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15세가을(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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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려는지 인사를 하고 나간 것이다.
에거시가 나가고 한참동안은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이런저런 잡소리만 나누었다.
존슨도 더 이상은 들을 얘기가 없는 것 같아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씨팔, 존 나게 어깨에 힘들어가서는...”
“그러지 말라고.”
한 놈이 술이 취해 누군가를 욕하자 다른 이가 말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가 뭔데 그렇게 힘주고 거드름 피우는 건데?”
케머시 잔튼의 목소리다.
“그래도 그만큼 나설 사람도 없잖아?”
누구더라...테네시였나?
누군가를 욕하는데 아무래도 그 대상이 에거시인 것 같다.
그래서 일어서려던 마음을 가라 앉히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에거시의 거만함을 비웃고 그의 칼날같은 성격에 대해서 욕을 했다.
그렇지만 능력은 있어서 대놓고 밀쳐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촌장을 몰아내는데 앞세우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고츠가 장기집권하는 걸 막으려면 그만한 사람도 없다고.”
“그건 그렇지만...그래서 더 기고만장한다니까.”
자기네들끼리도 내분이 일어나는 조직이라니!
그런 소리를 듣기 싫었는지 몇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몇 사람만 술이 취해서 이런저런 소리를 해댔다.
결국 자리는 파할 수밖에 없다.
다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집을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존슨은 그중 제일 투덜거리는 케머시 잔튼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집에 가면서도 연신 뭔가를 중얼거리며 욕하고 침을 밷었다.
“새끼가 말이야, 지가 좋으면 좋은 거지, 씨팔! 그냥 몰래 쓱 해버리고...카아악, 퇫! 그냥 첩 삼아버리면 될 걸...병신 새끼 같으니라고. 남의 마누라 된 여자가 뭐 좋다고. 허긴, 그래도 여전히 이쁘긴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용하게도 걷는다.
“처녀도 아닌데 씨팔, 어으, 졸라 꼴리기는 하지. 금발도 그런 백금발은 드물거야. 퇫! 한 번 주워 먹으면 되지 그걸 꼭 집안을 개 박살 내야 하나? 커억! 허긴 존슨 새끼 박살나 거지가 되면 나도 좋긴 하지. 그 새끼를 내게 노예로 달라고 해야겠다. 조니 놈에게 맡기면 재미있겠다. 에미년은 그 새끼가 갖을테니. 그 딸년들도 백금발이었지? 어흐, 야들야들하겠다. 크크크.”
개 잡소리를 계속 중얼거리며 욕을 해대고 침을 밷고 트림을 해가면서 비틀거리며 걸었다.
중간에 알아 듣기 어려운 말도 있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 새끼들은 존 포우의 집을 산산조각 내려고 마음 먹은게 분명했다.
‘에거시 새끼는 일리나를 탐내는 걸까? 저 새끼는 나하고 헤나나 데이지를? 씨팔 새끼들. 어디 두고 보자. 당장 뭔가 하려는 건 아니지만 유심히 살펴야겠는걸!’
그들의 그런 대규모 회합은 그때뿐이었지만 둘씩, 셋씩 모이는 모임은 종종 있었다.
존슨은 에거시와 케머시 잔튼에게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만약 뭔가를 한다면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존 포우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인간들이 많았다.
도대체 그 이유조차 불분명한 데 존 포우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적을 만들어 둔 것일까?
그들에게 협조하는 것 같은데 왜?
종처럼 부리다가 토사구팽 시키는 것도 아니고.
에거시가 만나는 사람을 살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마을 사람들끼리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다.
그 때문에 에거시가 누구와 만났다고 수상하다고 여길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으로서는 이래저래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이 쉬울 턱이 없다.
더구나 한 마을 사람이니 어찌되었던 눈에 띌 가능성이 많다.
존슨은 말린 과일과 육포로 제티의 몇몇 친구들을 꼬였다.
“에거시 씨가 누굴 만나는지 보거든 나중에 슬쩍 얘기해줘. 가까이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저 멀리서 보기만 해. 들키지 않게.”
“왜?”
“에거시 씨는 마을 유지잖아? 나도 마을 유지가 되고 싶어. 그가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싶지만 남의 얘기를 엿듣는 것은 나쁜 거야. 그러니 그저 누굴 만나는지만 알고 싶어. 그래도 그가 알면 기분 나쁘겠지?”
“어, 그렇지.”
“그러니까 누굴 만나는지만 혹시 보게 되면 말해줘.”
에거시 뿐 아니라 케머시 잔튼, 촌장 등 그 대상자를 한정했다.
“로테인씨 말이야?”
에거시가 몰래 만나는 사람이 하나 생겼다.
“어. 어제 그제 말이야...”
에거시가 어떻게 로테인씨를 만났는지 자세히 전해주었다.
로테인은 저번에 폴린이라는 에거시의 집 노예가 얘기해준 사람 이름 중에 있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만날 수 있다.
존슨이 알지 못하는 오래전부터의 친분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로테인이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살짝 오싹한 한기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건, 안좋은 거야. 분명해!’
그래서 한동안 해가 떨어지고 나면 로테인 씨 집 창밖에 쭈그리고 앉아 감시했다.
성과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존 포우가 외출을 했다.
일리나에게는 에거시 씨를 만난다고 했다.
외투를 입고 잔뜩 웅크린 채 집을 나간 존 포우는 곧장 로테인 씨 집으로 향했다.
멀리서 존슨이 뒤를 따르는 것도 모른 채.
사실 반쯤은 포기한 상태다.
이렇게 창밖에서 대화만 엿들어서는 도대체 뭔가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괜히 추위에 떨기만 할뿐, 소득이 없으니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저녁나절부터 존 포우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갑자기 에거시 씨 집에 간다고 외투를 입은 것이다.
“내가 가서 좀 보고 올게.”
존 포우가 나가자 말자 존슨이 외투를 입고 방을 나와 일리나에게 말했다.
“그래 줄래?”
일리나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로테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존슨은 어둠속에서 조심스럽게 창밑으로 향했다.
보통은 거실의 창은 단단히 닫아둔다.
유리가 귀한 곳이라 이런 농가의 창은 유리가 아니다.
밀어서 열어 받침을 끼워 열어두었다가 닫는 여닫이 문이다.
경첩을 문 위에 달아 위로 열어 아랫쪽으로는 막대를 끼워 두는 식이다.
이런 겨울에는 바람이 새들어오지 않도록 단단히 닫아둔다.
그 때문에 안의 대화가 밖에 들리지 않지만 존슨의 감각은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다.
안의 대화가 거의 다 들리는 것이다.
로테인씨와 존 포우가 서로 인사를 하고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존슨도 쭈그리고 앉아 어두운 색깔의 천을 뒤집어 쓰고 있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가리기 위함도 있지만 추워서라도 이건 꼭 쓰고 있어야 한다.
점점 추워지면서 작고 두꺼운 방석도 만들어 다녔다.
그냥 바닥에 앉아 있다가는 엉덩이가 다 얼어버릴 것 같아서다.
가장 문제는 발이 시려운 것.
그렇지만 존슨은 전투용의 두꺼운 장갑을 끼고 아티팩트인 투박한 구두를 신고 있다.
벨트와 단검도 차고 있어 마법효과가 있다.
즉 투박한 구두지만 발이 시리지 않다.
손도 시리지 않다.
누굴 기다리나 했더니 에거시다.
“그러니까 이건 제 땅을 파는 계약서고, 이게 소금 판매에 대한 계약서죠?”
‘땅? 소금?’
갑자기 튀어나온 소금이라는 단어가 깜짝 놀랐다.
물론 땅을 파는 계약서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당장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그래야 나중에 큰 돈을 벌게 될테니.”
“물론입죠, 에거시씨.”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라 답답했다.
존슨은 거실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안쪽으로부터 한줄기 빛이 나오는 곳이다.
조밀하게 집을 마무리했다지만 이런 구멍이 종종 있다.
그래서 이곳의 집들이 추운 것이다.
존슨은 그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존 포우는 어색하게 펜을 잡고 몇 장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존 포우는 아직 글을 모르지만 그래도 서명은 한다.
내용은 에거시가 말하는 것이고.
존슨은 눈을 크게 뜨고 서류를 들여다 보았다.
존슨 역시 아직 글을 모른다.
그렇지만 감각은 좋아졌고 기억력은 비상하다.
틈으로 보는 것이지만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그리고 눈알을 움직여 존 포우가 서명하는 서류의 글씨들을 그림으로 외워버렸다.
내용은 모르지만 얼른 글을 배워 무슨 뜻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너 장의 서류에 낑낑거리며 서명을 한 존 포우의 얼굴이 환해진다.
‘병신!’
로테인이 존 포우에게 금화를 건네준다.
그리고 존 포우는 그 금화를 고스란히 에거시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서로 서류를 나눠 갖는데 존 포우는 달랑 한 장만 가졌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네. 아직 밝혀져서는 안되는 거야.”
“네, 푸른...아....음...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몇 가지로 추리해 볼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글을 모르니 다 부질없는 일이다.
존슨은 먼저 집으로 향했다.
‘바보 멍청이. 집의 유일한 재산인 땅을 팔아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아무리 궁리해도 알 수가 없었다.
‘소금이라...아아...그건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했으니...’
너도 소금 사업에 끼워줄테니 투자를 해라, 이렇게 속인 걸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에거시가 말로만 했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바보같은 존 포우라도 자기 땅 팔아 고스란히 에거시에게 주었을 때는 뭔가 물증을 보았을 수도 있다.
‘푸른 소금이라...’
그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분노 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직접 존 포우를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존 포우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존슨과 단 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늘 데이지나 제티나 헤나 등과 함께 있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덩치가 다 자란 성인처럼 커진 존슨이든 존 포우든 누구 하나는 늘 집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좋다.
어찌되었건 위험한 세상이었으니까.
날이 추워지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식량이다.
그렇지만 당장은 여유가 있으니 몸에 닿는 큰 문제는 추위다.
옷 자체가 형편없다보니 밖에서 일 할 때면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얼어 죽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를 알겠다.’
추위 자체도 아주 춥지만 기본적으로 옷이 부실하다.
그래도 눈이 오기 전까지는 죽을 동 살 동 일을 해야만 한다.
아직도 다 하지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땔감은 언제나 모자란다.
겨울에 눈이 많을 때 산에 가서 땔감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조급하다.
미리 많은 준비를 해야하는데 존 포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 걸치적거리지 않으면 다행.
거두어들일 먹을거리도 아직 좀 남아 있다.
과일 나무꼭대기에 매달린 남은 과일도 어떻게든 따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것이다.
‘장진오가 죽고 존슨으로 깨어난 것이 초봄이었는데...벌써 늦가을이라니!’
그동안 도대체 뭘 했나 싶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루어 놓은 일이 하나도 없다.
‘존 포우 핑계나 대면서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인 것인가?’
사실 존 포우가 훼방을 많이 놓기도 했다.
뭔가 해볼까 하면 욕을 하고 방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