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제로 귀농 당한 썰-13화 (13/74)

〈 13화 〉 15세늦여름-제르넨(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서둘러 에거시 씨의 집을 빠져나왔다.

저만치 어둠속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놀리는 작은 형체가 보였다.

오늘은 몰론 씨 집이다.

이번엔 존 포우가 그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따라 붙어 창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기 있습니다.”

“얼마지?”

“모릅니다.”

“열어 본 거 아냐?”

“아닙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린다.

“알았어. 가 봐.”

몰론은 존 포우보다 몇 살 어린데도 존 포우는 꼼짝도 못한다.

“네, 그럼.”

존슨은 다시 창밑의 작은 탁자 뒤에 쭈그리고 앉아 어두운 색의 천을 뒤집어 썼다.

이건 심부름.

다음에 가는 곳은 노름을 하는 곳인가 보다.

여태 그냥 놀러가나 보다 했는데 노름방이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허긴, 이런 시골에서 재미있는 게 있을 턱이 없지.’

존슨은 예전의 한국도 그랬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골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 하기 전에는 농한기나 겨울에는 늘 노름을 하곤 했다.

전문 노름꾼들이 시골로 다니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도 투전, 화투, 같은 것은 물론이고 마작이니 골패니 하는 것들도 많이 했다.

존 포우가 몰론 씨의 집을 나섰다.

몰론씨도 안채로 가고 난 후 존슨은 소리없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멀리서 다시 존 포우를 따랐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곳은 마을의 유일한 여관 겸 식당인 곳이다.

상호가 있는지는 모른다.

유일한 곳이다 보니 그저 여관, 아니면 식당이라고 불렀다.

외지인이 많이 오지 않는 마을이다.

그렇지만 마을 유지들의 회의나 회식이 이곳에서 열리고 자경단 모임 같은 것도 여기서 한다.

행상단이 들어오면 그쪽에서 꽤 많은 인원이 머문다.

손해를 보는 구조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평시엔 이렇게 마을 주당들의 모임 장소이다.

알고 보니 위층의 여관방에서 도박을 하는 것 같았다.

‘위층 여관방에서 도박을 하면, 듣기가 쉽지 않은데...’

워낙 왁작거리고 시끄러운데다 거리까지 멀면 웅웅거리는 소리로 밖에 안들리기도 한다.

존 포우가 있는 앞에서 뭐라 할런지는 알 수 없다.

그래봐야 모욕적인 말일테니.

그렇지만 노름꾼도 고객인데 대놓고 그러는 놈이야 있을까?

존슨은 식당 겸 술집 주당들이 어디에 몰려 앉고 그들의 목소리를 잘 들을만한 곳이 어디인지 식당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옆집과의 거리도 멀다.

1층 식당 어디에 불이 켜져 있는지도 확인을 해두었다.

뒤쪽의 담을 넘어 1층 뒤쪽, 주방 반대편쪽의 창문 근처로 향했다.

창문 가까이에 이런저런 짐들과 상자들이 있다.

그 틈새로 끼어들어 쪼그려 앉고 어두운 색깔의 천을 뒤집어 썼다.

이곳 바로 위쪽이 노름방이었다.

여기라면 노름방의 소리도 잘하면 들리고 술꾼들의 주정도 들을 수 있는 위치로는 최고였다.

반쯤은 졸면서 노름방과 술꾼들의 주정을 반쯤은 흘려 듣고 있었다.

다 주의 깊게 들으려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귓가를 스치는 단어들, 그러니까 촌장, 에거시, 부단장, 존 포우, 일리나, 같은 단어가 나올 때만 유심히 들으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문득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들려왔다.

“촌장도 촌장이지만 자경단이 엉망이라니까.”

“자경단이야 원래 그랬고.”

“원래 그렇기는! 지금 단장이 호구라서 그렇지. 에거시가 얼마나 여운데.”

촌장, 에거시.

일단 단어는 나왔지만 별로 관련이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금방 아니라는 걸 알았다.

“촌장이 분명히 먹었거나 잡힌 거야.”

‘뭘 먹고 뭘 잡혔다는 거지?’

“부단장이야 원래부터 그랬던 거고.”

말이 제대로 이어져 들리지 않는다.

술 취해서 떠들어대는 소리라서 더 그렇다.

두세 명이 한꺼번에 입을 열어 말하기도 하니 더 그렇다.

자기 말이 옳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잡소리를 집어 넣기도 한다.

그래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침묵이 이어지는 것도 아닌 주정과 소란의 연속이었다.

그 안에서 필요한 내용만 골라 들으려니 난감한 것이다.

하여간 마을 사람들도 촌장과 에거시 사이에 뭔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먹은 것은 뇌물일 가능성이 크고, 잡힌 것이라면...약점일까?’

주정뱅이들의 대화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또 정신을 반쯤 놓고 들어야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의 비밀에 대해서 다 떠들어댄다.

‘실제로 시골 동네에서 바람이 나면 그 두 당사자만 빼고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지? 그 둘은 절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윗층의 노름방에서 떠드는 소리도 있다.

그쪽은 노름에 관련된 얘기 외에는 거의 하질 않는다.

노름에만 빠져서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술주정뱅이들의 얘기를 어느 정도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별로 쓸모 있는 얘기도 없고 있다 해도 내용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일리나에게 직접 물을 수도 없다.

당사자만 모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도 일리나는 마을의 소문에 대해서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살림만하기 때문에 교류가...적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

‘도대체 뭐지?’

‘아무래도 에거시가 중심인물인걸까? 역시 존 포우는 엑스트라1이고? 아니면 촌장이 주역?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존슨이 가진 정보가 너무 없고 단편적이다.

미디어가 발달된 세상도 아니다.

사람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기 좋은 그런 구조도 아니다.

물론 소문은 있지만 상대는 마을의 유지다.

치명적일 그런 소문을 입에 올리기는 어렵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더구나 이미 오래전의 어떤 미묘한 감정이나 사소한 행동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것일 가능성도 있으니 더더욱 어렵다.

어떤 특정한 방향을 정해두고 파고드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몰라 넓고 얕게 알아봐야하니 더 어려운 것이다.

‘정 안되면 어떤 새끼 하나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해보지 뭐. 그도 아니면 아예 에거시 새끼를 잡아다 고문해보던지.’

그냥 궁금증만이라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하고 쎄한 느낌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좋은 느낌이 아니다.

뭔가 불길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그런 감각이다.

이럴 땐 반드시 이유를 알아두어야 한다.

원인을 파악해두고 어떻게든 선제적으로 해결해 놓아야 한다.

그러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대체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배신, 뒷통수, 가식적인 관계 후의 공격, 뭐든 다 그렇다.

어두운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라고 모두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것 같더라도 내심으로는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대놓고 나쁜 사이도 많고.

에거시는 겉으로는 적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성격이 나쁘거나 인심이 고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사람이냐 하면 그건 알 수 없다.

존슨 자신에게는 딱히 나쁘게 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건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서의 일이다.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식으로 말할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라고 생각했던 하롯 마을에 불법적인 도박장도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돈이 오고가기도 한다.

그 돈 심부름을 존 포우가 하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수상한 일이다.

‘알면 알수록 수상한 놈이라니까!’

에거시와 존 포우의 관계가 그저 심부름이나 해주는 사이라면 별문제 될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 존 포우가 미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그렇지만 에거시는 좀 이상한 놈인 건 분명했다.

하고 많은 인간 중에 존 포우일까?

‘별다른 접점도 없는데?’

금방 밝혀질 일은 아니라지만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일도 아니다.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존슨은 그 해답을 에거시 씨의 집에서 부리는 노예에게서 찾기로 했다.

당장 얼굴부터 들이밀면 노예들도 경계를 한다.

존슨은 시간을 두고 관찰을 하여 에거시의 노예 중 하나를 골랐다.

노예라도 다 같은 처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 더 미워하기도 하고 더 괴롭히기도 한다.

더 잘해주기도 하고 좀 슬슬 봐주면서 부리기도 한다.

처지가 조금 곤궁한 노예를 골랐다.

노예들 사이에서의 관계까지는 잘 모른다.

그가 주인집에서 받는 대우가 나쁘다는 것은 안다.

우연인 듯 마주치거나 존슨의 존재를 살짝 인식시키는 수준으로 시작을 했다.

차차 서로 상대를 알고 있다, 하는 정도까지 발전을 시킨다.

“너, 에거시 씨 댁 노예가 아닌가?”

밀 밭 사이로 땔감을 잔뜩 실은 마차를 몰고 가는데 밀밭 구석에 누워 있던 그 노예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말도 않고 그저 허리를 굽실 거린다.

노예들은 그래야 한다.

남의 노예라도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는 정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괜히 이웃한 농민에게도 뺨 맞는 일이 자주 생긴다.

“에거시 씨 댁으로 가는 길인가?”

“네, 나리.”

“어떻게 혼자 야?”

노예들은 대체로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머뭇거리며 망설이더니 곧 주절거린다.

여럿이 나와서 각자 맡겨진 일을 하고 먼저 들어갔고 자신만 뒤처져있었다고 한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말썽 피웠어?”

존슨은 점심으로 싸온 햄을 넣은 빵을 슬그머니 건네주었다.

먹으라고 몇 번 권해 먹는 중이었다.

“그...저...”

망설이다가 예전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에 대해서 말했다.

“그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시범케이스로 찍혔던 자였다.

그 자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군기를 잡기 위해 한 놈만 조지는 방식이다.

어떤 사회에나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일거다.

그날은 그렇게 그런 사정만 서로 얘기하고 에거시 씨 집 근처에 내려 주었다.

사실 따지면 좁은 시골 동네라서 마주치기로 들면 자주 마주칠 수도 있다.

우연히 밭일 도중에, 벌목하러 오가다가, 우물에서, 마주치면 그 노예는 고개를 굽실거렸다.

존슨은 그저 눈인사만 하거나 턱을 끄떡였다.

단 둘이 있을 기회는 드물다.

노예들은 대체로 여럿이 함께 움직이거나 노예를 관리하는 마름이나 하인들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경우도 드물지만 도망쳐도 멀리 갈 수 없다.

이런 시골 마을은 사방이 숲이다.

그 때문에 도망쳐 숲으로 들어가면 몬스터나 맹수의 밥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존슨이 그 한 노예만 주시한 것은 아니다.

에거시 씨 집의 몇몇 노예, 촌장 집의 노예, 마을 유지들의 노예들 중에서도 몇몇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로테인 씨?”

“네, 나리.”

우연히 단 둘이 있을 기회가 생긴 존슨이 몇 가지를 물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에거시 씨가 요즘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 같은 남들도 다 알법한 그런 일들이다.

에거시와 로테인이라...

존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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