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15세 초봄-각성(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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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힘들다.
장진오도 힘들고 존슨도 힘들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하고,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이니 거부할 일은 아니다.
존 포우가 수시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욕을 해대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런 미친 짓, 미련한 짓을 벌이는 일만 없다면 만족할 것이다.
분명히 나중에 다시 해야 할 일을 굳이 먼저 나서서 복잡하게 일을 처리한다.
그러고 나중에 투덜투덜 욕을 해가면서 그걸 다시 뜯어 고치는 일을 수시로 반복한다.
‘돌대가리 새끼인 걸까, 아니면 미련퉁이인 걸까, 그도 아니면 되 먹지 않은 똥고집?’
존슨은 그런 존 포우를 볼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참는다.
어느 세상이나 친부모에게 막 대하는 것을 좋게 여기는 세상은 없다.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중세 같은 분위기의 세상일지라도.
어지간하면 참는 게 좋다.
정 참지 못할 것 같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해야한다.
아니면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뭔가를 해야 한다.
존슨 입장에서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를 늘 고민한다.
당장 패죽이고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인생이 불쌍한 놈이다.
아무리 친부모가 아니라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존슨이 이상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육체적으로는 존 포우가 존슨의 친아버지인 것은 분명하니까.
아무리 닮지 않았다 하더라도.
물론 존슨은 자기가 존 포우의 친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워낙 닮지 않아서였다.
그렇지만 그건 헤나나 데이지나 제티 역시 마찬가지.
신의 축복으로 존 포우를 닮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한다.
존 포우는 열성 인자를 잔뜩 머금은 것 같은 인간이다.
키 작고 체구도 왜소하다.
체력도 약하고 몸의 기능도 정상인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치아 조차도 뒤죽박죽 삐뚤삐뚤 엉망이다.
‘치아가 저 모양인건 열성 유전자가 강하거나 근친상간을 반복하면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는걸! 성격으로 봐서는 능히 그럴 새끼지.’
확실히 지능도 떨어지는 것 같다.
성격도 거칠고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걸 받아주는 일리나가 혹시 머저리라거나 백치는 아닐지도 의심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약탈혼 풍습의 피해자인가?
겁탈을 당하고 폭력에 굴복한 걸까?
친정아버지가 일리나를 존 포우에게 팔아치운 걸까?
일리나가 상상도 하지 못할 약점을 존 포우에게 잡힌 걸까?
온갖 상상을 다 했었다.
그럴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부부였다.
존 포우가 시궁창의 쥐새끼 같은 인간이라면 일리나는 만찢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여자였다.
금발벽안의 미인인데다 키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애가 넷임에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다이너마이트 바디를 가진 여자다.
흠잡을 게 거의 없는 외모에다 성격도 좋고 부드럽다.
순종적이고 성실하고 뭐든 열심히 하며 그러면서도 요리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다.
장진오가 존슨으로 깨어난 것 만큼이나 믿어지지 않는 부부인 것이다.
마을의 다른 집들은 부부사이가 엇비슷하지만 유독 존 포우와 일리나는 정반대였다.
즉 누가 봐도 아주 상반되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부였다.
아무리 장진오의 의식이 이 몸을 지배한다 해도 존슨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빨리 독립하는 것 말고는.
그렇지만 존슨은 독립하지 못한다.
장남이기 때문이다.
이곳 세상에서는 15세면 성인으로 간주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15세 되는 해가 되면 그때부터는 혼인도 할 수 있다.
성인으로 취급하여 세금도 성인으로 간주하여 인두세를 내야 한다.
법으로는 그런데, 세금 걷을 때 외에는 15세를 어른으로 쳐 주지는 않는다.
마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경단에 편입을 시키기는 하지만 아직도 애 취급을 한다.
존슨은 현재 딱 15세.
이 정도라서 아직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취급을 하고 있다.
자경단의 정식 단원이기도 하고 존슨의 친구들 중에서는 슬슬 혼인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존슨의 아버지 존 포우가 늘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가 존슨의 인두세를 내주고 있다는 것.
아직 제 몫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애 취급을 하려는 것이다.
‘쪼잔한 새끼!’
존슨의 평가다.
헤나는 살짝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약혼을 한 사람이 있다.
동갑인 줄라탄이란 남자로 존슨도 잘 알고 있다.
동네 형이고 따지고 보면 엄마 쪽으로 먼 친척이기도 하고 외모나 성격도 무난하다.
보통의 남자들이 다 그렇듯이 그 역시 마을의 소녀들에게 지분거리기는 하지만 더러운 소문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다가 약혼을 하고는 그 후부터는 몸조심을 하면서 헤나에게 잘 대해주려고 애를 쓴다.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약혼자였다.
존슨은 아직 여자에게 관심도 없다.
존슨의 몸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완벽하게 적응을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빨리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
남들 보기에는 사춘기의 특징이 보인다고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있다.
남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자기 몸, 가정 환경, 가족들, 주변 환경 등에 대해서 무신경한 것처럼 굴고 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관찰하며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어휴, 이걸 어쩌지?’
한국에서도 시골 출신이었다.
농사짓기 싫어 이를 악물고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도시로 도망쳤다.
여기서 또 시골 살이를 해야 한다니 정말 싫었다.
‘가출해야 하나?’
며칠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생각이 불쑥 든다.
동네에서도 매년 몇 명씩은 가출하는 놈들이 생겨난다.
특히 도시에 몇 번 드나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가출할 확률이 높아진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존슨은 도시에 가본 적이 없다.
‘어찌되었건 도시 구경도 못해봤다는 거지? 그런데 올해는 가 볼 기회가 있기나 할까? 중세 유럽 도시들은 엄청 더러워서 거기는 머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걸! 여긴 어떨지 모르겠다.’
이전 존슨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들은 얘기가 꽤 많다.
제르넨은 그래도 꽤 큰 도시에 속한다고 했다.
명색이 백작의 영주성이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만 들어봐도 딱 견적이 나왔다.
‘이 도시는 안 되겠다. 다른 좀 넓고 평탄한 도시라면 모르겠지만. 언제 직접 가서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그렇다고 그나마도 잘 모르는 아무 도시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걸 좀 알아봐야겠다. 알아보고, 여차하면 존 포우 새끼는 버려야겠다. 이사할 때 그 새끼만 빼고 나머지 식구만 이사 가는 거지. 남아서 개쪽을 당해보라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친아버지가 아니라서 그렇다.
물론 일리나와 헤나 등 형제들이 동조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에 일리나는 존 포우에게 고분고분했으니까.
그 속 마음을 잘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버틸 때까지 버티면서 돈도 좀 모아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다른 도시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봐서 지리도 익히고 무술도 좀 수련해야했다고 마음 먹었다.
‘자칫하면 이렇게 환생인지 빙의인지 해놓고 몬스터 똥으로 인생 마감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솔직한 존슨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원해서 빙의인지 뭔지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드문 경험을 한 주제에 너무 허무하게 죽어 자빠진다면 많이 억울할 것 같았다.
마을 안에서만 지내도 자기 실력이 없다면 위험하다.
몬스터나 산적이 수시로 공격해오기 때문이다.
환생인지 빙의인지 했다고 누가 자신을 지켜주지는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더 급한 문제겠다.’
한국 땅에 살았던 장진오도 대단한 뭔가를 알아서는 아니다.
여기서 살아남고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궁리하다 보니 그 생각이 든 것이다.
‘몬스터라는게...그냥 태권도 조금 해서는 해결이 안 되겠는 걸. 검술이나 창술이나 뭐 그런 걸 배워야 한다는 소리인데...’
창술은 마을 자경단에서 훈련하는 것이 있긴 하다.
창 잡는 법, 찌르는 요령, 얼른 빼야하는 이유 같은 것을 배운다.
이곳 세상의 보병들이 주로 하는 방진 훈련도 좀 한다.
방패 들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몬스터를 밀어내면서 창으로 찌르는 훈련이다.
‘칼 쓰는 건 안 배우네?’
칼이 비싸기도 하고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배우지?’
생각해보면 막막한 일이다.
존슨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존 포우가 막 돈을 들여서 존슨에게 검술 교사를 붙여줄 정도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장진오일 때 본 중국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본 그런 정도로 검술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 그거 믿고 나대다가 몬스터한테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칼은 영 그러니 활을 베울까? 창이야 자경단에서 배울 테고. 칼 보다는 활이 효용성이 좋기는 하지. 가까이 붙어 싸울 필요도 없지. 사냥을 할 수도 있고. 사냥이라...’
활로 사냥을 하며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을 사냥꾼이라고 한다.
물론 활만 쓰는 건 아니고 창을 주로 쓰지만.
활로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짐승은 사슴일 것이다.
그 이상으로 덩치가 큰 산짐승이라면 활만으로는 힘들다.
창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숲은 초식 동물이나 맹수뿐만 아니라 몬스터도 함께 살고 있는 곳 이다.
사냥물을 몬스터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몬스터와 다투고 싸울 때도 많다.
주로 혼자 움직이는 사냥꾼들은 몬스터를 피해 다니지만.
덫을 놓아 잡을 수는 있지만 몬스터에게 빼앗길 확률이 높다고 들었다.
몬스터가 빼내 가기 전에 수확한다면 모르지만.
그래서 덫 문화는 약하고 주로 활이나 창이다.
‘덫이라면 내가 몇 가지는 아는데. 아쉽네.’
그래도 짬이 나면 한 번 해볼 생각은 있다.
창이나 칼이나 활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혹시나 싶어 사냥꾼 버밀에게 말해볼까 하고 갔었다.
아주 경계하는 표정으로 말을 받아주는 바람에 말도 못 붙이고 돌아왔다.
활을 잘 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활시위를 당겨야 하니 팔 힘도 필요하겠다. 일단 그건...연습을 좀 해야겠네?’
당장도 팔 힘은 좋다.
비록 15살이지만 시골 농사로 단련된 몸이다.
‘뭐, 노동에 사용하는 근육과 활쏘기나 칼질에 필요한 근육은 다르겠지만. 조금 생각해보고 연습해보면 되겠지!’
그래서 단단한 나무에 로프를 걸고 당기는 연습을 했다.
하체를 단련하는 다리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연습에 돌입했다.
안정적인 자세로 활을 쏘려면 잘 받쳐줘야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산을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사슴이나 짐승을 쫒아다니려면.
아니면 몬스터로부터 도망치려면.
나무를 타는 훈련도 필요하다.
몬스터에게 쫒기는 걸 생각하다 보니 그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칼은 잘 휘둘러야 하는데. 당장 할 게 없고 도끼질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어차피 도끼질은 좀 필요하니까. 나중에 검이 아니라 도를 쓰게 될지도 모르잖아?’
나름대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몇 가지 패턴의 훈련과정을 고안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