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15세 초여름(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그것들을 어떻게 삶의 현장에 적용할까를 고민했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구성된 달리기 코스를 찾아냈다.
‘연못까지면 한 3킬로미터는 되겠다. 급할 땐 그렇게 해서 한 5~6킬로미터 왕복으로 달리고. 시간이 넉넉하면 개울 나무다리까지 가면 되겠다. 다리까지는 못해도 4킬로미터는 넘겠지? 어쩌면 5킬로미터? 왕복하면 8~10킬로미터니까 달리기 코스로 좀 멀까?’
이렇게 생각하고 해봤는데 의외로 존슨의 육체가 상태가 좋았다.
왕복 6킬로미터는 거뜬했다.
10킬로미터 뛰니 살짝 숨이 거칠어졌다.
평지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왕복 10킬로미터 정도인 개울의 나무 다리까지 뛰는 것으로 정했다.
일과 시간에 뛰면 미친 존 포우가 지랄 떨 것 같았다.
그 놈 눈에 띄지 않게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5세 초여름
대충이지만 활을 다 만든 것은 보리를 벨 때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존슨의 몸으로 깨어나고 석 달도 더 지나서였다.
일단 그냥 사라지면 지랄 할 테니 그 전날 저녁 때 미리 말해두었다.
“내일은 숲에 가.”
“숲?”
눈알을 희번뜩거리며 존 포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숲.”
다른 말 하지 않았다.
“뭐하러?”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야!”
바로 앞에 마주 앉아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존 포우를 쳐다 보았다.
존슨의 눈빛이 이글이글거리며 불 타오르는 것 같았다.
“왜?”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물었다.
일리나는 존 포우의 지랄병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아들 존슨의 이런 모습도 무서워 했다.
당장이라도 존 포우를 죽일 것 같았다.
존 포우도 그걸 느꼈는지 멈칫했다.
그렇지만 일리나가 두려움에 굳어 있는 걸 보고 비열하게 웃었다.
존슨이 일리나와 헤나 등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이다.
일리나와 헤나와 데이지와 제티 앞에서는 아직까지는 거칠게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지금 바쁜 데 숲에는 뭐하러 갈려고?”
바쁜 일은 대충 끝난 걸 아는데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존슨이 갑자기 히죽 웃었다.
“같이 가려고?”
갑자기 존 포우는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날 죽이려고?’
딱 든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바쁜데 둘 다 어딜 가? 하나는 있어야지! 애 새끼가 철이 안 들었어, 철이! 너나 갔다 와!”
이런 식으로 슬쩍 몸을 뺀다.
다시 존슨이 히죽 웃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지. 오랜만에. 저번에 뭔가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바쁘다니까! 너나 가.”
“그래, 그럼 다음에 같이 가자.”
존슨이 히죽히죽 웃었다.
‘저 새끼랑은 절대로 숲에 가면 안되겠다!’
존 포우의 뇌리에 콱 박혀버렸다.
다음날 새벽, 해도 뜨기 전에 존슨 개울가 나무다리까지 뛰어 갔다 와서는 씻었다.
곧장 자기 방에서 미리 챙겨둔 가방을 챙겨들고 나왔다.
식탁위의 보따리만 들고 집을 나섰다.
일리나에게 미리 부탁했던 아침 겸 점심이다.
빵과 물 섞은 포도주와 몇 가지 말린 과일과 치즈 같은 것들이다.
그것도 자기 가방에 넣었다.
가방이라기 보다는 자루다.
입구를 잠글 수 있다.
양쪽 어깨에 멜 수 있게 멜빵을 만들어 달아 둔 것이다.
양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다.
빠르게 마을 출입구를 나섰다.
전날 미리 말해두었다.
아침에 숲으로 갔다가 저녁 때 돌아오는 걸로.
약초를 찾기 위해서나 나무를 베기 위해 숲으로 향한 적이 많다.
이렇게 혼자 가는 것은 드물지만.
그래도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나이니 막지 않는 것.
사실 좀 두렵다.
몬스터 때문이고 맹수 때문이다.
그래서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숲에 들어서자 말자 가방을 내려 활을 꺼냈다.
시위도 꺼내 걸었다.
그냥 장궁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존슨의 키 보다는 짧다.
눈어림으로 보자면 150센티미터 정도인 것.
화살은 모두 스무 자루.
그 중 제대로 철촉이 끼워져 있는 것은 일곱.
나머지는 끝을 불에 살짝 태워 갈아 뾰족하게 만들었다.
흑요석이나 수정을 깨어 날카롭게 다듬은 것도 있다.
깨진 칼날 같은 것들을 다듬은 것도 있다.
실험을 해보려는 것이다.
이번 테스트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성공하면 영주성이 있는 제르넨에 갈 때 따라가서 화살촉을 좀 구해볼 생각이다.
화살촉은 무슨 대단한 철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질 낮은 철을 녹여서 주물 형태로 만든다.
혹시 질 좋은 쇠를 구하면 물렁하게 녹여 철로 만든 틀에 대고 두들겨 만들기도 한다.
열처리해서 식혀 날을 갈아주는 식이다.
그렇지만 귀족들의 것이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만들면 손해다.
원래 화살은 소모품이다.
그래서 싸구려 잡철로 만드는 것이다.
화살촉은 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소모품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쇠로 만들지 않는다.
화살의 길이도 제각각이다.
대충 이런 정도면 될 것 같다는 감으로 길이를 여러 종류로 만들었다.
실전에서 테스트를 해보려는 것이다.
존슨은 그날 화살 10개 정도를 잃어 버렸다.
간신히 찾은 것도 대부분 망가졌다.
제대로 날아가 박힌 것은 없었다,
무슨 UFO도 아니고 화살이 위나 옆으로 휘어서 휘리릭 날아가 버린 것도 여럿이다.
어떤 화살인지 안다.
만들면서 다 표시를 해둔 것들이다.
활도 가져온 두 개 모두 망가졌다.
제대로 건조하지 않아서인지,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하나는 쪼개지고 하나는 그나마 한쪽이 부러졌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데...’
탄식만하고 그냥 숲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위험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짧은 창도 있기 때문이다.
약초는 대충 안다.
어릴 때 옆집 형들과 함께 자주 와봤기 때문이다.
그냥 약초 바구니에 약초만 채워 돌아왔다.
부러진 활과 화살은 아주 잘게 부숴 숲에 흩어 버렸다.
촉이나 깃 등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만 챙겨 가져왔다.
다음엔 나머지 두 활을 테스트 해볼 것이다.
화살은 새로 만들 예정이다.
그 전에 제르넨에 다녀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2월 달에는 갈 기회가 있을 뻔 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 가지 못했다.
존 포우에게 맞아서 존슨이 죽었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존슨 인생에 마지막으로 거창하게 맞은 셈이다.
그 후로는 장진오가 들어온 존슨이 존 포우를 죽일까 말까 망설이면서 존 포우가 겁을 먹었다.
그 후로는 존이 아들에게 겁을 먹었는지 적당한 수준에서 몸을 사려서 그럴 일이 없었다.
존슨은 7일에 한 번씩 숲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일주일을 계산해서 일요일은 쉬자는 의미였다.
그걸 모르는 존 포우는 그럴 때마다 지랄을 떨어댔다.
존슨도 그 때마다 죽일까 말까를 고민했다.
‘눈치 빠른 쥐새끼 같으니라고!’
일리나나 헤나가 있을 때만 지랄을 떨어 댔다.
단 둘이 있을 때는 욕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존슨과는 단 둘이 있을 기회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단 둘이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가급적 피하려 해도 집안에 남자는 존과 존슨 뿐이라서 그렇다.
막내 제티도 있지만 아직 너무 어리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어쨌거나 둘이 해야 한다.
그동안 일리나나 헤나도 계속 붙어 있을 수가 없다
그들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보리를 수확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온 가족이 다 달려들어 매달려도 제 날짜에 다 수확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존슨은 가만히 살펴 보다가 익숙한 것을 발견했다.
보리를 베어 쌓아두었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그때 타작을 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저러긴 했지만...그게 꼭 좋은 방법은 아니잖아? 일을 몇 번씩 해야 하고 손실도 많고. 타작할 때도 힘든데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좋은 방법이 없을까?’
타작도 도리깨를 쓰지 않는다.
말린 후에 손으로 이삭을 훑어내니 일이 자꾸만 늦어진다.
바쁘지만, 일하면서 열심히 궁리를 했다.
오래전에 본 어떤 영화의 장면이 생각났다.
“뭐라고? 어디서 이상한 생각만하고. 그런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해!”
화를 내지 못해 속이 상한 사람처럼 존슨이 말을 하자말자 버럭 화를 냈다.
존슨은 옆구리에 바구니나 자루를 차고 이삭만 따자고 건의했다가 욕만 먹었다.
밀짚도 쓸모가 많기 때문에 함께 거두어야 한다는 논리다.
‘누가 거두지 말자고 했나? 순서를 바꾸자니까. 이거 조삼모사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그저 속으로만 욕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거둔 보릿짚을 쌓아두어 말려야 한다.
다 마르면 한 웅큼씩 쥐고 손으로 털어서 쓸어 모아야 한다.
일만 죽도록 힘들뿐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다.
‘타작할 때 쓰는 탈곡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콩 털 때 쓰는 도리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원!’
불만은 많지만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
가장도 아니고 다른 가족도 존슨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다.
다만 일리나에게 몇 마디 말해두었다.
“다만 얼마라도 감춰두지?”
“뭘?”
“보리.”
“아아...음...어...”
일리나로서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사람 상대는 늘 남편이 알아서 했었다.
그래도 아들의 말이니 조금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존 포우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또 난리를 칠 것 같아 아예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창고에 감추면 다 뒤져서 찾아내잖아.”
“그러면 어쩌지?”
존슨의 이어지는 말에 일리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마차에 실어 숲에 감춰둬야지. 말은 떼 내어 도로 데려오고. 잘 덮어두고. 며칠만 그러다 보면 지나가지 않겠어?”
“으음...어, 그러자.”
일리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을 속였다.
지금은 쓰지 않는 마차가 있다.
마차 한 대 분량의 보리를 두 번에 걸쳐 절반 정도씩 마차에 실었다.
그걸 숲으로 몰래 내가 한 곳에 쌓았다.
단단히 포장을 한 후 감춰두었다.
꽤 많은 양이다.
계속 둘 수는 없겠지만 잘 덮어 두었기에 며칠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이 나와서 난리가 났다.
마을에 사흘간 머물면서 집집마다 싹싹 거두어 간다.
‘하아, 이게 무슨!’
딱 봐도 죽던지 말던지 싹 다 긁어 가겠다, 라는 심보가 느껴질 정도였다.
가족들에겐 온갖 욕을 하며 지랄을 떨던 존 포우였다.
그런데 영주의 관리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했다.
굽실거리거나 대답도 제대로 못해 우물거리기만 하다가 뺨만 몇 대 맞았다.
그러고도 수확해 놓았던 것을 맥없이 거의 다 빼앗겼다.
세리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집안과 창고 등을 뒤졌다.
수확해 놓은 곡식이 거의 없어 그나마 작년 보다는 훨씬 적게 빼앗겼다.
존 포우는 그렇게 집안에서나 폭군처럼 굴지 밖에서는 반 푼이 쪼다였다.
영주의 세금 관리들이 왔을 때 일리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남편 존 포우가 뺨을 맞았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숲에 감춘 곡식 자루를 들킬까봐 그것만 걱정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