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5세늦여름-제르넨(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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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존슨은 이걸, 이런 이상한 느낌이 드는 물건을 꼭 사고 싶다는 것.
바가지 씌우는 게 분명한데!
알면서도 사고 싶고, 사야 한다는 강박증이 들 정도다.
그런 자신이 미치도록 싫다.
분명히 사기인데, 분명히 호구로 보고 바가지 씌우는 것인데!
‘이것도 성공한다면, 이건 과연 뭘까? 진짜 이 사람 말대로 마법 물품?’
“내일이면 돈 생길 구석이 있긴 한데...”
사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장사는 오늘까지만 하는 거야.”
“응? 왜?”
“내일 새벽에 여길 떠나 디엔나로 가거든.”
“디엔나?”
“수도 말이야.”
“아아, 디엔나! 알지. 알아.”
존슨은 사내가 수를 쓴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부르는 대로 다 주고 사기는 싫었다.
존슨이 이상함을 느낀 것들을 다 합치면 일곱 개다.
적지 않은 액수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물론 그 보다는 많은 액수지만 함부로 써버려도 좋을 그럴 돈은 아니었다.
그만큼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을 하며 존 포우의 눈을 피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에에, 신발은 일단 이게 있으니 필요없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물건을 고르는 척하지만 존슨은 사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사내가 팔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내가 그나마 쓸모없다고 느끼는 물건은 뭘까?
헐값에라도 넘겨줄 수 있는 것들은 뭘까를 계속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사내가 보기에 존슨은 시골에서 온 촌뜨기.
어리숙한 멍청이 소년쯤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존슨은 이제 겨우 15살이다.
키만 훌쩍 컸지 체구도 단단해 보이지 않고 얼굴에는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사내가 보기에도 존슨은 돈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건들에 대해서는 탐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은화 일곱 개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돈에 맞춰 뭔가를 구해보려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마법 물품이라니까 혹한 것 같았다.
그러라고 마법물품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당연히 던전에서 가져온 진품은 아니다.
그런 것을 고작 이렇게 좌판에서 팔겠는가?
사내는 존슨의 차림을 슬쩍 보았다.
존슨이 입고 있는 로브는 꽤나 질이 좋은 것이다.
가죽을 얇게 펴서 왁스로 방수칠을 한 것이다.
존슨의 부츠 역시 딱 봐도 좋은 가죽으로 만든 것을 공들여 손질한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존슨에게 준 것들을 이리저리 손질해서 가공한 것이다.
“그러면 말이지. 돈이 모자란 거잖아?”
“어, 그렇지.”
“가진 게 얼마라고?”
“은화 다섯이랑...동전이 좀 있어서 다 합치면 일곱 개지.”
“사고 싶은 건?”
“사고 싶은 거야 많지만...”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때? 네가 사고 싶은게 어떤 건지 골라. 가격을 매기고 내가 조금 깎아 줄게. 그리고 모자라는 건 네가 가진 걸로 하면 어때?”
실제로 시장에서는 물물교환이 흔하게 이루어진다.
화폐가 주로 사용되지만 돈의 가치가 조금 들쭉날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적당하게 계산하여 교환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 거?”
그러면서 존슨은 자기 몸을 내려다 본다.
‘흠, 가죽 로브도 질 좋은 거고. 신발도 그렇고. 가만...’
머릿속으로 휘리릭 계산을 끝낸 존슨이 물었다.
마치 흥분한 소년처럼.
“어떻게 할 건데?”
“일단 네가 마음에 드는 거 골라.”
존슨은 칼이며 부츠며 가죽 벨트며 다 고르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처럼 했다.
“아아, 이거는...얼마지?”
“은화 열두 개.”
녹슨 칼인데 그따위로 가격을 매겼다.
“일단 여기 두고.”
이런 식으로 골라냈더니 금화 하나가 훌쩍 넘었다.
사내가 존슨을 좀 한심한 표정으로 보더니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그 로브, 은화 다섯 개 쳐줄게. 그 구두는 은화 셋, 그 모자 은화 하나.”
물건으로 은화 아홉, 가진 것 일곱 개.
“어어, 이거는...어...안되는데...”
존슨이 로브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래, 그러면 은화 여섯 개까지 쳐주지.”
“그럼 은화 열 개?”
“그래.”
“으으...이 로브 진짜 좋은 거야. 부츠도 그렇고. 그러니 더 쳐줘야 해.”
존슨이 다부지게 말했다.
사내도 한참 고민하더니 다시 가격을 제시했다.
“로브 일곱, 부츠 넷, 모자 두 개.”
존슨은 조금 고민하는 척 하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점 표시가 있는 것들로 먼저 골라냈다.
동전주머니, 가죽 벨트, 단검, 투박한 부츠, 장갑, 모자를 먼저 고르고 잠시 고민하다가 칼과 하드레더아머를 골랐다.
잔뜩 깎았는데도 은화 스물일곱 개다.
은화 몇 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존슨이 은화 두 개를 더 내서 은화 스물두 개로 거래를 했다.
“내건 새 거고 이건 다 헌건데...”
존슨이 물건을 받고는 투덜거렸다.
사내도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니다.
정말 마법물품이 끼어있을지도 모른다는 표정이다.
‘저 새끼 뻥치는 것 같은데?’
존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기가 더 손해를 본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이거 재크와 콩나무 같은 거 아냐?’
존슨이 손해 본 것 같았다.
손질 잘 된 세련된 걸 주고 낡고 손질 안 된 투박한 것들을 받았으니.
그렇지만 존슨의 안에 든 장진오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너무 투덜거리니까 사내가 결국 은화 하나를 더 양보하겠다며 존슨에게 흠집이 많은 투구를 주었다.
존슨이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던 옛날식의 무겁고 투박한 투구였다.
숙소로 돌아온 존슨은 일단 물걸레로 먼지를 닦아냈다.
‘오, 대박!’
덤으로 얻어온 투구 안쪽에도 검은 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단순히 자기 것이라고 표시를 해놓은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똑같은 크기의 점이다.
점을 찍은 펜의 잉크도 의문이고.
물걸레로 닦아도 닦아지지 않고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거, 그저 검은 점에 먼지가 묻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만 그저 펜으로 동그랗게 그리기 위해서 잔뜩 칠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어찌되었건 너무 낡은 것처럼 보이지 않게 잘 손질하는 것이 급선무다.
동전 주머니는 비어 있다.
그건 겉에서 만져 봐도 아는 것.
열고 안쪽을 잡고 뒤집었다.
먼지만 조금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도로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주머니 주둥이의 짙은 갈색 천 한쪽에도 새까만 점이 찍혀 있었다.
점이 작지도 않다.
지름이 거의 0.5센티미터는 넘는 꽤 큰 점이다.
얼룩이 묻은 것처럼 보인다.
물걸레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옅어지지도 않는다.
결국 대충 손질만 하고 자기 가방에 집어 넣어두었다.
주머니에 은화로 스무 개 정도가 들어 있다
그중 몇 개는 10실버 짜리고 나머지는 1실버짜리 은화였다.
가죽 로브와 가죽 신발을 벗어준 덕분에 10실버 정도를 덕본 셈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돈에서 아홉 개만 현금으로 낸 것이다.
다음날 시장에 가보니 그 사내가 그냥 있었다.
존슨이 지나가니 모르는 척을 했다.
그렇지만 존슨이 구입한 것처럼 검은 점이 찍힌 물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아마 좋은 걸 거야. 어쩌면 마법 물품?’
이런 마음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사용방법을 몰라 마법 물품으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어디서 난걸까? 진짜 던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파는 것도 아니고.’
궁리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밤이 되어 식사를 하면서 모젤 형에게 물었다.
던전 출토 물품을 판다는데 다 허름한 것만 있더라는 식으로.
“뭐, 그야...”
모젤형이 뭐라 대답할까 하다가 더듬거릴 때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자경단 부단장 헤럴드씨가 말했다.
“던전은 아닐 거야. 아마도...고블린의 쓰레기장이 아닐까?”
“고블린의...쓰레기 장?”
“고블린 토벌하고 나면 쓰레기 장을 뒤진다. 그놈들은 쓰지 않는 노략물을 버리는 곳이지. 때로 인간이 쓰던 물품들이 꽤 나오기도 해. 작은 단검같은 것은 고블린도 쓰지만 인간이 사용하던 가죽 제품들이나 갑주 같은 것은 크기가 맞질 않아 버리기도 한대. 금속이라면 녹여서 쓰는 고블린도 있는 모양이지만 대개는 버린다고 한대.”
“아아,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니 꽤 그럴 듯한 얘기였다.
자경단 활동도 오래해서 그런지 들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다.
결국 던전은 아니라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고블린의 쓰레기 장이라니! 마법 물품은 아니겠구나.’
일찌감치 알던 사실이고 각오했던 것이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조차 다 내려 놓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는 활과 화살을 구하면서 화살촉을 만들 수 있는 거푸집을 구해보려고 노력했다.
결국 실패했다.
팔지도 않지만 만약 판다해도 너무 비싸게 불렀다.
남은 돈으로는 구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거푸집만 있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거푸집이 있다면 화살촉을 비교적 수월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니 거푸집을 팔지는 않는다는 것.
대장장이들이 자기네 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란다나 뭐라나.
다만 거푸집 모양을 구경할 수는 있었다.
거푸집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숫돌로 쓰는 사암인가?’
숫돌처럼 보이지만 돌의 재질까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장의 똑같이 생긴 화살촉 모양을 파서 그것을 딱 붙여 고정시켜 조인다.
위의 구멍으로 녹인 쇳물을 부어 넣어 굳혀 떼어내면 화살촉이 만들어진다.
물론 화살대를 박기 위해 구멍을 내야 하고 그걸 만들어주는 다른 조각이 있다.
그러니까 거푸집은 세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걸 숫돌에 갈아 날을 세워 화살에 고정시키면 되는 것.
화살촉의 모양에 따라 거푸집의 모양도 다르다.
대개는 앞쪽이 길게 뾰족한 마름모꼴을 사용한다.
이건 쉽게 빼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대신 잘 박히고 잘 날아가고 만들기는 쉽다.
양쪽으로 미늘처럼 튀어나온 날개가 달린 화살촉은 만들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 번 박히며 빼내기가 어렵다.
강제로 빼내면 화살촉이 몸에 남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살이 너덜너덜하게 찢길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한 뼘쯤 되는 쇠침처럼 만들기도 한다는데 존슨은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뾰족한 마름모꼴, 그러니까 조금 길쭉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화살촉이 주로 쓰이는 것이다.
‘유엽전이라는 것도 있다고 했잖아? 버드나무 잎 모양으로 생긴 화살촉이었던가?’
문득 장진오일 때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굳이 마름모꼴이나 화살표 모양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실제로 화살의 촉은 온갖 모양의 것들이 많았다.
수제로 만들기에 어려워서 이쪽 세상에서는 드물 뿐이지.
‘그저 앞만 뾰족하면 그만이잖아? 원뿔형이건 긴 마름모꼴이건 삼각형이건 말이야.’
대신 원뿔형은 철의 소모량이 많아질 것이다.
앞이 아주 뾰족하지 않은 것도 많다.
총알처럼 그저 둥근 모양이나 조금 뾰족한 모양도 꽤 흔하다.
대신 그건 인마살상용이나 사냥용이 아니라 활터에서 연습할 때 쓰는 화살이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