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제로 귀농 당한 썰-12화 (12/74)

〈 12화 〉 15세늦여름-제르넨(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일단 샘플 삼아서 여러가지 화살을 구입했다.

활은 고가라서 쉽게 구하지는 못하고 구경만 했다.

정말 괜찮다면 구입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쌌다.

‘만드는 걸 생각해보면 비싼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지만 자기가 가진 것으로는 구입할 수 없으니 포기.

영주의 답을 받았다.

어떻게 조치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았다고 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것도 구입했다.

영주에게 지원받을 물건도 받았다.

존슨의 마차에도 그런 짐들이 가득히 실렸다.

가죽과 양모 자루를 다 처분하니 개인 짐이라고 해봐야 상자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다.

공용의 화물을 마을까지 싣고 가는 것이다.

기대했던 몬스터와의 싸움도 없었다.

산적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왜 촌장이 존슨을 제르넨에 보내려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거나 특별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비가 쏟아지지도 않았고 계절이 여름이니 당연히 눈도 안 내렸다.

낮에는 덥고 땀났지만 밤이나 새벽에는 의외로 추웠지만.

비록 야영은 아니지만, 난방을 해주지는 않는다.

아직 그럴 철이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건물 안인데도 새벽엔 추워서 잔뜩 웅크리고 자야했다.

‘역시 이불이 있어야 해. 얇은 담요 하나로는 모자라지!’

헤럴드씨는 좋은 방, 좋은 침대에서 자니 이불 얘기를 존슨에게 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갈 때는 가죽과 모피가 있어서 괜찮았지만 올 때는 얇은 담요 한 장으로 버텨야 했다.

그나마 실내라서 다행이었다.

계절적으로 밤이면 추워질 때라면 더 괴로웠을 것이다.

마을로 돌아올 때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한쪽 마을 사람들과만 친하게 지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급하다면 가장 빠른 길로 갈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있을 때 이렇게 갈 때와 올 때 각각 다른 길로 다닌다.

이웃한 마을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큰 사고 없이 잘 다녀온 여행이다.

그러나 존슨은 섣불리 여행을 떠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첫째는 마을 문제다.

마을은 익숙한 사람에게는 괜찮은 장소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는 매우 배타적이다.

도시는 조금 다르지만 시골 마을들은 낯선 사람이 하룻밤 묵어 간다고 해도 꼬치꼬치 캐 묻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한다.

실제로 예전엔 나그네인 것처럼 속이고 들어와 밤에 마을 목책 문을 열어 산적을 끌어들인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산적 놈들이 나쁜 놈들인 것이다.

두 번째는 불편함이다.

아무리 여행이 편안하다해도 집에 머무는 것만큼 편할리는 없으니까 당연한 얘기다.

위험도 중요한 요소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몬스터, 산적, 맹수도 두렵고 외로움, 추위, 벌레, 비와 눈 같은 기상 여건도 그렇다.

사실 이계라는 걸 알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용병이 되는 건 어떨까, 였다.

그러나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이 용병이란 직업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마차 없이 걸어서 오고간 대다수의 마을 주민들은 발이 엉망이 됐다.

용병은 거의 대부분을 걷는다.

말 타고 다니는 용병은 거의 없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한가하게 말이나 타고 다니는 사람은 용병이 될 자격이 없는 것.

말 한 마리의 가격이 싸구려 승용차 한 대 가격이나 된다.

게다가 여차하면 그것마저 버리고 뛰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굶주린 맹수나 몬스터의 표적이 되기도 쉽고.

한국 땅에서 외인부대에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있기는 하겠지만 굉장히 드물다.

모르긴 몰라도 외인부대원 1000명 중에 한국 사람은 한두 명이 될까말까일 것이다.

아니면 말고.

여기도 마찬가지다.

외인부대도 결국은 용병이다.

조금 흔해서 탈이지.

‘되도록 태어나고 자란 이 마을에서 버티자!’

이번 여행으로 느낀 점은 바로 이것이다.

도시도 어차피 기반 없으면 점원이나 사환 노릇해야 한다.

도시에 머물면서 살펴보니 상점의 사환이나 식당의 점원이나 제대로 사람대접 못 받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도 편의점 알바 하고 식당 알바 하는 애들 천지잖아. 그 애들 대우보다 더 나쁜 대우 받는 거지.’

욕이나 폭력은 다반사다.

돈이 많아져서 상점을 차리거나 하기 전에는 도시에서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여기는 그래도 시골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다들 아는 사람이지만 도시에서는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장진오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부터는 서울에서 살았다.

처음 서울 갔을 때 생각을 해보지만 아주 고생스럽지는 않았다.

등록금은 면제였고 장학금도 많이 받았다.

부모님도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지원을 멈추지 않았고.

그 덕분에 노동 강도가 약한 알바를 해가면서 공부에 전념해서 버텨낼 수 있었다.

여기 세상에서는 어렵다.

그러니 농사가 아무리 싫어도 여기 시골 고향 마을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이 마을을 잘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하여간 큰 난리가 벌어질 때 아니면 거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선 몬스터와 산적이 한 몫을 한다.

산적들이 마을을 노략질하면서 불을 지르거나 해버린다.

남은 사람이 있다 해도 소수의 주민만으로는 버텨낼 수가 없다.

장벽이 완전히 불탄 마을은 몬스터의 밥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르넨을 오가는 길에도 그렇게 흔적만 남은 마을터가 몇 군데나 있다.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폐허가 된 것이다.

전염병이 돌아 젊은 남자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도 마을을 지켜낼 수 없다.

전쟁이 나서 이 근처가 전쟁터가 되면 역시 마을을 유지하기 어렵다.

징집되었거나 피난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냥 아무 일 없겠거니, 하면서 그냥 버티고 버티는 거지!’

존슨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존 포우의 지랄 같은 성격 때문이다.

이쪽 세상의 농사일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거들 손이 많으면 훨씬 쉽다.

대신 그 손만큼 입이 늘어나니 잘 따져보아야 한다.

입이 늘어나는 만큼 식량의 소모가 많아지고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존슨은 자기 짐은 일단 방에 다 들여다 놓았다.

촌장을 위시하여 마을 유지들을 두루 방문했다.

부탁 받은 것이 있다면 그걸 해결한 것을 주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선물을 돌리는 것이다.

다들 존슨이 떠나기 전에 이런저런 선물을 했거나 호의를 베푼 이들이다.

어차피 존슨이 어린애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굳이 비싼 것을 구입해 돌릴 필요는 없다.

마을에서 드문 것들로 골랐다.

그저 술 한 병, 가공한 고기 한 덩이 같은 것들이면 족하다.

이번 여행은 존슨에게도 분명히 유익한 여행이었다.

물건을 적당히 구했는데도 돈도 처음에 지니고 있던 것들에 비해서는 확 늘어난 상황.

다 합쳐봐야 은전 대여섯 개 수준이었던 존슨의 돈 통이었다.

그런데 이젠 10실버 짜리 은화를 포함해서 거의 20실버 정도는 된다.

심부름 값과 수고비, 그리고 물건의 차액 등으로 인해 생긴 수입이다.

로브와 신발은 벗어주었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구입했으니 그것도 만족스럽다.

가족들에게도 선물을 돌렸다.

존 포우에게는 먹고 죽으라는 마음으로 아주 독한 술을 한 병 건네주었다.

그것도 일리나를 통해서.

약으로 사용할 정도로 독한 술이라고 했다.

불을 붙이면 불이 붙을 정도로.

거의 알콜 그 자체라고 해야 할 정도인데 최소한 70도는 넘었을 것 같다.

그런 술을 주었으니 잔뜩 마시고 개골창에 빠져 엎어지기라도 하라고 기원했다.

다들 자기가 받은 선물을 기뻐했다.

일리나는 질 좋은 바늘과 색색깔의 실 뭉치에 환하게 웃었다.

물론 존슨이 슬그머니 건네준 머리핀에 더 기뻐했지만.

헤나의 빗, 데이지의 머리끈 역시 마찬가지다.

제티 역시 주머니 칼에 뛸 듯이 기뻐했다.

세 여자는 예쁜 머리핀을 받을 땐 원래 자기가 구입을 부탁했던 물건 받을 때 보다 더 기뻐했다.

아무래도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존 포우가 수상하기는 하다.

에거시 역시.

버틀러씨 부부의 밀담을 들은 이후 존슨은 존 포우와 에거시 씨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을을 떠나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존슨은 마을로 돌아온 후 계속해서 존 포우와 에거시를 관찰하고 있었다.

‘오래된 끈적한 관계라면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일을 의논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일까?’

당장 이용해 볼 수 있는 것은 예민해진 감각뿐이다.

존 포우가 에거시 씨를 만나러 갈 때면 존슨은 존 포우가 집을 나선 후 조금 있다가 에거시의 집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질감의 어두운 색깔의 천을 지니고 다닌다.

낮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가 저물고 식사를 마친 후 가서 몇 시간을 함께 있다 오는 것.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몇 번의 미행 끝에 에거시의 집에는 잠시만 들렸다가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른 곳은 그때그때 마다 다른 것 같았다.

‘그저 일리나의 눈을 피해 놀러 다니는 걸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왜 그때마다 에거시 씨를 만나고 가는 걸까?

고작해야 일리나에게 변명하기 위함은 아닐텐데.

생각할수록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 있네. 그나저나 요즘 너무 잦은 거 아냐?”

에거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날 보다 조금 일찍 왔다.

보통 때는 존슨이 올 때쯤이면 얘기가 다 끝나고 존 포우는 에거시 씨 집을 나설 때였다.

“조심하겠습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돈주머니를 탁자 위에 슬쩍 던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 포우가 돈주머니를 잡아 어딘가에 넣는 소리로 여겨졌다.

“중간에 배달사고 안 나게 조심하게. 그쪽에서도 따로 내게 자주 연락을 해오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에거시씨. 절대로 그럴 일 없습니다.”

“도박도 적당히 하고. 요즘 많이 잃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 삼아 조금씩 하는 정도입니다.”

‘도박?’

“그럼 가보겠습니다.”

존 포우가 나올 것 같아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섰다.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어두운 천을 머리 위로 올려 들어 앞을 가렸다.

금방 문소리가 나더니 존 포우의 발걸음이 존슨의 앞을 지나갔다.

잠시 후 에거시씨가 뒷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도 잠시 더 기다렸다.

저번에 한 번은 뒷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 안심하고 있었다.

그랬다가 나중에 갑자기 앞 문이 열려 기절하는 줄 알았다.

에거시 씨는 보통 교활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번엔 아닌가보다.

뒷문 쪽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였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발걸음 소리만으로 그게 누군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