기는 하는 겁니까?”
존슨이 물었다.
“넉넉히 계산 한 거야. 어차피 이런 것 아니면 받을 수도 없잖아? 이런 시골에 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있겠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촌장은 악착같이 우려 냈을 것이다.
결국 받은 현금은 금화 다섯 개뿐이다.
산 따위는 줘도 별로 쓸모가 없지만 일단 넓이는 무지하게 넓다.
마을 공동 숲 말고 개인 숲이 조금 있다더니 이곳도 그런 모양이다.
다만 산쪽이 아니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강쪽의 언덕인 것 같았다.
에거시의 가족은 여러 날 준비를 하여 마을을 떠났다.
자경단에서도 마지막 마을까지는 호위를 해주기로 했다.
당연히 자경단에 많은 돈을 주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존슨도 자경단의 형들에게 그들이 어디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제르넨 가까이로는 비교적 안전하니 위험한 구간을 통과할 때까지만 호위를 해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존슨은 에거시를 용서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제르넨에서 여관을 하는 마을 사람도 결국 따지고 보면 에거시의 친척이다.
어쩌면 에거시가 돈을 대어 사업을 봐주고 이권을 챙기는 그런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 놈이 제르넨에 버티고 살면서 마을 일을 사사건건 훼방 놓는다면 어찌될까?
촌장도 결국엔 굽실거려야 할 것이다.
존슨도 영주성 제르넨에 갈 때마다 불편하고 어쩌면 위험할 것이다.
제르넨에서 영주의 병사들과 짜고서 존슨을 잡아 가둔다면?
그래놓고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존슨은 그런 미래를 그냥 놔두고 싶지 않다.
‘공세적 방어라고 해야겠지? 아니, 선제적 방어라고 했던가?’
방어지만 미리 적의 공격의 맥을 끊거나 공격의지를 꺾는 것.
존슨에게 있어서 에거시는 적이다.
낭만적으로 미망인이 된 어머니의 연인이 될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다.
수작을 부려 존슨과 존 포우를 위험으로 밀어 넣었고 결국 존 포우를 죽게 만들었다.
존슨도 죽기를 바랬겠지만 실패했다.
에거시와 대결하기 전부터 존슨은 호랑독가시나무의 뿌리를 채취했다.
아직 잎이 나지는 않았지만 수액이 막 오르고 있었다.
고블린이 하는 대로 가죽 주머니에 나무뿌리를 넣고 물을 부어 넣는 정도가 아니다.
독주를 한 번 더 증류하여 거기에 호랑독가시나무의 뿌리를 잘게 찢어 담궜다.
그 안에 호랑독가시나무의 독침들도 담아 두었다.
호랑독가시나무의 독액은 사람이나 짐승을 즉사하게 만드는 그런 독은 아니다.
오히려 마취제나 마비제에 가까운 독성을 지니고 있다.
고블린의 독침에 맞으면 마비가 된다.
고블린들은 퇴각할 때 그런 마비된 사람이나 말을 끌고 간다.
가져가서 죽이지도 않고 뜯어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고블린이 자기 살을 뜯어 먹는 것을 보면서 죽어가야 한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고블린을 아주 증오했다.
코볼트는 그와 달리 죽여서 먹으니 조금 덜하지만.
그래봐야 그놈이 그놈이다.
그래도 고블린을 더 증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언제 에거시의 일행이 떠나는지를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마을을 떠나고 이틀이 더 지난 후에야 아무도 몰래 마을을 빠져 나왔다.
일리나에게만 늦게 돌아올 것 같다고 말하며 남들이 모르기를 바란다고 말해놓았다.
숲으로 들어간 존슨은 자기 몸에 마법을 걸었다.
최근에 배우고 익힌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