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5세늦여름-제르넨(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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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은 이번 가을엔 뭔가를 계획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이 농장과 그들이 농사 짓는 모든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원칙적으로 존 포우의 것이다.
거기에서 국왕과 영주가 정해놓은 비율의 세금을 내야한다.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영주의 세관원, 세리들이다.
그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세금이 들쭉날쭉거린다.
존 포우는 그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두려워하는 것이 역력했다.
존슨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건 확실하다.
그래서 늘 생산한 것에 비해서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분명했다.
존슨은 그게 불만이다,
그렇다고 존 포우를 닥달해 봐야 싸움만 일어날 뿐이다.
존 포우에게는 해결할 능력도 없고.
그러니 자신이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
봄에 보리를 수확할 때는 일리나에게 말해서 스무 자루 넘게 숲에 감춰두었다.
세리의 눈만 피할게 아니라 존 포우의 눈도 피해야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세리들이 가고 나서 존 포우에게 말했다가 살인 날 뻔 했다.
그때도 일리나가 다 말하려는 걸 말리고 15자루라고 말했다.
그나마 그래놔서 일리나가 나머지 15자루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일리나의 처음 계획처럼 존 포우에게 다 말했었다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존 포우는 근래에 씀씀이가 헤퍼져서 곡식 자루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도박쟁이 새끼 같으니라고! 하여간 나쁜 놈들은 하는 짓이 하나같이 나쁜 일 뿐이지!’
그 문제에 대해서 존슨은 일리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리나도 더 이상은 존 포우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다고 했다.
일리나에게도 존 포우의 도박에 관해서 말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될 거야. 존이 눈에 불을 켜고 찾을 테니까.”
존슨의 말에 일리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아직 한두 달 여유가 있으니까.”
아들 존슨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아직 들판의 밀은 푸르기만 하다.
매일 새벽에 밭에 나가 잎과 줄기와 이제 막 패기 시작하는 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속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병충해는 없는지, 혹시 가물거나 습하지는 않는지도 눈여겨 봐야 했다.
그런 후 일리나와 헤나, 데이지, 제티는 지난해에 사용했던 밀자루와 봄에 사용했던 보릿자루를 수선 했다.
모자라는 수량은 새로 만들고 있었다.
존슨은 존 포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집과 농장 주변을 두루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보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야외에서 건조한 곳을 찾기는 어렵다.
늘 이슬이 내리거나 추워지면 서리가 내린다.
침대에 누워 있던 존슨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침대 아래에 넣어둔 상자를 꺼냈다.
제르넨 성에서 구해온 것들을 자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뭔가 그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를 영 떨떠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때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오늘처럼 상자를 꺼내 열어 하나씩 살펴 보곤 했다.
가장 강력하게 기이한 느낌이 들던 작은 동전주머니.
열고 안을 살펴보고 손을 넣어보고.
갑옷 안쪽에 가로질러 매고 그 안에 작고 비싼 귀중품 넣어두면 딱 좋을 것 같아서 구입한 것이다.
작고 귀한 것들을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소매치기가 말도 못하게 많다고 했다.
자다가 말고 헐레벌떡 도망쳐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그러니 이런 동전 주머니가 꼭 필요했다.
천 주머니인줄 알았는데 눈을 감고 가만히 만져보면 천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겉의 가죽에는 희미한 문양이 새겨져 있지만 큰 것도 아니고 한쪽 구석에 작은 크기였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것은 아니겠지? 장물은 아닐테고. 장물이라...크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어.”
스스로 혼자 묻고 응답하고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살펴도 이상한 점은 없다.
“그런데 왜 그 때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까?”
신기한 일이었다.
뭔가가 있을 것 같아 굳이 구입을 한 것인데 아무 것도 이상한 부분이 없으니 약간 허무해진 것이다.
그 작은 가죽 주머니를 양반 다리하고 앉은 가운데 놓고 함께 구입했던 검은 점이 있는 단검을 꺼냈다.
보통의 단검 보다 날의 길이가 살짝 길다.
날을 뽑아 자세히 살피면서 날이 얼마나 서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칼날을 슬쩍 만지다가 앗차 실수를 했다.
“윽!”
단검에 손가락 끝을 살짝 베었다.
살짝 베인 것 같은데 새빨간 피가 한 방울 맺히더니 맥없이 뚝 떨어졌다.
마침 다리 사이에 있던 동전주머니에 떨어졌다.
“뭐야, 젠장!”
피가 나는 손가락을 보며 난감했다.
이 동네는 부상을 당해도 약도 제대로 없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피가 나는 손가락은 다른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어어...”
주머니가 괜찮은가 싶어 내려다 봤더니 주머니에 떨어진 피가 차차 사라지고 있었다.
피는 주머니 구석의 검은색의 동그란 문양으로 흘러들어가며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뭐지?”
문득 피의 각인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설마 피를 떨어뜨려서 각인을 시키면 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는...뭐 그런 건가?’
피가 다 사라지자 존슨은 그걸 책상다리한 구부러진 무릎 밑으로 집어 넣었다.
조금 지나면 적당히 피가 멈출 정도였다.
손가락 끝이 후끈거리면서 쑥쑥 쑤셨다.
생각보다 꽤 깊이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다.
성한 손으로 주머니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여전히 아무 것도 없다.
손을 쑥 집어 넣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주먹이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 허둥지둥 빼내고 한참을 노려 보았다.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넣었다.
주먹이 들어갔다.
주먹이 사라졌다.
손목을 까딱거리지만 뭔가에 닿는 느낌이 없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걸까? 진짜 마법?’
아무 것도 닿는 느낌이 없으니 손을 더 쑥 넣어 보았다.
“헉!”
오른 손이 팔꿈치까지 잘린 것처럼 보인다.
잘린 팔꿈치에 동전주머니가 매달려 있다.
벌어진 주머니 안으로 팔이 들어가 있는데,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고작 주먹하나 들어갈까말까 한 작은 주머니인데.
더 쑥 넣으니 어깨까지 팔이 다 들어가 버렸다.
‘젠장! 대박인데!’
“뭐 안 들어 있나? 돈주머니는 안 들어 있나? 헛!”
갑자기 손에 뭔가가 닿아서 깜짝 놀랐다.
허둥지둥 팔을 빼냈다.
“뭐지? 갑자기...”
혹시라도 괴물이 손을 깨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놀라 빼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마음을 가라 앉힌 후에 다시 시도했다.
“뭐였지? 아, 돈주머니.”
그러면서 손을 가방 안으로 넣고 말했다.
“돈주머니. 으음...”
이번에 기다리던 것이라 손으로 가만히 더듬거렸다.
천으로 만든 주머니 같았다.
일단 슥 잡아 빼냈다.
“헐!”
정말 놀랐다.
동전주머니 보다 훨씬 큰 천주머니가 존슨의 손에 잡혀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꺼내놓고 보니 엄청나게 무거웠다.
끈으로 묶인 주머니 입구를 열어 안을 보았다.
금전과 은전들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
‘대박인걸! 못해도 금화 100개는 넘겠는데?’
그러다 금전 하나를 꺼내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1골드짜리 금화가 아니다.
‘어쩐지 크고 묵직하고 두꺼워 보이더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10골드짜리 금화로구나!’
다 10골드짜리는 아니다.
금액이 클수록 크기와 두께와 무게가 달랐다.
1골드짜리와 10골드짜리와 50골드와 100골드 금화가 섞여 있었다.
‘은화인줄 알았던 게 은화가 아니라 100골드짜리 백금화였어!’
놀랐다.
말로만 듣던 100골드짜리 백금화.
이 주머니 하나만해도 수천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그 주머니를 옆에 놓고 동전주머니에 다시 손을 넣고 말했다.
“돈주머니. 오오, 또 있네?”
그렇게 나온 돈주머니가 일곱 개다.
그 후로는 돈주머니라고 말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다시 집어넣고. 그런데 어떻게 집어넣지?”
동전주머니 보다 크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주머니 입구에 대고 넣었다.
안 들어 간다.
“돈주머니.”
이름을 말하니 그제야 쑥 들어간다.
‘직관적이로구먼.’
그렇게 판단했다.
1골드짜리 금화 몇 개만 꺼내놓고 다 도로 집어 넣었다.
‘다른 건 또 안들었나? 음...뭐가 있을까?’
손을 동전주머니 안에 넣고 나직하게 말했다.
“롱소드. 오오, 역시.”
칼 손잡이가 손에 잡혔다.
칼이 한두 자루가 아니다.
도로 집어넣었다.
“활.”
활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활을 괜히 만든걸까? 쳇! 그래도 남들 눈이 있으니 잘 만든거 지.”
동전주머니 안에 든 돈을 생각하니 활의 가격은 정말 하찮은 금액일 뿐이다.
가죽 가방 안에는 현재까지 돈주머니, 칼, 창, 가죽 갑옷, 투구, 신발 같은 장비들뿐만 아니라 잡다한 물품들도 많이 들었다.
옷가방이라 말하니 옷가방만도 여러 개가 손에 잡혔다.
존슨이 꺼낸 것만 대여섯 개나 된다.
확인하지도 않고 도로 집어넣었다.
나중에 언제 한가할 때 꺼내 본 것들은 이름을 따로 적어가면서 샅샅이 뒤져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밀 자루.”
혹시나 싶어 말했더니 정말 도정하지 않은 통밀이 가득한 자루가 잡혔다.
그것도 꺼내보니 열 개가 넘어가서 그만 멈추고 도로 집어넣었다.
당연히 밀가루, 보릿가루도 자루 채로, 또는 작은 자루로 소분되어 들어 있다.
“누군가, 사용하던 것인데 분실했거나 주인이 죽고 어찌어찌 흘러든 것일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헤럴드씨가 말한대로 고블린의 쓰레기 장일 가능성도 있다.
‘여행을 하던 하급 마법사가 고블린에게 잡혀 죽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예상치도 못하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친다면 제대로 대항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대규모로 치고 박는 와중에 다치거나 죽은 마법사의 시체를 고블린들이 노획해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마법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상단이 습격 받으면서 흘러든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봐도 엄청난 마법 물품인걸! 그런데 왜 이걸 볼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까? 나, 의외로 마법이나 마나에 민감한 사람 아니야? 마법 배울 수 있다면 정말 끝내줄텐데!’
이런저런 망상을 하면서 빈둥거렸다.
‘이런 건 그저 없는 듯이 지니고 있어야 대박인 거지!’
앞으로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세금 거두러 오기 전에 밀을 절반 이상 여기에 넣어 보관해야겠다. 제대로 납부하라고는 안하겠지. 쭉정이가 많아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다고 뻥을 쳐야겠다. 그러자면 남들 보다 빨리 수확을 해야겠는 걸? 말리는 것은...일단 여기에 다 집어넣었다가 나중에 차차로 꺼내 말리면 되잖아? 세리들 다 돌아간 후에 말이야.’
이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산에서 나무 할 때도 좋겠다. 통나무 무지하게 무겁고 이리저리 굴리기도 힘든데. 여기에다 왕창 집어넣고 내려와 집에서 꺼내놓으면 되잖아? 남들이 이상하게 여길까? 데이지나 가족들도 이상하게 생각할까? 가족들에게 말해야 할까?’
이런 고민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