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15세 초여름(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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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우는 뺨을 맞고 염소 몇 마리 빼앗겼다.
수확해 놓은 보리의 2/3를 세금이라고 빼앗겼다.
그럼에도 대꾸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들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고스란히 빼앗겨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세금을 매길 때 은근히 다가가 염소 고삐라도 쥐어준다고 했다.
뇌물로 써도 될 염소를 그냥 맥없이 뺨 맞으며 빼앗겼다.
뇌물로 쥐어주면 다음부터는 안 봐준다면서도 다만 열 자루건 스무 자루건 감해준다고 들었다.
‘저 새끼, 관리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는 놈이 집안에서 가족들에게만 큰 소리 치는 쓰레기 새끼였구만!’
그래도 이번엔 존슨이 미리 말해 빼돌려둬서 도정하지 않은 통보리 마흔 자루 정도를 더 남길 수 있었다.
본래 스무 자루도 채 다 싣지 못하는 마차다.
이번엔 그냥 세워두기만 하는 것이다.
처음에 가져간 것은 숲에 내려두고 또 한 마차를 채워 갔다.
그걸 숲에 세우고 먼저 내려놓은 것도 함께 쌓아 올렸다.
마차가 찌그러지도록 한껏 올려 쌓은 것이다.
그걸 존 포우가 모르게 계속 감춰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렵다.
그래서 결국 존슨이 앞장서서 말해주기로 했다.
영주의 세금 관리들이 마을을 떠난 후 존 포우에게 말을 해주었다.
“뭐, 이 새끼가! 그럼 내가 괜히 쳐 맞았단 말이야? 그 새끼들이 그거 찾으려고 지랄 떤 거잖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존 포우는 존슨이 감춘 곡식 자루 때문에 자기가 맞았다고 떠들어 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저 새끼는! 인간 고쳐 쓰는게 아니라던데. 이 참에 정리해야겠어.’
존슨은 그저 차분하게 존 포우를 쳐다보았다.
“뭘 봐, 이 새끼야! 잘못하고도 그렇게 노려 보면 어쩔 건데? 확, 그냥 이런...”
큰 소리치고 존슨에게 달려들려 했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존슨의 눈빛이 맹수의 그것처럼 차갑기 짝이 없었다.
존슨이 오른 손에 쥐고 있는 긴 낫을 보는 순간 소름이 오싹 끼쳤다.
조금만 더 선을 넘었다면 존슨은 가족들이 있더라도 존 포우를 해치울 생각을 했다.
실수로, 얼결에, 홧김에 찍었다고 변명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 포우는 사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겁이 많기 때문에 먼저 나서서 욕을 하거나 괜히 강한 척 굴곤 했다.
아들이지만 이제는 덩치가 자신 보다 커진 존슨의 차가운 눈빛에 기세가 꺾인 것이다.
일은 존슨이 가장 열심히, 제일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한다.
‘진짜 가출을 하던지 독립을 해야 하는 걸까? 성격 정말 지랄 맞네. 존슨이 가출하려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진짜 정신병일까? 허긴, 정신병 아닌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 그렇지만 저 새끼는 좀 심한걸?’
그저 두들겨 패거나 욕을 먹어서만은 아니다.
존 포우에게 죽어서도 아니다.
며칠 지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오래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존슨으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거나 욕을 하거나 때로는 때리려고 했다.
존슨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노려보면서 확 죽여 버릴까 고민하니 조금 누그러지긴 했다.
허지만 욕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존슨에게 뿐만 아니다.
아내인 일리나 헤나는 물론이고 아직 어린 존슨의 동생들에게까지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존슨의 기억에서 보다 실제 겪어보니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촌장의 손자가 태어난 날이었다.
추수도 거의 끝나서 마음이 좀 풀어질 시기이기도 했다.
마을에서 술에 잔뜩 취한 존 포우는 몇 번이고 넘어졌는지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는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팼다.
존슨은 일단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기 전까지는 지켜보기만 했다.
일리나에게 욕을 하며 뺨을 때렸다.
헤나에게도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어 댔다.
울며 말리는 데이지에게도 발길질을 했다.
존슨은 그걸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결국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존슨에게까지 욕을 하면서 달려드는 걸 그대로 발을 들어 앞지르기로 밀어 찼다.
가슴을 발에 차여 나뒹군 존 포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존슨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곧 주방에서 쓰는 무쇠칼을 쥐고 존슨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짐승같은 소릴 냈다.
진짜 짐승 같았다.
일리나가 비명을 지르며 말리고 헤나가 울부짖었다.
그렇게 말리는 일리나에게 칼을 휘두르려는 존 포우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밀가루 반죽할 때 밀대로 사용하는 나무 몽둥이로 후려친 것이다.
“퍽!”
“캑!”
쥐새끼 같은 소릴 내며 존 포우가 쓰러졌다.
갑자기 집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존슨...”
일리나가 놀란 눈으로 큰 아들을 쳐다 보며 이름을 불렀다.
“쉿!”
존슨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소리 냈다.
다들 입을 딱 벌리고 존슨을 쳐다보기만 했다.
존슨은 손에 든 방망이를 식탁 위에 슬그머니 내려 놓았다.
존 포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죽은 줄 알았더니 아쉽게도 멀쩡했다.
“그저 술에 취해 쓰러진 거야.”
존슨이 나직하게 말하자 다들 휘둥그레 뜬 눈을 하고는 고개만 끄떡였다.
“팔다리 잡아 들어.”
가족들에게 말하고 다섯 식구가 달려들어 팔다리를 하나씩 잡고 침대에 눕혔다.
“팔다리를 묶어 놔야하는 거 아닐까?”
존슨이 일리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침까지는 그냥 잘 거다.”
“얼른 가서 자.”
일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서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에게 말했다.
쭈뼛거리던 셋은 결국 침실로 향했다.
존슨은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이 떨리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죄책감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담담했다.
“아침에 기억할까?”
“글세. 술이 조금 취했다면 기억할 테고 많이 취했다면 기억 못하겠지.”
겨우 33살인 일리나였지만 많이 지친 표정이다.
존슨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잘못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친아버지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장진오의 아버지는 점잖은 사람이다.
무골호인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존 포우는 개망나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다니!’
존슨은 벽난로에서 일렁이는 불길을 보면서 그렇게 결심했다.
일리나는 큰아들 존슨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원래도 불평이 많던 아이다.
가출하려고 돈을 모으는 것도 알고 있다.
누구나 가출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출하는 애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아직은 그냥 지켜보는 정도다.
존슨이 답답하게 여기는 것도 알고 있다.
남편 존 포우의 성질이 지랄 맞은 것도 알고 있다.
‘결혼 전에는 안 그러던 사람이...’
존 포우의 아버지가 영주의 관리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런 후, 어머니마저 몬스터에게 잃고 난 후부터 갑자기 변했다.
일리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 전에도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던 존 포우는 부모를 이리저리 잃고 난 후 평소엔 과묵하리만치 말을 하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폭발했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평소에도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점점 더 빈번하게 휘두르는 폭력과 욕설에 가족들이 다들 두려워 떨고 있었다.
존슨의 표정이 살벌하다.
‘얘도 존을 닮아서 욱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던데...’
일리나는 그게 두려운 것이다.
오늘 같은 일.
존이 화를 낸다고 존슨까지 마주 화를 내서 싸움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두려웠다.
어느 쪽이건 다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존 포우는 잠에서 깨어 머리가 아프다고 지랄을 떨었다.
다들 모르는 척을 했다.
일리나만 피할 수 없어 말 상대를 하다가 욕을 먹었다.
뒷 머리가 외상을 입은 걸 알았지만 다들 모르는 척 했다.
물었지만 집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고 말했다.
존슨이 그랬다는 걸 말하는 순간 존슨이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존 포우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일찍 잠들었고 존 포우는 늦게 왔다는 뜻이다.
화풀이 할 상대가 없으니 만만한 일리나만 붙잡고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존슨은 궁리를 거듭했다.
‘아무래도 가족들 앞에서 처치하기는 어려울 거야. 어떻게 할까? 나무는 당분간 하지 않을 것 같고. 사냥? 존 포우는 사냥을 자주 다니지 않는 것 같던데. 저번에 말해보니 눈치 보는 걸 보면 내 속내를 짐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를 몬스터에게 잃고 나서부터라니 트라우마가 생긴 거지. 하여간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준비만 해두자.’
존슨은 모은 돈을 전부 털고 최근에 죽은 양의 가죽을 벗겼다.
늑대에게 물린 걸 빼앗은 것이라 가죽이 좋지 않다.
존 포우에게는 늑대가 물고 갔다고 했다.
그렇지만 존슨은 악착같이 뒤쫒아 늑대에게서 양을 빼앗은 것이다.
그 가죽을 말려둔 것을 챙겨 외출을 했다.
마을엔 몇 군데 상점이 늘 문을 열고 있다.
잡화점, 여관, 술집을 겸하는 식당, 대장간, 마구점, 곡물상.
원래는 더 다양해야 하지만 단일 상품이나 소수의 상품만 취급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잡화점 두 곳에서 어지간한 물품은 다 취급하는 것이다.
대장간에서 칼을 구입하는 것은 좀 비싸다.
질도 들쭉날쭉이고.
오히려 잡화점으로 흘러든 중고 칼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잡화점에서 구해서 대장간에서 수리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어차피 대단하게 좋은 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품에 넣고 다닐 단검.
두 곳의 잡화점을 뒤져 겨우 마음에 드는 칼을 구했다.
군용 대검과 흡사한 형태와 길이의 단검이었다.
날의 길이가 40cm정도 되는 양날 단검이다.
녹이 많이 슬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존슨이 손톱으로 튕겨보니 아주 맑은 소리를 냈다.
녹이 슬어 있고 손잡이도 망가져 있다.
그걸 핑계로 이리저리 값을 깎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존 포우의 아들, 또는 제레미 포우의 손자라는 걸 안다.
존슨도 물론 상대를 알고 있다.
잡화점 주인, 로메인 터커다.
베긴 터커의 아들.
그렇다.
그저 한 마을 사람인 이상 서로 알고 있다.
누구 아들이고 누구 아버지인지.
그래도 가격을 깎아야 했다.
존슨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상되긴 했지만 양 가죽 한 장으로 단검 하나 사지도 못한다면 말도 안되는 얘기다.
존슨은 단검, 아주 질 좋은 부싯돌과 부싯쇠, 질긴 노끈 한 다발을 구입했다.
원래는 신발을 구입할까 생각했었는데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값을 깎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넣고 양가죽과 교환을 했다.
그 동안 존슨은 두 번이나 잡화점을 나가려 몸을 움직였다.
잡화점 두 곳이 서로 경쟁하는 상대라는 걸 알고 그걸 이용한 것이다.
‘내가 당한 것일 수도 있어. 둘 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지만 뒤로는 협력하고 가격 담합을 하는 사이일 수도 있잖아.’
장진오였을 때 그런 경험이 많았다.
경쟁업체인 줄 알고 그걸 이용해보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네들끼리는 가격 담합을 하고 있었다.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이였다.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짬이 날 때마다 단검을 갈았다.
아주 날카롭고 예리하게 갈아 보관하고 있다가 적당한 순간에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럴 계획으로 구입한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