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15세 여름(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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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두어 달 지나면 밀 수확기에 맞춰 세리들이 올 것이다.
그 전에 각 마을의 변경된 정보와 고충 사항에 대하여 보고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런 연락은 주로 영지병 중에서 몇 기의 기병을 선발하여 각 마을의 촌장에게로 보내는 파발의 일종이다.
단단히 봉한 서신을 보내준다.
촌장들은 기수들에게 잘 먹이고 뭔가를 쥐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르넨의 사정이나 분위기를 알아보는 것이다.
영지병들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영지의 각 마을에서 뽑아 훈련 시킨 병사들이다.
촌장쯤 되면 대충 한두 단계만 넘으면 다 아는 사이인 것이다.
술 먹이고 맛있는 음식 먹이고 용돈 쥐어 준다.
그러면서 살살 캐물으면 어지간한 것은 다 불게 마련이다.
그들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주요 수익원일 것이다.
영주부가 돌아가는 사정을 대충 알게 된 마을의 유지들이다.
의논을 했지만 결국 명령대로 영주부 방문을 위한 행렬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밀을 수확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때 가까이 되어서는 어느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주민 개개인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있겠다.
그렇지만 마을 공동으로도 필요한 물품들이 많다.
영주부에 청해서 도움을 받을 것도 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구입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가긴 가야하는데 막상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들 꺼려한다.
첫째는 안전.
몬스터가 들끓는 숲길을 걸어 거의 대엿새를 간다.
올 때도 그 시간이 걸린다.
두 번째는 불편함이다.
집에서도 편치 않은데 계속 남의 집 헛간이나 한 방에 여럿이 들어가 끼어 자야한다.
운 없으면 야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공식 행렬은 그나마 마을에서 재워준다.
날씨까지도 문제다.
겨울엔 추워서 난리, 여름엔 비와 더위와 벌레때문에 난리다.
세 번째는 대우다.
제르넨에 가면 촌놈 취급 받기 일쑤다.
재수 없이 귀족이나 기사랑 마주치면 욕 먹거나 운 없으면 두들겨 맞는다.
운 좋게 그런 일 한 번도 없이 돌아올 수도 있지만.
네 번째는 비용이다.
오고가는 동안 집의 일은 못한다.
더구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비용을 지불해주는 사람은 대표단 다섯 뿐이다.
나머지는 자기 돈으로 준비해서 다녀와야 한다.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식량 챙겨서 가야한다는데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 기간을 자경단 근무 기간에서 빼주고 훈련 기간도 줄여준다.
그런 혜택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늘 인원이 부족했다.
존슨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지만 느긋하게 기다렸다.
날짜는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호위를 위한 인원 선발은 지지부진했다.
“존슨, 어디 가니?”
운 좋게 촌장이 불렀다.
“버틀러씨 댁이요.”
“바쁘지 않으면 잠깐 보자.”
“네.”
슬슬 뺄 수도 있지만 존슨은 그러지 않았다.
“영주부에 가는 건 알지?”
“네.”
존슨은 해당 사항이 없다.
원래는 암묵적으로 체력적으로 한창 때인 18세 이상인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곤 했으니까.
그 이전에 가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지만 이번엔 한여름이라 다들 꺼려했다.
마을에서 촌장의 눈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다.
존슨이 마차도 잘 몰고 다닌다.
자경단 훈련도 열심히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촌장이 보기에는 성실한 청년 정도로 보여 진 것이다.
존 포우가 하도 난리니 존슨이라도 좀 점잖은 아들 흉내를 내려는 것이다.
“영주성이 있는 제르넨에 가본 적 있니?”
“어, 아뇨.”
“어어, 그랬구나. 그래, 그랬었지. 자경단 훈련은 잘 받고 있고?”
“네.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받기 시작하는 거지? 기초 훈련은 받은 거야?”
“아뇨, 아직요. 연초에 제가 좀 아파서 못 받았거든요.”
존 포우가 개 패듯이 패서 이른 봄철에 내내 앓았다.
촌장도 존슨의 말을 듣고 어색하게 웃었다.
듣긴 했었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이번에 제르넨에 가는데 가 볼 테야?”
“음, 존이 허락할까요?”
존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가 이제 15세라 대상자가 아니긴 했다.
‘그런데 왜 굳이 나이도 모자란 날 보내려는 걸까? 진짜 다들 거부하는 걸까?’
그런 소문을 들었다.
그럼에도 많이 이르다.
존슨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허락하겠지.”
촌장은 좀 쉽게 말했다.
촌장도 존 포우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아들을 보내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을 걸 알고 있다.
존 포우는 촌장의 땅을 빌려 농사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존이 허락한다면 가는 거야 어렵겠습니까만...”
말꼬리를 길게 끌면서 대답을 미루었다.
“뭐 필요한 게 있니?”
뻔히 알면서도 묻는다.
자기가 먼저 말하면 줘야할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제가 뭘 배우는 게 있어서 그렇게 오래 비우기는 어렵겠습니다.”
금방이라도 갈 듯 하다가 살짝 발을 빼는 존슨이다.
어차피 가야하는 사정도 아니다.
3년 정도 미리 가라는 얘기다.
안가도 그만인 일이니 공짜로 그 고생하기는 싫은 것이다.
“뭘 배우는데?”
“개인적인 거라서...”
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지 알 수 없었다.
‘이 새끼 핑계 대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사실 촌장이 존슨과 이렇게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눠 본 것은 처음이다.
존슨이 뭐가 좋다고 그곳에 다녀오겠는가?
존슨도 싫은 것이 분명했다.
“쩝, 필요한 게 있니? 나도 널 돕고 너도 날 도와주는 걸로 하자꾸나.”
마을 주민들 중에서는 어린 축이다.
그러니 살살 달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꼭 보내려는 걸까?’
속으로 그것이 궁금하면서도 겉으로는 표나지 않게 태연히 대답했다.
“어어, 모르겠어요.”
촌장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지려다 말았다.
‘아직 꼬맹이니까.’
“자경단의 훈련 면제해줄까?”
“그걸 받아야 창 찌를 줄 안다고 형들이 꼭 받으라던 걸요?”
모르는 척 하면서 거부했다.
“어, 그야 그렇지.”
사실 존슨은 그다지 필요한 것이 없었다.
이런 궁벽한 시골에서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지간한 것은 자급자족하는 세상이다.
필요한게 있다면 자신이 만들거나 자신의 것을 주고 필요한 것을 구하면 될 일이다.
어디가고 싶은 곳도 없고.
그러니 촌장의 권유에도 슬슬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감정 상하지 않을 정도만 엉덩이를 빼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사실 말이다...”
호위를 위한 인원 차출의 어려움을 얘기해주었다.
이게 꼭 맞는 이유는 아니다.
뭔가 다른 사정이 있다.
보통 때라면 그런 정도만으로도 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존슨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시겠지만 도대체 집에 남는 식량이 없거든요. 밀 수확 때까지 버티려면 제가 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는데...”
존 포우의 성격이나 집안 사정을 아니 촌장도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집에서 자란 존슨이지만 애가 성실하다.
가족을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입맛이 쓴 것이다.
“촌장님께서 마을 땅도 붙여주시니 어지간하면 가는 게 좋겠지만...아버지는 어떤가요?”
사실 집에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존 포우는 잉여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촌장도 알지만 영주성에 보냈다가 혹시라도 말썽이 나면 그건 좀 곤란했다.
안 보내느니만 못한 놈쯤으로 찍혀 있다.
준귀족이나 영지 관리들 대하는데 만에 하나 욕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한 존 포우가 평시라면 원래 소심하고 심약한 겁쟁이 놈이다.
술만 마시면 개망나니처럼 군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만에 하나 제르넨에서 술 한 잔 마실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주정이라도 부리면서 영주 욕을 한다거나 하다가 걸리면 대책도 없다.
“네 아비는 좀 그렇고...”
촌장도 존 포우의 괴팍함을 아는 것이다.
“촌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거스르는 것도 좀 부담스럽긴 합니다. 오가는 길에 필요한 식량을 좀 도와주시면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잠이야 아무데서나 자도 되니까요.”
“그래, 알겠다. 네가 필요할만 한 것들을 생각해보마. 일단 가는 걸로 알고 있으면 되겠지?”
‘묘하네, 묘해. 수상하기 짝이 없네. 이유가 뭘까?’
“네. 창이나 방패는 자경단에서 지원해주겠지요?”
“그야 그렇지.”
존슨은 인사를 하고 일단 존 포우의 심부름을 해결하러 버틀러씨 댁으로 향했다.
버틀러씨도 일리나의 먼 친척이다.
그 집에 말을 해두었으니 주는대로 낡은 나무통을 가져오라고 해서 마차를 끌고 온 것이다.
몇 해나 사용한 나무통이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그렇지만 시골 사람들은 이런 걸로도 잘만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흠, 식초통이었구나.”
존슨은 통을 열어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원래 다 그러는 거야. 처음엔 술통으로 쓰다가 차차 낡아지면 식초통으로 사용하는 거지.”
머리가 절반 이상 하얗게 센 버틀러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노인들과는 다르게 젊은 아이들은 식초를 싫어했다.
노인들은 먹기를 힘들어 했지만 냄새 자체는 그럭저럭 견디는 편이다.
애들은 먹기는 잘 먹어도 냄새는 싫어했다.
마차에 차곡차곡 나무통을 실었다.
“뭘 하려고 이렇게 가져가는 거니?”
버틀러씨가 물었다.
존슨은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요. 존이 갑자기 필요하다고 하네요.”
“흠, 그렇구나.”
존 포우 얘기가 나오니 버틀러씨도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대엿새 후에 우리 돼지 잡을 건데 도와주겠니?”
존슨은 마을 사람들의 잡일을 잘 도와주었다.
도와주면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용돈이라고 주기도 하고 그날 일한 것에서 일부를 챙겨준다.
서로 품앗이처럼 돕기도 한다.
하지만 존슨 같은 아이들에게는 뭐든 쥐어주게 마련이다.
일리나의 낯을 보아 일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존슨을 도와주는 것이다.
“아, 죄송해요. 촌장님이 제르넨에 다녀오라 하시더라고요.”
“영주성?”
“네, 이번에 영주부에 들리는.”
“호위로?”
“네.”
“아아, 그렇구나. 너 나이가 안될텐데?”
“모르겠어요. 꼭 다녀오라고 신신당부 하시던 걸요?”
“그러니? 음, 혹시 뭐 필요한 거는 없니?”
버틀러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아는 바가 있는지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는 궁리를 하면서 일단 버틀러씨에게 대답을 했다.
“어어, 신발?”
“신발?”
버틀러씨가 존슨의 발을 보았다.
맨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 포우의 신발을 신고 다녔지만 이제는 발에 맞지 않는다.
발이 커진 관계로 꺾어 신기도 힘들어서 아예 맨발로 다니는 중이다.
버틀러씨 집은 아들이 많다.
손자도 많다.
그러다 보니 존슨이 신을 만한 적당한 신발이 좀 있다.
존슨도 그걸 알고 그리 대답한 것이다.
“잠깐 들어와 봐라.”
버틀러씨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창고문을 열었다.
그 안 한쪽에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애들은 발이 자꾸 자라기 때문에 오래 신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