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16세 새해(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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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경단의 일을 마쳤다.
일리나와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식사 후에는 계속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한다.
체력 단련은 새벽의 운동으로, 그리고 기술 연습은 저녁 때 하는 식으로 진행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으니까.
존 포우도 두려워 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가족들에게 풀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가족들도 화살을 만들거나 식품 가공하는 등의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와서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존 포우는 자기만 힘들고 자기만 피곤하다고 지랄을 떨어댔다.
고블린 둥지를 토벌하는 세 마을의 연합군은 안전 위주로, 정석적으로 작전을 펼쳤다.
변수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의 변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세 마을에서 각각 200명씩을 동원했고 그중 전투 인원만 150명씩이다.
예비대로 50명씩을 빼고 지원대로는 따로 30명씩 추려 구성했다.
더 동원할 수도 있지만 마을도 지켜야 한다.
적은 고블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블린의 수가 200마리 정도라고 했으니 거기에서부터 수가 한참 초과한 셈이다.
허지만 대략 수를 파악한 것이라 더 많을 수도 있었다.
토벌 후에 계수를 해보니 성체인 고블린만 230마리다.
암컷으로 보이는 것도 조금 포함되어 있는 암컷과 새끼들이 270마리 였다.
그것만도 예상을 거의 배나 초과한 것이다.
성체에도 암컷이 조금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따로 계수하지 않고 체구가 좀 큰 건 성체, 작은 것은 암컷과 새끼, 이런 식으로만 구분해서 파악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될 때엔 예비 부대와 지원 부대까지 투입되어 포위망을 형성했다.
포위망을 뚫은 고블린은 없다.
예비부대와 지원부대라도 다 똑같은 자경단원이다.
제비뽑기로 구분된 것일 뿐이니 다를 바 하나도 없다.
존슨으로서는 처음 겪는 몬스터 토벌이다.
자경단의 선배인 동네 형들의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 중 상당부분이 뻥이라 하더라도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토벌 때마다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에 휘말린 이들은 마을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일부는 팔다리가 잘린 채 살아 있기도 하니까.
존슨은 창병.
자경단의 99%가 창병이고 방패병이다.
궁수는 각 마을에 고작 열 명 남짓.
그 중에서도 그나마 잘 쏘는 것이 사냥꾼 케머른과 버밀과 그의 아들 로린이다.
나머지는 그저 활을 가지고 있고 쏠 줄 안다는 정도다.
10발 쏘아서 두세 발 정도 맞출 실력 밖에 안된다고 했다.
존슨의 마을에선 사냥꾼들을 제외하고 토미 바렛이 압도적으로 잘 쏜다.
‘나도 활이나 제대로 배워봐야겠다.’
여름 내내 훈련을 했지만 독학을 하려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았다.
아직도 10발 중에 5발 제대로 맞추기 어렵다.
그런 실력으로도 짐승을 잡는 걸 보면 짐승의 수가 많기는 많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궁수로 뽑힌 이들이나 존슨이나 그 수준이 비슷한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
‘다음엔 나도 촌장이나 자경단에 활을 쏜다고 할까?’
일단 고민을 좀 해볼 문제다.
무작정 활을 쏠 줄 안다고 해서 좋을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아니면 귀찮은 일이 더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태는 활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되도록 감추었으며 가족들만 아는 것이다.
시골 동네지만 뭐든지 자기가 뭘 잘 한다고, 뭐가 잘났다고 나대다가는 좋은 소리 듣기 어렵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냥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도 무방하다.
누가 대차게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싸울 각오 아니라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존 포우가 부실한 놈이라도, 아무리 존슨이 비실한 놈이라도.
‘싸우자고 대들면 싸워주면 그만이지. 아주 박살을 내놓으면 다른 놈들이 까불지 않겠지. 이름하여 시범케이스?’
추운 겨울 야전에서 싸우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옷이 부실해서 동상 걸리기 딱 좋다.
옷을 껴입어 둔해져서 자칫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되도록 방패로 막으면서 창으로 찌르는 공격을 주로 할 수밖에 없다.
섬세하고 세밀한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추운 것이다.
어찌되었건 꾸역꾸역 싸워 결국엔 이겼다.
수에서도 압도적이고 무장 상태나 훈련 역시 그럭저럭 잘 되어 있었다.
기습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기습을 해서 작전대로 잘 해낸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몇 명은 부상을 당했는데 그런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막 토벌을 끝내고 헐떡거리며 일부는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일부는 생존한 고블린의 잔당이 있을지 몰라 어슬렁거리며 찾으려 하는 방심한 순간에 사방에서 독침이 쏟아졌다.
“방패 들어, 코볼트다!”
교활한 몬스터가 싸움에서 승리한 인간들이 방심한 틈을 노려 뒷치기를 해 온 것이다.
고블린과 인간들의 전투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존슨 역시 방패를 들어 독침을 막아냈다.
“보급부대!”
누군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코볼트의 절반 정도는 고블린 둥지쪽의 전투조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후방의 보급 부대에 달려들었다.
양동작전이었다.
보아하니 보급품이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곡식가루, 육포, 염장 고기, 말린 채소와 말린 과일 같은 것들을 사정없이 주워 들고 도망친다.
보급 부대에 속한 이들은 나이가 많은데다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장을 제대로 갖추고 짐을 나르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다.
그 때문에 등짐을 지기 위해 무장을 포기한 것이다.
코볼트들은 짐을 실은 나귀나 노새까지 끌고 간다.
인간이 끌 때는 죽어라 버티는 나귀놈들도 코볼트가 창으로 엉덩이를 찌르니 피를 질질 흘려대며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나귀 새끼들, 나도 나중에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찔러봐야겠다.’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전투 조와 예비 조에서 부지런히 도움을 주러 달려갔다.
그렇지만 이미 보급조를 공격한 코볼트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뭐든 들고 뛰어 도망치는 중이다.
죽거나 쓰러진 인간까지 끌고 가려는 것을 막 활을 쏴서 쫒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와중에 보급부대원이 맞아도 어쩔 수 없다.
끌려가서 코볼트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느니 활에 맞아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간신히 코볼트를 쫒아냈을 땐 이미 사망자와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뜻하지 않은 기습을 당한 후유증은 엄청났다.
고블린 마을 토벌에 한 명도 죽지 않았던 세 마을의 자경단에서 무려 열다섯 명이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세 마을을 합친 인원이긴 하지만 하롯 마을에서도 세 명이나 죽은 것이다.
고블린 토벌에서 발생한 서너 명에 불과했던 경상자들 대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부상자만 수십 명이 넘었다.
중한 부상을 당한 인원은 거의 쉰 명이 넘었다.
죽거나 중상을 당한 자는 대부분 보급대에서 생겼다.
누구하나 빼놓지 않고 다들 중상을 당했다.
존슨 역시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보급대가 머물던 곳으로 달려갔다.
존 포우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존 포우는 죽지 않았다.
죽지는 않았는데 상처가 워낙 여러 군데이고 배도 코볼트의 단창에 찔렸다.
팔다리와 목에도 칼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가 있었다.
더러운 창날과 칼에 베이거나 찔리면 파상풍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도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가 화농된다.
그리되면 고통 받으며 죽거나 피가 썩는 패혈증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일단 코볼트들에게 기습받은 두 번째의 전투가 마무리 되고 전투 부대는 뒤로 빠졌다.
휴식에 들어가는 동안 예비 부대는 고블린 둥지 주변 경계를 했다.
전투 부대에서의 자원자와 예비 부대 일부가 둥지로 진입했다.
고블린 사체를 몇 군데로 구분해 모으고 전리품을 수거했다.
아무리 피해를 당했어도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
혹시나 또 다른 기습이 있을까 싶어 경계를 했다.
그렇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철제품 아닌 것은 다 소각하거나 파기할 것이다.
특히 고블린들이 흔히 사용하는 석제 무기들을 도끼 등으로 다 부숴버렸다.
존슨은 그 중에 몇 개의 석제 무기를 챙겼다.
석제라고 해서 돌도끼 같은 것은 아니다.
흑요석을 깨서 날카로운 부분을 나무에 박아 사용하는 칼인데, 이게 엄청나게 날카롭다.
강도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 깨지는 단점은 있다.
그렇지만 날 자체는 어지간한 칼날 보다 훨씬 날카롭다.
장진오도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난다.
원시인의 흑요석 칼날.
수술용 메스보다 훨씬 날카롭다는.
“고블린 굴에 들어가야 해.”
오빌마을 자경단 부단장인 사내의 말에 다들 질색을 한다.
좁고 어둡고 냄새나는 굴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코볼트 놈들까지 뒷통수를 쳐왔는데...라면서 꺼려했다.
그래도 굴 속을 확인해 보기는 해야 했다.
“제가 하죠.”
존슨이 눈치를 보다 자원했다.
자기가 마을에서 제일 막내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존슨보다 어린 애들은 자경단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있다 해도 자경단 측에서 이런 전투에서는 아예 빼버렸다.
존슨은 다른 동네 형의 것인 작은 둥근 방패를 빌려 왼팔에 끼웠다.
날 길이가 50cm 정도 되는 짧은 검을 오른 손에 들었다.
좁고 어두운 굴이라 어디서 살아남은 놈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연기를 잔뜩 집어 넣어 죽기는 했겠지만 혹시 살아 있는 놈을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존슨은 미리 준비한 홰에 불을 붙였다.
약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다섯 명의 자원자와 함께 고블린의 굴에 들어온 것이다.
예민해진 감각으로 바싹 신경을 썼다.
그랬더니 어둠 속에서 단검을 든 작은 체구의 고블린이 숨어 있는 느낌이 팍 들었다.
굴의 높이가 낮아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리도 엉거주춤하니 구부린 채로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느낌이 강해진다.
확실히 감각이 예민해진 것이다.
오감이 예민 해진 것은 물론이고 육감까지 예민해진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오니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인 것 같았다.
존슨은 한쪽 고블린을 방패로 치고 꽉 누르면서 다른 쪽은 짧은 검으로 찔렀다.
방패로 맞은 놈이 비명을 질렀다.
방패 모서리를 두른 철제에 맞은 모양이다.
비명을 지르는 그놈의 목에도 칼을 꽂았다.
“끄르르륵!”
좁은 곳이라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도 힘들다.
저항은 그 두 마리가 끝이었다.
나머지는 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수색대와 존슨은 지나면서 목이나 심장에 칼을 한 번씩 푹 찔러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주 어린 새끼들을 키우는 방도 있었고 나중에 가장 안쪽에서 족장의 방을 발견했다.
족장의 방이라고 해서 특별한 곳은 아니다.
그게 진짜 족장이 머무는 방인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같이 들어온 동네 형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일뿐.
존슨 혼자 들어온 것도 아니다.
마을 남자들 중 막내들이나 체격이 좀 작은 이들로 수색대를 구성해서 들여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