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33화 (33/33)
  • 033. 하로산또와 궤네깃또 (3)

    슈우우우~

    바가투르의 궁극기 <무릉도원>이 어이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바가투르와 하로산또의 발밑에 등장했던 마법진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거대한 백색 사슴 몬스터 하로산또의 주둥이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어째서 무릉도원이 발동되지 않았지? 마법진은 제대로 전개됐었는데?’

    바가투르에 탄 이성계가 하로산또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하로산또의 능력은 혹시…….’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하로산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롱하게 빛나는 두 눈이 도깨비불처럼 화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속죄의 시간이니라!]

    하로산또의 새하얀 몸에 은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무릎을 꿇어라, 벌레들아!]

    후우우웅-!

    하로산또의 몸에서 눈부신 은빛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그 파동이 사방에 있던 기갑기들을 덮쳤다.

    쿵! 쿠웅! 쿠우웅!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무릎을 꿇었다. 대부분이 가베치 기갑기들이었다. 아랫쪽에서 궤네깃또와 싸우고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잡아먹히고 있던 몽골 기갑기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거리가 꽤 멀어서 그런 듯했다.

    “크윽……!”

    이성계가 탄 바가투르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로산또가 뿜어내는 은빛 파동이 바가투르의 몸을 통과하는 순간,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다리가 풀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형 기갑기가 아니었다면 다른 기갑기들처럼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크윽…… 이럴 수가……!”

    “우린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젊은 가베치들이 패닉에 빠졌다. 동북아시아 최강의 전사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에 불과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로산또에게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피할 수 없는 광역 공격 때문에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쓰러져 버리기까지 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멘탈이 강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할 순 없었다.

    궤네깃또와 싸우던 몽골 기갑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궤네깃또의 엄청난 맷집과 재생력 때문에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충격은 궤네깃또 쪽이 더 심했다. 궤네깃또가 엄청난 힘으로 기갑기를 뜯어내서 기갑기사와 마정석을 씹어먹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럴수록 더욱 강하고 커져갔다. 기갑기를 조종하던 기술자들의 전투 경험이 부족해서 더욱 심각했다.

    “으으으 엄마…… 흐흐흑!”

    “내가 이럴 줄 알고 하지 말자고 했잖아!”

    몽골 기갑기사들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성계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그러했다.

    “바가투르! 아직 내공 남아 있지?”

    이성계가 외쳤다.

    [물론입니다.]

    “좋아! 가자!”

    쿵쿵쿵쿵쿵!

    바가투르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가베치들과 하로산또가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 동료들을 버려두고 혼자서 도망치다니! 참으로 역겨운 자로구나.]

    사슴 괴물 하로산또가 진심으로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고한 하로산또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가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베치들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가투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혼자 도망치는 건가?’

    ‘아냐! 공자님이 그럴 리 없어!’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야! 틀림없어!’

    대부분의 가베치들은 이성계를 믿었다. 그동안 이성계가 보여 준 활약과 인품 때문이었다.

    만약 회귀 전의 이성계였다면, 즉 액면 그대로 20대 초반의 이성계였다면 정반대였을 것이다.

    이성계가 정말로 혼자 도망친다고 생각하고, 혐오감과 분노에 가득 차서 이를 갈고 있었을 테니까.

    ***

    같은 시각,

    [밥-! 바아압-!]

    이젠 거의 6장(18m)에 가까워진 궤네깃또가 테무게를 향해 쿵쿵 걸어왔다.

    “빨리 피하세요 아빠!”

    “너야말로 빨리 피하거라 나릉토야!”

    부녀는 서로에게 먼저 피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궤네깃또의 양손이 테무게가 탄 가변형 상어 기갑기 <아바르가 자가스>의 양쪽 어깨를 꽉 붙잡았다.

    “꺄아 안돼-!!”

    나릉토야가 비명을 질렀다. 테무게가 온 힘을 다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테무게가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딸 걱정을 놓지 않았다.

    “나릉토야 피하거라! 제발!”

    [맛있는 상어- 고기-!]

    궤네깃또가 침을 질질 흘리며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아바르가 자가스가 세로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조종석에 앉은 테무게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산채로 몸이 뜯겨나가는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쿵쿵쿵쿵쿵-

    “바가투르 궁극기! 무릉도원!”

    북서쪽 한라산 자락에서 달려온 바가투르가 궤네깃또의 등뒤에서 외쳤다.

    슈우웅-!

    바가투르와 궤네깃또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현표! 유린청! 그리고 몽골 장인들 모두! 하로산또에게 가라!”

    이성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궤네깃또는 내가 맡는다! 그러니까 빨리-”

    슈슛!

    이성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가투르와 궤네깃또가 사라졌다.

    쿠웅-

    궤네깃또에게 붙잡혀 있던 아바르가 자가스가 쓰러졌다. 그러자 나릉토야의 기갑기 <달라인 모리>가 아바르가 자가스를 붙들었다.

    “아빠! 괜찮으세요 아빠?”

    나릉토야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난 괜찮다 나릉토야.”

    테무게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궤네깃또가 사라졌다!”

    “괜찮으실까 고려 장수님?”

    “바가투르의 아공간은 무적이 아니야!”

    “맞아! 상대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몽골 장인들이 웅성거렸다. 적이었던 이성계의 호칭이 어느새 “고려 장수님”이 되어 있었다.

    “이보게들 정신 차리게! 아직 하로산또가 남아 있어!”

    “그래! 지금 고려 장군님 걱정할 때가 아닐세!”

    “그…… 그래! 하로산또에게 가세!”

    “가자! 우리 땅 탐라를 지키자!”

    “우오오오-!”

    쿵쿵쿵쿵쿵

    20여 대의 몽골 기갑기들이 하로산또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은 일단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로산또 하나만으로도 제주 전체가 초토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여기- 뭐야-?]

    무릉도원에 들어온 궤네깃또가 화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기- 다 부순다-! 부수고 나간다-!]

    궤네깃또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바가투르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궤네깃또를 막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와라 카라 쥬르켄!”

    바가투르의 조종석에 앉은 이성계가 나지막이 말했다.

    기우웅-!

    아공간을 가르며 6장(18m) 크기의 초대형 기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이 돼지새끼는?]

    카라 쥬르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기심과 오만함, 나른함과 살기가 뒤섞인 목소리였다.

    [으으 너어-는- 무섭다- 너무 무섭다-아-!]

    궤네깃또가 카라 쥬르켄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본능적인 공포심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누런 이빨이 역겨운 냄새를 뿜어냈다.

    [이거, 죽이면 되나?]

    카라 쥬르켄이 물었다.

    “쉽지 않을 걸?”

    이성계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카라 쥬르켄이 새까맣고 날카로운 몸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쿵쿵쿵쿵쿵

    궤네깃또가 카라 쥬르켄을 향해 돌진했다. 18미터짜리 거인들이 굉음을 내며 충돌했다.

    ***

    “공자님이 오실 때까지 버텨라!”

    “제기랄!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데 어쩌라고?”

    “놈의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은빛 파동을 조심해라! 바위나 땅속에 숨으면 괜찮다!”

    몽골 기갑기 장인들과 가베치들이 하로산또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현표가 호시탐탐 다리를 물어뜯고, 발전자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서 벼락을 날렸으며, 유린청이 끊임없이 화살과 대초명적을 날렸다. 수허와 보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하로산또를 맞힐 수 없었다.

    “시팔 뭐 저딴 게 다 있어?!”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충샨과 판챠가 악을 썼다. 그러는 사이, 하로산또의 거대한 사슴뿔이 빛나기 시작했다.

    “온다!”

    “조심해!”

    캬아아아-!

    하로산또의 입에서 물빛 대포가 발사되었다. 후세인들이 보았다면 대구경 레이저포라고 했을 것이다.

    퍼어엉!

    “으아아악!!”

    빛의 대포에 얻어맞은 기갑기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가베치 기갑기사들과 몽골 기술자들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대론 안 돼! 이런 식이면 질 수밖에 없어!”

    “그럼 어쩌라고? 우리 공격은 하나도 안 먹히고, 저 새끼 공격만 먹히는데?!”

    “역시 신(神)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

    “아직도 그딴 소리냐? 그럴 시간에 공격을 해!”

    “마법 공격, 특수 공격은 물론이고 물리 공격까지 전부 소용없는데, 어떻게 공격하라고?”

    공허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로산또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기운을 빼앗겨 무릎을 꿇었고, 뿔에서 충전되어 입을 통해 발사된 광선 공격에 파괴되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도 하로산또를 공격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용맹한 가베치라도 마음이 꺾일 수밖에.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너희들의 목숨으로 속죄하거라!]

    하로산또의 차가운 목소리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고려와 몽골 기갑기들이 다시 한번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은 일어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였다.

    슈웃!

    마법진과 함께 바가투르가 등장했다.

    “공자님!”

    “장군님!”

    가베치들과 몽골 장인들이 동시에 외쳤다.

    “해내셨군요!”

    궤네깃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가베치들과 몽골 장인들이 환호했다.

    쿵쿵쿵쿵쿵

    이성계의 바가투르가 하로산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건방진 놈!]

    하로산또가 바가투르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가투르는 적당히 막고, 적당히 피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적당히 맞아 주면서 전진해 왔다. 하로산또의 궁극기나 기술(스킬)들의 쿨타임이 길어서 다행이었다.

    ‘하긴 그런 광역기들을 지체 없이 날려 댈 수 있다면, 아수라급이 아니라 마왕급 이상이겠지.’

    이성계가 하로산또의 바로 앞까지 접근해 왔다.

    [멍청한 놈! 나에게는 어떤 공격도…….]

    퍼어억!

    처음으로, 하로산또가 타격을 입었다.

    [이, 이게 무슨…?!]

    “뭐긴 뭐야?”

    바가투르가 거대한 마정석을 휘두르며 외쳤다.

    “니 친구 궤네깃또의 마정석이지!”

    [난 그놈과 친구가 아니……]

    “시끄럽다!”

    퍼어억!

    궤네깃또의 마정석이 하로산또의 머리통을 찍어 버렸다. 하로산또의 머리에서 초록색 피가 촥 튀었다.

    “우와 통한다! 공격이 통하고 있어!”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네그려!”

    “역시 대단해, 고려 장군님!”

    가베치들과 몽골 장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이성계가 고함쳤다.

    “구경났냐? 니들도 도와! 이놈도 재생력이 좋아서 바로 바로 회복되잖아!”

    “예? 하지만 저희는…….”

    “저희 공격은 쓸모가 없어서…….”

    “웃기지 말고 궤네깃또 쪽으로 가! 아까 궤네깃또랑 싸웠던 데!”

    이성계가 외쳤다.

    “가서 마력핵이 뽑힌 기갑기를 찾아! 찾아서 팔다리를 뽑아서 들고 오라고!”

    “예? 기갑기의 팔다리를 뽑으라고요?”

    “마력핵이 뽑혀나간 기갑기만 되나요?”

    “그래! 지금 당장!”

    쿵쿵쿵쿵쿵

    대여섯 대의 기갑기들이 동남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하로산또의 은빛 파동을 여러 번 맞고도 기운이 남아 있던 자들이었다.

    [어딜 가려고!]

    하로산또가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성계는 집요했다.

    퍽! 퍼억! 퍼퍼퍽!

    바가투르가 궤네깃또의 거대한 마정석을 거머쥐고 하로산또를 두들겨 팼다. 하로산또도 필사적이었지만 이성계는 더욱 필사적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기갑기들이 돌아왔다. 궤네깃또에 의해 마력핵이 뽑혀나간 기갑기들의 팔다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저희 왔습니다 장군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눈치도 없는 것들아!”

    이성계가 궤네깃또의 마정석으로 하로산또를 후드려 패며 외쳤다.

    “니들도 패! 막 패란 말이야!”

    “예? 예 알겠습니다!”

    대여섯 기의 기갑기들이 팔다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력핵이 뽑혀나갔던 기갑기들의 팔다리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034 조신용수(鳥身龍首) (1)

    붕~ 부웅~ 붕붕~

    대여섯 대의 기갑기들이 기갑기의 팔다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궤네깃또에 의해 마력핵이 뽑혀나간 기갑기들의 팔다리였다.

    퍼억! 퍽! 퍼어어억!

    [컥! 이…… 이럴 수가! 크허헉!]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던 하로산또가!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공격을 퍼부어도 여유만만하던 하로산또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뒤틀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찌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있단 말이냐?!]

    하로산또가 절규했다.

    신이 난 기갑기사들이 복날 개패듯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들 중 절반은 몽골 기갑기사, 절반은 가베치 기갑기사들이었다. 이성계도 궤네깃또의 마정석을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내려찍었다.

    “패! 더 패! 아주 다져 버려!”

    [이 건방진 놈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하로산또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고통과 굴욕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있었다.

    [크헉! 버러지 같은 놈들! 컥! 너희들은 끄흑! 저주받을 것이다! 끄어억!]

    그러나 이성계의 바가투르와 몽골, 가베치 기갑기들은 죽기살기로 두들겨 패기만 했다. 승기를 잡았으면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것이 병법의 기본이었으니까.

    퍽! 퍼퍽! 퍼버벅!

    [끄윽…… 제발…… 제발 그만…….]

    퍼버벅! 콰직! 퍼버버벅!

    [끄으으 제발…… 살려 주세요…….]

    한라산의 주인, 백록담의 영물이라 불리던 하로산또가 애원하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기갑기들이 공격을 퍼부을 때는 여유만만했던 하로산또! 하지만 이제는 체면도 자존심도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안 돼! 걍 뒈져!”

    “살려 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뻑! 뿌각! 빠각! 퍼버벅!

    [끅…… 끄으으윽…….]

    하로산또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새하얀 털이 초록색 체액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쿠웅!

    하로산또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했다. 하로산또는 보라색 혀를 길게 빼물고, 진녹색 눈알을 까뒤집은 채로 잠시 경련하더니, 환한 빛을 한 차례 뿜어낸 다음 축 늘어졌다.

    수백 년 동안 제주도를 떨게 만들었던 한라산의 주인, 하로산또가 죽은 것이다.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던 몽골 기갑기사들과 가베치들이 환호했다.

    “우와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아~!!”

    “고려 장군 백세!”

    “이성계 장군 백세! 백백세!”

    몽골 기사들과 가베치들이 한데 뒤엉켜 기쁨을 나누었다.

    ***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장군님!”

    테무게가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하로산또는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었기 때문이죠. 궤네깃또는 맷집이 엄청난 데다, 토벌군을 잡아먹어서 오히려 더 강해졌고요.”

    이성계를 둘러싸고 있던 수십 명의 가베치들과 몽골 기술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로산또와 궤네깃또를 해치우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주도에 꽤 많은 기갑기들이 있었는데도 끝내 해치우지 못했죠.”

    테무게가 말했다. 몽골 장인들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실상 포기 상태였죠. 다행히 하로산또와 궤네깃또는 사람 고기보다 마물 고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말고기도 좋아했고요. 그래서 저희도 적당히 제물을 바치면서 살았던 겁니다. 아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장군님?!”

    “맞습니다! 너무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세요 장군님!”

    “한 수 가르쳐 주세요!”

    “부탁드려요!”

    가베치들과 몽골 기술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운이 좋았을 뿐일세.”

    이성계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가베치들과 몽골인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성계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우선 궤네깃또의 경우는…… 어중간한 기갑기가 아니라 강력한 기갑기 한 대로 끝까지 패는 게 정답이었네.”

    “맞아! 괜히 떼로 공격해봤자 먹잇감밖에 안 되지!”

    “이제까지 그걸 몰랐나? 한 대로는 안 되니까 그렇지!”

    “맞아! 궤네깃또 같은 초대형 괴수를, 그것도 엄청나게 맷집 좋고 힘센 괴수를 어떻게 혼자서 상대하겠어?”

    “고려 장군님은 하셨잖은가?”

    “근데 바가투르가 그렇게 강했던가?”

    “어떻게 생각하나 테무게? 자네가 만들었으니 알 거 아닌가?”

    “바가투르로는 어림도 없지.”

    테무게가 말했다. 그러자 이성계가 헛기침을 했다.

    “어흠!”

    테무게와 이성계의 눈이 마주쳤다. 테무게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바가투르로는 어림도 없지. <무릉도원> 밖에서라면 말일세.”

    “아하!”

    “바가투르가 궤네깃또보다 몸집이 작고 출력이 딸리는 건 맞지만, <무릉도원> 안에서는 확실히 유리해지니까 말일세.”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더니…….”

    “그, 그래! 바로 그걸세!”

    “흐음~ 아무리 그래도 바가투르가 혼자 이길 순 없었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혹시 장군님이 도와주신 거 아닌가?”

    “그렇지! 장군님은 기갑기를 여러 대 조종할 수 있으니까!”

    “말씀해 주세요 장군님!”

    “궤네깃또 이야기는 그쯤 하세.”

    이성계가 말을 돌렸다. 이러다가 카라 쥬르켄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서였다.

    “하로산또 이야기는 듣기 싫은가?”

    “아, 아닙니다요 장군님!”

    “궤네깃또보다 그게 더 궁금합니다!”

    “저도요!”

    “그래. 하로산또도 별 거 아니었어. 놈의 특기는 기(氣)의 반대 파장을 만들어 내는 거였으니까.”

    “기의 반대 파장……?”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공격을 받는 순간 정반대의 파장을 일으켜서 상쇄시켰단 말일세.”

    “아하~!!”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원리지. 그걸 현실에서 구현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지만.”

    “그럼 궤네깃또에게 마력핵을 뽑힌 기갑기들의 팔다리를 이용한 것도…….”

    “그래. 마력핵이 없다는 건 마정석이 없다는 뜻이고, 마정석이 없다는 건 기(氣)가 없다는 뜻이니까.”

    “그렇군요! 기가 없으면 정반대의 기도 못 만드는 게 당연하죠!”

    “0에 무슨 수를 곱해도 0이 되니까!”

    “혹시 궤네깃또의 마정석으로 후드려까신, 아니 공격하신 것도 같은 원리였나요?”

    “물론이지. 궤네깃또는 기갑기들의 마정석을 먹어서 흡수했지. 그 말은 궤네깃또의 마정석이 강렬한 음기를 갖고 있다는 뜻 아닌가?”

    “맞아! 음기(-)의 역장(-)은 양기(+)니까!”

    “하로산또가 음의 파동을 발생시킬수록 파괴력이 더 커졌던 거야!”

    “그래서 공격이 먹힌 거였군요!”

    “하로산또는 자충수, 아니 외통수에 걸려든 거였군!”

    “이렇게 간단한 거였다니…….”

    “정말 허무하네요. 휴우~”

    “아닐세.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기갑기와 각성자들 모두 기(氣)를 기본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기가 실리지 않은 공격은 파괴력이 형편없이 줄어드니까 말일세. 그러니 <기를 완전히 없앤 순수한 물리력>이라는 발상을 못하는 게 당연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토벌전에서는 더더욱.”

    이성계가 관대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존경과 감사가 담긴 눈동자들이 이성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로산또와 궤네깃또의 마정석은 내가 가져가겠네.”

    이성계가 말했다.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명분으로 보나 기여도로 보나, 이성계가 가져가는 게 당연했으니까.

    “고맙네. 뼈와 고기는 두고 가겠네.”

    이성계가 미소 지었다.

    가베치들이 궤네깃또의 마정석과 하로산또의 마정석을 챙겼다. 궤네깃또의 마정석은 짙은 색의 거대한 보석처럼 생겼고, 하로산또의 마정석은 각도에 따라 은색과 백색으로 보이는 거대한 진주알처럼 생겼다.

    몽골 기갑기 장인들이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으로 크고 아름다운 마정석들이로구나!’

    ‘저런 마정석으로 기갑기를 만들면 얼마나 강하고 멋질까?’

    ‘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아~!’

    몽골 장인들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

    이성계가 테무게와 그의 딸 나릉토야를 배에 태웠다. 물론 아내도 함께였다.

    반대하거나 시비를 거는 자들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자들까지 있었다.

    이성계가 하로산또와 궤네깃또를 해치웠을 뿐만 아니라, 그 직전에도 영리하게 처신한 덕분이었다.

    이성계를 계속 따라다닌 충샨과 판챠는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로산또와 궤네깃또가 등장하기 직전, 공자님이 몽골 기갑기 기술자들을 죽이겠다고 했지. 그건 사실 의도된 거였어.’

    ‘맞아. 마음씨 좋은 테무게와 나릉토야가 필사적으로 말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결국 테무게는 옛 동료들을 살려 준 셈이 되었고…….’

    ‘옛 동료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 되었지.’

    ‘고향이나 다름없는 제주도를 야반도주하듯이 떠나야 했던 테무게 가족의 마음을 배려하신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시다니…….’

    ‘정말 20대 초반 맞아?’

    충샨과 판챠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성계와 가베치들, 테무게의 가족들을 태운 배가 항해를 시작했다.

    부산포를 거쳐 원산으로, 원산에서 함흥으로 가는 코스였다.

    “마정석으로 움직이는 기갑선(船)이군요.”

    테무게가 이성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마정석을 꼭 기갑기에만 쓰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마정석을 장착한 기갑전차(戰車)도 있고, 비행형 괴수의 마정석으로 만든 비갑기(飛甲機)도 있죠.”

    이성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근깨 소녀 나릉토야가 발랄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장군님! 저는 테무게의 딸 나릉토야라고 해요!”

    이성계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꽤 유능한 기갑기사라지?”

    “앗! 과찬이셔요!”

    나릉토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여자지만 기갑기 제작에는 자신 있거든요!”

    나릉토야가 가슴을 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성계가 피식 웃었다.

    “그래. 성별 따윈 상관 없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장군님!”

    나릉토야가 소녀답지 않게 군례를 갖추며 외쳤다. 이성계가 가볍게 답례했다.

    ‘내가 공자님께 나릉토야 이야기를 했던가……?’

    테무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무게는 끝까지 몰랐다.

    이성계가 노리던 ‘최고의 기갑기 장인’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딸, 나릉토야였다는 사실을.

    ***

    얼마 후, 강원도 원산 근처의 어느 들판.

    “꺄아아아-!”

    “사람 살려-!”

    “엄마아아-!”

    고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키요로로로!!

    용의 머리에 독수리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수백 마리의 <조신용수(鳥身龍首)>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푸득! 푸드덕! 푸드드득!

    콰악!

    “끄아아아!!”

    날카로운 용의 이빨이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팔뚝에 박혔다.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모가 아이를, 남편이 부인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때였다.

    쐐액! 쐐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왔고,

    “화염구(火炎球)!”

    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10여 개의 불덩어리들이 날아왔다.

    화륵! 화르륵! 화르르륵!

    끼엑! 꺅! 끼요오오오!!

    축구공만 한 불덩어리를 얻어맞은 조신용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무사들이 달려왔다.

    “죽어라 괴물 새끼들아!”

    “쏴라! 마정탄(魔精彈)과 화살을 쏘란 말이다!”

    “기갑기는 언제 오는 거냐?”

    무사들이 칼과 창, 술법과 화살로 조신용수를 공격했다. 그들은 이 일대를 지배하는 토호, 즉 권문세족의 사병(私兵)들이었다.

    그때였다.

    키요오-로로로로-!!

    귀청을 찢을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조신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035 조신용수(鳥身龍首) (2)

    키요오-로로로로-!!

    귀청을 찢을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양 날개의 끝과 끝이 30미터가 넘는 <조신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길! 조신용수신(鳥身龍首神)이잖아!”

    대가리는 용, 몸통은 독수리, 꼬리는 뱀인 조신용수들의 왕! 조신용수”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조심해라! 저놈은 강하다!”

    무사들이 서로를 독려했다. 조신용수신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토벌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때였다.

    쿵! 쿠웅! 쿠쿵!

    열 대의 기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20여 명의 기갑지원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기갑기가 왔다!”

    “우린 살았어!”

    백성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무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겨우 열 대로 조신용수신을 잡을 수 있을까?’

    ‘대형은커녕 준대형도 없잖아?’

    ‘수백 마리의 조신용수들은 또 어떻고?

    무사들이 불안해할 만했다. 중형이 한 대, 준중형이 두 대, 소형이 세 대, 경형이 네 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네 대나 되는 경형 기갑기들이 문제였다. 경형은 2장, 즉 6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다는 말은 마력핵의 출력이 낮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조신용수신 같은 초대형 괴수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다행히 눈앞의 조신용수신은 아수라급이 아니라 야차급이었다. 만약 아수라급이었다면, 백성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다가 전멸당하는 역할밖에 못했을 것이다.

    “경형들은 조신용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라!”

    중형 기갑기에 탑승한 기갑기사 박충태가 외쳤다.

    “나머지는 조신용수신을 친다! 쐐기 대형으로 서라!”

    “예, 장군!”

    준중형 기갑기들과 소형 기갑기들이 박충태의 뒤에 섰다. 박충태를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 모양의 진형이 만들어졌다.

    경형 기갑기들은 백성들 쪽으로 달려간 뒤, 기갑기용 창으로 조신용수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부웅~! 부우웅!

    퍽! 퍼벅! 퍼버벅!

    꽤애액! 끼에에엑!

    대여섯 마리의 조신용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다. 경형 기갑기들은 전쟁터에서는 사실상 전력 외 취급을 받았지만, 이런 싸움에서는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하지만 용의 대가리에 독수리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조신용수들은 매우 영리했다. 경형 기갑기들이 휘두르는 창의 사정거리를 즉시 파악한 뒤, 그 바로 밖에서 훨훨 날아다니며 조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빌어먹을 새새끼들이!”

    “더럽게 안 맞네 시부럴!”

    “젠장! 궁극기만 있었어도…….”

    경형 기갑기사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경형 기갑기에는 궁극기가 없었다. 있더라도 매우 약했다.

    그래도 경형 기갑기들의 활약(?) 덕분에 백성들이 도망치기 쉬워졌다.

    “이쪽으로 와! 빨리 뛰어!”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기갑지원병들도 백성들을 도왔다. 백성들이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키요오- 키로로로로-!!

    분노한 조신용수신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포효했다. 열 대의 기갑기가 두 날개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대형의 맨 앞에 있던 중형 기갑기사 박충태가 소리쳤다.

    “자세를 낮추고 앞사람의 어깨를 꽉 잡아라!”

    “예, 장군!”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병들이었다. 그래서 장군이라는 칭호는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만약 조선시대의 일반인이 이런 짓을 했다간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민왕과 고려 정부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권문세족들의 사병이 없으면 치안 유지도, 괴수 토벌도, 외적과의 전쟁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키요로로로-!

    거대한 조신용수신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는 맹렬한 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급강하한 거대한 조신용수신이 소형 기갑기를 덮쳤다.

    “끄아아악!”

    “이때다! 쳐라!”

    박충태가 고함쳤다. 그러자 박충태를 비롯한 준중형, 소형 기갑기들이 일제히 조신용수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과 화염, 창과 고압전류가 조신용수신의 날개와 다리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조신용수신은 이미 하늘 높이 솟구친 뒤였다.

    “으아아 살려 줘-!!”

    조신용수신이 거대한 독수리 발톱으로 소형 기갑기의 두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그 상태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조신용수신이 소형 기갑기를 놓아 버렸다.

    “으아아아아-!”

    처절한 비명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추락하던 소형 기갑기가 콰직!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형석아……!”

    “미안해 형석이 형!”

    기갑기사들과 기갑지원병들이 눈물을 삼켰다.

    키요오오-로로로!

    조신용수신이 길게 울었다. <꼴 좋다 인간 놈들아!>라고 약올리는 느낌이었다. 수백 마리의 조신용수들도 못생긴 용대가리를 흔들며 킬킬거렸다.

    “개새끼들이 감히……!”

    “죽여 버린다 진짜!”

    기갑기사들과 기갑기원병들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와 공포는 식은땀이 되어 이마에 맺혔고, 슬픔과 불안은 차가운 땀이 되어 손바닥을 적셨다.

    사실 이 정도도 변방 토호의 사병치곤 훌륭했다. 적어도 짜리몽땅한 토호처럼 백성들을 나몰라라 하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20대 가까운 기갑기까지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체급이 딸리긴 하지만 그 정도도 대단한 것이었다.

    수천 명의 사병들과 200여 대의 기갑기를 보유한 가베치가 특이한 케이스였다. 공민왕이 이자춘을 고려로 끌어들이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키요오로로-!

    펄럭-! 펄럭-!

    조신용수신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기갑지원병들과 기갑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두 명의 승려가 참혹하게 부서진 소형 기갑기 앞에서 합장했다.

    “어? 뭐야 저건?”

    “인기척도 없이 언제 들어온 거야?”

    “위험해요 스님!”

    “빨리 나가세요! 빨리요!”

    기갑지원병들이 외쳤다. 그러나 두 명의 승려들은 대답 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건 조신용수신이로군.”

    30대 후반의 승려가 말했다.

    “스승님, 제가 참전해도 되겠습니까?”

    20대 후반의 승려가 공손히 물었다. 그러자 30대 후반의 승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생 구제는 보살행의 기본 아닌가? 헌데, 자네의 기갑기는 전투형이 아니잖은가?”

    “예, 그래도 제가 도와드리면 조금 낫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니? 큰 도움이 될 걸세.”

    “과찬이십니다 스승님.”

    키요오오오오-!

    조신용수신이 땅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대 후반의 승려가 합장하며 말했다.

    “나와라 비말라키르티(Vimalakirti)!”

    기우웅-!

    5장(15m)의 중형 기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황금 불상의 모습이었다.

    “무한의 공덕을 낳는 창고(藏)가 되어, 무량의 공덕을 가지고 불국토를 빛나게 하시니-!”

    유마경을 읊던 20대 후반의 승려가 외쳤다.

    “허공장(虛空藏)!”

    후우웅-!

    거대한 황금 불상이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오던 조신용수신의 주위에 거대한 황금색 상자가 생겨났다. 그러자 조신용수신이 반투명하게 빛나는 황금상자에 갇혔다.

    끼엑?! 끼에에엑!!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상자 안에서 조신용수신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조신용수신이 몸부림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저…… 저럴 수가…….”

    “그 큰 괴수를 단번에 가둬 버렸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얼마 못 가서 나올 겁니다! 지금 바로 공격을!”

    20대 승려가 외쳤다. 박충태를 비롯한 기갑기사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모두 공격! 공격하라!”

    중형과 준중형, 소형 기갑기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공중에 떠 있는 황금 상자를 향해 일반기, 특수기, 궁극기들이 쏘아져 올라갔다.

    쾅! 콰앙! 퍼어엉!

    끼에에에엑!!

    조신용수신이 비명을 질렀다. 허공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상자는 화살과 투창, 화염, 전기 등의 공격을 모두 통과시켰다. 마치 상자에 자아가 있는 것 같았다.

    끼에에엑!

    조신용수신이 몸부림치자 황금상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빠지직-! 빠지지직-!

    “조…… 조금만 더!”

    박충태와 기갑기사들이 젖먹던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조신용수신이 더 빨랐다.

    빠지지직-! 꽈아앙!

    굉음과 함께 허공장이 박살 나서 흩어졌다. 황금색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파편에 맞은 조신용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보라색 피가 파란 하늘을 물들였다.

    키로로로로로!!!

    누가 봐도 ‘빡친’ 조신용수신이 괴성을 질렀다. 날카로운 음파가 땅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20대 승려가 재빨리 외쳤다.

    “연화엄(蓮華嚴)!”

    후웅-!

    황금색 불상 기갑기 <비말라키르티>를 중심으로 거대한 반투명 연꽃이 피어났다. 주변 마을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컸다. 조신용수신이 발산한 음파가 연꽃 꽃잎 위에 쏟아졌다. 그러나 반투명 연꽃을 뚫지 못하고 아지랑이처럼 흩어져서 소멸했다.

    키오오로로로로-!

    분노한 조신용수신이 목을 길게 빼고 울었다. 그러자 조신용수신의 몸에 거대한 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하군. 마기(魔氣)의 크기와 흐름이 범상치 않아!”

    30대 승려가 외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신용수신의 몸통이 부풀어 올랐다. 용의 머리에 독수리의 몸, 거대한 뱀의 꼬리를 가진 괴수가 풍선처럼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었다.

    “조심하시게! 놈의 궁극기일세!!”

    30대 후반 승려가 외쳤다. 그러자 20대 승려가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외쳤다.

    “비말라키르티 궁극기! 브라흐마의 그물(梵網)!”

    화아아아-!

    황금색으로 불타는 비말라키르티가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황금 그물이 펼쳐졌다. 바로 그 순간, 조신용수신이 엄청난 속도로 알을 낳기 시작했다.

    뿍! 뿌욱! 뿌부부북!

    키에에에에에!!

    조신용수신이 울부짖었다. 수백 개의 알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통보다 컸다.

    쐑! 쐐액! 쐐애애액!

    쾅! 콰쾅! 콰콰쾅! 콰콰콰쾅!!

    수백 개의 알이 <브라흐마의 그물>에 충돌했다.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말 그대로 융단폭격이었다.

    “크으윽-!”

    20대 승려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비말라키르티의 두 눈이 흐릿해졌다. 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는 뜻이었다.

    “이런 식이면 안 돼! 스님들도 버티지 못할 거야!”

    “제기랄! 문제는 우리야! 우리가 너무 약해!”

    “맞아! 스님들은 막아 주시는 동안 해치웠어야 하는데……!”

    박충태를 비롯한 기갑기사들이 초조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조신용수신은 그들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키요오오-로로로!

    조신용수신이 의기양양하게 포효했다. 황금색 불상 기갑기에게 공격 수단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조신용수신의 아랫배가 또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불룩 불룩 불룩!

    “또 온다!”

    “제길! 이제 끝인가?”

    박충태와 기갑기사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키이이잉-!

    날카로운 귀곡성과 함께 거대한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푸우욱-!

    대들보 같은 화살이 조신용수신의 배를 꿰뚫었다.

    키…… 에엑……??

    조신용수신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키이이잉-!

    푸욱!

    또 하나의 화살이 용의 턱을 뚫고 들어가서 두개골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끄르르륵…….

    조신용수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조신용수들이 패닉에 빠졌다.

    키에엑! 키요옷! 키욧! 키요오옷!!

    조신용수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발전자 궁극기! 뇌제강림(雷帝降臨)!”

    빠지지지지직!

    수백 개의 작은 번개가 온 하늘에 작렬했다. 사람 크기만 한 조신용수들이 전기구이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와 맛있는 냄새! 술 땡긴다 술!”

    “좋긴 한데 언제 다 먹나 그래?”

    충샨과 판챠가 군침을 흘리며 떠들어 댔다. 그들은 쌍도끼 기갑기 수허와 원숭이 기갑기 보뇨에 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거대한 젊은 장수가 20대 승려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하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무학 대사님.”

    0