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5세늦여름-제르넨(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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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인도 지주이고 대단한 유지까지는 아니지만 존 포우 보다는 훨씬 낫게 사는 이다.
농토도 많고 그 집 노예도 많다.
그러니 어울린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 존 포우가 종종 함께 있다는 것.
그런데 존 포우는 집에서는 절대로 그런 내색을 않는다.
존슨이 아는 존 포우라면 기고만장해서 자기가 이런 사람이다! 하는 식으로 으스댈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내색도 않고 절대 말도 안한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것 말고도 폴린이란 이름의 노예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 하는 동안 존슨은 그에게 이런저런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
햄, 치즈, 잼, 빵, 육포 같은 것들이다.
노예의 수명이 짧은 이유 중에는 극악한 노동 강도도 있겠지만 열악한 식생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말이나 소먹이 주듯이 일단 먹을 것을 주기는 하지만 질이 형편없다.
오히려 가축들보다 더 열악한 먹을거리일 때도 있다.
‘왜 가축에게 보다 사람인 노예에게 더 악하게 대하는 것일까?’
존슨은 그게 늘 의문이었다.
소나 말에게는 아주 정성을 다해 먹이를 주고 돌봐준다.
몇 번 더 그럴 기회가 생겼다.
먹을거리, 특히 육류의 공급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폴린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줄줄이 얘기를 했다.
다른 노예에게 전해들은 얘기도 해주었다.
존슨이 그저 이런저런 얘기 거리에 흥미를 가진 소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존슨이 누구네 집 아이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래서인지 존 포우로 짐작되는 인물이 드나들면서 누구와 만나고 때로는 어떤 말을 하는지도 말해주었다.
존 포우는 심부름꾼.
그렇지만 이상한 점은 있다.
단순 심부름꾼인 것 같으면서도 훨씬 많은 돈을 주고, 노름 뒷돈을 대준다.
‘이상한 일이지! 마치 도박하우스에서 뒷돈 대주고 재산 갈취하거나 딸이나 마누라 저당 잡히는 그런 짓을 하려는 느낌이랄까? 진짜 에거시가 그 도박장과 관련이 없는 걸까?’
그쪽으로도 캐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촌장?”
“네.”
“왜?”
“그야 모르죠.”
‘에거시가 촌장의 욕을 한다라...뭐, 그럴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냥 욕만 하는 거야? 불만을 토하는 정도가 아니라?”
“네. 약점을 잡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약점을...촌장의 약점?”
“네.”
촌장의 약점을 잡아야 할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촌장을 휘두를 바에는 조금 기다렸다가 자신이 촌장을 해도 될텐데?”
사실 그렇다.
에거시 씨는 촌장 보다 나이도 어리다.
가진 재물이나 권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자경단의 부단장이지만 자경단장도 했었고 부촌장도 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직책을 맡아 하다가 촌장도 되고 그러는 것이다.
촌장 역시 이런저런 직책의 마을 일들을 다 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마을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딱히 특정한 어떤 사람이 촌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저 마을 사람들을 통합하고, 잘 이끌어 주고, 영주성의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족하다.
때로 무능한 자가 촌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아주 괴로워진다.
주민들이 뽑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을 유지들끼리 미리 말을 다 맞춰 놓은 후에 요식행위로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촌장이 되는 식이다.
그렇기에 유지가 아닌 사람이 촌장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을 유지는 약 20~30 명 정도다.
그들이 번갈아 촌장, 두 명의 부촌장, 자경단장, 네 명의 부단장, 권농, 총무, 서기 등의 직책을 맡아 한다.
몇 해 쉬기도 했다가 또 몇 해 이런저런 일을 맡기도 한다.
거의 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지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 농부가 일을 맡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그들은 글을 아는 이들이고 마을의 기득권자이며 유지이고 대지주들이다.
그들끼리도 사이가 좋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데면데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끼리 혼인도 하고 거래도 한다.
그들이 마을의 절반 이상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많은 가축과 노예와 재물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영주부의 관리나 기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반적인 농부들보다 많은 토지에서 많은 곡식을 생산해 내지만 비율적으로 훨씬 적은 세금을 낸다.
일반 농부가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낼 때 이들은 20% 남짓한 세금을 내는 것 같았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양 자체는 많지만 비율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그들은 세리와 기사들에게 별도의 인사를 하는데 그게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세금은 거두어서 영주에게 들어가지만 그런 뒷돈은 고스란히 세리와 기사들이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주에게 급료를 받는 그놈들이 해서는 안되는 짓이지만 거리낌 없이 불법을 자행한다.
존슨은 폴린처럼 여러 유지들의 노예들과 하녀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자체를 알 수가 없었다.
에거시와 촌장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건 이런저런 얘기에서 듣기는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돈이 많은데도 돈을 버는 건 이해가 되지만 촌장과 다툴 이유가 뭐지? 감정 싸움인 걸까? 그 시발이 된 사건조차 모호하기 짝이 없잖아? 짐작대로 아주 오래전의 일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나?’
더 이상 그쪽으로만 전념할 수는 없다.
그저 유지들의 노예나 하녀들과 부드럽게 지내는 정도는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먹을 것을 선선히 공급해주는 정도만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존슨이 꽤 괜찮은 놈이고 순진한 놈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존슨을 노예들도 어려워하지 않고 부담없이 대하는 것이다.
한동안 또 농사일에만 전념했다.
시골에는 농사에 관련된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잡다한 그런 일들을 모두 뭉뚱그려 농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일이 밭일 아니면 목축에 관련된 행동이다.
그걸 해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원래 시골은 별 일이 생기지 않는 곳이지. 그럴 일은 몇 년에 한 번 벌어질까 말까한 일이고. 아주 드물게 몇 십 년에 한 번씩 생기는 일이 벌어지면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이니 반길 일은 아니잖아!’
존슨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
존 포우에게 득이 될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한 가족인데 그게 가능하지는 않다.
대신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하여간 존 포우가 이득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별 일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특별한 일이 생긴다는 얘기는 목숨이 위태로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잖아?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 보다는 나쁜 일이 생기는 일이 더 흔하기도 하고 말이야!’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궁술이다.
농부가 무슨 궁술이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의 시골과는 다른 곳이다.
맹수와 몬스터 문제도 있지만 먹고 사는 데에도 사냥 기술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궁술은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존슨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몬스터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빨이나 발톱이나 사용하는 무기나 끔찍하게 더럽다는 것이다.
이쪽 세상은 사람들 사는 것도 더럽지만 몬스터도 더럽기 짝이 없었다.
무기는 녹슬어 있거나 이전에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즉 살점이나 핏자국 같은 것들.
‘그것들이 멀쩡하게 싱싱할까, 썩어 문드러져 있을까? 그런 것에 살점이 찢기거나 베이면 곪을까 안 곪을까? 이쪽 세상에서 상처가 곪으면 회복될까 회복하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다.
파상풍이나 패혈증 같은 병이 무서운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해결책?
그딴 것 없다.
그러니 그런 위험한 것에는 가급적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 때문인지 자경단에서도 칼 보다는 창을 선호한다.
나무로 만든 것이라도 방패를 갖춘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투 장갑, 갑옷, 스커트, 투구 같은 것을 준비한다.
원래는 자경단에서 준비해야하겠지만 인권 따위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세상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자기 목숨 지키려면 자기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존슨 역시 기존에 있던 것들, 즉 존 포우가 사용했던 것들이나 자경단의 창고에서 이리저리 뒤져 꼴은 갖추었었다.
차차로 좋은 것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교체하는 중이다.
이번에도 신발과 투구 등은 그렇게 해서 바꾸었다.
하여간 방패 들고 창이나 칼로 몬스터 막아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보다는 멀찌감치 떨어진 뒤쪽에서 활로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할 것은 당연한 것.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활을 제대로 배워보려는 것이다.
활도 만들어 보고 화살도 만들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다.
존 포우는 그조차도 마땅치 않아 한다.
존슨이 그와 연관된 훈련이라도 할라치면 빈정거리거나 욕을 해댄다.
다른 일이 더 급한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방해를 했다.
그래도 존슨은 대꾸도 않으면서 꾸준히 연습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혹시 써 볼 일이 있을까 싶어 챙겼지만 한 번도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도 별로 아쉽지는 않다.
아직 확실하게 잘 쏜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다.
그런데도 쓸 일이 생긴다면 당황해서 허둥거릴 것이다.
잘못 날아가 마을 사람이 다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만들어 놓은 몇 개의 활을 이리도 써보고 저리도 사용해 본다.
어느 것이 좋은지, 어떤 성질이 있는지 등을 가늠해보는 중이다.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보니 화살의 길이도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중이다.
나중에 확실한 것을 만들면 그것의 크기에 맞춰 화살을 만들 계획이었다.
‘거푸집이 문제인데...그건 어떻게 내가 해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네?’
그게 아니라면 예전의 사냥꾼들처럼 토끼나 노루의 뼈로 화살촉을 만들어 써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봄부터 사용하고 연습해보면서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다.
새벽에 몇 킬로미터 달리기를 한 후 거의 한 시간 정도는 활쏘는 연습을 추가로 하고 있다.
그 중에 실제로 화살을 시위에 얹어 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화살도 결국 따지고 보면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에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과녁을 만들어 세워두고 거기로 쏘면 화살이 덜 망가진다.
나무판에 대고 쏴도 화살은 망가지게 마련이다.
과녁에서 벗어나 흙이나 돌에 맞으면 한 번에 부러지거나 촉이 뭉개지는 등 박살나는 경우도 흔하다.
몇 번 사냥을 나가면 그 중 한두 번 정도는 몸집이 좀 큰 새나 토끼 같은 것을 잡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오랜만의 별식을 먹는 날이다.
그래봐야 굽거나 찌거나 삶는 방법을 쓰니 맛은 비슷비슷하다.
‘매콤 달콤 한 토끼탕이나 닭볶음탕 먹고 싶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도 겉으로는 절대로 음식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