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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귀농 당한 썰-17화 (17/74)

〈 17화 〉 15세늦여름-제르넨(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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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동전주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막상 써봐야 아는 걸까?’

단검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이건 단검에 새겨져 있지 않고 검집에 흑점이 새겨져 있었다.

칼을 빼보았지만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칼이니까 예리함? 아니면 강함? 아니면 녹슬지 않는...스테인레스?’

그런 생각을 해가면서 침대의 가장자리 나무에 칼을 대고 옆으로 슬쩍 밀어보았다.

“우왓!”

놀라서 얼른 칼을 떼어냈다.

침대의 나무가 마치 부드러운 치즈나 버터를 칼로 저며내는 것처럼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아니면 생선의 포를 떠내는 것처럼 얇게 썰렸다.

“음, 샤프니스인걸까?”

칼날에 예리함을 더해주는 마법.

아무래도 그것 같았다.

“다른 것들도 다 그런 것들이겠지? 당장은 알 수가 없네. 신발이랑...벨트는 뭐야? 어어...장갑이라. 이건 그냥 장갑이 아니라 전투용글러브잖아? 이렇게 두껍고 투박한 글러브에 무슨 마법인걸까?”

전투용 글러브라는 건 칼이나 창을 잡을 때 끼는 용도의 장갑이다.

조금 두껍고 투박하지만 손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갑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장갑이다.

이것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뜻밖의 선물.

서프라이즈!

“큭큭!”

크게 웃지는 못하지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의 장진오는 고장 났던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다.

그럴 것이다.

갇힌 상태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여기서 존슨의 몸에서 깨어난 것이다.

새로 깨어난 이곳에서 이런 뜻밖의 선물을 받다니!

지금도 의문이 가시질 않기는 한다.

왜 고장 난 냉동창고가 잠겼으며 왜 작동이 되었는지.

전원을 빼라고 직원에게 말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장진오가 타인에게 죽음을 당할 만큼 원한을 샀다거나 부자도 아니다.

사업은 거의 망할 지경이었다.

남은 것은 본사 건물과 냉동창고, 그리고 가동이 멈춘 공장뿐이다.

그런 부동산은 사업의 잔재다.

그걸 탐낼 사람도 별로 없다,

탐낸다면 그냥 줘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아내나 자식이 있었다면 그들이 유산을 탐낸 걸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아내와 이혼한지 오래되었고 아이도 없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다.

그리고 어차피 그의 모든 재산은 그가 죽으면 모두 사회사업하는 곳에 기증되도록 유언을 해두었다.

그의 몸도 장기기증을 하고 남은 것이 있다면 의대의 해부 실험을 하도록 유언장에 작성되어 있다.

그를 죽일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 딱히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자기 생각대로만은 아니다.

이렇게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으로 깨어났으니 이유 따위는 알건 모르건 상관이 없다.

초기에 잠깐 궁금해 했고, 어떻게 이렇게 생각날 때에 잠시 생각해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늘 똑같다.

어차피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다시피 했으니 그쪽의 일은 잊자고.

그래도 물건들 하나하나 기능을 확인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늦은 밤이라 큰 소릴 내면 존 포우가 지랄을 떨어댈 테니 조용히 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하나씩 확인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공통점이 있는 장비들에 피를 흘려 먹였다.

하나같이 존슨의 피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흡수했다.

단검을 허리에 차고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장갑을 끼고 투구를 썼다.

부츠라고 말해야 좋을 신발도 신었다.

그런 후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에 벨트 버클의 겉이 뚜껑처럼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열어보니 돌출된 작은 장식이 있었다.

‘이게 뭐지?’ 싶어서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다 꾹 누른 순간 갑자가 눈 앞에 투명한 뭔가가 팍! 생겨났다.

“어어...”

어찌된 일인지 몰라 어릿한 소릴 냈다.

투명한 막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투명한 젤리 속에 자신이 갇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손을 뻗으니 자기 손은 막을 통과할 수 있다.

이리저리 움직여도 막은 변함이 없다.

그러다 문득 침대 모서리와 무릎이 부딪쳤는데 닿는 느낌이 없다.

막이 안으로 살짝 밀려들기는 했지만 침대 모서리와 살이 닿지 않는다.

‘이거, 실드 마법 같은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마법 갑옷 같은 그런 거?’

그것도 그럴 듯했다.

벨트 버클의 뚜껑을 열고 다시 눌렀다.

변화가 없다.

‘뭐지? 뭘 어떻게 해야....아...이건가?’

팟!

한순간에 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대...대박!”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드 마법이나 그런 종류인 것 같았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어느 정도 공격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

아니면 마법 갑옷?

‘왜 이전의 주인은 이런 물건을 가지고도 고블린의 밥이 된 것일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음, 어쩌면...하급 마법사라서 이런 기능을 몰랐다거나...아니면 사용하기도 전에 마비침을 맞았다거나...’

몰래 기습하는 것은 고블린의 특징이다.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독침을 쏜다.

즉사하는 독침은 아니지만 마비는 즉시 일어난다.

이전 주인이었을 하급의 마법사는 이 실드 마법을 발동시키지도 못한 채 고블린의 마비독침을 맞았을 것 같다.

그리고 산채로 뜯어 먹히면서 그의 몸에 걸치고 있던 이것들은 다 쓰레기 장으로 향한 것이고.

그냥 존슨의 상상이다.

‘고블린이 이 투구나 장갑이나 구두를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또 그대로 의문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고블린 떼는 전멸을 당했을 것이다.

이걸 판 상인의 무리가 그랬을지, 아니면 그 상인도 고블린 토벌한 무리에게서 구입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아있다 해도 고블린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일이니 내막을 알기는 영영 그른 일이다.

‘다른 물건들도, 아니 이건 그냥 물건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고귀한 것들이니...이 아티팩트들은...크아, 멋지다. 아티팩트...’

혼자 속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슴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른 아티팩트들도 뭔가 이런 비슷한 기능이 있겠지?’

서둘러 풀어 하나씩 확인해보려 하는데 뭔가 확실하지 않다.

“응?”

혹시나 싶어 다른 것 다 풀어 놓은 상태에서 벨트만 차고 다시 버클 뚜껑을 열어 돌기를 눌렀다.

“아아...”

작동하지 않는다.

‘뭔가 셋트 메뉴인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여러가지 조합으로 확인해 본 결과 다른 아티팩트와 함께 착용을 해야 작동을 한다.

즉 벨트는 장갑이나 신발 같은 다른 아티팩트를 더 해야만 작동을 한다.

다른 아티팩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티팩트의 수는 모두 다섯 가지였다.

동전주머니, 가죽 벨트, 단검, 투박한 부츠, 장갑이었다.

그런데 동전주머니만 유일하게 단독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동전주머니는 아티팩트 조합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동전주머니는 제외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아티팩트를 항상 지니고 있어야 작동된다는 뜻이다.

‘동전주머니는 셋트 메뉴가 아닌가?’

같은 흑점이고 똑같이 피를 흡수했는데도 셋트 메뉴가 아닌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다.

아티팩트들을 동전주머니에 넣어두면 작동하지 않는다.

몸에 걸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는지 또 살펴봐야 하나?’

다음번에 제르넨에 갔을 때 그 상인이 계속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좀 아쉽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마법아티팩트라니!

밤새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부모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존 포우 빼고.

존슨은 아직 15살이니까 세금은 내지만 온전한 성인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 글이라...”

일리나는 아들 존슨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레먼드씨나 헤럴드 씨를 생각해보았는데, 그것도 확실하지 않아.”

존슨의 말에 일리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최소한 몇 달 이상, 길게는 1년 정도는 봐줘야하는 일이다.

일리나 역시 글은 모르지만 오빠들이 글 배울 때 얼마나 힘들어 했고 얼마나 괴로워했으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알고 있다.

“외삼촌에게 배워보면 어떻겠니?”

“외삼촌?”

“그래. 루터 삼촌이나 페블 삼촌이나.”

이름만 알지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다.

어릴 때는 대화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커서는 없다.

“뭐, 아무라도 상관없어. 외삼촌들은 글을 아나?”

“물론이지. 어려서 글 배울 때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모른다.”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존은 글을 모르나?”

존슨이 묻자 일리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렇구나. 일단 외삼촌들도 바빠서 곤란할 수도 있으니 물어보기나 해줘.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일리나는 며칠 후에야 존슨에게 그 답을 해주었다.

“둘째 오빠가 해줄 수 있대. 어차피 에섹에게도 글을 가르칠 거래. 그때 함께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라더라.”

에섹은 둘째 외삼촌 페블의 아들이다.

“좋아. 좋다고 말해주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미리 말해달라고 해.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펜이나 종이나 아니면 책?”

“물어볼게. 어차피 추수가 끝나야 한대.”

당연한 얘기다.

농부에게 있어서 밀의 수확 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뭔가를 배우거나 하는 것은 늘 추수 후, 봄이 될 때까지의 농한기 때 해야 한다.

자경단의 훈련이나 근무도 주로 이때 이루어진다.

여자들이 새로운 길쌈 방법을 배우거나 남자들의 새로운 밭갈이나 도축 방법을 배우는 것도 이때 벌어지는 일이다.

그건 한국의 농촌에서도 마찬가지다.

농부에게 최우선은 농사고 추수였으니까.

추수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농부들의 눈은 빛나고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풍년이다.

오랜만의 풍년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도 있다.

세금을 거두는 영지의 관리.

그래서 농부들은 풍년에 기뻐하고 추수에 기대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수확물을 감춰야 할지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존슨은 같은 경우는 모든 수확물이 존 포우의 것이니 큰 기대는 없다.

다만 이번엔 훔쳐낼 것이다.

일리나와 짜고서.

일리나의 협조가 없으면 빼낼 방법이 없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저번처럼 숲에 감추는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방법이 있다.

마법의 동전주머니.

혼자 숲에 머물 때 이런저런 테스트와 연습을 해보았다.

공간은 충분한 것 같았다.

땅에 1미터 정도 이상 박혀 있거나 나무의 뿌리처럼 복잡하게 박혀 있다면 동전주머니에 넣을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집채만한 바위라도 집어넣을 수 있다.

부피도 그렇지만 무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집채만한 바위를 넣고 다닐 일은 없으니 테스트 용도로만 몇 번 넣었다 빼보고는 빼내 던졌다.

존슨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 가장 믿을만한 사람은 일리나뿐이다.

물론 존 포우 때문에 100% 신뢰를 갖기는 어렵다.

모자간 보다 부부간이 더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법 동전주머니의 존재를 일리나에게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추수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잠시 더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되기 전에 숲으로 가는 일은 답답한 속을 다스리는 한 가지 방법이다.

굳이 사냥을 하겠다거나 약초를 채집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쪽 사람 대다수는 숲은 무서운 곳, 위험한 장소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다.

늑대, 표범, 곰, 멧돼지, 시라소니,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드글거린다.

그뿐인가 고블린이나 코볼트는 흔한 몬스터다.

오크도 심심치 않게 돌아다닌다.

슬라임이나 가고일 같은 몬스터도 조금만 숲 깊이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사람을 위협하는 몬스터와 맹수가 버글거리는 숲에 누가 들어가고 싶어할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숲으로 들어간다.

약초, 사냥, 암염, 보석, 사금 같은 것들 때문이다.

존슨 역시 개울이 있고 모래가 노랗게 빛나면 사금이 있을까 싶어 눈을 반짝인다.

작은 동물을 보면 사냥을 하려 활을 꺼내든다.

잘 팔리는 약초가 보이면 채집바구니를 꺼내 작은 삽이나 낫을 꺼내든다.

그리고 실제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약초를 존슨이 채집한다.

처음엔 어쩌다 한 마리 잡을까 말까하던 짐승도 이제는 숲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한두 마리씩 잡아 온다.

가족들의 특별한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꿩, 산비둘기, 산닭, 자고새 같은 살집이 좀 있는 새가 좋다.

오리, 기러기, 백조, 칠면조처럼 더 큰 몸집의 살이 많은 새를 사냥한다.

존 포우가 깃털에는 알러지가 있지만 새고기에는 알러지가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미운 놈이 체질까지도 얌체가 따로 없다.

아니면 토끼나 산양같은 초식동물이나 너구리, 오소리 같은 잡식성 동물을 사냥한다.

사슴이나 노루처럼 큰 동물은 아직은 좀 어렵다.

담비나 족제비는 너무 재빠르고 날래서 잡기 어렵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몸이 둔한 너구리나 오소리 같은 놈들은 잡기 쉬운 편이고.

존슨의 의식은 한국 땅에 살던 사람이다.

꽤 나이를 먹었었기 때문에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너구리나 오소리 고기는 개고기와 아주 유사하다.

색깔도 짙은 갈색이고 향도 비슷하다.

사실 노루나 고라니의 고기 역시 이렇게 살의 색깔은 진한 편이다.

개고기처럼.

존슨은 너구리나 오소리를 잡으면 가죽을 벗겨 내고 내장을 제거하여 가져온다.

가죽은 모피로서 꽤 좋은 평가를 받는다.

살코기는 가족들의 식재료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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