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5세늦여름-제르넨(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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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더럽기는 비슷하구나.’
중세 유럽이 매우 더러웠다고 하던데 여기도 아주 깔끔한 도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상상했던 그런 정도는 아니다.
동네 형들에게 듣기로는 엄청나게 더럽다고 했다.
빈민촌으로 가면 끔찍하게 더럽지만 시장과 상점가 주변은 훨씬 덜하다.
이전에는 마을 공식 행렬이 아니었기에 빈민가와 가까운 조금 더 저렴한 여관에서 지내야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주 더럽게 느꼈는데 이번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도시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국의 도시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름 괜찮다고 여겼다.
당연히 이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한국에서는 산동네는 가난한 빈민들이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안 그런 곳도 있지만.
제르넨 성은 하고많은 평지 다 내버려두고, 강가에 위치한 산언덕 위에 세워진 성이다.
영주 일가와 귀족들이 사는 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외성 역시 평지에서 비탈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비탈에다 성곽의 높이를 더하면 거의 20여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위용의 옹성이었다.
전쟁이나 방어에는 적합해도 사람 살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시가지 전체가 언덕이고 경사고 비탈이며 산동네 그 자체다.
영주성으로 통하는 대로는 스프링처럼 산 전체를 뱅글뱅글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갈지 자 형태로 오락가락하며 올라가는 길도 있다.
그 외의 길은 모두 계단이다.
거의 직선으로 외성의 성문에서 내성까지 가는 길도 있지만 끝없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방어만 생각했지 편의성이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없구나!’
존슨의 판단이었다.
헤럴드 씨는 일단 보고는 다 했고 마을 일에 대해서도 말은 해놓았다고 했다.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 남은 것이다.
그동안 개인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약속했던 대로 헤럴드씨는 존슨과 함께 상품을 들고 몇 곳의 상점을 방문했다.
그 중에는 존슨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물어 본 상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헤럴드 씨라고 해서 어느 한 상점을 딱 찍어주고 거기와 거래하라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괜찮은 사람이네?’
마을과 거래하는 상점만이 아니다.
전혀 상관없는 상점들도 평판이 좋았던 곳들을 기억했다가 소개해주거나 함께 가서 얘기를 해보곤 했다.
그 중 가장 조건도 좋고 일괄적으로 처리하기도 좋은 곳을 골라 그곳에서 처분하기로 했다.
양모는 에블론 상점, 양가죽은 노던 공방에 팔았다.
기타 가죽은 호레이쇼 씨 상점에 팔았다.
이런 식으로 가장 좋은 가격과 조건을 제시한 곳으로 처분했다.
또 구입할 것들도 여러 곳을 소개했었다.
존슨이 혼자 가서 물었을 때와는 다른 가격을 제시했다.
헤럴드씨가 하롯 마을의 대표격으로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마법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고 선전하는 잘 만들어진 바늘과 실을 구입했다.
머리빗, 머리띠, 손수건, 앞치마, 주머니 칼과 주방용의 칼 같은 것들을 구입했다.
이건 부탁 받은 것들이니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것들.
헤럴드 씨와 안면이 있는 상점들은 존슨이 물었을 때 말해준 가격의 2/3가격에 팔았다.
한 나절 동안 존슨의 일을 봐준 헤럴드씨는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
존슨은 주머니가 넉넉 했다.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 볼 요량으로 시장과 잡화점을 돌아다녔다.
딱히 당장 뭔가 필요한 것도 없고, 꼭 필요한 것도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빈둥거리는 것처럼 두루 구경을 다녔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이렇게 구경을 하러 다닐 것이다.
영주의 답변이 하루이틀 사이에 주어질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밑의 관리나 가신들이 검토하고 확인한 후에 단계를 거쳐 위로 올라가며 결재를 받아야 한다.
결재 받았으면 그걸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실무진에서 검토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돈도 없이 덜컥 사업을 시작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 단계를 거치다 보면 처음 의도나 계획과 달라질 수도 있고 아예 엎어질 수도 있다.
헤나와 데이지를 주기 위해 머리핀을 구입하기 위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좌판에서 파는 것이니 그 품질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대신 아직 소녀인 그녀들에게 주기에는 나름대로 예쁘고 가격도 저렴했다.
뭘 사줄까를 고민하며 살펴보고 있는데 그 옆의 좌판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여행자나 용병이 자기가 사용하던 것들을 팔려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잡다해서 뭐라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녹이 슬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철제 갑주, 베어지고 찢긴 곳이 있는 하드레더 갑옷 같은 것이 있다.
투박한 신발과 두툼한 전투장갑, 핏자국이 있는 투구 같은 것들도 있고.
단검, 동전 주머니, 가죽 벨트, 허름한 칼 같은 것도 있다.
자켓, 셔츠, 코트 같은 것도 있고 빛가림 모자, 양모 바지, 모포 같은 것도 늘어놓았다.
별로 사고 싶지 않을 만큼 허름한 것들이다.
그것뿐이었다면 그저 힐끗 보고 머리핀이나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들이 있었다.
녹슬거나 먼지가 뽀얀 느낌의 물건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책들이 그것이다.
‘저건 가지고 다니던 책이 아닌데?’
어딘가 지하 같은 곳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이다.
다른 것 보다 동전 주머니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모양이나 크기나 아주 평범한 것이다.
짙은 갈색인 것으로 보아 가죽이거나 사용한지 오래된 갈색으로 염색한 천일 것 같았다.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이니 동전 100개는 넘게 들어갈 크기다.
색깔은 거무튀튀한 짙은 갈색이지만 보기보다 덜 낡은 것 같다.
문제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자꾸 그 물건에 눈이 간다는 것.
주변의 단검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보다 왜 그저 흔해 보이는 주머니가 더 눈에 들어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쩝!”
결국 호기심에 져버린 존슨은 얼른 머리핀 세 개를 골랐다.
헤나와 데이지 것만 사려다 일리나의 백금발 머리에 어울릴 것 같은 핀까지 고른 것이다.
그리고 얼른 옆 좌판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반색을 했다.
존슨이 머리핀을 고르는 동안 아무도 사내의 물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다 뭡니까?”
존슨의 물음에 사내가 살짝 더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건,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이야.”
존슨의 눈에 의혹이 가득하다.
그걸 본 사내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건 다른 놈들이 먼저 다 가져가고 남은 것들만 챙기긴 했지만 분명히 던전에서 나온 것들이거든.”
남자가 사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이런 것의 99%는 사기다.
던전에서 나왔다고 다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 썩어 버린 것들이 태반이다.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전의 물건들이니 당연하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고?”
존슨의 물음에 사내는 고개를 끄떡였다.
좋게 본다면 사내는 던전 탐사하는데 하급 용병이나 짐꾼으로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다 쓸어가고 남겨진 허접한 것들이라도 챙겨 나온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99%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데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는 것을 팔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만에 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이게 미끼인지도 모르고. 시골집 강아지 밥그릇 같은 건 아닐까?’
시골집의 강아지 밥그릇이 백자 밥그릇이었단다.
그걸 공짜로 얻어 볼 요량으로 강아지를 사고 밥그릇도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주인이 그 밥그릇 덕분에 개를 수십 마리나 비싼 값에 잘 팔았다더라 하는 그런 얘기 말이다.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이니 혹시 던전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맞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존슨처럼.
‘하! 정말 웃기는 구나!’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는 것은 젖혀두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살펴 보았다.
전혀 다를 게 없다.
갑옷과 칼과 투구 같은 것도 살펴보면서 단검과 주머니도 살펴 보았다.
‘어어, 이거 좀 이상하네.’
다른 물건과는 달리 만져볼 때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존슨으로 깨어나면서 달라진 부분 중의 하나가 눈치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장진오는 원래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그에 반해 존슨은 좀 눈치가 둔한 편이었고.
그런데 장진오가 존슨의 몸 안에서 깨어나면서 이전 장진오보다 훨씬 더 눈썰미가 좋아지고 눈치가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티내지 않고 그저 모르는 척하며 지내서 그렇지 집안의 어지간한 일은 존슨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가...이상한 거지?’
존슨은 뭔가 다른 것,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펴 보았다.
‘있다!’
단검의 손잡이에 그저 흔적이나 상처일지도 모르는 검은 점이 찍혀 있다.
그저 검지만 아주 새까만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 점이 동전 주머니에도 찍혀 있고 신발에도 찍혀 있었다.
다른 물건에는 없었다.
아니다.
살펴보다 보니 허리띠 즉 가죽벨트에도 있다.
‘공통점이 있나?’
별로 없다.
그저 여행자들이 흔히 사용할 법한 물건들이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으니 뭔가 한 셋트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자기 것이라는 표식?
아니면 특정 단체?
가격을 물었다.
“아무리 싸구려라도 은화 하나는 줘야 해.”
단검 가격 물어보고 욕을 할 뻔했다.
“아니, 이런 녹슨 칼을?”
“내가 능력이 닿지 못해 마법칼인지는 확인해주지 못하지만 만에 하나 마법 칼일 수도 있거든.”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지만 좌판의 사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이건?”
신발에 대해서 물었다.
“그건 은화 두개.”
‘어쩐지 손님이 없더라니!’
어째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가리켰다.
그러면서 가죽 벨트와 동전주머니도 포함시켰다.
다 은전 하나나 두 개씩이다.
‘이걸 사, 말아?’
고민되었다.
마음속에서는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상한,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이었다.
‘여태 이런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존슨의 삶에서는 없었다.
장진오의 삶일 때는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두기 전.
사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 아이템을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꼭 갖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 사업을 대박을 냈다.
그걸로 독립해서 회사를 꽤 크게 키워낼 수 있었다.
대기업까지는 모자라지만 유망한 중소기업이란 소리는 늘 듣고 살 정도였다.
“일단 오늘은 돈이 없으니...”
존슨은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성비가 좋을지를 고민했다.
“얼마 있는데?”
사내는 존슨의 돈에 맞춰주겠다는 듯이 말했다.
“은화 일곱.”
애들이 지니기에는 좀 큰 액수지만 그렇다고 아주 거금은 아니다.
물건이 일곱 개라서 하나당 은화 하나 정도로 계산해서 7실버가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사내는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존슨이 슬쩍 미끼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